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 전문가들이 부유층과 빈곤층을 구분 짓는 잣대로 ‘시간에 대한 이해’를 들었다.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수록 미래 지향적인 모습을 보이며 현재의 만족을 유예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인데, 이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더 강화된 측면을 보인다. 길어진 노후, 불투명한 미래가 ‘기적’이 되기 위해서는 현재 삶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 시계(視界·time horizon)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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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성 계발 분야 전문가인 톰 버틀러 보던은 ‘당신은 왜 조바심을 내는가’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층’에 속한 사람들은 지극히 ‘현재를 지향하는 성향’ 때문에 그 자리에 있게 됐다. 미래를 내다보고 이를 준비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술 부족과 낮은 취업률, 저임금, 그리고 다가오는 앞날에 대한 무능함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반대로 상위 계층으로 올라갈수록 구성원들은 더욱 미래지향적인 모습을 띠었고, 미래의 목표에 도움이 된다면 현재의 만족을 유예하는 경향도 커졌다. 부유층과 빈곤층을 구분 짓는 것은 바로 시간에 대한 이해였다. ‘계층’은 단순히 물질적인 부나 교육, 사회적 지위와 관련되지 않고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시간에 대한 태도나 가치 부여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이 말은 원래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에드워드 밴필드가 1970년에 쓴 ‘천국 같지 않은 도시(The Unheavenly City)’라는 책에 나오는 내용으로,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그는 지능과 교육, 가정 상황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요소를 면밀히 관찰한 뒤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근본 이유로 꼽은 것이 바로 ‘장기적인 전망’의 결핍이었다.

밴필드의 책이 나오고 40년이 조금 더 지난 지금에도 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할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더 강화됐다고 여겨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은 40년 전에는 생각하기 힘들었던 인구고령화 문제가 사회 곳곳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고령화 수준을 구분하지만, 개개인에게 더 중요한 것은 ‘일하는 기간’ 대비 ‘은퇴 기간’의 비율이다. 고령화 수준이 진전된다고 해서 ‘일하는 기간’이 저절로 늘어나는 것은 아니므로, 인위적으로 일하는 기간을 늘리지 않으면 고령화는 ‘은퇴 기간’의 연장을 의미할 뿐이다.

‘일하는 기간’에 비해 ‘은퇴 기간’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어나면 사회는 큰 전환점에 서게 되며, 그 구성원인 개인은 인생관의 전환에 직면한다. 아직까지 일하는 기간과 은퇴 기간의 적정 비율에 대한 연구는 없지만, 필자의 직감으로는 일하는 기간과 은퇴 기간의 비율이 ‘2대1’을 넘어서면 전환점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2대1’의 의미는 40년 일하면서 모아둔 돈으로 20년간의 은퇴 생활을 영위함을 뜻한다.


미래를 내다보는 평범한 현실이 기적을 만든다
지금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평균적으로 보면 30년 정도 일하고 30년 정도 은퇴 기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다. 사회적으로는 노후 준비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고, 개인적으로는 은퇴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으로 귀결되는 시대인 것이다. 이를 밴필드의 시각으로 보면,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연스레 장기적 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통계청의 ‘2012년 가계 동향 조사’ 원시자료를 활용해 연령대별 월 소득과 월 지출 현황을 나타낸 그래프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 연령대에 걸쳐 버는 것보다 덜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 가장 소득이 많은 40대는 월 439만 원을 벌어 359만 원을 소비해 잉여금은 80만 원이다. 월 잉여금이 가장 많은 연령대는 50대로 416만 원을 벌어 316만 원을 소비해 100만 원의 잉여금을 확보하고 있다. 70대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월 23만 원의 잉여금이 발생하고 있으며, 80대 이후가 돼서야 월 1만 원 적자가 발생하는 구조를 보인다. 현재의 70대도 40~50대엔 지금의 40~50대와 비슷한 모습이었다면, 이런 모습은 소득 수준이 높은 젊은 시절에는 저축을 하고 은퇴 이후에는 그 돈으로 생활을 영위한다는 일명 라이프사이클 가설과는 다른 모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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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은퇴 연령 이후에도 지출보다 소득이 많아 잉여금이 발생하는 것은 소득 수준에 소비를 맞추기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다시 말해 소비를 줄여 적응해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축소지향적 삶으로 고달픈 인생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50대와 70대의 1인당 월 소비지출액 비교’를 보면 현재 70대의 1인당 월 지출액은 약 52만 원으로 50대의 65% 수준이다. 지출 항목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본적인 의식주에 들어가는 비용은 96% 수준으로 큰 차이가 없다. 나이가 들어도 줄어들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장 크게 줄어든 항목은 교육비로 9만7000원 정도에서 5000원 정도로 급감했다. 자연스런 결과다. 문제는 오락·문화, 음식·숙박, 교통, 통신 등 제2의 인생을 활기차고 의미 있게 보내는 데 부수적으로 따라붙는 항목의 소비지출이 크게 줄었다는 점이다.

이는 젊은 시절에 노후를 대비해 축적해 놓은 자산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미래에셋은퇴연구소에서 통계청의 ‘가계 동향 조사’ 데이터를 분석해본 결과, 2012년 현재 70대는 약 월 150만 원을 벌고 있는데, 소득 구성을 보면 근로 및 사업소득 35.5%, 연금 및 임대소득 31.2%, 이전소득 24.5%, 재산매각소득 8.7% 등이었다. 일흔이 넘어서도 여전히 근로 활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소득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나이 들어 하는 근로 활동이 나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노동이라면 누구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기적은 귀신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현실이 만든다.” 이기영의 소설 ‘고향’에 나오는 말이다. 50대와 70대의 현실을 비교해본 것은 50대 이하 젊은 층의 미래를 추측해보고 미리 대비하기 위함이다. 만일 현재의 70대가 전체 소득의 80% 이상을 연금 및 임대소득이 차지하고 있다면 어떻게 됐을까. 아마도 훨씬 안정적이고 의미 있는 노후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을까. 50대 이하의 젊은 층들이 현재의 70대가 처한 노후의 삶을 보면서 보다 구체적이고 생생한 긴 시계를 가진다면 그들의 노후는 한층 안정적일 것이다.


손성동 미래에셋은퇴연구소 연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