‘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작품’이라는 사전적 정의만으로는 고전(古典)이 가진 힘을 설명할 수 없다. 고전 읽기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삶의 지혜와 처세’, ‘철학적 혹은 통합적 사유’, ‘인생을 바꾸는 한 줄’ 등의 부제를 달고 있는 것만 봐도 고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오피니언 리더들이 손에서 고전을 놓지 않는 이유다.



“내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만난 파트너들 역시 대부분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늘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책을 읽고 있었다. 그들 역시 동양 고전을 많이 읽었다. 책 구석구석에 메모를 남겼고 책 귀퉁이가 접혀 있거나 종이냅킨 같은 것이 꽂혀 있는 경우도 많았다. 포스트잇으로 군데군데 표시를 해놔 나중에 찾기 쉽도록 분류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일종의 지식 경영이라 할 수 있겠다. 한 경영자는 내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천년이 넘은 글에 특히 귀중한 아이디어가 많이 숨어 있습니다.’”

최근 발행된 ‘퍼스트클래스 승객은 펜을 빌리지 않는다’(중앙북스)에서 저자인 미즈키 아키코가 한 말이다. 저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퍼스트클래스 승객들은 ‘활자중독’이 많다고 말하며, 그중에서도 역사서, 고전 등을 탐독한다”고 말하고 있다.


근본적 질문에 ‘답’을 구하는 유용한 도구
국내에서도 이미 수많은 이들이 고전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이미 유년기, 청소년기, 사회초년병 시절 등을 거치며 학업의 연장선 또는 스펙의 하나로 ‘고전 읽기’를 해온 바 있지만, 나이가 들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기가 됐을 때 다시 접하는 고전은 그야말로 ‘신세계’로 다가온다. 이에 대해 광고인 박웅현은 ‘인문학 명강’(21세기북스)에서 ‘무릎을 꿇게 한’ 고전, 특히 동양 고전의 힘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대단한 실력으로 그림을 그리고 음악을 만들려 해도 마음을 열고 들으면 물 떨어지는 소리, 계곡물 흐르는 소리만한 음악이 없고, 여름에 보는 녹색, 그 자연만한 그림이 없습니다. 그것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힘, 이 힘들은 서양도 가지고 있지만 동양에서 훨씬 더 많이 느껴집니다. (중략) 우리 주변에 정말 경의를 가지고 봐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것을 얼마만큼 들여다보느냐가 오늘날 동양 고전이 갖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도 같은 책에서 “프랑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문주의자 샤를 드 부엘 역시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하고 유용한 도구는 고전이라고 말한다”며 “‘인간이 무엇일까, 이 사회는 뭘까, 어떤 게 덕일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그냥 생각하는 것보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온 것들에서 출발하면 훨씬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거다”라며 고전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더불어 주 교수는 ‘고전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어떤 책 한 권만 읽으면 그 문명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는 신비한 경전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논어’의 어떤 부분만 알면 중국 문명에 대해서 훤해진다, 플라톤의 ‘국가’를 이해하면 서양 문명의 정수를 바로 이해할 수 있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고전이라는 것 역시 어떤 시대에 만들어졌고, 그 후 그것이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면서 그들이 공부한 것들이 누적되고 그것이 다른 문명권에 전파되고 그쪽 사람들도 그것에 대해 공부하면서 무엇인가 집어넣고 그러면서 점점 커지는 그릇입니다. 다시 말해 고전도 발전해 가고 형성돼 가고 또 다음 세대가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 교수의 말처럼 고전을 ‘잘’ 읽는 ‘방법’ 같은 건 없다. 다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그간의 경험, 사유의 깊이가 더해져 각자 다른 크기의 깨달음 혹은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일 뿐. 얼마 전부터 직업이 각기 다른 지인들과 고전 읽기 모임을 하고 있다는 한 대학교수는 “같은 책을 읽고도 서로 비슷한 혹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나누며 굉장히 많은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며 “나이가 들어 다시 읽는 고전의 감동은 중학교 수학여행지로 갔던 ‘감동 없던’ 경주 불국사를 훗날 다시 찾았을 때의 감정과 비슷하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자, 이쯤 되면 다시 고전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충분할 터. 시공을 넘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고전 여덟 편을 추천한다.



chapter 1_동양 고전

공자의 유일한 어록 ‘논어’
[HOW TO READ CLASSIC BOOK]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힘, 어떻게 고전을 읽을 것인가
‘논어(論語)’가 ‘성경’만큼이나 동아시아권, 아니 동양학을 공부하거나 관심을 두고 있는 세계인의 가슴에 자리 잡고 있는 이유는 분명하다. 바로 인간의 삶과 죽음이라는 근본적인 질문, 삶의 방식을 건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논어’의 언어 체계나 문화 양식은 특수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언급하고 결론짓고 있는 논지가 ‘보편적’이기에 ‘논어’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읽혔고 앞으로도 읽힐 것이다.

