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환 삼영 명예회장·정몽구 현대차 회장 등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는 교육·학술 진흥을 위해 카네기재단을 만들었고, 존 록펠러는 자선단체인 록펠러재단을 1913년 설립했다. 두 재단은 10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오며 성공적인 재단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에서 카네기와 록펠러를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동양 최대 장학 재단 관정이종환교육재단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설립한 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사장 이석준·이하 관정교육재단)은 동양 최대의 장학 재단이다. 이 명예회장은 올 초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며 현재 8000억 원인 기금을 1조 원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관정교육재단은 규모뿐 아니라 운영 면에서도 재단 설립을 꿈꾸는 이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

관정교육재단의 출범은 2000년이지만 발단은 50여 년 전 이 명예회장의 스위스 방문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업차 들른 스위스는 국토 면적은 한국의 절반, 인구는 7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세계에서 가장 잘사는 나라였다. 그는 그 해답이 ‘사람’에게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과 같은 지식창조시대에는 사람 하나 잘 키우면 투입액의 수만 배, 수십만 배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는 이보다 나은 사업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만 봐도 그렇다. 미국은 자원도 많지만 외국의 우수한 인재가 있으면 돈을 주고서라도 자국의 국민으로 영입해 오늘날 지식 초강국이 됐다.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는 한국에서 인재를 키우는 일은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게 이 명예회장의 철학이다. 그는 그때부터 돈을 벌면 인재를 키우는 일에 그 돈을 쓰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 명예회장의 일념은 2000년 빛을 발하게 된다. 그는 재단 설립을 앞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재단 설계는 대부분 그의 독창적인 생각을 반영했지만, 영감을 받은 사람은 있다. 노벨상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과 미국의 존 록펠러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다이너마이트 발명으로 거부가 된 노벨은 인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전 재산의 약 92%를 내놓았다. 록펠러는 인생의 전반을 악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세계 제일의 부호가 됐다. 그 뒤 남은 인생은 세계 제일의 자선가로 살았다. 이 명예회장이 전 재산의 95%를 내놓게 된 데는 두 사람의 삶이 큰 영향을 끼쳤다.

관정교육재단은 설립 후 연간 약 200억 원의 수입으로 매년 국내 장학생 500명, 해외 유학생 100명을 후원해왔다. 유학생은 매년 최고 6만 달러, 국내 장학생은 매년 1000만 원씩을 지원했다. 지난 10여 년간 배출한 장학생 수만 유학생 1000여 명, 국내 6000여 명 등 총 7000여 명에 이른다. 재단은 머지않아 관정교육재단 장학생 가운데서 노벨상 수상자도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초기에 재단을 운영하며 관련 제도의 미비로 어려운 점도 많았다. 우선 재단에 대한 지원이 미미했다. 학교 재단은 등록금을 받고 운영하면서도 세금 감면 혜택이 많다. 이에 비해 장학 재단은 주기만 하는 데도 세금 감면 혜택이 거의 없었다. 기부금에 대해서도 세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서는 기부 문화의 확산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관정교육재단은 그동안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정치권을 설득해 다섯 차례 세법 개정을 관철시켰다. 이 명예회장은 “우리는 재단을 설립하며 세금을 많이 냈지만 다른 이들이 기부에 동참할 수 있는 길을 넓혀줘 뿌듯하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공무원들의 행정편의주의도 재단 운영에 걸림돌이었다. 국민권익위원회(옛 국민고충처리위원회)의 권고에도 해당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묵살해 일부 재산을 수입 확충용으로 사용할 수 없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재단은 그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며 지금까지 왔다. 관정교육재단은 앞으로 2~3년 안에 재단 규모를 현재의 8000억 원에서 1조 원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이 명예회장이 나머지 재산을 더 출연(出捐)하고 재단 재산의 이용 가치를 높이면 가능하리라 본다.

기금 1조 원의 재단이 되면 현재의 장학 사업을 그대로 유지, 발전시키면서 노벨상과 같은 관정과학상을 창설, 시상할 계획이다. 시상 부문은 노벨상 6개의 절반 정도로 출발하지만 상금은 비슷하게 책정할 계획이다.

