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고를 겨를도 없이 올해도 벌써 6개월이 지나갔다. 올 하반기 벽두부터세계 경제와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가 과연 출구전략을 언제 추진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부상하고 있다.
[MARKET INSIGHT] 하반기 세계 경제 양대 현안…‘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
이론적으로 출구전략이란 금융 위기 대응 과정에서 도입된 비전통적 금융 지원 방식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것을 의미한다. 당초 2015년 이후까지 넘어갈 것으로 봤던 금융 위기가 이제는 양적완화(QE) 조기 종료 필요성이 거론될 만큼 빨리 가닥이 잡히는 데에는 ‘브라운식 모델’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MARKET INSIGHT] 하반기 세계 경제 양대 현안…‘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
브라운식 모델의 핵심 정책인 뉴딜식 재정정책과 빅 스텝 금리 인하, 양적완화 등은 인플레이션 등의 부작용은 나중에 생각하고 위기 극복의 가닥을 잡는 것에 최우선 목표를 두고 있다. 이 때문에 정책의 최우선 목표인 위기 극복의 가닥이 어느 정도 잡히면 위기 이후의 상황을 감안한 출구전략이 논의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하지만 초기 위기 극복 상황을 지나치게 낙관해 출구전략을 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어렵게 ‘돋은 싹(green shoots)’이 다시 노랗게 질려 ‘시든 잡초(yellow weeds)’가 될 수 있다. 특히 실물과 금융 변수 간의 괴리가 심해짐에 따라 마치 경기가 회복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는 금융 변수만 놓고 정책 기조를 변경할 경우 실물경기는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로 Fed가 출구전략을 실행하더라도 신중하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집권 2기를 맞아 일자리 창출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어서다. 더 이상 연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벤 버냉키 Fed 의장으로서 금융 위기 이후 유지해왔던 부양 정책을 철회하고 긴축 기조로 선회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벌써부터 양적완화 조기 종료 논쟁 이후 글로벌 증시에서는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올라가는 ‘유동성 장세’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종료설이 제기되고 있다. 자산 가격에 낀 거품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출구전략은 추진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시중 유동성이 흡수돼 주가는 하락 국면에 진입한다는 것이 골자다.

하지만 이 설의 가시화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출구전략에 대해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출구전략은 경기나 자산 시장의 회복 정도를 감안해 정책수단 면에서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비상 대책은 그 자체로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만큼 출구전략의 본래 목적도 경기나 증시를 안정시키는 데 있다.

둘째, 유동성 장세라 하면 증시 가용자금 차원의 개념이다. 증시 가용자금은 정책 요인과 시장 요인에 의해 공급된다. 최근처럼 경기가 회복될 경우 정책적으로 유동성이 흡수된다 하더라도 퇴장되거나 단기 부동화됐던 자금들의 기회비용이 늘어 시중에 방출되면 증시 가용자금은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

셋째, 경제와 증시 활력지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활력지표로 꼽는 통화유통속도와 레버리지 비율은 각각 돈이 특정 기간 내 얼마나 잘 도느냐와 증거금 대비 총투자 가능 금액의 비율로 높을수록 경제와 증시가 활력이 높다는 의미다. 최근 들어 통화승수 등 경제 활력지표들이 좋아지고 있다.

금융 위기 이후 돈의 힘에 의해 주가가 지탱해온 점을 감안하면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출구전략이 언제 추진되느냐는 관심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출구전략이 추진된다고 해서 곧바로 유동성 장세가 종료되고 주가가 하락한다는 것은 잘못된 시각이다. 오히려 출구전략을 추진할 만큼 경기가 회복된다면 양적완화 종료에 따라 일시적인 충격은 있을 수 있어도 중장기적인 주가 상승에는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MARKET INSIGHT] 하반기 세계 경제 양대 현안…‘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


일부에서는‘출구전략의 악몽’이 재현되면서 아베노믹스가 저주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아베노믹스다. 버냉키 의장의 출구전략 암시 발언으로 일본 주가가 폭락하면서 벌써부터 회의론이 강하게 불고 있다. 그만큼 엔저(円低)를 바탕으로 한 아베노믹스가 추진 초부터 결점이 많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다. 일부에서는 ‘출구전략의 악몽’이 재현되면서 아베노믹스가 저주에 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양적완화와 출구전략을 미국보다 앞서 추진했던 국가가 일본이다.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으로 상징될 만큼 장기간 불황에 시달렸던 일본은행(BOJ)은 2001년부터 이 위기 국면을 탈피하기 위해 양적완화를 전격적으로 추진했다. BOJ는 당좌예금 잔액 목표를 제시하고 그 수준을 지속적으로 상향 조정하는 식으로 양적완화를 추진했다.

BOJ는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때까지 양적완화를 계속 실시할 것임을 공표하고 구체적인 해제 요건을 제시했다. 처음 도입될 때에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0%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까지로 했고, 그 요건은 2003년 10월에 보다 구체화했다. 또 이런 요건은 필요조건이며 경기와 물가 사정에 따라 양적완화를 지속할 수도 있다고 규정했다.