특이하게도 공자가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소상하게 밝혀 놓은 기록이 없다. 공자의 유일한 어록인 ‘논어’를 봐도 그것이 공자의 입을 통한 것인지, 제자들의 입을 통한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다. 그래서 ‘논어’를 보면 밋밋하다. 특별히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정황이 나타나기는커녕 주로 부모님과의 일, 친구들과의 일, 이웃집과의 일 등 뿐이다. 하다못해 군주와 대화를 나눈 일조차 정치적 포부나 처세의 방법을 멋지게 전달하기보다는 ‘근면’과 ‘성실’ 이 두 마디로 요악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에 ‘논어’와 공자의 위대함이 담겨 있다. 공자는 ‘일상’을 ‘학교’로 삼고 ‘인간관계의 이러저러한 상황’을 ‘텍스트’로 삼아 ‘관계 속에서 가져야 할 마음이나 태도’를 이야기한다. 그 내용을 정리한 것이 ‘논어’다.


권력을 집행하는 이들의 윤리지침서 ‘목민심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는 누구나 알지만 정작 읽어본 사람은 매우 드문 책이다. ‘목민심서’는 책 이름으로 보면 ‘목민관(牧民官)이 마음으로 새겨야 할 책’이란 뜻이다. 조선 사회는 사족(문벌이 좋은 집안·선비나 무인)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사족은 국가 권력을 장악하고 피지배층인 민(民)을 다스렸다. 그 다스림은 때로 ‘애민(愛民)’이란 고상한 말로 표현되기도 했다. 백성에 대한 지나친 수탈을 멈추고 그들의 물질적 삶을 충족시키는 것이 애민의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사족은 과거를 통해 관료가 되고 백성을 다스렸다. 관료들에게는 각별히 애민의식이 요구됐지만, 그것은 이상일 뿐 현실은 판연히 달랐다. 특히 조선 후기가 되면서 지방 행정이 극도로 부패했고, ‘목민심서’는 이처럼 지방관에 의해 이루어졌던 악질적 수탈을 방지하기 위해 쓴 책이다. 다산은 ‘목민심서’에서 근본적인 개혁책은 아니지만 애민의 정신을 따라 지방관이 행정의 현장에서 취해야 할 양심적 행정의 매뉴얼을 제시했다. 단순한 윤리지침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지방 행정의 구체적 현실을 현미경적 시각에서 포착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책인 것.

그렇다고 ‘목민심서’가 전근대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재 국가의 앞에는 ‘민주공화’란 수식어가 붙어 있지만, 국가는 항상 민인(民人)에게 때로 거부할 수 없는 ‘강제’로 다가온다. 이런 사실을 상기한다면 오늘날 대한민국 국민은 물론이고 특히 국가 권력을 집행하는 관료들에게 ‘목민심서’는 반드시 읽고 새겨야 할 책이다.


중세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 ‘금오신화’
거듭된 가정사로 지쳐가던 21세의 젊은 김시습이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을 접한 뒤 미친 승려 행색으로 전국을 방랑하다 경주 남산, 즉 금오산에 머물며 지은 한문 소설이다. 김시습은 소설을 쓴 뒤 “후세에 나를 알아줄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며 석실에 감추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금오신화(金鰲新話)’는 자의든 타의든 세상과 화합할 수 없었던 한 중세 지식인의 소설적 독백이라 일컬을 만하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자부하던 김시습의 글쓰기 솜씨가 한껏 발휘되고 있는 ‘금오신화’는 모두 다섯 편의 단편소설을 엮은 소설집이다. 남원의 불우한 서생이 만복사에서 왜구에게 죽임을 당한 여인의 원혼과 짧은 사랑을 나눈 뒤 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만복사저포기’, 가문의 지위가 현격히 달랐던 청춘남녀가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으나 홍건적의 난으로 말미암아 생사가 나뉜 비극적 사랑을 그려낸 ‘이생규장전’, 개성 출신의 서생이 평양 부벽루에서 기자조선의 딸을 만나 시를 주고받으며 하룻밤을 지내고 난 뒤 죽었다는 ‘취유부벽정기’, 불우한 서생이 꿈속에서 염라대왕을 만나 뒤틀린 세상사의 모순에 대해 토론하고 돌아왔다는 ‘남염부주지’, 그리고 세상에 쓰이지 못한 문사가 꿈에 용왕의 초청으로 용궁에 가서 상량문을 지어준 뒤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는 ‘용궁부연록’이 그것이다.

