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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北海道)는 큰 섬이다. 면적이 8만 ㎢로 남한 면적의 80%에 이른다. 이 넓은 땅에 고작 500만 명이 살고 있다. 삿포로(札幌), 아사히카와(旭川) 등의 도시를 제외하곤 대부분이 우리나라 소도시만한 고만고만한 크기다. 도시들은 연녹색의 잎사귀를 뽐내는 자작나무 숲과 형형색색의 꽃밭들 사이에 들어앉아 있다. 차를 타고 길모퉁이를 돌면 코발트블루 빛 연못이 나타나고 사슴이 다가와 호기심 어린 눈을 반짝이며 이방인을 바라본다.
비에이 도마무산 전경.
비에이 도마무산 전경.
원시림에 둘러싸인 시레토코 반도.
원시림에 둘러싸인 시레토코 반도.
비에이의 광활한 구릉지대.
비에이의 광활한 구릉지대.
다쿠신칸 옆 자작나무숲.
다쿠신칸 옆 자작나무숲.
후라노에서 시레토코 가는 길의 간이역.
후라노에서 시레토코 가는 길의 간이역.
오타루 운하 야경.
오타루 운하 야경.
일본 속 또 다른 일본

홋카이도 하면 눈이 떠오르지만 여름 홋카이도의 모습도 겨울 못지않게 낭만적이다. 아니 겨울보다 더 좋다. 아무리 더워도 기온이 영상 30도를 넘지 않고 비가 잘 내리지 않아 여행하기에 최적기다.

여름 홋카이도의 절정은 비에이(美暎)와 후라노(富良野)다. 일본인들조차 ‘여기가 일본인가?’라는 생각을 품게 만드는 이색적인 풍경을 자랑한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높고 낮은 구릉, 구릉과 구릉 사이에 환한 꽃. 언젠가 한번쯤 꿈꿨던 동화 속 마을 같다.

비에이를 여행하기 전 마에다 신조(前田眞三)에 대해 잠깐 알고 가는 것이 좋겠다. 일본의 풍경 사진작가로 일본 풍경 사진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거장이다. 비에이와 후라노의 아름다운 풍광을 주로 찍었다. 일본의 아름다운 자연을 담기 위해 전국을 여행하던 마에다는 1971년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에서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을 만난다. 그곳이 바로 비에이다. 김영갑이 제주도에 반해 평생 제주 사진만 찍은 것처럼 그는 평생을 비에이에 머물며 비에이를 찍었다. 평범한 농촌 마을이었던 이곳은 1974년 그의 사진집 ‘고향의 사계’에 소개되면서 아름다움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여름 비에이의 풍경은 마에다의 사진에서 보던 것과 똑같다. 광활한 구릉이 파도처럼 물결치며 이어진다. 지평선은 꺾이거나 모난 곳이 없다. 그래서 비에이에 가면 선의 아름다움에 반한다고 한다. 꽃밭, 밀밭, 수수밭, 감자밭이 섞여 있다. 진홍빛 수수밭과 노란색 밀밭이 어울려 있다. 그 너머엔 푸릇푸릇한 감자밭이 펼쳐진다. 색과 색의 대비가 너무나 뚜렷하고 화려하다. 이런 밭들이 한 구릉, 두 구릉, 세 구릉 겹쳐 있다.

완만한 구릉이 적은 일본에서도 비에이는 이국적인 풍경으로 유명하다. 그런 까닭인지 CF의 단골 촬영지가 됐다. 이곳에는 ‘패치워크 로드’와 ‘파노라마 로드’가 있는데 잘 정돈된 형형색색의 밭들이 마치 조각천을 모아놓은 것 같다 해서 붙여진 패치워크 로드에는 1972년 닛산자동차 스카이라인의 광고 배경으로 나왔던 ‘켄과 메리의 나무’가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포플러 옆에 서 있는 광고 사진은 현지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키며 비에이를 널리 알렸다. 일본 담배 마일드세븐 광고의 배경 사진으로 나왔던 마일드세븐의 언덕도 현재까지 광고 사진으로 사용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길을 따라 차를 달리다 보면 다쿠신칸(拓眞館)이 나온다. 마에다의 사진을 모아둔 곳이다. 1987년 폐교된 다쿠신 지역에 3만3057.8㎡의 터를 사서 만든 곳으로 자신과 지역의 이름을 한 자씩 따서 전시관의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998년 사망했는데 그때까지 찍은 작품이 걸려 있다. 안개가 쓸고 가는 구릉지대부터 겨울의 광활한 눈밭까지 어느 사진 하나 빼놓을 수 없다. 전시관 옆에는 마에다가 사랑해 마지않았다는 자작나무 숲이 있다. 쭉 뻗은 자작나무 숲 사이로 한 사람이 걸어갈 만한 오솔길이 나 있다. 꼭 한 번 걸어보기를 권한다.