이 명예회장은 “내 나이도 아흔 살이 넘었다”며 “생전에 1조 재단의 실현과 관정과학상의 시상은 물론 관정 장학생이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을 보는 것이 마지막 희망이다”라고 말했다.


8500억 원 사재 출연 현대차정몽구재단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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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최근 2000억 원 상당의 사재를 현대차정몽구재단(이사장 유영학·이하 정몽구재단)에 추가 기탁했다.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이 광고 계열사 이노션 지분 20%(36만 주)를 정몽구재단에 추가로 출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는 그가 보유 중인 이노션 지분 전량이며, 주식 평가액은 2000억 원가량으로 추산된다.

정 회장은 지난 2007년부터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총 6500억 원을 정몽구재단에 출연했다. 특히 2001년에는 순수 개인 기부로는 사상 최대 금액인 5000억 원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이 다섯 번째 출연이다. 이번 출연으로 그가 사회공헌을 위해 출연한 금액은 8500억 원 이상으로 늘어났다.

정몽구재단은 2007년 설립됐다. 설립 당시 정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이 세계적인 자동차 제조업체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온 국민의 전폭적인 성원에 힘입은 바 크다”며 “우리 사회의 소외층이 문화적 혜택을 누리고 교육 기회를 가지며,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정몽구재단은 어려운 여건에서 현대차를 세계 굴지의 자동차그룹으로 일군 정 회장이 기업가로서의 성공을 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설립됐다. 그의 사회공헌 철학의 출발은 사회의 기본을 바로 세우는 일에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사회 기여 방안을 고심해 온 그는 ‘우리 사회의 약자를 돌아보고, 교육을 통한 희망 사다리를 세우는 등 우리 사회의 미래 건강성을 든든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는 ‘품질은 기본이자 우리의 자존심’이라는 그의 경영철학과도 무관하지 않다.

정 회장의 또 하나의 사회공헌 철학은 어려움 속에서도 창의적으로 도전하며 꿈과 희망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미래 비전에 대한 믿음과 확신, 열정과 노력으로 조용하지만 뚝심 있게 추진하는 것이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정몽구재단은 출연자의 사회공헌 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류와 사회의 이익에 기여’를 목표로 예술 진흥과 문화 격차 해소, 교육 지원과 장학, 대학생 학자금 대출 지원,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 의료 지원과 사회복지 등을 통해 미래 인재에게 꿈을 심어주고, 소외된 이웃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문화예술 분야에 대한 지원은 문화예술 나눔, 문화예술 인재 양성 등 두 가지다. 문화예술의 진정한 가치는 빈부에 관계없이 인간의 삶에 행복을 주는 것이다. 문화예술은 행복한 삶을 위한 전제조건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로 인해 문화예술을 누리지 못해 삶이 피폐해지기 쉽다. 문화예술 나눔 활동은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사회통합에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온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문화예술 인재 양성 사업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된다. 정 회장은 시대를 리드하는 문화예술 각 분야의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사회의 기본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인재 양성 사업은 장학 사업, 교육 지원 사업, 대학생 학자금 대출 사업 등이 있다. 특히 정몽구재단은 대학생 학자금 대출 사업에서 다른 장학 재단과 차별화된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 졸업생 중 30%가 학자금 대출을 받았고 평균 대출금은 900만 원이다. 대출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해 가압류 등을 당하는 청년들도 매년 증가하고 있다. 재단의 대학생 학자금 대출 지원은 빈곤 대물림의 악순환 고리를 끊을 수 있도록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다.

의료 지원, 다문화가정 지원 등이 포함된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청년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이 눈길을 끈다. 사회적 기업은 취약 계층에게 사회 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해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 활동을 하는 기업을 말한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에 따르면 2007년 인증제가 도입된 이래 2013년 3월 총 801개의 사회적 기업이 활동 중이다.
[COVER STORY] 한국의 록펠러를 꿈꾸는 사람들
열정적인 청년 기업가의 활동이 늘어갈수록 사회적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 신선해지고 지속 가능성과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사회적기업가 육성 사업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청년 사회적기업가들이 열정을 실현하도록 돕고 있다.

이 밖에도 정몽구재단은 기획 사업으로 이웃사랑 희망나눔 사업, 글로벌 사회공헌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