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구이 코스 한정식당 숭례문

가을이 몰고 온 선선한 바람 끝에 구수한 한우구이 냄새가 따라왔다. 여름 내내 소진된 기운을 고기로 보충하려는 밥상에 강원도와 충청도 산야에서 채취한 산야초가 한몫 거든다. 전라도 고창 출신의 조리장이 선보이는 한우와 조개관자, 산야초의 ‘삼합’. 음식의 궁합도, 맛도 의외다.
크고 작은 26개 룸을 갖춘 숭례문의 넓은 실내.
크고 작은 26개 룸을 갖춘 숭례문의 넓은 실내.
10월최근에 서울 압구정동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레스토랑 ‘숭례문’은 숯불구이 코스 한정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793㎡(240여 평) 규모, 26개에 이르는 룸을 구비한 숭례문은 가족 소모임은 물론 칠순 등 가족 연회, 비즈니스 미팅이나 세미나 등을 겨냥해 룸과 룸을 한 공간으로 틀 수 있는 격벽을 활용한 공간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숭례문은 남도요리 전문점 ‘해우리’와 자매 브랜드 레스토랑으로 오픈 전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국내에 수제버거 바람을 일으킨 K 버거의 스테이크를 개발, 대박 신화를 만들었던 김성수 조리장의 영입 때문이었다. 원래 양식전문가인 그가 야심 차게 준비한 숯불구이 전문점에는 ‘좋은 음식이 곧 약’이라는 뜻의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철학이 녹아 있다.
[Gourmet Report] 한우와 관자구이, 그리고 산야초의 ‘삼합’
강원도·충청도 산야초와 숯불구이의 궁합

현재 모 대학 조리과 교수로도 활동 중인 조리장이 1여 년의 준비와 연구를 거쳐 탄생했다는 숭례문의 약식동원 음식. 김 조리장의 설명을 중간에서 끊고 한상 내어올 것을 재촉했다. 대체 어떤 모양새와 맛으로 사람을 녹일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서대로 음미하는 코스요리를 한꺼번에 내어 오니 테이블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다. 전라도 출신의 조리장과 주방장이 직접 준비한다는 세꼬시부터 산야초 샐러드, 시래기 된장국, 물김치 등 푸짐한 전채와 밑반찬, 강원도 5개 군 농장에서 공수해온다는 마블링이 제대로인 한우가 미각을 있는 대로 돋울 때 한우고기 옆에 내어온 절인 잎에 시선이 멈췄다.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 산야를 돌며 직접 선별하는 산야초는 한 달 동안 초와 간장에 절여 발효시킨 뒤 테이블에 낸다.
강원도와 충청도 일대 산야를 돌며 직접 선별하는 산야초는 한 달 동안 초와 간장에 절여 발효시킨 뒤 테이블에 낸다.
이름하여 산야초 절임. 숭례문에서는 그 흔한 깻잎이나 상추를 잊으라 했다. 김 조리장이 오대산, 월정산, 태백산, 설악산 등지로 직접 원정을 나가 수급해 온 곰취, 고추냉이잎, 가시오갈피, 뽕잎(돼지감자) 등을 한 달 이상 초와 간장으로 재워뒀다 낸다는 것.

또 하나 이색적인 광경이 있었으니 접시 위 등심 옆에 나란히 자리한 조개 관자살이다. ‘육군 숯불구이에 웬 해군’이라는 의구심이 생기지만 이것이 바로 숭례문식 ‘삼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우와 관자살, 산야초의 조합이 더없는 건강식이라는 것.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일단 데워진 숯불에 고기부터 얹어 굽기 시작했다.
산해진미가 한 상에 올려졌다. 한우 등심과 관자살, 절임 산야초의 ‘삼합’에 전라도식 물김치, 시래기 된장국, 산야초 샐러드, 세꼬시 등이 남녀노소를 위한 건강식으로 제격이다.
산해진미가 한 상에 올려졌다. 한우 등심과 관자살, 절임 산야초의 ‘삼합’에 전라도식 물김치, 시래기 된장국, 산야초 샐러드, 세꼬시 등이 남녀노소를 위한 건강식으로 제격이다.
전라도 어머니 손맛으로 입소문

육즙이 알맞게 배어나온 등심을 뚝뚝 잘라 이제 말로만 듣던 절임 산야초에 싸 먹을 차례. 넓게 편 뽕잎 위에 등심 한 점, 관자살 한 점을 얹은 다음 산초(또는 당귀) 몇 알을 올리는 것이 순서다.