최근 뜨고 있는 여행지는 아오이이케다. 푸른 연못이라는 뜻이다. 오래전 화산 피해를 막기 위해 공사를 했던 곳에 물이 고이면서 만들어졌다. 연못 안에 죽은 나무 등이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긴다. 연못으로 가는 울창한 숲길은 산책 코스로도 좋다. 2010년부터 일반에게 공개됐는데 일본에서도 조금씩 입소문을 타고 있는 단계다.
테라스에서 본 도마무산 운해.
테라스에서 본 도마무산 운해.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홋카이도는 일본에서도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이다.
비에이의 구릉지대는 여름이면 꽃으로 뒤덮인다.
비에이의 구릉지대는 여름이면 꽃으로 뒤덮인다.
홋카이도를 사랑한 풍경사진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이 전시된 다쿠신칸.
홋카이도를 사랑한 풍경사진가 마에다 신조의 작품이 전시된 다쿠신칸.
라벤더 꽃향기, 후라노

후라노는 비에이에서 45km 정도 떨어져 있다. 자그마한 관광열차가 두 지역을 잇는다. 후라노는 일본 최대의 라벤더 산지이기도 한데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비누와 향수의 원료를 생산하기 위해 심었던 것이 지금은 관광명소로 발전했다. 라벤더는 여름 꽃이다. 보랏빛으로 들판을 물들이는 라벤더 밭에서는 진한 꽃 냄새가 풍겨 나온다. 끝없이 펼쳐진 대지 위에 보라색 꽃밭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후라노의 라벤더를 가장 잘 감상하고 싶다면 팜 도미타로 향하자. 팜 도미타는 후라노에서 가장 큰 농장이자 일본 내에서 라벤더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곳이다. 팜 도미타의 규모는 25헥타르. 절반은 라벤더,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양귀비 등 20여 종의 꽃으로 덮여 있다.

후라노 역시 영화와 드라마, CF 촬영지로 이름이 높다. 고집스러운 역무원의 모습을 그린 일본 영화 ‘철도원’도 후라노에서 찍었다. 후라노 남쪽 이쿠도라역이 바로 작품 속의 ‘호로마이역’. 역사는 옛 모습 그대로이며 그 옆에는 세트로 세워놓은 기숙사와 가게 등이 보인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본에서는 대히트를 기록한 ‘북쪽 나라에서(北の國から)’라는 TV 드라마 역시 이 일대에서 촬영했다. 일본판 ‘전원일기’라고 보면 된다.

후라노는 낙농제품 생산지로도 유명하다. 각 농장을 관광객에게 개방하고 있기 때문에 낙농제품 생산 과정을 관람할 수 있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후라노 치즈 공방이다. 오징어 먹물로 만든 카망베르 치즈 등 각종 치즈 생산 과정을 견학하고 이곳에서 만든 치즈와 유제품을 맛볼 수 있다. 이 외에도 버터, 아이스크림, 빵 만들기 프로그램이 눈길을 끈다.

시미즈야마에 위치한 후라노 와인하우스에도 가보자. 고지대인 시미즈야마는 유럽의 와인 생산지와 비슷한 기후와 풍토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유럽 못지않은 질 좋은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일본 포도와 프랑스식 제조법이 어우러져 독특한 풍미를 자아낸다. 와이너리를 둘러본 후에는 와인하우스 내에 위치한 레스토랑에서 후라노 와인을 마시며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가 후라노의 들판을 뒤덮는다.
여름이면 보랏빛 라벤더가 후라노의 들판을 뒤덮는다.
홋카이도는 낙농산업이 발달했다.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홋카이도는 낙농산업이 발달했다. 치즈를 비롯한 유제품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홋카이도 패스를 이용해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운치 있다.
홋카이도 패스를 이용해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도 운치 있다.
후라노는 일본의 손꼽히는 와인 생산지다.
후라노는 일본의 손꼽히는 와인 생산지다.
신비로운 일본의 자연, 그리고 맛

홋카이도 동부는 아직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일본인들은 홋카이도 동부를 ‘웅대한 자연과 풍부한 재료의 보고’라고 자찬하는데, 이들의 말대로 홋카이도 동부 지역에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야생 그대로의 자연이 남아 있다.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에 등록된 시레토코와 일본 최대의 자연 습지로 2000여 종의 동식물이 서식하는 구시로 습지, 세계에서 가장 맑은 호수로 유명한 마슈호, 천연기념물인 마리모로 유명해진 아칸호, 홋카이도에서 두 번째로 큰 구샤로호 등 다양한 여행지가 몰려 있다.

