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 임현걸 한국재단센터 대표

재단은 사회 발전을 위해 국가가 하지 못하는 역할들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상당하지만, 여전히 재단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단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적 규제도 규제지만 대중의 시선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재단 설립을 꿈꿨던 이들조차 법과 곱지 않은 시선에 가로막혀 포기하거나 좌절하는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부가 보편화되고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어느 정도 자산을 가진 부자들은 재단 설립을 꿈꾼다. 일회성으로 끝나는 단순 기부가 아닌 재단을 통해 자신이 목적한 나눔 사업을 지속적으로 해나가며 평소의 신념과 철학을 실현하고, 그로 인해 보다 의미 있는 삶을 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부모나 자녀를 기념하기 위해 재단을 설립해 뜻 깊은 일을 하기도 하고, 부에 대한 철학을 자녀들에게 대물림해주기도 한다. 여기에는 각종 세금 혜택이라는 지원도 따라온다. 보통 사람들이 재단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 혜택을 이제는 인정하고, 재단들이 각자의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함으로써 사회에 더 많은 것을 돌려주는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에 의견을 같이한 이들은 박태규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와 임현걸 한국재단센터 대표다. 두 사람은 국내 재단들의 활동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전문가들이다. 박 교수는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며 재단에 대한 스스로의 시각을 교정하게 됐다고 말하고, 임 대표는 재단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컨설팅과 함께 소규모 공익 법인 6개를 공동사무국 형태로 운영하며 국내 재단의 나아갈 바를 고민하는 이다.

최근 들어 재단을 설립하고자 하는 분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이미 설립한 분들도 많고요.
박태규 교수
박태규 교수
임현걸 들여다보면 하려는 사람들은 많은데 포기한 사람들도 엄청납니다. 100명 중 95명 정도는 포기한다고 보면 돼요. 나머지 5% 정도만 재단 설립에 성공하는데 그분들은 정말 집념과 의지가 대단한 분들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다가도 과정과 절차를 거치면서 손 드는 경우가 많죠.

그렇게 까다로운 이유가 뭔가요.
임현걸 초기에 각인이 잘못된 거죠. 과거에 대기업들이 마치 사회적 책무를 위해 재단을 하는 것처럼 해놓고는 상속세 회피 수단으로 활용한 사례가 많았으니까요. 개인 재단도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죠. 세금 혜택은 혜택대로 보면서 목적 사업보다 친인척 월급을 엄청 챙겨주는 등 운영비에 더 많은 돈을 들인 경우들이 알려져 문제가 되곤 했어요. 그러니 사람들의 인식이 좋을 리가 없죠. 그러다 보니 법적으로 절차도 까다롭고 규제도 많을 수밖에 없어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얘긴가요.
임현걸 대표
임현걸 대표

박태규 우리나라 기부가 2011년에 11조 원을 넘었어요. 기업의 기부는 그리 많이 오르지 않았는데 개인 기부가 4~5배 올랐죠. 상대적으로 비어 있는 부분이 바로 고액자산가들의 참여예요. 고액자산가들의 기부는 바로 재단이나 재단에 준하는 제도를 통해 이뤄질 수 있을 텐데, 따라서 활로를 열어주지 않으면 참여를 유도하기 힘들어요. 재단에 대한 생각들은 많은데 제도가 막고 있는 겁니다. 순수한 의도로 자기 돈 들여 재단을 세웠는데도 의심의 눈초리로 보면 하고 싶은 사람이 별로 없겠죠. 물론 어디나 역기능은 다 있지만, 먼저 사회가 반겨주는 분위기가 돼야 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 재단 설립과 함께 보는 혜택이 많지 않나요.
박태규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재무적 혜택은 상속세, 증여세 혜택이죠. 미국은 상속·증여 세법상 상속을 하는 사람이 세금을 내도록 돼 있고 우리나라는 상속을 받는 사람이 내야 하는데, 바로 그 세금 중 50%를 면제받는 겁니다. 다시 말해 1000억 원짜리 재단이라면 500억 원은 정부가 세제 혜택을 주는 거죠. 물론 여기엔 여러 조건들이 따르고요.
임현걸 물론 세무적인 부분에선 혜택이 엄청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실질적으로 재단은 국가의 것이잖아요. 출연(出捐)을 함으로써 이미 내 것이 아닌 겁니다. 다만 정부가 출연자의 의도를 존중해 의도에 맞게 운영할 수 있도록 운영관리권을 위탁하고 위임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러다 보니 채권 하나를 사더라도 주무관청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이사회 중 특수 관계인도 5명 중 1명밖에 못 들어가요. 매년 재단의 잔고도 증명해 보고하도록 돼 있고요. 그러니 마음대로 써버리면 당장 드러날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까다롭기 때문에 실제로 뭔가 혜택을 바라고 설립하려고 했던 분들은 내용을 듣고는 실망하고 포기해 버려요. 공익 재단법인에 대해 안티였던 분들도 막상 이 안에 들어와 보면 생각이 바뀌는 건 그래서입니다. 재단은 정말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가 없거든요.