각 단편마다 비극적 결말로 끝맺는 데는 작가 김시습의 불우했던 최종 행로와 무관하지 않다. 평생을 비분과 방랑으로 지내다 5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김시습. 우리는 그와 같은 마음으로 ‘금오신화’를 대해야 한다.


사상의 깊이와 문체의 진보성 ‘열하일기’
조선시대 3대 연행록은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다. 홍대용과 박지원은 둘도 없는 벗이었다. 박지원의 북경행 역시 홍대용의 여행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1780년 청 건륭제의 칠순잔치를 축하하기 위한 사신단이 꾸려지고, 박지원은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북경으로 떠났다. 박지원은 1780년 6월 24일 압록강을 건너 중국 땅을 밟았고, 그로부터 한 달을 넘겨 8월 1일 북경에 도착했다. 그런데 건륭제는 그때 마침 전례를 따라 열하(지금의 승덕시. 열하는 ‘더운 물이 솟아 흐르는 냇물’이라는 뜻)의 피서산장에 머무르고 있었다. 조선의 사신단과 박지원은 열하로 따라갔고, 이에 ‘열하’란 이름을 따 ‘열하일기’가 됐다.

‘열하일기’는 단순한 일기체의 여행기가 아니다. ‘열하일기’를 쓰고 난 뒤 연암이 자신의 옛 원고를 모두 없애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하듯, 연암은 ‘열하일기’에 자신의 문학적 역량과 사유를 모두 쏟아 놓은 것이다. 내용이 깊고 풍부한 것은 물론이고 연암 자신이 구사할 수 있었던 모든 문학적 테크닉을 이 저작에서 남김없이 구사했다. ‘열하일기’에서 박지원은 청의 선진 기술과 제도를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아울러 사회 발전을 방해하는 관념에 대한 비판, 위선적 양반들에 대해 가한 비판과 풍자 등을 하기도 했다. 한편 ‘열하일기’는 문체의 박람회장이기도 하다. ‘열하일기’는 사상의 깊이와 문체의 진보성 양면에서 조선 후기 산문이 거둔 최고의 성과라 할 것이다.



chapter 2_서양 고전

영혼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지복의 경지 ‘신곡’
‘신곡(La Divina Commedia)’은 단테 알리기에리가 고향 피렌체를 떠나 망명 생활을 하던 1308년과 그가 죽음을 맞이한 1321년 사이에 쓴 장편 서사시다. ‘신곡’은 지옥에서 처절한 형벌을 받는 영혼과 죄를 씻기 위해 정화의 불길 속을 걷는 영혼, 천국에서 축복을 누리는 영혼 등 다양한 영혼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그들이 누리는 축복을 노래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민족 문학의 걸작을 뛰어넘어 유럽 문학, 나아가 세계 문학의 가장 위대한 작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신곡’의 구조와 내용을 살펴보면 ‘신곡’은 총 1만4233행으로 돼 있고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이라는 3개의 시편으로 나누어져 있다. 각 시편은 33개의 곡으로 편성돼 있으며 ‘지옥편’만 34곡으로 구성돼 있다. ‘신곡’의 중요한 주제는 사랑이다. 이 주제는 ‘연옥편’에서 매우 중요한 틀이 된다. 단테는 신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사랑을 구분한다. 그가 볼 때, 전자는 순수한 반면 후자는 불순할 수 있다. ‘신곡’은 단테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섬광 속에서 단테는 마침내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의 신비를 이해하게 되고 그의 영혼은 하나님의 사랑과 함께하게 된다. 단테는 “여기 고귀한 환상에 내 힘은 소진했지만/ 한결같이 돌아가는 바퀴처럼 나의/ 열망과 의욕은 다시 돌고 있었으니/ 태양과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 덕택이었다”고 노래한다.


