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폭 넓히는 태양광 2세들

요즘 세계 태양광 업계에서는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표현이 자주 회자된다. 태양광 산업이 바닥을 치고 본격 회복할 것이란 기대감에서다. 그런 만큼 국내 양대 태양광 업체의 2세 경영인들도 잰걸음을 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남쪽으로 33km 떨어진 정보기술(IT) 산업단지 ‘사이버자야(Cyberjaya)’. 한국으로 치자면 서울의 위성도시인 과천쯤에 IT 거점을 조성한 것이다. 한화그룹이 지난해 10월 인수한 태양전지 업체 큐셀은 이곳에 생산기지를 조성했다.

지난 9월 12일 김승연(61)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0)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이 사이버자야를 찾았다. 벌써 네 번째 방문이다. 마침 이날 한화는 그룹 출입기자 30여 명을 초청해 현장 설명회를 진행 중이었다. 혹시라도 기자들에게 노출돼 ‘질문 공세’에 시달릴 수 있었지만 그는 예정된 일정을 무사히(?) 소화했다. 김 실장이 얼마나 사이버자야 공장에 애착을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 이수영(71) OCI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우현(45) OCI 사장은 미국 뉴욕에서 굵직한 행사를 주관했다. 13일(현지 시간)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미국 자회사인 OCI리소스(OCIR)를 상장하는 ‘오프닝 벨’ 행사를 한 것. OCIR는 소다회를 생산하는 OCI와이오밍의 지분 51%를 출자 받아 탄생한 회사다. 이에 앞서 OCI는 OCI와이오밍 지분 51%를 사들인 바 있다. 국내 기업이 미국에 있는 자회사를 상장시킨 건 이번이 처음이다. OCI는 이번 상장을 통해 9500만 달러(약 1032억 원)를 확보했다. 이 사장은 “조달한 자금은 태양광발전 등에 투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비슷하면서 대비되는 ‘투자 행보’
한화와 OCI는 국내 태양광 업계의 양대 기둥으로 꼽힌다. 최근엔 김동관 실장, 이우현 사장 등 2세 경영인들의 행보가 두드러진다. 태양광 업황은 2010년 정점을 찍은 뒤 침체를 겪는 중이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원하던 유럽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고, 업체 간 공급 과잉이 심화되면서 한순간에 무너졌다. 삼성과 LG, 현대중공업 등 태양광 사업에 출사표를 던진 대기업들은 투자 연기 혹은 중단, 포기로 돌아섰다.

하지만 두 회사는 줄곧 영토를 확장하는 전략을 펼쳐왔다. 한화가 태양광 사업 진출을 발표한 것은 2008년. 그룹의 양대 축인 석유화학과 금융 사업이 성숙기에 들어선 만큼 신수종 아이템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룹은 미래전략실을 만들고 성장 동력 발굴에 나섰는데 태양광은 그중 하나였다. 김승연 회장이 태양광을 낙점했다면 김 실장은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고마워하는 사업을 하고 싶었다”며 “3~4년간 고민 끝에 태양광을 선택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지인들에겐 부친의 좌우명인 ‘필사즉생’을 거론하며 “뚝심 있게 돌파해 반드시 성공시킬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

그의 무대는 태양광을 중심으로 넓어지고 있다. 2010년 초 한화 회장실 차장으로 입사한 그는 이듬해 말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이동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근무했다. 올 8월에는 독일에 본사를 둔 한화큐셀로 옮겼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에서 제조를 이해하고 이제는 전략·기획 수업을 받는 단계”라고 해석했다.

최근 한화큐셀은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고 있다. 기자들에게 말레이시아 공장을 공개한 것도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특히 품질은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김희철 한화큐셀 대표는 “불량률이 0.0025%로 세계 최저 수준”이라며 “경쟁사보다 10~20%가량 비싸게 팔고 있다”고 말했다. 한화는 태양전지 분야 세계 3위 업체다.

이우현 사장은 지난 3월 인사에서 전면에 등장했다. 그동안 사업총괄 부사장을 맡아오다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한 것. 이 사장은 외국계 금융회사에 주로 근무하다가 2005년 8월 전략기획본부장(전무)으로 OCI에 입사했다. 그가 입사한 2005년 하반기는 이수영 회장이 ‘태양광 프로젝트’ 제안서에 서명한 시기와 겹친다. 당시만 해도 전 세계 80여 업체가 폴리실리콘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양산에 성공한 곳은 헴록(미국), 바커(독일), REC(노르웨이) 등 7곳뿐이었다. 이 회사는 2007년 11월 초고순도 폴리실리콘을 생산했다. 이 같은 경쟁력에 대해 이 사장은 OCI 특유의 기업 문화로 설명한 적이 있다.


사람이 가는 같은 길, 다른 길
OCI는 1959년 개성 출신의 고(故) 이회림 회장이 창업한 ‘송상(松商)기업’이다. 이 같은 태생적인 배경 때문에 OCI는 보수적인 기업 문화로 인식돼 왔다. 이 사장은 “사실은 그 반대”라며 “OCI는 남이 하지 않는 사업만 해왔다. 이 때문에 독점 사업이 상당히 많다”고 소개했다. 태양광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 4000억 원대 투자가 필요하다고 보고하자 이수영 회장은 “해봐라”며 격려를 해줬다. 현재는 폴리실리콘 세계 3위에 올라 있다. 그는 낙관적인 시장 전망을 내놓는다. OCI와 공급 계약을 한 선텍 등이 좌초했을 때 그는 오히려 “당장은 악재지만 장기적으로 정상화가 앞당겨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 경쟁력이 뛰어나 향후 제품 값이 조금만 올라도 이익이 빠르게 늘어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과감한 공격을 선택했지만 두 회사의 미래 전략은 사뭇 대조적이다. 한화는 태양광 수직 계열화를 구축 중이다. 요컨대 원료인 폴리실리콘부터 잉곳·웨이퍼, 전지·모듈, 발전소 설치·운영 등 단계별 태양광 사업을 아우르겠다는 것. 한화케미칼은 내년 4월 가동을 목표로 폴리실리콘 공장을 짓고 있다. 큐셀은 터키, 칠레, 태국 등에서 발전 사업을 추진 중이다. 솔라원은 잉곳·웨이퍼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를 통해 2015년 세계 1위로 부상한다는 것이 목표다. 김희철 대표는 “지금은 안정적, 체계적 사업구조를 갖추고 있는 단계”라며 “시장 가격이 안정되면 반드시 성과를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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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I는 전지·모듈 사업은 건너뛴 채 발전 사업에 적극적이다. 현재 자회사인 OCI솔라파워를 통해 미국 태양광발전 사업에 뛰어든 상태다. 지난해에는 텍사스주 샌안토니오에 전력을 공급하는 CPS에너지와 40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공급 계약을 수주했다. 여의도의 6배 넓이인 1650만 ㎡(약 500만 평) 부지에 태양광 단지를 짓는 프로젝트로, 향후 25년간 25억 달러 이상의 매출이 기대된다. 업계 관계자는 “발전 사업은 10%대 영업이익률이 보장되는 만큼 여기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라고 풀이했다.

성공 관건은 태양광 시장이 ‘언제 햇빛을 보느냐’에 달려 있다. 업황이 개선되고 있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지만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태양광 업계 2세들의 경영 능력도 입증하고 회사의 성장엔진도 찾을 수 있는 과감한 투자가 거꾸로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상재 중앙일보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