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 선언 직후 급등세를 보였던 한국 증시는 한 달이 지난 지금 코스피 지수가 QE3 이전으로 하락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반전됐다.

“경기가 안 좋으면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 2002년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이사였던 벤 버냉키 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은 이 같은 발언으로 ‘헬리콥터 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12년 9월 13일,‘헬리콥터 벤’은 무제한 3차 양적완화를 선언했다. 규모와 기한에 제한을 두지 않고 유동성을 풀겠다는 뜻이다.

한국 증시는 환호했다. 코스피 지수는 QE3 직후 거래일인 9월 14일 1950.69에서 2007.58까지 단숨에 2.92% 점프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시중에 풀린 글로벌 유동성이 아시아에서 가장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한 한국 증시로 몰려올 것으로 예측했다. 코스피 지수가 2200까지 올라갈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곁들여졌다.

한 달이 지난 지금, 한국 증시의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지난 10월 10일 코스피 지수는 QE3 이전 지수대로 떨어졌다. 10월 11일에는 장 한때 1919까지 곤두박질치기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 증시를 QE3 이전으로 되돌린 원인 중 하나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환매 러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9월 7일 이후 22거래일 동안 돈이 빠져나갔다.
한국 증시를 QE3 이전으로 되돌린 원인 중 하나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환매 러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9월 7일 이후 22거래일 동안 돈이 빠져나갔다.
글로벌 경제에 대한 우려 커져

가장 큰 원인은 글로벌 경제 악화에 대한 우려다. 사실 QE3가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정적인 글로벌 경제지표는 되레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했다. 양적완화 정책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QE3 시행 이후에는 달랐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등이 예측한 글로벌·중국 경제성장률 등이 낮아질수록 투자자들의 걱정은 커졌다. IMF는 10월 9일 올해 세계경제성장률을 3.5%에서 3.3%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4.1%에서 3.6%로 하향 조정했다. WB는 중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8.2%에서 7.7%로 낮춰 잡았다. 이 같은 소식에 10월 10일 코스피 지수는 1950선을 내줬다.

유럽은 계속 문제다. 스페인은 구제금융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의 문제아가 된 그리스는 연일 벌어지는 파업과 시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미국 9월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가 경기 확장을 의미하는 50을 넘고 9월 실업률도 7.8%를 기록, 최고 하락률을 기록한 것은 위안거리다. 그러나 아직 QE3의 효과는 심리지표에서 나타날 뿐이다. 실물 경기지표까지 온기가 확산될 수 있을지는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3분기 국내외 기업실적 예상치 부진

부진한 국내외 기업실적도 현실이 됐다. 3분기 실적 시즌이 시작되면서 양적완화 기대감에 가려져 있던 기업실적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QE3 시행 전부터 애널리스트들이 예측하는 한국 기업들의 3분기 실적 하향 조정은 꾸준히 진행됐다.

증권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실적 전망치를 내놓은 116개 상장사(삼성전자 제외)의 국제회계기준(IFRS) 연결기준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 9월 1일 25조9338억 원에서 10월 1일 25조1915억 원으로 떨어진 뒤 10월 10일 현재 24조7642억 원까지 내려왔다. 신중호 이트레이드증권 연구원은 “실적 컨센서스가 하향 조정되면서 시장에서는 곧이어 진행되는 실적 시즌에 대한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기업들의 실적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KB투자증권에 따르면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종목들의 3분기 순이익 전망치 총합은 2189억 달러다. 미국 애널리스트들은 지난해 3분기 순이익(2200억 달러)보다 3분기 순이익이 0.05% 역성장할 것으로 본다는 뜻이다.



주식형 펀드 환매 러시도 발목 잡아

한국 증시를 QE3 이전으로 되돌린 원인 중 하나는 국내 주식형 펀드의 환매 러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9월 7일 이후 22거래일 동안 돈이 빠져나갔다. 순유출금액만 총 2조2586억 원이다.

펀드에서 돈이 자꾸 유출되면서 자산운용사들도 계속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들의 유가증권 시장 순매도 금액은 1조8639억 원이다. 한국 증시에서 화수분처럼 돈을 뿌릴 것으로 전망됐던 외국인들도 10월 초부터 11일까지 1317억 원 순매수하며 매수 강도를 줄이고 있는 상황에서 기관이 계속해서 팔자에 나서면서 수급은 기댈 곳을 잃었다.

문제는 펀드 환매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는 데 있다. 우리투자증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 1950~2000대에 남아 있는 환매 대기 자금은 1조5000억 원 정도다. 2000~2100대의 국내 주식형 펀드 가입 금액은 6조5000억 원이다. 여기에 랩어카운트 가입금액 4조7000억 원을 합치면 총 11조 원 규모의 환매 대기자금이 버티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116개 상장사(삼성전자 제외)의 IFRS 연결기준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 9월 1일 25조 9338억 원에서 10월 1일 25조1915억 원으로 떨어진 뒤 10월 10일 현재 24조7642억 원까지 내려왔다.
116개 상장사(삼성전자 제외)의 IFRS 연결기준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지난 9월 1일 25조 9338억 원에서 10월 1일 25조1915억 원으로 떨어진 뒤 10월 10일 현재 24조7642억 원까지 내려왔다.
당분간 횡보장세 예상

관심은 향후 한국 증시의 움직임이다. 연말까지는 1900~2000대 초반에서 코스피 지수가 오르락내리락하는 장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김병연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업실적 자체가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10~11월 실적 시즌에는 코스피 지수가 횡보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며 “스페인이 구제금융에 적극적이지 않지만 유로존에서 큰 일이 터지지 않는 이상 코스피 지수가 급락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코스피 지수 1900이면 가격 매력이 충분한 수준”이라며 “3분기 실적은 경기 둔화를 반영한 것이지만 이 불안감이 4분기에 확산될 가능성은 낮다”고 설명했다.

내년 초부터는 코스피 지수가 다시 상승 흐름을 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4분기를 기점으로 국내 기업들의 이익 하향 조정이 진정되고 내년부터는 개선되는 쪽으로 돌아설 것이라는 분석이 그 근거다. 세계 각국의 통화 정책 효과가 4분기부터 개선된 경제지표로 확인될 가능성도 있다. 유럽 재정 위기의 진행 상황에 따라 4분기에도 변동성을 보일 수 있지만 내년부터는 다를 것이라는 뜻이다.

조익재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세계 각국의 경기 저점이 올해 말, 내년 초면 형성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단기적으로 실적 호전·배당주 주목

투자자들은 삼성전자의 실적 발표로 시작된 3분기 실적 시즌에 ‘방어적’인 시장 대응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실적 추정치가 하향 조정되고 있는 가운데 상승되는 종목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 9월 초 대비 10월 10일 현재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상향 조정되고 있는 종목은 유가증권 시장의 GS, GS리테일, 하이마트, 에스오일(S-Oil), 호남석유, 제일기획, 삼성전기와 코스닥 시장의 컴투스, 풍산이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투자전략팀장은 “3분기 실적 시즌에도 2분기와 같이 실적 시즌에 돌입하면서 기업이익 추정치가 급격히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전년 동기 대비, 전분기 대비 기업이익 증가율보다는 최근 추정치 변화를 좀 더 주시하며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수익이 안정적인 배당주도 유망한 것으로 추천됐다.

동부증권에 따르면 2009년 이후 배당을 꾸준히 실시했고 예상 배당수익률이 5%가 넘는 시가총액 3000억 원 이상 종목은 한국셸석유, SK텔레콤, KT, 메가스터디, 하이트진로, 우리파이낸셜 등이다.


황정수 한국경제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