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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의 자연은, 언어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빛이 난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수억 년 전부터 존재해온 빙하와 웅숭깊은 산맥, 협곡 사이로 열리는 태고의 바닷길. 눈길 닿는 곳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자연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가진 표현력이 참으로 허약하다는 것을 느낀다.
빙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자연의 신비 ‘피오르’. 그중 ‘송네 피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으며, 아름답다.
빙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자연의 신비 ‘피오르’. 그중 ‘송네 피오르’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으며, 아름답다.
노르웨이 하면 두 명의 ‘에드바르트(Edvard)’가 떠오른다. 한 사람은 노르웨이 미술을 대표하는 에드바르트 뭉크(Edvard Munch)이고, 또 다른 사람은 북유럽의 서정을 대변하는 음악가 에드바르트 그리그(Edvard Grieg)다. 뭉크의 그림은 불안하고 억눌린 현대인의 삶을 대변하고 그리그의 음악은 애잔하면서도 뭉클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두 사람은 단지 노르웨이 문화의 아이콘이 아니라 노르웨이를 인상짓는 강렬한 기억의 단편이다. 노르웨이는 뭉크만큼 강렬하고 그리그만큼 오랫동안 가슴에 남는 곳이다. 노르웨이는 바이킹계 민족인 노르드인이 세운 국가로 노르웨이(Norway)라는 국명도 고대 노르드어로 ‘북쪽의 길(Norðvegr)’을 의미한다. 인간이 갈 수 있는 먼 북쪽에 노르웨이는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예전부터 노르웨이가 익숙한 이름이었다. 즐겨 찾는 여행지여서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독자층이 두터운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이 ‘노르웨이의 숲’이었기 때문이다.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소설과 노래는 노르웨이의 순정한 숲과는 별반 관계가 없지만 노르웨이라는 나라에 대한 호기심과 동경을 심어주기에는 충분했다.
노르웨이 집들의 풍경.
노르웨이 집들의 풍경.
노르웨이는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봄에서 겨울까지의 풍경을 차례로 구경할 수 있다.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밀도 있는 자연이 층층이 펼쳐지는 모습은 장관이다. 자연만이 노르웨이의 전부는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도시의 풍경은 질서 있고 깔끔하다. 도시와 자연이 버성기는 것이 아니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일찍부터 터득한 듯하다. 인위적인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도시에서도 확인된다. 있는 그대로 자연보다 더 빛나는 사람들이 있는 곳, 바로 노르웨이다.


비틀스 노래처럼 가볍고 발랄한 노르웨이의 숲
오슬로공항은 비가 내렸다. 18시간이나 걸려 도착한 노르웨이의 첫 모습은 젖은 머리를 날리는 싱그러운 여인의 모습이다. 노르웨이의 대표적인 도시는 오슬로와 베르겐. 오슬로는 현재의 수도이고 베르겐은 한자동맹(중세 중기 북해·발트해 연안의 독일 여러 도시가 상업적 목적으로 결성한 동맹) 시절의 옛 수도다. 오래된 도시이기에 베르겐 사람들은 자부심이 강하다. 자신을 노르웨이인이 아니라 베르게너라고 불러주길 원할 정도다.
산에서 바라본 베르겐 전경.
산에서 바라본 베르겐 전경.
오슬로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시청이 있고, 노벨평화센터가 있다. 오슬로 해안 도로가에는 오슬로인들의 자랑거리인 오페라하우스가 있다.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와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확실하게 다른 개성이 드러난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를 형상화한 물결무늬가 인상적이다. 오페라하우스의 외부는 장엄하고 웅장하지만 내부는 목재를 사용해 따뜻하고 부드럽다. 발틱 오크를 사용한 오디토리움 벽과 노르웨이 전통 배를 만드는 장인이 직접 깎아 만든 계단은 현대적이면서도 세련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노르웨이인들의 섬세한 예술 정신을 확인하려면 오슬로 시내 중심에 있는 조각공원으로 가보아야 한다. 조각가인 비겔란의 작품을 모아놓은 조각공원은 인간의 집념이 얼마나 위대한 걸작을 만드는지 실감케 한다.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하나하나 찍어놓은 듯 만든 조각물에는 비겔란의 정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마치 동화책 속 그림을 보는 듯하다.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마치 동화책 속 그림을 보는 듯하다.
공원의 끝에는 전나무 숲길이 놓여 있다. 노르웨이의 숲은 비틀스의 노래처럼 가볍고 발랄하다. 그 사이로 사람이 지나간다. 베르겐은 노르웨이 특유의 붉은색과 노란색으로 칠해진 아름다운 집들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감을 듬뿍 느끼게 한다. 베르겐은 예전에 바이킹의 땅이었다. 오랜 세월을 견딘 도시답게 베르겐의 건축물들은 고아하지만 그만큼 오래된 향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 또한 수수하고 소박하다. 날씨가 추운 탓이기도 하지만 질박한 성품이 만들어낸 실용주의적인 풍토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백만 년 전의 자연, 피오르의 ‘절대 풍광’
노르웨이에서는 자연이 스스로 말을 한다. 기차를 타고 다시 뱃길을 돌아나서면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산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그 사이로 그림 같은 민가가 있고 호수와 너른 초지와 바다가 엇갈리듯 스치고 지나간다. 이런 노르웨이의 자연을 핵심적으로 볼 수 있는 패키지가 ‘노르웨이 인 어 넛셸(Norway in a Nutshell)’이다. 노르웨이가 자랑하는 절대 풍광의 핵심만을 뽑아낸 코스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선망하는 곳이다. 오슬로에서 뮈르달~플롬~구드방엔~보스~베르겐까지의 일정은 다소 길지만 평생 이만한 경험을 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을 모아놓은 조각공원.
조각가 비겔란의 작품을 모아놓은 조각공원.
백만 년 전 북유럽 전체가 빙하도 뒤덮여 있던 시절 형성된 피오르(fjord)는 빙하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대자연의 신비다. 피오르는 빙하가 해안을 깎아 내려 생긴 좁고 긴 만으로 침식된 부분에 바닷물이 스며들고 내륙을 파고들면서 만들어진 복잡한 해안선을 가리킨다.

