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구성 & 재테크 노하우

한국 부자들은 2000년대 이후 주거용 부동산에서 수익형 부동산으로, 최근에는 물가연동국채나 브라질 채권 등에 투자하고 있다. 투자처가 달라지면서 자산 구조도 바뀌어서 최근에는 금융 자산 비중이 부동산 자산을 앞질렀다. 남다른 감각으로 자산을 관리해온 부자들의 자산관리법을 알아본다.
[Korean Super Rich Report] 부동산 비중 45%, 물가채·해외 펀드 투자 늘어
한국에서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자산가들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말 기준으로 국내에 금융 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는 약 15만60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체 인구의 약 0.3%에 해당하며, 가구 수 기준으로는 1% 미만이다. 그들이 보유한 금융 자산 규모만 약 46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부자의 수와 자산 규모는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 주춤하다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고액자산가일수록 주식·펀드 비중 높아

노진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경영전략팀장은 “설문조사를 통해 국내 부자들의 자산을 금융 자산과 부동산으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 약 55% 대 45%의 비율로 금융 자산의 비중이 다소 높았다”고 말했다. 이는 전체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일반의 통념을 뒤집는 사실이다.

부자들도 일반인들처럼 2008년까지는 부동산 자산이 금융 자산에 비해 규모가 컸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의 하락과 투자 비중 축소 등의 영향으로 2008년 51%이던 부동산 자산 비중이 2009년 49%, 2010년 48%, 2012년 45%로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부동산 비중 축소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노 팀장은 “전체 부자 중에서 67%가 앞으로 부동산 비중을 축소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금융 자산 50억 원 미만 그룹은 현재 자산 구조를 유지하겠다고 답한 반면, 금융 자산 100억 원 이상 부자들은 향후 적극적인 자산 구성의 변화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투자할 만한 부동산으로는 50.3%가 건물 및 상가와 같은 상업용 부동산을 꼽았다. 건물 및 상가 다음으로는 오피스텔과 토지(임야) 등의 순이었고, 주거용 및 투자용 주택에 대한 선호도는 모두 10% 이내였다. 해외 부동산에 대한 관심은 2.9%로 무척 낮았다.

금융 자산 중에서는 예금의 비중이 41.7%로 가장 높았고, 뒤를 이어 펀드 24.5%, 보험 및 연금 19.8%, 주식 13.8% 순이었다. 주목할 점은 금융 자산 10억~30억 원인 그룹이 예금 비중이 가장 높고 주식 및 펀드 투자 비중은 낮은 반면, 보유 자산이 커질수록 그 반대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금융 자산 10억~30억 원 그룹의 예금 비중은 46%이고 주식 및 펀드 투자 비중은 35%인 데 반해 금융 자산 100억 원 이상 그룹은 예금의 비중이 30%로 낮아지고 주식과 펀드 비중은 47%로 높아졌다. 이를 통해 부자들은 예금 등 안전 자산이 어느 정도 확보되면 금융 투자에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선호하는 금융 상품으로는 은행 정기예금이 22.3%로 가장 높았다. 그다음을 채권형 펀드 21.8%, 양도성예금증서(CD)·종합자산관리계좌(CMA)·머니마켓펀드(MMF) 등 단기 고금리 상품 15.5%, 주가연계증권(ELS) 14.5% 등의 순이었다. 조사 결과를 놓고 보면 국내 부자들이 부동산 투자 비중을 줄이겠다고 응답했지만, 금융 투자 성향은 여전히 보수적이거나 관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Korean Super Rich Report] 부동산 비중 45%, 물가채·해외 펀드 투자 늘어
2000년대 중반 국내외 부동산과 해외 펀드 전성시대

자산 구조의 변화는 투자 트렌드와 그 맥을 함께 한다. 고액자산가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00년까지 코스피 시장이 1000포인트를 넘는 동안 국내 주식시장에 많은 투자를 했다. 그러다 2000년 미국의 정보기술(IT) 주식의 버블이 붕괴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이 동반 폭락하자 아파트, 토지, 상가건물 등 부동산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2000년 이후 최고의 투자처는 단연 주거용 부동산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본격적인 랠리를 시작하던 2002년 이후 일반인과 다름없이 부자들은 부동산에 올인했다. 차이점이라면 자금력을 바탕으로 비교적 투자 규모가 큰 강남 재건축 아파트에 투자한 이들이 많았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이 정점에 이르던 2007년까지 부동산은 재테크의 주류였다. 이 시기 고액자산가들 중에는 시야를 해외로 돌려 해외 부동산에 투자한 이들도 적지 않다. 해외 부동산과 함께 해외 펀드(onshore fund), 상가건물 등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투자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정우 신한은행 광화문지점 지점장은 “당시 해외 부동산과 해외 펀드가 인기를 끌게 된 배경에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적 배려가 깔려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는 국내 기업이 해외 수출에서 벌어들인 엄청난 외화와 외국인의 왕성한 한국 투자 등으로 인해 국내에 외화가 과잉 공급됐던 시기다. 노무현 정부는 이렇게 생긴 외화를 해외 투자로 유도해 환율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을 펼쳤다.

