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BALANCE

“중학교 때 이 녀석을 처음 만났습니다. 처음엔 또래 여자 친구들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뿐이었죠. 그런데 이 녀석과 함께 하다 보니 점점 욕심이 생기더군요. 더 좋은 소리로 더 좋은 연주를 하고 싶다는 마음 말이에요. 우리는 함께 무대에 올랐습니다. 첫 무대를 마치고 받은 갈채, 그것이 저와 이 녀석을 평생지기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기타와 나, 스나미 케이지 미스터도넛코리아 사장
2012년 11월 24일 오후 6시. 서쪽 하늘의 해질녘 노을 따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클럽 안으로 들어섰다. 공연을 앞둔 밴드의 리허설이 한창이었다. 40~50대 멤버로 구성된 직장인 밴드. 아마추어답지 않게 탄탄한 호흡과 농익은 무대 매너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노래가 끝나자 무대를 지켜보던 음향 스태프도 미소 지었다. “좋은데요.”

이 밴드의 이름은 ‘곤드레만드레’. 한국에 거주 중인 일본인 주재원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 2009년에 결성된 밴드는 매년 4~5차례 정도 홍익대 주변 클럽에서 공연을 연다. 2000여 명 규모의 일본 주재원 모임인 ‘서울재팬클럽(SJC)’에서도 매년 연말 행사 공연을 부탁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2012년 한·일 축제한마당에선 일본 직장인 밴드를 대표해 한국의 인디밴드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미스터도넛코리아의 스나미 케이지(角南 圭二) 사장은 3년 전부터 이 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성황리에 공연을 마친 그를 며칠 뒤 사무실에서 다시 만났다. “한국에 온 지 7년째인데 이런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웃는 그에게 밴드 이름에 담긴 뜻을 먼저 물었다. “멤버들이 한 번 만나면 연습이 끝난 뒤에도 항상 2차까지 술자리가 이어져서 이름을 ‘곤드레만드레’라고 지었어요. 술로 연결된 만큼 끈끈한 사이죠.”

스나미 사장이 ‘곤드레만드레’ 밴드에 들어간 건 한국에 부임한 지 3년 정도 지난 2010년 8월. 한국에 오기 전엔 일본의 더스킨(Duskin) 그룹에서 미스터도넛재팬의 교육책임자로 근무했다. 중학교 때 처음 기타를 배워 고등학교 때 첫 무대에 올랐고, 일본에서 일할 때도 꾸준히 밴드 활동을 해왔다고 하니 ‘비공식’ 음악 경력으로 치면 장장 30년이 넘은 셈이다.

“처음에 기타를 시작한 이유는 여자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였죠. 한국에서도 많은 남학생들이 같은 이유로 기타를 잡는다고 들었습니다만.(웃음) 고등학교 때 우연히 친구들과 무대에 오른 적이 있는데 그때 받았던 박수가 저로 하여금 음악을 그만두지 못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공연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점점 상기됐다. 수천 번 기타를 잡았고 수백 번 무대에 올랐지만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은 30여 년 전의 그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했다.

“한국의 관객들은 음악을 들을 때 감정 표현에 거침이 없습니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고,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전해주니 연주할 때도 절로 힘이 납니다.”

바쁜 일정 탓에 자주 모이진 못하지만 밴드 멤버들은 2주에 한 번씩 모여 연습을 한다. 공연 날짜가 결정되면 3~4개월 전부터는 연습의 강도를 높인다. 레퍼토리는 재즈부터 가요까지 다양한데 원곡을 그대로 부르지 않고 밴드만의 느낌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자작곡도 다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김치 블루스’. “아침은 김치, 낮도 밤도 김치, 찌개로 김치, 고기를 구워도 김치, 한잔 걸치고 그녀와 함께 김치~ 오예~” 하는 위트 있는 가사로 공연에서도 관객들의 호응을 많이 받았던 곡이다.

“예전에는 록(rock)을 좋아해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을 자주 들었죠. 요즘엔 감정에 끌리는 대로 자기만의 스타일을 살려 연주할 수 있는 블루스(blues)가 더 좋습니다.”
기타와 나, 스나미 케이지 미스터도넛코리아 사장
원하는 소리 찾아 기타도 직접 제작

음악 안에 감정을 담는 법을 알게 되자 기타는 스나미 사장에게 조금 더 특별한 존재가 됐다. 더 좋은 음색으로 더 좋은 연주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 이미 열다섯 대의 기타가 있지만 완벽한 음색에는 조금씩 못 미쳤다. 아쉬움이 남았던 그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냈다.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가방에서 자랑스럽게 꺼내 보이는 무광 코팅의 기타는 그가 직접 만든 수제 악기. 해외에서 부품을 따로 구해 조립부터 사포질, 코팅까지 손수 했다. 기타 헤드(head)에는 직접 ‘스나미(Sunami)’라는 이름도 새겨 넣었다.

스나미 사장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기타의 소리를 결정짓는 픽업이다. 취향에 맞는 음색을 찾아 미국제와 독일제를 따로 달았다. 따뜻한 음색을 내는 픽업은 주로 블루스를 연주하는 데 쓰고, 드라이한 음색을 가진 픽업은 코드 연주가 아닌 단음을 낼 때 주로 쓴다고 했다.

“이 기타를 만드는 데는 6만 엔(77만 원) 정도 들었어요. 유명 브랜드의 기타가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것에 비하면 결코 많은 비용은 아니죠. 그래도 저는 원하는 소리를 내주는 이 기타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이 모든 것을 3개월 동안 독학으로 연구해가며 했단다. 기타에 대한 뚝심과 열정만큼은 여느 ‘장인’ 못지않다.

미스터도넛코리아 사장으로 부임한 지 7년 차. 하나의 분야에 깊고 천천히 파고드는 그의 성격상 한국의 빠른 사업 전개 속도가 처음엔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 정도의 질을 유지하면서 성장해나가고 싶은데 두 가지를 양립시키는 게 쉽지만은 않았죠. 한국에선 경제성장이 급격하게 이뤄졌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습니다.”

지난 2012년 미스터도넛은 경영이 어려운 점포들을 폐점시키는 아픔도 겪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더 성장하기 위한 ‘기초 체력’을 키우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한다. 지난 경험을 발판 삼아 2013년에는 점포를 늘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단한 업무에 지칠 때마다 그에게 음악은 새롭게 기분을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기타를 연주하고 무대에 올라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다른 에너지를 얻었다. “음악을 한다고 해서 특별한 건 아닙니다. 제게는 그저 퇴근 후 영위하는 삶의 한 부분이죠.”

아마도 스나미 사장에겐 기타가 ‘김치’와 같은 존재가 아닌가 싶다. 그가 노래한 ‘김치 블루스’에서처럼 낮과 밤, 찌개와 고기에 모두 어울리는, 한잔 걸치고 인생을 즐기게 해주는 그런 친구 말이다. “경직된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이 취미가 제겐 ‘작은 축제’처럼 느껴집니다. 기타와 음악은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죠. 앞으로도 평생 같이 살아갈 겁니다.”


김보람 기자 bramvo@kbizweek.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