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INTERVIEW

고(故) 조소수 옹은 1963년 경기도 이천에 도자기기업 ‘광주요’를 세우고 25년간 우리나라 도자를 해석하는 데 일평생을 바쳤다. 그리고 25년, 조태권 회장은 가업을 이어받아 도자기에 우리 문화를 담아내는 데 총력을 기울여왔다. 반백년 역사 위에서 이제 그의 딸 조희경 비채나 대표가 무언가 펼쳐 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100년 기업을 꿈꾸는 광주요의 사명은 전 세계에 우리의 존귀한 식문화를 전파하는 것이다. 광주요가 창립 50주년을 기념해 최근 서울 한남동에 오픈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에서 부녀를 만났다.
‘한식 전도사’ 부녀의 또 다른 도전, 조태권 광주요 회장 & 조희경 비채나 대표
‘도자기·음식·술’로 이어진 인생… 죽을 때까지 ‘한식 세계화’

조태권 광주요 회장의 인생은 도자기, 음식, 술 세 단어로 압축된다. 광주요를 높은 수준의 도자기 브랜드로 키워내고, 여기에 담을 것을 만들기 위해 우리 음식의 품격을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 한식이 고급화, 세계화하려면 어울리는 술이 필요하다고 판단, 전통주 ‘화요’를 만들었다. 사재 1억6000만 원을 털어 미국 캘리포니아 나파밸리 와이너리에서 한식으로 만찬을 차리는가 하면 우리 음식도 고급화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 위해 직접 최고급 한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정부 차원에서 할 법한 일들을 그는 혼자서 묵묵히 이뤄나가고 있다.

한식당 ‘비채나’를 이끌고 있는 조 회장의 둘째 딸 조희경 대표는 그동안 아버지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문화보국’에 앞장서 왔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꿈에서조차 ‘한식 세계화’를 외치는 아버지가 때로 답답하기도 했지만, 거역할 수 없는 이끌림으로 가업을 잇는 유일한 딸이 됐다. 한남동에 위치한 고급 한식당 비채나는 ‘비우고, 채우고, 나눈다’는 의미로 미국에서 디자인과 음식을 배우고 돌아온 조 대표가 직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았다.



지난해에 저서 ‘문화보국’을 출간하셨지요. 책 이름처럼 평생 우리 문화를 만들고 이를 통해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일을 해오셨습니다.

“문화보국은 ‘문화는 이 땅의 후손들이 누리며 살아가고 다시 그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보물’이란 뜻이에요. 보통 선진국의 경우 경제와 문화가 함께 성장해나가는데, 우리는 일본이 이 땅을 점령하면서 60년이라는 단절 기간이 있었죠. 그동안 우리 문화는 다 사라지고 중국, 일본, 서구 문화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자연스레 우리의 것은 천한 것, 격이 낮은 것으로 인식되기 시작했죠. 더는 안 되겠다는 판단에 소매를 걷어붙였습니다.”

왜 그토록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하십니까.

“나라가 발전하려면 고유문화 없이는 안돼요. 저는 도자기 사업을 하셨던 부모님 밑에 자라면서 문화의 중요성과 미래 가치를 봤습니다. 문화는 땅에 씨앗을 뿌리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축적되는 것이라 확신했어요. 그러니 꼭 해야만 하는 일이었어요.”

그중에서도 도자기, 음식, 술로 ‘한식 세계화’의 첨병 역할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다른 나라를 보니까 문화는 세트더라 이겁니다. 그런데 근대화가 되면서 우리 식문화가 엉망이 됐죠. 한식은 끼니를 때우는 수단으로 전락했고, 각 지역의 전통주도 많이 사라졌어요. 안타까웠지요. 그릇은 있는데 여기에 담을 가치 있는 음식이 없으니 사람들이 다들 외국 음식점으로 가요. 좋은 그릇에 담긴 훌륭한 음식이 있다고 한들 3000원짜리 술과 어우러지지 않잖아요. 그래서 술을 만들었습니다. 도자기가 음식이 되고 또 술이 된 거죠. 다음엔 공간이 있어야 내 가치를 전달할 수 있었기에 식당을 만들었어요. 비채나나 광주요 라이프스타일 매장도 그런 맥락이죠.”

시험적으로 고급 한식당을 열고, 미국 나파밸리에서 1억여 원을 들여 한식 만찬을 차리는 등 우리 음식과 그릇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습니다. 혼자 하기에 벅찬 일이었을 듯한데요.

“때로는 공허한 메아리였어요. 현세적 가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고급 한식에 익숙하지 않으니 거부감도 있었죠. 어떻게 보면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혼자 힘으로 하고자 했지요. 사람들은 바보스럽다, 돈키호테 같다고 했지만 전혀 후회 없습니다. 영(0)에서 시작했다면 이제 60% 정도 왔다고 생각하거든요. 대중도 서서히 우리 문화의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했어요. 후세에게 엄청난 가치를 물려주고 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숨을 거둘 때까지 내가 보이는 방향으로 질주할 겁니다.”
‘한식 전도사’ 부녀의 또 다른 도전, 조태권 광주요 회장 & 조희경 비채나 대표
조태권 대표는…
1948년생. 1973년미국 미주리주립대 공업경영학과 졸업.1973~1974년도쿄 마루이치상사. 1974~1982년대우.1988년~현재 광주요 대표이사. 2003년~현재 화요 대표이사.2009~2010년 ‘대통령직속 미래기획위원회’ 자문위원2012년 문화관광부 한류문화진흥자문위원회 자문위원



16년 美 유학 접고 한식당 맡아, 아버지 기질 물려받아 ‘열정+터프’

조태권 회장이 한창 ‘한식 세계화’ 이야기로 열을 올리고 있을 즈음 조희경 대표가 등장했다. 지난해 한남동에 문을 연 비채나는 음식과 분위기 모든 측면에서 한국적인 정서를 모던하고 세련되게 풀어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젊고, 무엇보다 미국 유학을 오랫동안 해 온 그는 아버지와는 스타일이 달랐다. 조 회장처럼 ‘문화보국’이나 ‘한식 세계화’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기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기고 색다른 시도를 해보고 싶다는 조금은 ‘쿨(cool)’한 모습이었다.