시작은 구시로다. 구시로는 동부 홋카이도의 경제와 일본 수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1870년 일본 본토의 동북 지방에서 637명이 이주해 정착한 것을 시작으로 탄광 개발과 목재 수출, 어업 등으로 오늘날에 이르렀다.

구시로에서는 갓테동을 먹어봐야 한다. 갓테동은 ‘내 맘대로 덮밥’으로 원하는 해산물을 밥에 얹어 먹는 일본식 즉석 회덮밥이다. 따끈한 흰쌀밥 위에 연어알이나 새우, 가리비 등 입에 맞는 재료를 얹고 고추냉이와 간장을 뿌려먹는다. 구시로의 전통 어시장인 ‘와쇼이치바’에 가면 맛볼 수 있다. 구시로는 일본식 바비큐인 로바타(爐ばた)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신선한 해산물의 맛을 즐기기 위해 구시로에서 이 요리법이 탄생했다는 설명. 여러 곳의 로바타 식당 중에 할머니가 직접 숯불구이를 해주는 식당을 가봤다. 숯불화로를 중심으로 ‘디귿(ㄷ)’자로 앉게 만든 식당 안은 짭짤하고 고소한 향기로 가득했다. 말 없는 할머니가 화로를 지키며 생선을 굽고 있었다. 세 명이 작은 모둠회 한 접시, 시샤모와 임연수어 구이, 연어알과 성게알 덮밥 등을 시켜 배불리 먹으니 1만 엔 정도가 나왔다.
시레토코의 별미 연어알 덮밥.
시레토코의 별미 연어알 덮밥.
우토로항을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시레토코의 비경을 돌아볼 수 있다.
우토로항을 출발하는 유람선을 타고 시레토코의 비경을 돌아볼 수 있다.
시레토코 여행의 출발점인 우토로항의 여유로운 풍경.
시레토코 여행의 출발점인 우토로항의 여유로운 풍경.
홋카이도 동부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시레토코 반도다. 홋카이도 동쪽 끝 오호츠크 해에 돌출돼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시레토코 반도는 일본의 마지막 비경이라고 일컬어지는 곳. 아이누말로 ‘대지가 끝나는 곳’을 의미한다. 일본 ‘최후의 비경’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원시림에 둘러싸여 있고, 반도 전체에서 온천물이 샘솟는다. 숲 속에서 간혹 만날 수 있는 불곰, 사슴, 붉은여우 등 야생동물은 시레토코가 얼마나 특별한 곳인지 실감케 한다.

홋카이도 여행의 마지막은 오타루다. “오겐키데스카(잘 지내나요)”라는 명대사를 남긴 이와이 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의 배경이 된 곳이다. 오타루의 대표 명소는 길이 1300m, 폭 40m의 운하다. 로맨틱한 분위기가 차고 넘친다. 아기자기한 상점과 다이세 시대에 지어진 석조 창고가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옛 창고는 레스토랑이나 술집으로 개조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운하는 한낮보다는 해질녘의 풍경이 예쁘다. 가로등이 반사된 강물을 따라 뚜벅뚜벅 걷다 보면 마치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것만 같다.
시레토코 반도는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슴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시레토코 반도는 때묻지 않은 자연으로 유명하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사슴과 쉽게 마주칠 수 있다.
화산섬 일본답게 시레토코 곳곳에는 노천탕이 마련돼 있다.
화산섬 일본답게 시레토코 곳곳에는 노천탕이 마련돼 있다.
plus info.
홋카이도 여행은 철도와 렌터카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 홋카이도 레일패스는 외국인 여행자를 위한 열차표. 3일권, 5일권, 7일권, 그리고 임의로 4일을 선택해 사용할 수 있는 플렉시블 4일권 티켓이 있다. 한국어 홈페이지(http://www2.jrhokkaido.co.jp/global/ korean)를 통해 타임테이블과 정보를 제공한다. 렌터카는 JR역에서 빌릴 수 있으며 대여한 곳과 다른 역에 반납할 수 있어 홋카이도 일주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오른쪽 핸들 운전이 익숙지 않다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자동변속기에 내비게이션이 차마다 장착돼 있어 차를 받고 10~20분만 통행체계(좌측통행)를 연습하면 도로주행에 큰 어려움이 없다. 렌터카는 연료비가 저렴한 경차(케이)에서부터 다인승 밴 차량까지 다양하게 있으며 대부분 국산차보다 연비가 좋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최갑수 시인·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