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주 플래닝 코리아 대표

이병주 플래닝 코리아 대표는 부동산 시장에서 미다스의 손으로 통한다. ‘아방가르드 비즈 펜트하우스’라는 독특한 콘셉트로 분양 5일 만에 모두 팔린 서울 서초동 부티크 모나코부터 어려운 시장 상황에서도 성공적으로 분양된 수원 SK스카이뷰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디자이너 출신으로 부동산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이 대표를 아틀리에풍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Realty Interview] “부티크 모나코·SK스카이뷰 성공의 비밀요? 인문학에 있죠”
이병주 플래닝 코리아 대표는 디자이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의미의 디자이너가 아니다. 그는 제품 기획부터 개발, 제작, 판매까지 전체를 설계하는 디자이너다. 진짜 디자이너는 그래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1990년 설립한 디자인 네트워크가 첫 시험대였다. 디자인 네트워크는 당시에는 낯선 브랜드 디자인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담배‘타임’, 소주 ‘잎새주’, 패션 ‘헤지스’·‘인디안’, 아파트 ‘파크뷰’·‘SK뷰’ 등이 그의 작품이다. 그가 만들거나 리뉴얼한 브랜드만 100개가 넘는다. 디자인 네트워크의 성공에 대해 그는 “고객들이 원하는 걸 만들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남과 다른 점이라면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경우 새로운 걸 하라면 이전 사례부터 들고 오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사회인문학적인 공부를 해야 새로운 게 나옵니다. 사회학, 문화인류학, 생태학 등 모든 부분을 섭렵해야 합니다. 트렌드를 읽어야 미래 산업이 보이니까요.”

다른 나라 사례를 벤치마킹하면 그것을 뛰어넘기 어렵다. 그 대신 한국 고유의 예술적 종자를 찾아서 산업화해야 한다. 그게 정부의 역할이다. 이 대표는 그러나 현 정부는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인문학을 전공한 대다수 청년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는 게 현실이다. 이 대표는 그 타계책으로 인문학 전공자들을 고용해 5000년간 이어온 한국의 문화 종자 찾기를 제안한다. 막사발 하나를 연구하더라도 공예가, 미학자 등을 동원해 분야별로 책을 내면 산업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례로 이 대표는 오랫동안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패션 브랜드를 들었다. 새로운 브랜드를 론칭한다면 해외나 국내 성공 사례를 조사할 게 아니라 인류가 어떤 식으로 살아왔고, 어떤 것을 먹는지 연구해야 패션의 미래를 알 수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30년, 회사 차원에서는 20년 가까이 이런 연구를 해왔다.

2000년 설립한 플래닝 코리아는 그런 의미에서 디자인 네트워크의 확장인 셈이다. 이 대표가 ‘한국을 설계하겠다(Planning Korea)’고 작심한 계기는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사고였다. 당시 프랑스 패션계에서 일하던 그는 성수대교 붕괴를 보고 수치스러움을 느꼈다.

“선진국 같으면 사고 현장을 보존해 후대가 기억하게 할 겁니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숨진 학생들에게 헌화도 하고요. 그런데 한국은 어땠습니까. 그 위에 단단하게 다리를 세우고, 지난 잘못을 묻어버렸잖아요.”


대박 신화의 시작, 부티크 모나코
서초동 부티크 모나코는 이 대표의 생각이 구체적인 결실을 맺은 대표적인 사례다. 강남역에 인접한 최고급 오피스텔 부티크 모나코는 그가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시공사에는 뜨거운 감자였다. 강남 역세권이라는 최고의 입지를 갖고 있었지만 대로에 접해 주거공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을 받았다. 거기다 일곱 번이나 땅 주인이 바뀌면서 땅값이 오를 대로 올라 시공사인 GS건설이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경기도 뒤를 받쳐주지 못했다. 최고급 주상복합아파트의 대명사인 타워팰리스조차 미분양으로 3년을 고생하다 10%를 할인해주고 겨우 분양을 완료한 시점이었다. 일부에서는 타워팰리스가 전단지 수십만 장을 찍어 겨우 분양을 마무리 지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대표가 부티크 모나코 개발에 참여하게 된 게 그 즈음이었다. ‘모든 부동산 개발은 망한다’는 의식이 깔려 있었다. 기존 계획은 지상 4층은 호텔로, 나머지 25층까지는 오피스텔을 짓겠다는 거였다.

