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민 제이와이아키텍츠 대표 소장
엄밀히 말해 원유민 대표 소장은 이 인터뷰의 적임자가 아닐 수 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원래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렇다. 재산도, 사회적 위치나 신분도 노블레스와는 거리가 있다.그는 건축사무소를 차린 지 겨우 15개월밖에 되지 않았고, 많이 갖지 않은 게 당연한 30대 초반이며, 전셋값 폭등을 걱정하는 가장이다. 그럼에도 그는 기꺼이 나눈다. 그에겐 집을 짓는 재능이 있고 열정과 패기가 있으며, 무엇보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다. “재능기부를 한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돈 쌓아놓고 살면서 엄청 여유 있어서 하는 줄로 알아요. 그런데 건축사무소 차린 지도 얼마 안 됐고요. 구성원 중 누구도 돈 많은 사람 없이 평범하고요. 30대 초반에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이 전부예요. 우리는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일부를 재능기부 하는 것이고, 그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겁니다. 저는 돈을 기부하라고 하면 못해요. 가진 게 없으니까요. 다만 내가 가진 능력을 통해 사무실이 먹고 사는 데 지장을 받지 않는 한도 내에서 기부할 뿐입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 주택가 안, 어느 오래된 주택의 2층에 위치한 제이와이아키텍츠 사무실에서 만난 원유민 대표 소장은 보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언론을 통해 몇 차례 재능기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왜곡된 내용과 시선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터였다.
존경받는 건축가로 산다는 것
지난해 2월 문을 연 제이와이아키텍츠는 원유민 대표 소장과 조장희 소장, 안현희 소장 등 대학 선후배 사이인 세 명의 건축가가 파트너 관계로 협업하는 건축사무소다. 원 소장은 네덜란드에서, 조 소장은 국내 대형 건설회사에서, 뒤늦게 합류한 안 소장은 국내 중소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다 의기투합했다. 원 소장의 표현을 빌리면 ‘태생이 심각하고 진지한 편이 아니라’ 서로의 가치관에 대해 딱히 마음잡고 얘기를 나눠본 적은 없으나, 암묵적으로 공유된 바 있었으니 그건 바로 건축가로서 존재감 있는, 하고 싶고 가치 있는 일을 하면서 존경받는 건축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원 소장은 네덜란드에서 경험한 환경과 국내에 돌아와 겪은 환경이 너무도 다름을 느끼면서 지향점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했다.
“네덜란드에서 유학을 마치고 현지에서 일하면서 많은 걸 보고 느꼈어요. 네덜란드는 건축가가 사회와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어요. 사회는 소셜 프로젝트를 통해 노동자 등 소셜 계층의 집합주거를 설계하는데, 그때 건축가는 분양이니 용적률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와 살 사람들이 그 안에서 어떻게 생활하고 관계 맺는지 등을 치밀하게 고민해요. 그러니 그곳 사람들은 건축가에 대한 태도가 달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말 유명한 몇 명 빼고는 건축가의 사회적 지위가 높지 않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누가 설계했는지도 모르잖아요. 심지어는 시공업자와 건축가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예요. 그 이유 중 하나는 건축가가 그런 사회적 역할을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또 하나 저희가 서른한 살에 독립 사무소를 차리면서 생존할 수 있는 방식이 사회적 역할을 하면서 존경받는 건축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가 말하는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이란 게 반드시 사회공헌 성격을 말하는 건 아니었지만, 바로 그 사회적 역할에 대한 마인드 때문에 재능기부를 통한 저비용 주택을 설계하는 게 가능했다. 규모가 작든 크든 최선을 다해 그 안에 들어와 살 사람들의 삶을 치열하게 고민하다 보면 솔루션이 나왔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금액으로 혁신적이고 멋진 집이 완성됐다. 재능기부의 시작은 전라남도 강진군 어촌 마을에 지어진 산내들 지역아동센터다. 지난해 8월 태풍 볼라벤과 덴빈으로 완파된 지역아동센터를 재건하는 일이었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부탁을 받고 그는 한 번도 좋은 환경을 경험해 보지 못한 아이들에게 더 좋은 시설과 풍부한 공간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집의 근원은 어떨까라는 고민 끝에 그는 아이들에게 집에 대한 그림을 그리게 했다. 많은 아이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삼각형의 지붕과 사각형의 공간으로 된 일반적인 집을 그렸고, 그는 거기서 착안해 단순한 형태를 통합한 재미있는 집을 만들었다. 밤이면 물고기 모양의 등이 헤엄치는 그곳에선 이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이 자라고 있다.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축의 실현
누군가의 삶을 바꾼 예가 또 있다. 바로 지난 2월 전남 보성군 벌교에 완공된 로 코스트 하우스 1호와 현재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전남 장흥의 2호다. 쓸 수 있는 비용은 불과 4000만 원 내외. 공사비 평당 300만 원이 들었던 산내들 지역아동센터는 이에 비하면 호화로운 편이었다. 산내들 지역아동센터로 인연을 맺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의 부탁을 받고 시작한 주거환경 개선 프로젝트를 맡게 된 것이다. 매년 4, 5채 정도의 집을 지어주면서도 고정으로 맡아 하는 건축가가 없어 재단이 고민하고 있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부담이 되는 제안일 수밖에 없었다. 사무소가 있는 서울과의 거리가 상당한 것도 그랬지만, 4000만 원이란 예산으로 뭔가를 하기엔 너무나 작은 금액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가서 환경을 보고 나니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아닌 누구라도 그 상황에선 그랬을 겁니다. ‘주거가 열악하다’라는 말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 되는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거든요. 장흥의 경우는 충격적이었어요. 화장실이 없어 가족들이 마당에서 용변을 해결해 악취와 파리가 가득했고, 쥐가 들끓어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살았나 싶었어요.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사람이 있나’,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는 건가’ 말이 나오질 않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런 상태의 집들이 한두 가구가 아니란 겁니다. 10년 넘게 건축을 배우고 또 업으로 해오면서 과연 이런 환경을 알고 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더군요. 건축을 배울 때 늘 들었던 ‘건축은 도시와 사람의 삶을 바꾼다’는 말들이 그저 공허하게 다가왔죠. 건축가들이 해야 할 고민을 건축도 모르는 비정부기구(NGO) 단체에서 하고 있었다니, 직무 유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과적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효율을 내는 주거의 본질과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공부가 됐다. 설계를 위한 설계,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이 아닌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을 찾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과정에서 화제가 됐던 ‘뽁뽁이 지붕’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도 나왔다. 모르긴 몰라도 재료 포장할 때나 쓰는 비닐 뽁뽁이를 건축에 활용한 건 세계 최초일 게다.