부조리와 실존의 문제 ‘이방인’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20세기 최고의 문학작품으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선정했다. 이 소설은 카뮈를 세계적 작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카뮈는 ‘이방인’에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창조했다. 인간 사회는 부조리하며 거기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은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를 닮았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 짧은 소설을 동시대 최고의 이야기이며 “그 자체가 이미 하나의 이방인”이라고 평했다. 바로 소설계의 아웃사이더가 등장한 것. 어머니가 죽었는데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며 어쩌다 저지른 살인을 태양 탓으로 돌리며 과거도 지금도 행복하다고 말하는 인물이 뫼르소다. 뫼르소가 자신을 평범한 일상인으로 자처하는 어느 순간 이방인이다. 그는 인습의 저편에서 국외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치 카뮈가 “나는 이곳 사람이 아니다. (중략) 세계는 내 마음이 기댈 곳을 찾지 못하는 풍경에 불과하다”고 언급한 것처럼.
[HOW TO READ CLASSIC BOOK]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힘, 어떻게 고전을 읽을 것인가
두 부분으로 구성된 소설 ‘이방인’의 1부는 주로 뫼르소의 일상적 삶, 즉 그가 자신의 삶을 전혀 이방인의 삶으로 여기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2부는 뫼르소에 대한 재판 과정이다. 그는 방관자적 심정으로 타인에 의해 자신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을 지켜본다. 그리고 자신이 부조리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인식한다. 카뮈가 ‘이방인’에서 취급한 주제는 이와 같은 삶의 부조리에 대한 통찰이며 고발이다. 하지만 염세적 감상주의는 아니다. 오히려 혼란과 해체 이후 새롭게 정립할 존재성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한다. 즉, 실존을 의식하며 거기에 반항하는 적극적인 생존 방식을 택하는 것이다.


운명을 개척하는 인간의 모습 ‘데카메론’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Decameron)’은 1348년 집필을 시작해 5년 후에 완성한 작품이다. ‘데카메론’은 희랍어로 ‘10일’을 뜻한다. 따라서 ‘아라비안나이트’가 흔히 ‘천일야화’라고 불린 것과 비교해 ‘십일야화’라고 불린다. ‘데카메론’은 이탈리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피렌체에 흑사병이 나돌자 이를 피해 일곱 명의 숙녀와 세 명의 신사가 교외의 별장에 함께 머물면서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한 사람이 하루에 한 가지씩 이야기를 하며 열흘 동안 나온 100가지 이야기를 담은 인간 군상의 이야기다. 흔히 신들의 이야기인 단테의 ‘신곡’과 대비해 ‘인곡’이라고 불린다.
[HOW TO READ CLASSIC BOOK] 시공을 초월한 사유의 힘, 어떻게 고전을 읽을 것인가
‘데카메론’은 10일 동안 100가지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그 구성이 변화무쌍하고 그 무대 또한 유럽 각지에서 동방에까지 이르고 있다. 인물이나 성격, 기질 등도 서민층에서 상류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함을 보여준다. 보카치오 작품의 집대성이라고 할 ‘데카메론’의 주제, 형식, 취향 등은 기본적으로 중세적인 것이지만 주제와 형식을 다루고 있는 그의 정신은 최소한 중세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한 새로운 것이다. 그는 ‘데카메론’에서 처음으로 운명과 싸우고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며, 가능하다면 운명을 개척하기까지 하는 인간의 모습을 의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상국가 실현을 위한 총체적 매뉴얼 ‘국가’
플라톤의 ‘국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어온 고전 중 하나다.

‘국가’가 이토록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마도 ‘국가’의 주제인 정의의 문제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관심사이고, 이에 관한 ‘국가’의 분석이 어떤 저작보다도 탁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는 또한 지금까지 존재해온 어떤 정의론보다도 체계적이고 포괄적이다.

‘국가’는 개인의 차원에서 어떤 행위와 삶이 정의로운가라는 질문으로 출발하지만, 개인의 정의는 불가분 국가의 정의와 맞물려 있음을 지적하고, 이에 따라 개인과 국가의 정의 실현에 관한 체계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즉 ‘국가’는 ‘이상국가’의 실현을 위한 총체적인 매뉴얼인 셈이다.

‘국가’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플라톤이 제시한 ‘이상국가’를 나름대로 평가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위해 기본적으로 전제돼야 할 것이 있다. 텍스트에 대한 면밀하고 꼼꼼한 분석이다. 플라톤의 ‘이상국가’를 평가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이상국가’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구조에서, 어떤 쟁점들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해야 한다. 이는 결국 텍스트를 직접 대하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참고 도서 ‘고전의 힘’(꿈결), ‘인문학 명강’(21세기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