이때 기호에 따라 약초 샐러드를 살짝 첨가해도 되는데, 쌈을 쌀 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있으니 바로 쌈잎을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말아야 한다는 사실. 김 조리장이 평소에도 룸을 돌며 손님들에게 귀띔해준다는 팁인데, 쌈잎을 밖에서 안으로 말아야 복(福)이 들어온다는 설명이다. 믿거나 말거나.
양념 불고기 역시 관자살과 구워 절임 산야초에 한 쌈 싸먹으면 담백함과 쫄깃함, 싱그러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양념 불고기 역시 관자살과 구워 절임 산야초에 한 쌈 싸먹으면 담백함과 쫄깃함, 싱그러움을 한꺼번에 느낄 수 있다.
양식전문가로 국내 수제버거 붐을 일으켰던 김성수 조리장은 산야초, 한우 선별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독특한 삼합을 탄생시켰다.
양식전문가로 국내 수제버거 붐을 일으켰던 김성수 조리장은 산야초, 한우 선별 하나까지 꼼꼼하게 챙기며 독특한 삼합을 탄생시켰다.
조언대로 뽕잎에 싼 고기쌈 시식에 들어갔다. 상추 대신 입 속으로 들어온 절임 뽕잎은 일단 달짝지근한 간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이어 삼합이 함께 씹히는 맛은 담백함과 쫄깃함, 싱그러움의 결합이랄까.

한마디로 처음 느끼는 맛, 예상을 뒤엎는 맛이 양 엄지를 치켜 올리게 만든다. 살짝 흥분된 미각은 양념된 고기와의 삼합도 시도하고 싶었다. 양념 맛 때문인지 생불고기 구이와 절임 산야초, 관자살의 만남은 등심과의 궁합에는 살짝 못 미쳤지만 젓가락을 분주히 움직이게 한 것은 분명하다.

숭례문에서는 고기쌈 먹는 중간 중간에 꼭 맛봐야 할 것이 있으니 바로 전라도 엄마 솜씨 물김치다. 실제 ‘전라도 엄마’인 조리사가 만든다는 물김치는 시원하고 깊은 맛에 고향의 맛이 그리운 시니어 고객들이 올 때마다 찾는 아이템.

진지(밥)가 나올 때쯤 숯불에 올리는 디포리(밴댕이) 된장찌개는 밴댕이에 대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고도 남는다. 안 먹어보면 후회할 맛. 호텔 출신 연구·개발(R&D) 팀이 선보이는 이색적인 숯불구이 코스 요리는 착한 가격으로도 손님들을 다시 찾게 만들 것 같다.



Information
26개의 룸을 구비하고 있는 숭례문은 가족 소모임이나 연회, 비즈니스 세미나 등을 겨냥해 짜임새 있는 공간 활용이 특징이다.
26개의 룸을 구비하고 있는 숭례문은 가족 소모임이나 연회, 비즈니스 세미나 등을 겨냥해 짜임새 있는 공간 활용이 특징이다.
위치: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70-6 베드로빌딩 지하 1층

영업시간: 오전 11시~오후 10시(연중무휴)

가격대: 점심 특선 한정식 2만8000~3만2000원, 점심 불고기 특선 1만8000~2만2000원, 점심 단품 메뉴 8000~1만5000원, 저녁 한우 프리미엄 코스 5만8000~6만9000원, 일품 메뉴(매운 해물 갈비찜·한우 육사시미·한우 육회·참나물 불고기 냉채) 1만~4만 원

기타: 발레파킹, 연회 및 세미나 케이터링 서비스

문의 02-515-5544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