여러 평가가 나왔지만 BOJ의 양적완화는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2001년까지 급증했던 일본 금융사들의 파산이 양적완화를 도입한 이듬해인 2002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다. 국채 매입을 통해 무제한 자금을 공급함으로써 유동성 부족에 대한 우려를 차단한 데다, 시중금리 안정으로 금융사 자금 조달과 운영상 리스크를 최소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적완화의 본래 목표인 디플레이션 탈출에는 기여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본원통화 대량 공급→대출 확대→통화증가율 상승→총수요 확대→물가 상승’의 과정을 거쳐 당시 일본 경제가 갖고 있었던 고질병인 디플레이션에서 탈출코자 했으나 그 성과는 제한적이었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다.

실물경기에 미친 효과가 크지 않았음에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5년 10월 이후 몇 개월 동안 계속 플러스 영역에 머물자 BOJ는 성급히 양적완화를 중단했다. ‘디플레 탈출’이라는 양적완화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서 출구전략을 추진하다 보니 실물경기는 더 침체돼 ‘잃어버린 10년’이 ‘잃어버린 20년’으로 연장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른바 ‘출구전략의 악몽’이다.

아베노믹스 자체도 출범 초부터 많은 결점을 갖고 있다. 그중 하나가 5대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다. 가장 우려됐던 것이 로빈스 크루소, 즉 국수주의 함정(Robinson’s ultranationalism trap)이다. 아베노믹스 추진 이후 인위적인 엔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각이 갈려 있다. 하나는 일본 경제가 오랫동안 당면한 디플레를 타개하는 자구책으로 인식해 엔저를 묵인하는 시각이다. 미국과 국제통화기금(IMF) 등이 이 부류에 속한다.
[MARKET INSIGHT] 하반기 세계 경제 양대 현안…‘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
올 하반기 들어 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는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주가, 환율 등 각종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다.



다른 하나는 근린궁핍화 차원으로 인식해 적극 반발하면서 환율전쟁에 가담하는 시각이다. 엔저에 따른 유로화 강세 피해가 심한 독일을 제외한 유럽 국가와 신흥국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묵인하던 국가들도 엔저가 더 심해지면 이 부류에 속속 가담하면서 환율전쟁이 전입가경(漸入佳境) 국면으로 치달을 것으로 예상된다.

‘J-커브 함정(J-curve trap)’도 현실화되고 있다. 엔저가 무역수지 개선과 이를 통해 경기를 부양시킬 수 있으려면 ‘마샬-러너 조건(Marshall-Lerner condition)’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무역수지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특히 엔저에 따른 수출입 가격 변화에도 물량 변화가 쉽지 않은 초기에는 무역수지가 심하게 악화된다. 엔저가 지속되는 상황 속에서도 오히려 적자폭이 8000억 엔대로 커진 4월 일본의 무역 통계가 J-커브 함정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뒷받침해 준다.

‘부메랑 함정(boomerang trap)’이 언제 나타날지도 주목된다. 갈수록 나라 안팎에서 반대가 심해짐에도 아베 정부가 엔저를 무리하게 유도하는 궁극적인 목표를 좋은 각도에서 본다면 디플레 타개다. 엔저가 되면 수출이 늘어남과 동시에 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수출 업종을 중심으로 일본의 주가가 강하게 반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수출 증대보다 내수 확대가 더 중요하다. 인구구조 고령화 등으로 앞으로도 내수가 쉽게 회복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이 상황에서 무리한 엔저로 남아 있는 내수 기반마저 붕괴될 경우 경기 침체는 더 장기화되는 자충수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일본 내 ‘자금이탈 함정(exodos trap)’도 우려된다. 아베노믹스 초기에는 일본 내 자금이 더 풍부해진다. 엔저를 유도하기 위해 풀리는 유동성에다 체리 피킹(cherry picking) 차원에서 주가 상승을 겨냥한 외국 자금이 유입되기 때문이다. 체리 피킹이란 주가가 적정 수준보다 떨어질수록 체리가 무르익어 따 먹으면(주식 매입) 맛있게 먹을 수 있다(투자 수익)는 것에 비유해 생긴 저가 매수 전략을 말한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상황이다. ‘S자형 투자원칙’이나 ‘하이먼-민스크의 리스크 이론’대로 초기 단계를 지나 일본 경제 회복과 같은 추가적인 투자 유인을 제공하지 못할 경우 어느 날 갑자기 자금이 이탈된다. 통화가치를 감안한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 이론상 제로(0) 금리에다 엔저까지 가세되면 엔 캐리 자금은 언제든지 이탈될 수 있는 여건이 충족돼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면 ‘역자산 효과’까지 겹쳐 부메랑 함정에 더 빠져든다.

빠른 시일 안에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베 정부는 ‘좀비 함정(zombie trap)’에 처할 가능성이 높다. 엔저 정책처럼 특정국 경제에서 최후의 보루로 여겨졌던 기대가 무너질 경우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정책당국이 어떤 신호를 보낸다 하더라도 국민은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좀비 현상이다. 좀비는 죽은 시체와 같다는 의미다.

올 하반기 들어 출구전략과 아베노믹스는 세계 경제와 우리 경제에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를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가장 경계해야 할 대목은 주가, 환율 등 각종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가능성이다. 앞으로 기업과 투자자들이 경영 계획과 투자 전략을 세울 때에는 ‘균형’을 중시하면서 위기관리 능력을 키워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