빙하가 내륙 깊숙한 곳부터 해안까지 쓸고 내려간 흔적이 피오르인 셈이다. 노르웨이가 특히 이런 피오르 해안으로 유명한데, 북해로 이어진 서쪽 해안가에 수많은 피오르 지역을 품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깊은 송네 피오르도 노르웨이 서쪽 해안가에 인접해 있으며, 이 지역이 노르웨이 피오르 핵심 관광 코스다.
노르웨이 국립중앙박물관.
노르웨이 국립중앙박물관.
내륙 깊숙이 파고든 피오르는 빙곡이 침수해 생긴 좁고 깊은 바닷길이다. 피오르는 뱃길을 따라가면 갈수록 절정의 풍광을 보여준다. 그중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것이 송네 피오르다. ‘노르웨이의 영혼’이자 정수. 무려 200km가 넘는 뱃길은 자칫 지루할 수도 있지만 눈이 너무 호사를 누려서인지 피곤한 줄도 모른다.

송네 피오르 중 가장 좁은 네뢰이 피오르와 플롬에서 출발한 유람선의 종착점인 구드방엔은 웅장한 산맥이 남성적인 매력을 숨 막힐 듯 뽑아내는 곳. 그 안에 100년은 족히 넘었을 호텔이 그림처럼 얹혀 있다. 사람이 자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사람을 품은 것이다. 노르웨이인들은 자연의 힘을 늘 느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리그의 음악, 다크 초콜릿처럼 아린 그 맛
그리그의 키가 그렇게 작은 줄 몰랐다. 단신의 그리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민족적인 음악가이자 세계적인 음악가다. 그가 만들어낸 음악 세계는 깊고 풍성하다. 페르귄트 조곡과 ‘피아노협주곡 a단조’를 듣고 있으면 귀보다 입 안에 소리가 맺힌다. 싸한 박하 맛 같기도 하고, 달콤 쌉싸름한 다크 초콜릿처럼 아린 뒷맛을 안겨준다.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기차에서 바라본 풍경.
그리그가 부인 니나와 함께 말년을 보낸 베르겐 교외의 생가는 스위스풍의 건물로 수수하면서도 고풍스럽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요정인 트롤이 사는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트롤하우젠의 전면에는 너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바다는 오솔길로 연결돼 있고 그리그가 생전에 작품을 구상하며 몇 번씩이나 다녔을 길은 운치 있고 깊었다. 지금은 박물관과 작은 콘서트홀을 갖춘 문화공간이 됐다.
뭉크의 대표작 ‘절규’.
뭉크의 대표작 ‘절규’.
노르웨이에는 또 다른 에드바르트가 있다. 뭉크다.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 화가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국민 화가다. 뭉크의 작품들은 노르웨이 국립미술관과 뭉크미술관에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그의 대표작으로 널리 알려진 ‘절규’는 몽환적이면서도 인간 내면의 심리까지 보여주는 듯한 오묘한 느낌을 그대로 전해준다.
피오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
피오르를 구경하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들.
스탕달 신드롬에라도 걸린 듯 뭉크의 그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는 불우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의사였으나 심한 성격이상자였고 누이와 어머니는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죽음은 그가 평생 절망과 공포라는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한 원인이 됐다. 내면의 고통과 공포를 그린 ‘절규’는 결국 뭉크 자신의 내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뭉크는 유화에만 소질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목판화에도 그만의 독특한 숨결을 불어넣어 걸작을 만들었다. 미술에 문외한이어도 뭉크의 그림에는 절묘한 교감이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르웨이를 떠날 즈음 눈부신 햇살이 고개를 내밀었다. 강렬한 햇살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지난 여행의 기억. 노르웨이는 오랫동안 그리움으로 남을 것 같다.




plus info.
오슬로까지는 대개 핀란드 헬싱키공항을 경유한다. 인천공항에서 헬싱키까지는 비행기로 9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여기서 오슬로까지 약 1시간 30분 더 간다. 핀에어가 인천공항에서 매일 운항한다. 터키항공을 이용하면 시간이 더 걸린다. 인천에서 터키까지 대략 11시간 30분이 걸리며 이스탄불에서 오슬로까지 3시간을 더 가야 한다. 날씨는 매우 춥다. 봄, 여름에도 안심할 수 없다. 점퍼나 따스한 옷, 자주 비가 내리기 때문에 방수가 되는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면세점에서 40유로 이상의 물품을 샀으면 반드시 영수증을 챙기자. 나중에 공항 환전소에서 15~19% 정도를 돌려받을 수 있다.

오슬로와 베르겐에선 관광객들을 위한 ‘오슬로 패스(Oslo Pass)’가 유용하다. 국립미술관, 뭉크박물관, 바이킹 배 박물관, 입센박물관, 노벨평화센터 같은 오슬로 시내 주요 박물관과 관광지 35곳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고, 버스, 전차, 보트, 지역 운행 기차 등 시내 대중교통을 무료로 탈 수 있다. 오슬로 패스는 오슬로 중앙역 관광안내센터, 시청관광안내센터에서 살 수 있으며 24시간, 48시간, 72시간 세 종류가 있다.


글·사진 최병일 한국경제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