“부티크 모나코가 있는 이곳이 당시에는 슬럼화된 동네였습니다. 막막했지만 다각도로 수요 조사를 하는 한편 인문학적 연구를 했습니다. 그 결과 ‘아방가르드 비즈니스 펜트하우스’라는 개념을 도출하게 된 겁니다. 마케팅 타깃도 콘셉트에 맞게 의사, 변호사 등 돈 많은 사람이 아닌 창의적인 비즈니스맨으로 정했죠.”

이 대표는 한국의 최고경영자(CEO)를 1~3세대로 분류한다. 대기업 창업주인 정주영·이병철 회장이 1세대라면 현재 그룹을 이끄는 정몽구·이건희 회장은 2세대에 해당한다. 3세대는 그들을 잇는 이재용·정의선 부회장 등이다.

그런 식의 분류 후 각 세대별 특징을 다시 연구했다. 1세대가 성실과 근면으로 기업을 일구었다면 2세대 기술 개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렇다면 3세대는? 이 대표는 3세대를 ‘더 크리에이티브 클래스’라고 지칭했다. 1세대가 문화예술인을 ‘광대’라고 생각했다면, 2세대는 예술가로 대접은 했지만 함께 즐기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하지만 3세대는 문화예술가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세대다.

3세대 CEO들은 해외에서 공부한 이들이 많다. 이들은 경영학 석사 과정(MBA)을 하는 동안 줄리어드 음대에 다니는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린 경험이 있다. 그런 이들이 결혼하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을까를 고민했다. 전 세대 CEO들이 룸살롱에서 비즈니스를 했다면 그들은 밝은 곳으로 나와 예술인들과 와인을 마시며 비즈니스를 할 거라는 생각도 했다. 가끔은 파티를 끝낸 예술가들을 자신의 집에서 재울 수도 있었다.
[Realty Interview] “부티크 모나코·SK스카이뷰 성공의 비밀요? 인문학에 있죠”
그렇게 탄생한 게 부티크 모나코다. 부티크 모나코는 다섯 가지 타입으로 이루어졌다. 뉴욕 맨해튼의 넓은 아파트에 익숙한 이들을 위한 방 하나가 198㎡인 타입, 복층 구조의 샤갈 타입, 정원이 있는 마티스 타입, 집에 다리가 있는 마그리트 타입, 스튜디오 형식의 피카소 타입까지. 층고도 높게 하고 인테리어는 가급적 심플하게 했다.

“마케팅 대상에서 의사, 변호사 등은 제외시켰습니다. 인간은 예술과 만나 감성이 깨일 때 가장 행복해지는데 의사, 변호사들은 그런 것과 거리가 있거든요. 그 대신 돈이 없더라도 그걸 알고 이런 집을 갖고 싶은 사람들은 타깃이 됐죠.”

문제는 시공사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소비자들은 달라졌는데 공급자인 건설사들은 개발 시대의 환상에 젖어 있었다. 뉴욕이나 비엔나를 여행한 소비자들의 요구를 건설사에서 이해하기란 어려운 노릇이다. 더군다나 그가 제시한 분양가는 3.3㎡당 평균 2870만 원. 건설사가 예상한 것보다 3.3㎡ 1000만 원 이상 비싼 가격이었다. 고급 주택의 분양이 어렵던 시절이라 건설사의 반대는 컸다.
[Realty Interview] “부티크 모나코·SK스카이뷰 성공의 비밀요? 인문학에 있죠”
“제 주변 사람들에게 오피스텔의 콘셉트를 얘기했더니 다 사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건설사는 절대 안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팔겠다고 했어요. 앞으로의 건설은 소프트웨어적이어야 한다고 설득도 하면서요. 그땐 하루에 담배를 4갑씩 피웠어요. 아마 그대로 갔다간 죽었을 겁니다.(웃음)”

­­­결과적으로 그의 판단은 옳았다. 부티크 모나코는 5일 만에 그것도 높은 가격에 100% 분양이 완료됐다.


성공의 비결은 소비자의 요구 파악
이 대표는 부티크 모나코를 성공시킨 후 1년간은 아무 일도 않고 여행만 다녔다. 부티크 모나코가 있기까지 그만큼 힘든 과정을 거친 것이다. 그 뒤 그는 수원 SK스카이뷰 개발에 참여했다.

수원 SK스카이뷰가 들어선 곳은 원래 SK케미칼 공장 부지였다. 최창훈 SK건설 부회장은 SK그룹이 앞으로 바이오 가스, 생태 관련 사업을 주력으로 키울 계획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콘셉트를 요구했다.

최 부회장의 얘기를 들은 후 이 대표는 의미 있는 사업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오랫동안 화학공장이 있던 곳이라 토양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안티에이징 개념을 도입했다.