2006년 개인과 기업의 해외 부동산 취득 조건을 대폭 허용한 게 대표적인 정책이다. 정부는 해외 부동산 취득 조건을 대폭 낮춤으로써 국내 부동산 투자 열기를 해외로 돌리려고 했다.

해외 펀드 투자 활성화를 위한 조치도 함께 이뤄졌다. 2007년 6월 1일 이후 국내에서 설정된 해외 펀드의 주식 매매 차익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주는 게 주요 골자였다. 이에 따라 부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해외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금융기관 객장에서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 진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시작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일반인뿐 아니라 부자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믿었던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 앞에서 부자들은 외환위기 이후 또 한 번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2007년 말부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요동치기 시작했다. 결국 우려하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현실화되면서 2008년 9월 15일 투자은행(IB)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에 이른다. 리먼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 위기는 고액자산가를 비롯한 해외 펀드 투자자들에게 막대한 투자 손실을 입혔다.

부자들은 해외 펀드에서의 손실과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부동산 가격의 폭락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국내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을 뿐 아니라 다른 많은 국가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2006년 이후 미국 등 해외 부동산에 투자했던 고액자산가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됐다. 그때 받은 상처로 인해 지금도 많은 자산가들이 해외 펀드나 해외 부동산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일부 자산가들은 당시 투자한 해외 부동산에 지금까지도 자금이 묶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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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해외 ETF·금 투자 수요 꾸준

2011년 이후 고액자산가들의 투자 성향은 ‘안전 자산 선호’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2008년부터 2010년 사이 벌어진 글로벌 금융시장의 영향으로 고액자산가들은 투자에 관한 한 상당히 보수적인 태도를 취했다. 그렇다고 은행예금에만 자금을 예치해 두지는 않았다. 위험 자산에 투자하는 것도 아니다. 그 대신 부자들은 물가채 등 국내 국공채로 눈을 돌렸다.

상가와 같은 중소형 수익형 부동산에 대한 투자 또한 꾸준했다. 토지, 아파트 등은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했지만 중소형 수익형 부동산은 강보합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강남권 등 특수 지역은 가격이 오히려 상승했다. 특이한 점은 부자들 사이에 금, 은 등 실물자산에 대한 투자가 붐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이는 미국과 유럽이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돈을 푼 덕분에 국제적으로 금, 은 등 실물 자산의 가격이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2013년 대한민국 자산 시장을 둘러싼 환경은 그리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부동산 시장은 4·1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이후 조금씩 살아난다고는 하지만 예전만큼의 수익은 엄두도 낼 수 없고, 엔저(円低)로 한국 기업의 실적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면서 주식시장은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저금리·저성장 기조 속에서 눈여겨볼 만한 금융 상품도 거의 없다. 오죽하면 은행 프라이빗뱅커(PB)들 사이에 “추천할 상품이 없어 고객 만나기가 부담스럽다”는 하소연이 나올까. 이 같은 상황에서 고액자산가들은 절세에 대해 관심이 가장 크다.

이정우 지점장은 “금융 자산은 세금 혜택이 있는 브라질 채권, 연금(저축)보험 등에 대규모 자금이 몰린다”고 전한다. 대규모 자금이 일시납 연금(저축)보험에 몰리면서 많은 보험회사들이 자금 운용의 어려움으로 현재는 일시납 연금(저축)보험 상품의 판매를 중지하거나 한도를 축소했다.

주식은 직접투자보다는 일정 부분 주가 하락을 방어하면서 정기예금 금리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주가연계증권(ELS), 주가연계펀드(ELF), 파생결합증권(DLS) 등 구조화된 금융 상품 투자가 많다. 국내 주식보다 해외 ETF 등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주요 특징이다.

부동산에서는 상가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강남 3구와 중구 명동, 종로 등 인기 지역에 대한 수요가 꾸준하다. 금 투자에 대한 수요도 꾸준하다. 이 지점장은 “특히 2013년 4월 16일 국제 금 가격이 폭락한 후 금 투자에 대한 문의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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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