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줄기세포 연구는 새로운 라운드에 접어들었다. 일본 교토국립대의 야마나카 신야 교수와 영국 케임브리지대 거든연구소 존 거든 소장의 노벨상 수상으로 전 세계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새로운 방향이 설정됐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다 자란 세포를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도록 되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야마나카 교수의 역분화줄기세포(iPS세포)는 피부 세포에 특정 유전자 4개를 삽입해 어떤 세포로도 분화할 수 있다. 따라서 분화 능력에 한계가 있는 성체 줄기세포보다 활용 범위가 넓고 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더 효율적이다. 물론 체세포만을 이용하기 때문에 수정란이 필요한 배아 줄기세포의 윤리적 논란도 피할 수 있다.

현재 세계 줄기세포 시장은 323억5000만 달러(약 34조 5000억 원)으로 추정된다. 전문가들은 iPS세포가 실용화될 경우 본격적으로 줄기세포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는 성체 줄기세포의 주도 속에 세포 치료제, 신약 개발, 생체조직공학 등에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있지만 iPS세포가 이 시장을 뒤바꿔놓을 만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세계의 많은 줄기세포 연구자들이 연구 방향을 iPS세포로 재조정하고 있다. 야마나카 교수는 올해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시력 감퇴를 겪는 환자에게 iPS세포를 활용한 시력 회복 실험을 할 계획이다.

한국은 지난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주로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 집중해왔다. 줄기세포는 크게 배아 줄기세포와 성체 줄기세포로 나뉘며, 그 중간 격인 태아 줄기세포와 지난해 노벨상을 받은 iPS세포가 있다. 그렇지만 성체 줄기세포를 제외한 어떤 줄기세포도 아직 임상시험에 성공한 사례가 없다. 골수, 지방, 제대혈 등에서 채취할 수 있는 성체 줄기세포는 지금까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한 건의 부작용에 대한 보고가 없다.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거든 소장(왼쪽)과 야마나카 신야 교수.
줄기세포 연구로 노벨상을 수상한 존 거든 소장(왼쪽)과 야마나카 신야 교수.
공식 허가 받은 치료제는 세계 4개뿐

지난해 한국은 성체 줄기세포 연구에서 391편, 배아 줄기세포에서 96편의 논문을 발표해 세계 8위, 7위에 올랐다. iPS세포 분야에서도 선두권을 추격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은 iPS세포 관련 논문을 총 26편 발표해 세계 8위를 차지했다. 1위 미국(310편), 2위 일본(105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진 연구자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줄기세포 실용화 연구에서 한 발 앞서 나가고 있다. 지난 2011년 세계 최초로 줄기세포를 이용한 심근경색 치료제가 국내에서 보건당국의 품목 허가를 받았다. 지난해 그 뒤를 이어 연골 재생 치료제, 크론성 누공(대장이나 소장 부위에 염증이 발생해 구멍이 생기는 병) 치료제가 허가를 받아 총 3개의 줄기세포 치료제가 출시됐다.

당국의 공식 허가를 받은 줄기세포 치료제는 국내의 3개를 포함해 미국 기업의 이식편대숙주병(수혈된 림프구가 면역 기능이 저하된 숙주를 공격해 나타나는 질환) 치료제를 합해 전 세계 총 4개뿐이다. 이 줄기세포 치료제들은 아직 시행 초기 단계로 그 사용과 효과도 매우 제한적이다.

2011년 7월 국내 최초로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제인 에프씨비파미셀의 ‘하티셀그램-AMI’는 심근경색 환자의 골수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분리, 약 4주간 체외에서 배양한 뒤 주사제로 만들어 손상된 심장혈관에 직접 투여하는 방식으로 허가됐다.

그러나 이 치료제를 모든 심근경색 환자에게 투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승인한 치료 적응증은 ‘가슴통증이 나타난 후 72시간 이내에 관상동맥성형술(스텐트삽입술)을 시행해 막힌 혈관이 재개통된 심근경색 환자의 좌심실 구혈률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즉 1차 처치 후 혈관이 재개통된 경우에 더 많은 혈액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조 치료제’ 정도로 볼 수 있는 셈이다.