개발 콘셉트에는 서로가 의견을 모았지만, 아파트 면적 구성을 놓고 의견이 갈렸다. SK 측은 선조 땅이라는 이유로 80%는 132㎡ 이상으로 건설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반대로 그는 중소형을 70% 배치하고, 66㎡ 소형 아파트도 상황에 따라 좋은 위치에 배치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건설사 설득에 몇 개월이 걸렸습니다. 조사 결과를 보니 수원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 그중에서도 X세대라고 칭하던 연령대가 많았어요. 이들을 다시 다섯 가지 소비층으로 분류하고, 그에 맞는 콘셉트를 도입했죠. 그러면서 82.5㎡도 112.2㎡처럼 느끼게 서비스 면적을 많이 줬어요. 부티크 모나코처럼 시공비를 많이 들이지도 않았어요. 주어진 상황에 맞게 개발한 거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침체된 부동산 시장의 여파로 분양 시장도 얼어붙을 대로 얼어붙었다. 주변 아파트 단지들의 분양률이 30%에 머무는 가운데 SK스카이뷰는 분양률이 80%에 이른다. 중소형 중심의 면적 구성과 고객의 요구에 부응한 설계 등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힘을 발휘한 것이다.
1 3세대 CEO를 위한 ‘아방가르드 비즈니스 펜트하우스’ 부티크 모나코는 5일 만에 100% 분양이 완료됐다. 2 부동산 침체에도 80% 이상 분양된 수원 SK스카이뷰는 지역 소비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파악해 초기 단계부터 마케팅 계획을 세웠다. 3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는 골목부터 콘도 설계까지 제주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1 3세대 CEO를 위한 ‘아방가르드 비즈니스 펜트하우스’ 부티크 모나코는 5일 만에 100% 분양이 완료됐다. 2 부동산 침체에도 80% 이상 분양된 수원 SK스카이뷰는 지역 소비자들의 성향을 철저히 파악해 초기 단계부터 마케팅 계획을 세웠다. 3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는 골목부터 콘도 설계까지 제주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대형 프로젝트인 제주 에어레스트 시티
이 대표는 부동산은 모두가 침체기라고 말하는 지금이 가장 재밌는 시장이라고 말한다. 모두가 포화상태라고 하지만 한국 건설 산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건설 분야에서는 국가와 민간이 해야 할 부분을 나누어야 합니다. 지금은 그 두 개가 함께 파도를 타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건설 인력이 있으면서도 한국 건설 산업이 미국이나 프랑스 등으로 나가지 못하는 건 정책의 문제입니다. 민간에서는 3.3㎡당 100만 원짜리든, 10억 원짜리든 국가가 통제하면 안 됩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일반 분양 주택을 짓고, 민간 건설사는 빌 게이츠가 살고 싶은 집을 지어야 하는 거죠.”

그는 현재 제주도에 건설하고 있는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가 좋은 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어레스트 시티 프로젝트는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18%)와 버자야 그룹(82%)이 공동 투자한 대규모 프로젝트로 이 대표는 2년 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보기에 제주도는 미완의 관광지다. 해외여행이 어렵던 1970~80년대 신혼부부들을 위해 심은 야자수가 지금도 곳곳에 있다는 게 그 증거다. 그는 제주도를 창조적 씨앗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킬 요량이다.

“제주도는 추사 김정희가 유배 생활을 한 곳입니다. 김정희처럼 요즘은 제주도로 자발적 유배를 가는 사람이 많아요. 카페 운영하면서 자기 글 쓰고, 하루 3만~5만 원 벌이에 만족하면서 사는 거죠. 이런 사람들이 창조의 씨앗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마을을 지을 겁니다.”

에어레스트 시티는 제주도 본연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골목길을 먼저 디자인하고 거기에 맞게 집을 디자인했다. 집 이름도 제주도 방언에서 빌어 ‘깍집’이다. 용암과 바닷물이 만나서 만들어진 게 깍집이다. 그는 깍집이 제주도 문화적 유전인자를 가졌다고 생각한다. 깍집은 곶자왈, 오름 등 제주도의 문화적 유산에서 모티브를 빌려 디자인했다. 72만7272.7㎡(22만 평) 대지에 지어지는 에어레스트 시티는 제주도의 자연유산을 모티브로 한 10개 컴포넌트로 구성된다. 에어레스트 시티는 콘도미니엄 외에 카지노 등이 들어서는 대형 프로젝트다. 이 대표는 에어레스트 시티가 완공되면 부티크 모나코와 함께 해외로 수출할 계획이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