“일본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그리고 네 아이가 사는 다문화가정이었던 1호 집을 고칠 때였어요. 화재로 소실된 집을 고쳐 짓는 것이었는데 하루 종일 해가 들지 않고 단열이 안 돼 추운 환경이었죠. 벽을 세우고 지붕을 씌우고 나니 채광이 문제였어요. 저렴한 자재로 빛을 들이면서 단열까지 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고, 생각해 낸 게 바로 비닐 뽁뽁이 25장을 겹쳐 지붕에 단열재로 넣는 것이었죠. 사실 그때 사무실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어요. 뽁뽁이를 쓴 전례가 없으니 혹시라도 나중에 잘못되면 리스크가 크다는 것이었죠. 그런데 워낙 저예산의 특수한 상황이니 다른 선택이 없었어요.”
뽁뽁이 집이 화제가 되고 나니 두 번째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부담이 컸지만 필요에 의한 발명은 계속됐다. 7명의 식구가 살 집은 쥐 때문에 아예 새로 지어야 했지만 비용은 오히려 벌교 집보다 적은 상황. 컨테이너 상자를 이어붙였지만 공간은 52.14㎡. 턱없이 좁은 공간을 해결하기 위해 쓴 방법은 컨테이너 상자 집을 철골 지붕으로 덮는 ‘집 속의 집’이었다. 그 덕분에 66㎡의 공간이 새로 생겨 완공하면 118.14㎡의 집이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평당 시공비는 111만 원. 일반 단독주택 공사비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도전정신과 열정으로 젊은 건축가상 수상
지난 6월 말 제이와이아키텍츠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한 ‘2013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한 것도 바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적 건축, 그리고 도전과 패기가 만들어낸 기발한 아이디어와 열정 덕분이었다. 올해 수상한 3팀 중에서는 물론이고 역대 수상자 중에서도 최연소인 데다 사무소를 차린 지 15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수상이었다. 네덜란드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꼭 그 상을 받고 싶었다는 원 소장은 “그런데 막상 그렇게 꿈꾸던 일이 눈앞에 오니 현실감이 없어지더라”며 웃었다.
디자인 작업이 시작된 세 번째 로 코스트 하우스를 비롯해 현재 제이와이아키텍츠에서 완성했거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15건. 하나하나 내용도 다르고 콘셉트도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바로 ‘재미있는 건축’이다. 만드는 이에게도, 그리고 그곳을 이용하는 이에게도 모두 재미있어야 한다는 것.
“누군가 물어요. 도대체 우리가 만드는 건축의 특징이 뭔지 모르겠다고. 그 말에 대한 제 답은 그랬죠.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이라고. 저는 모든 프로젝트가 다 달랐으면 좋겠어요. 건축주 성격도 다르고 땅도 다르고 예산도 다른데 똑같은 건축이 나오면 그거야말로 잘못된 결과물 아닌가요. 건축주 입장에서 재미는 만족의 또 다른 말이겠죠. 전 기본적으로 집이란 사는 사람이 만족하지 않으면 실패라고 생각해요. 집을 지을 때 사람들이 굉장히 행복해하잖아요. 그런데 건축가가 그 기쁨을 날려버리게 지었다면 실패죠. 저희는 건축주와 굉장히 소통을 많이 해요.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지 이야기하라, 그 이상의 것을 만들어주겠다’가 우리의 모토입니다.(웃음)”
‘재능기부는 우리가 하는 일의 일부’라고 거듭 강조하는 원 소장은 앞으로도 사회 참여나 재능기부는 꾸준히 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집을 통해 사람들이 아이들이 달라지는 걸 목격하면서 건축의 크나큰 영향력을 새삼 깨닫게 된 것도 그 이유다.
“세 번째 로 코스트 하우스를 시작했지만 네 번째, 다섯 번째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이에요. 돈이 모금되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거든요. 4000만 원이라는 정말 최저 예산이 없어서 지금도 누군가는 말도 안 되는 집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돈으로 누군가의 삶이, 미래가 바뀔 수도 있는데, 의미 있게 돈을 쓰고 싶은 많은 분들이 좀 동참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벌교의 주택을 완성한 후 그 집 아이들을 만났는데 표정이 달라졌더라고요. 그동안 아버지 역할을 제대로 못했던 아버님도 이제 아버지 구실을 해보겠다고 했고요. 그게 바로 제가 학교 다닐 때 수없이 부르짖던 인간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건축인 거죠.”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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