한식 세계화에 누구보다 앞장서 온 아버지가 비채나를 맡겼을 때 부담감은 없었나요.

“부담보다는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지금껏 외국 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한국과) 정서가 다른 측면이 있었거든요. 한국에 3년간 머물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관찰해왔습니다. 아직은 비채나의 기초를 다지는 단계예요.”

2008년 고급 한식당 콘셉트로 야심차게 문을 연 가온이 지나치게 비싸다는 평을 받으며 결국 문을 닫아야 했지요. 비채나는 가온과 어떻게 차별화했나요.

“가온은 비채나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지금 비채나는 내 개성이 많이 묻어있는 공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한식의 가치를 제대로 알리는 공간으로 변화시켜 나갈 예정입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에요.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몇십만 원을 주고 즐겁게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면 그땐 ‘제2의 가온’이 될 수 있겠지요. 한식의 메뉴도 다양화해야 하고 셰프나 손님, 경영자 모두 준비가 돼야 합니다.”

조태권 회장은 어떤 아버지였습니까.

“하고 싶은 것은 무조건 해보라고 하는 분이셨어요. 생각만 하지 말고 직접 부딪히라고 하셨죠.”(이 대목에서 부녀는 미리 입을 맞춘 듯 동시에 대답을 했다.)

세 자매 가운데 유일하게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원래 가업을 이을 생각이었나요.

“할머니께서 어릴 적부터 ‘너는 가업을 이어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어요.(웃음) 사실 저는 화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제가 딸 중에서 아버지의 기질을 가장 많이 물려받았어요. 그래서 추진력도 있고 좀 터프해요. 야망이 크기보다는 열정이 많은 사람이에요.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하겠다’, ‘가업을 잇겠다’는 큰 그림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이고 할 수 있기에 도전하는 거죠.”


부녀지간이 아닌 비즈니스 파트너로 서로 간에 어느 정도 생각 차가 있었을 것 같은데.

조태권 회장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데 시간이 걸렸죠.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다르니까요. 딸은 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 나름의 관념이 있어요. 제 뜻대로 안돼서 답답했죠. 백번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네가 직접 체험해 보라고 했어요. 비채나를 맡긴 것도 그런 이유에서죠.”

조희경 대표 “아들이었으면 아버지와 맨날 싸웠을 거예요.(웃음) 감정적으로 이야기를 하니 문제도 자주 생겼죠. 처음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는데 3년간 일하다 보니 아버지의 입장에서 당연히 하고 싶은 것들을 수긍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와중에 편해졌어요. 지금은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자초지종을 확실하게 이야기하죠.”

비채나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나요.

“16년 동안 외국에서 생활했기에 한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약간 걱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도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식당 운영 기회가 주어진 것은 행운이에요. 해외에 있는 많은 인맥들과 연계하면 향후에는 세계로 우리 식문화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자매들이 경영에 함께할 계획은 없는지요.

“언니는 이미 시집을 갔지만 과거 가온에서 관리자로 일했을 정도로 식당 운영에 관심이 많아요. 셋째는 할아버지의 끼를 물려받아 도예를 전공하고 있어요. 자매지간이 굉장히 사이가 좋아요. 만약 저희가 광주요를 경영하는 때가 온다면 서로의 파트가 나눠질 거라 생각해요. 한복려, 한복선 선생님들처럼 서로의 개성을 발휘해 즐겁게 만들어 나가면 좋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은 아버지께서 오래도록 경영을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조 회장님은 가업승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세요.

“가업을 잇느냐 안 잇느냐 혹은 누가 물려받느냐는 지금 중요한 게 아니에요. 지금껏 광주요가 지켜온 가치, 현재의 사업 그 자체에 푹 빠져야 합니다. 안주하면 안돼요. 가치 있는 문화를 끊임없이 창조하고 그 가치들을 융합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앞으로 광주요를 이끌어야 하고요. 둘째는 열정이 있고 무엇보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안목을 키워왔기 때문에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 한마디씩 해주세요.

조희경 대표 “지금 제 머릿속에는 아이디어가 많아요. 회장님이 술과 도자기, 음식으로 기업을 다분화했다면 그걸 더 깊이 파고드는 게 제 숙제입니다. 우리는 흙과 유약을 가진 회사입니다. 이걸로 엄청나게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니 다같이 고민해보자고 직원들에게 제안했죠. 식기가 건축이나 패션과도 컬래버레이션(협업)할 수 있지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어요. 광주요나 화요를 세계적으로 누구나 아는 브랜드로 키워갈 겁니다.”

조태권 회장 “가치는 이미 만들어졌습니다. 이제는 이걸 탄탄히 키워서 재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한식 세계화’도 속력을 늦추지 않을 거예요. 우리나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집약된 공간인 식당을 만들고 가맹화해 나갈 계획도 가지고 있어요. 허브가 구축됐으니 훗날엔 딸들이 100년 기업으로 가꿔나가길 바라죠.”


조희경 대표는…
1981년생. 2003년 미국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시카고 BFA 학사 학위 수료, 2008년 미국 로욜라대 MBA 석사 학위 수료, 2010년~현재 광주요 그룹 기획이사. 2012년~현재 가온소사이어티 대표이사.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