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에 따른 우리 사회의 변화(下)

국어사전에 따르면 ‘은퇴’는 1648년에 처음 ‘직업을 떠난다’는 의미로 사용됐다. 은퇴의 개념이 ‘직업을 떠나 일을 그만두는’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로마시대의 고령자는 나이가 들었다고 은퇴하지 않았다. 고령세대는 많은 존경을 받았고, 육체적 능력과 축적된 지혜에 더 적합한 일을 했다. 정년제도는 산업화 시대에 들어서 생겨났다.



에드워드 레이지어(Edward Lazear)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지불하는 임금과 종업원의 노동한계 생산성, 즉 ‘공헌도’의 관계에 착안해 정년퇴직 관행을 설명하고 있다. 기업은 통상 젊은 종업원들에게는 실제 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나이가 들면 생산성에 비해 더 높은 임금을 지급한다. 결국 기업 입장에서는 실제 생산성보다 더 높은 임금을 계속 부담하기 어렵기 때문에 합리적인 시점에 정년 시기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고령 인력의 전략적 활용 차원에서 직무를 개발하고, 개인의 경력, 니즈 등을 고려해 적합한 직무를 배치해야 한다. 젊은 층, 중견층과의 업무 분담이나 새로운 직무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직무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러한 정년제의 근거를 반박하거나 불합리한 측면을 지적한 연구도 있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근무 연수와 조직 기여도를 조사한 어느 연구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4.3%가 고령층이 젊은 층보다 생산적일 수 있으며, 42.5%는 나이가 들어도 조직에 대한 기여도가 떨어지지 않는다고 응답했다. 젊은 층에 비해 기여도가 떨어진다고 답변한 사람은 26.7%에 불과했다. 육체노동 중심의 업무가 지식 중심의 업무로 대체되는 정보화 사회에서는 나이에 관계없이 개인의 노력에 따라 성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핀란드에서도 고령 인력의 업무 능력에 관한 연구를 오랫동안 진행해 왔다. 일례로 핀란드 국립직업건강연구소의 일마리넨 교수는 고령 인력이 보유한 기술과 기능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적합한 직무와 근무 환경을 제공할 경우, 이들의 업무 능력이 계속 향상된다고 주장했다. 그가 11년 동안 45만6257명의 근로자(45~57세)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60%의 근로자가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업무를 수행했으며, 10%는 업무 능력이 예전보다 향상됐다고 한다.


의무적 법률 규제 대응보다 적극적 인력 활용
나이가 들면 신체적 기능은 물론, 기억력도 떨어진다. 이 때문에 우리는 고령 인력의 지능이 젊은 인력에 비해 떨어진다는 견해를 오랫동안 믿어왔다. 그러나 지능의 생애발달에 관한 최근 연구에서는 판단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포함한 종합 능력으로서의 지능은 나이가 들어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지능은 유동성 지능과 결정성 지능으로 나눌 수 있다. 유동성 지능은 새로운 사물을 기억하거나 그것에 적응하는 능력을 말한다. 결정성 지능은 과거의 경험에 의해 축적된 지식을 활용하는 능력이다. 유동성 지능은 30대에 정점에 도달한 후 떨어지지만, 결정성 지능은 60세까지 점차 상승하며, 그 이후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실제로 사람은 나이가 들면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문제를 파악하고 판단하는 능력, 사람들과 절충하는 능력 등이 좋아지며,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나이 들어서도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현명한 기업이라면 고령 인력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정년 연장이라는 의무적 법률 규제에 대응하기보다 적극적 인력 활용 전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칫 온정적, 소극적으로 고령 인력을 활용할 경우 이는 정년 연장의 취지에 맞지 않을뿐더러, 고령 인력의 직무만족도가 떨어지고 기업의 인건비 부담만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2000년 초기부터 국내 기업들이 도입한 임금피크제 운영 과정에서 임금피크 대상자의 사기와 생산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자주 발견됐다. 본격적인 60세 정년 연장 시대를 앞두고 기업은 사업 구조와 업무 특성에 맞춰 고령 인력을 어떻게 활용하고, 처우하며, 동기를 부여할지 고민해야 한다.


고령 인력 직무 개발하고 근로자 장래 설계 지원
먼저, 기업의 사업 특성과 전략에 맞는 종합적인 인력 활용 전략이 필요하다. 고령 인력 고용 및 활용에 관한 기본 방침을 정하고, 업무 형태 및 이와 연동한 임금 처우를 설계해야 한다. 2006년부터 65세 정년을 이행하고 있는 일본 기업들은 인건비 부담이 가중되면서 고령 인력의 생산성 향상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특히, 임금 공정성 확보를 위해 개인의 성과를 중시하는 임금 체계를 도입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연령이 증가하면 동일한 직급이라도 직무 능력과 업적에 개인차가 커지기 때문이다. 또 정년 전의 현역 세대와 마찬가지로 고령 인력의 생산성 증대, 사기 제고, 직무 개발 능력 증진 등을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둘째, 증가할 직무 수요에 대비해 다양한 직무를 개발해야 한다. 일본 기업의 재고용 사례를 살펴보면, 기업이 공적 급여를 수령한다는 전제로 처우 수준을 억제하고, 고령 인력에게 주변 업무와 지원 업무 등 단순한 업무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령 인력이 갈수록 증가하게 되면 예전보다 다양한 직무 니즈가 발생할 것이다. 고령 인력의 전략적 활용 차원에서 직무를 개발하고, 개인의 경력, 니즈 등을 고려해 적합한 직무를 배치해야 한다. 젊은 층, 중견층과의 업무 분담이나 새로운 직무에 대한 재교육을 통해 직무 수행 능력을 강화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미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베테랑 고령 인력에게 기존의 직무를 계속 수행하도록 배려할 필요도 있다.

셋째, 현역 시절부터 생애설계 교육을 실시해 근로자 스스로 장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정년 연장과 함께 길어진 직업 인생을 설계하도록 민간 기업 근로자, 공무원, 교직원을 대상으로 활발한 생애설계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생애설계 교육 프로그램은 20대부터 퇴직 직전까지 각 연령대의 니즈와 특성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특히, 정년퇴직 시점이 가까워지면 외부 전직 지원, 재취업 알선 등으로 근로자가 제2의 커리어를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지원은 근로자의 조직 몰입도와 기업의 생산성을 높인다. 기업의 복지 차원에서 고령 근로자에게 혜택을 제공하는 측면도 있지만, 현역 세대에게 기업에 대한 신뢰와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효과도 있다. 종업원들이 일찍부터 커리어 플랜, 노후를 위한 라이프 플랜 등을 수립해 장래를 설계해 나간다면 기업은 종업원과 장기적인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물론, 더 높은 생산성을 보장할 수 있다.
[WEALTH CARE] 고령 인력, 풍부한 경험과 전문성 갖춘 베테랑
이형종 삼성생명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