메디포스트는 타인(신생아)의 제대혈(탯줄) 유래 성체 줄기세포로 관절연골 재생 치료제인 ‘카티스템’을 만들어 2012년 1월 두 번째 국산 줄기세포 치료제로 허가받았다. 신생아 탯줄에서 유래된 세포라 노화가 덜 됐고 품질이 일정한 게 장점이다. 또 퇴행성·외상성 무릎관절연골 손상에 나이 제한 없이 쓸 수 있다.

카티스템은 제대혈 추출 줄기세포에 하이드로겔(히알우론산)을 혼합한 젤 상태로 다소 점도가 높아 시멘트를 바르는 느낌으로 환부에 주입한다. 치료 현장에서는 노화로 인한 연골연화증 초기에만 효과적이고, 이미 상당히 진행된 퇴행성 무릎관절염에는 효과에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지난해 5월 시판에 들어간 카티스템은 현재 전국 약 200개의 병원 정형외과에서 시술이 이뤄지고 있다. 메디포스트 측에 따르면 현재 월 20~30건씩 치료에 사용되고 있으며 건수는 확대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안트로젠의 ‘큐피스템’은 2012년 1월 크론병에 의한 항문 누공(치루) 치료제로 허가됐다. 이들 치료제는 시판 후에도 매년 식약청으로부터 효능과 안전성이 임상 때와 비교해 개선됐는지 혹은 떨어졌는지 추적 관리를 받아야 한다. 만약 효능과 안전성이 떨어졌다면 언제든 품목 허가가 취소될 수 있다.

이미 치료제를 상용화한 3개 업체를 포함해 총 7개 업체에서 15개 줄기세포 치료제에 대한 임상시험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 바이오업계는 이번 알앤엘바이오 논란에 대해 일단은 “허가가 안 된 줄기세포 치료를 경계해야 한다”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에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알앤엘바이오가 주장하는 “기존 화학의약품과는 별도의 임상 단계가 설정돼야 한다”는 입장에도 수긍하고 있다.
[줄기세포] 줄기세포 치료, 어디까지 왔나?
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증되지 않은 줄기세포 치료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돼 국내 바이오기술이 도매급으로 함께 저평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의 경우 줄기세포 치료제의 임상이 여러 건 진행되고 있지만 신뢰도가 낮아 국제적으로 인정이 안 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 보건당국이 줄기세포 치료제의 상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좋지만 얕은 기술로, 시장성도 없는 줄기세포 치료제를 졸속으로 허가하는 것은 환자에게는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초기 줄기세포 산업에 있어서는 입지를 좁힐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다. 또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환자들이 정체불명의 줄기세포 시술에 현혹되기 쉬우므로 현재 공식 허가된 줄기세포 치료를 잘 이해할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있는 줄기세포 치료제가 다수여서 5~10년 사이에 일단 당국의 허가가 시작되면 다양한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봇물처럼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줄기세포
몸을 구성하는 다양한 세포들이 각기 다른 세포로 분화하기 전 상태인 ‘미분화 세포’를 말한다.

배아 줄기세포
정자와 난자가 수정한 지 14일이 안된 배아기의 세포인 배아 줄기세포는 장차 인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와 조직으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능 세포’로 불린다. 하지만 엄연한 생명의 씨앗이라는 점에서 배아를 이용하는 것에 대해 윤리적 문제가 얽혀 있다.

성체 줄기세포
제대혈(탯줄혈액)이나 다 자란 성인의 골수와 혈액, 지방 등에서 추출해낸 세포로서 뼈와 간, 혈액 등 구체적 장기의 세포로 분화되기 직전의 원시 세포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배아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 이후 주로 연구의 중심에 성체 줄기세포가 있다.

자가 줄기세포
치료제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의 몸에서 줄기세포를 추출해 배양한 뒤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치료제. 면역 거부 반응이 적어 안전성이 높은 장점이 있다. 타가(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자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타가)를 사용한 치료제.

타가(동종) 줄기세포 치료제
환자 자신의 줄기세포(자가)가아닌 다른 사람의 줄기세포(타가)를 사용한 치료제.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