규제도 많고 대중의 시각도 좋지 않은데, 그럼에도 재단을 설립하려는 분들은 왜 그런 건가요.
박태규 재단을 통한 활동에서 보람을 느끼는 분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아요. 어떤 분들은 본인은 5000원짜리 이상의 점심을 먹으면 죄짓는 것 같다고 하면서도 거액을 출연해 재단을 만들기도 해요. 특히 요즘 젊은 부자들은 생각이 많이 달라요. 옛날 분들은 그냥 학교에 기부하고 알아서 쓰라고 했다면, 새로운 세대의 자본가들은 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재산뿐만 아니라 경험과 지혜를 같이 녹여내 환원할 수 있는 재단을 만드는 경우도 있죠. 출연자가 관심과 애정, 시간과 노력을 들여 재단 사업을 해나가면 이미 그 노력 자체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 아니겠어요.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서도 가치관이 변하고 있는 것도 또 다른 배경이라고 봅니다.
임현걸 실질적으로 본인이 어렵게 살았던 분들은 그 반대급부로 도움을 주고 싶어 해요. 그런데 자신이 하고 싶은 목적성 사업이 있으니 단순 기부가 아닌 재단 설립을 택하는 거죠.

한국형 재단의 문제는 뭔가요.

박태규 재단이란 원래 경제가 어려울 때 더 활동해야 하는 법입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사회 결의만 하면 한시적 재단으로 변시돼 어려울 때 공격적으로 사업을 하죠. 우리나라처럼 기본 재산을 쥐고 있는 게 아니라 풀어서 한시적으로 그 역할을 다하는 겁니다. 앤드루 카네기도 “이 시대의 문제는 우리의 돈으로 다 해결하고 다음 시대의 문제는 다음 세대가 하라”고 했잖습니까. 돈만 움켜쥐고 있으면 재단이 아니죠.
임현걸 기본적으로 재단은 30억 이상이 안 되면 독자 운영이 안 돼요. 기본 재산은 건드리지 않고 과실금만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요즘 같은 저금리에서는 30억 원에 3% 금리를 받아봐야 1억이 안 되잖아요. 그런데 그중 70%는 또 목적 사업에 쓰게 돼 있단 거죠. 그러면 나머지 3000만 원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이게 가능하겠냔 겁니다. 기본 재산 중 어느 정도까지는 쓰도록 하면 좋은데 그게 안 되니, 재단을 설립해 놓고도 매년 본인이 돈을 더 기부하거나, 다른 사람의 기부를 받아와야 하는 거예요. 재단 설립 후 이사장들은 속된 말로 ‘앵벌이’인 경우가 많아요. ‘돈 있는 앵벌이’인 셈이죠.

현재 허가제로 돼 있는 재단 설립을 신고제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임현걸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아주 일부라고는 해도 순수한 목적이 아닌 나쁜 의도로 재단을 설립하려는 분들이 있다고 했을 때, 그걸 막을 장치는 필요하다고 봐요. 다만 우리나라의 허가제는 문제가 있는 게 육하원칙에 맞춰 문제가 없어도 주무관청 담당자의 권한에 따라 승인이 날 수도 있고 안 날 수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협동조합이 그렇듯 허가제 같은 인가제로 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박태규 허가냐 신고냐를 떠나 중요한 건 설립 이후의 관리 감독이라고 봐요. 미국의 경우는 설립은 용이하지만 감독은 철저하게 합니다. 우리는 설립은 어려운데 막상 진입하고 나면 방치되는 경우도 많아요. 실제로 재단법인으로 신고가 된 숫자는 엄청 많은데 막상 활동 부분을 살펴보면 유명무실한 데도 많은 게 현실이죠.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서범세·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