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시아노 몽블랑 아시아퍼시픽 사장

문화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후원 활동을 펼친 인사 및 단체를 선정해 특별히 제작한 펜과 후원금을 시상하는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이 올해로 21회를 맞았다. 지난 9월 26일 서울 남산 소재 밀레니엄 서울 힐튼호텔에서 개최된 2012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시상식을 위해 서울을 찾은 제임스 시아노(James Siano) 몽블랑 아시아퍼시픽 사장을 만났다.

[CEO Interview] “몽블랑은 100년 후에도 진화를 멈추지 않을 브랜드”
예의 미국인다운 훤칠한 외모와 시원스러운 말투의 제임스 시아노 몽블랑 아시아퍼시픽 사장은 오랜만에 찾은 서울의 가을 날씨를 흠뻑 즐기고 있는 듯했다.

미국 페이스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MBA)를 취득한 이후 노턴 사이먼(Norton Simon), 뉴욕 제너럴 미디어 인터내셔널 리미티드(General Media International Limited) 등을 거쳐 미국 스와치 그룹 부사장을 역임한 후 몽블랑으로 적을 옮겼던 그는 마케팅, 특히 시계 분야의 전문가다.



1998년부터 시작해 14년째 몽블랑을 위해 일하고 있다. 그렇게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게 했던 몽블랑의 매력은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1997년 몽블랑 면접을 봤다. 스와치그룹에서 10년 동안 일했던 경험이 있었고, 당시 몽블랑에서는 시계를 처음으로 출시했던 시점이었다. 몽블랑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가죽제품에 이어 시계 분야에 진출했고, 아시아퍼시픽 지역에서 시계 시장 개척을 시작할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

몽블랑은 펜과 가죽제품이 이미 자리를 잡은 브랜드이지만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부티크 디자인 등 리테일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브랜드라 비전이 있다고 판단했고, 한국, 베트남, 호주에 이르는 큰 시장을 맡게 됐다.

그런데 내가 가진 애정은 ‘몽블랑’이라는 브랜드가 먼저이고, 회사는 그 다음이다. 브랜드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개념이다. 몽블랑 직원들은 국가를 막론하고 가진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팀으로 일한다는 것은 굉장한 일이다.”
[CEO Interview] “몽블랑은 100년 후에도 진화를 멈추지 않을 브랜드”
‘몽블랑’하면 ‘펜’이 먼저, 그 다음엔 ‘품격’ 같은 단어가 떠오른다. 몽블랑의 브랜드 DNA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DNA는 곧 브랜딩(branding)이다. 이는 브랜드 가치를 의미하는 것인데, 몽블랑의 브랜드 가치는 세련됨, 문화적 경험, 지성 등을 꼽을 수 있다.

최근 많은 브랜드들이 마케팅에 문화를 접목시키고 있지만, 몽블랑은 1929년부터 펜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필기구는 인류 문화와도 직결된다. 인류가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을 기준으로 문명과 비문명을 나누지 않나.

몽블랑의 DNA는 제품 그 자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굳이 정의하자면 1924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몽블랑의 상징인 별(로고타입)과 유럽 장인정신, 대를 물려 쓸 수 있는 제품의 내구성 등이라 말하고 싶다.”

현재 몽블랑의 제품 가운데 세계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강세를 띠는 제품군은 어떤 것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핵심 제품은 필기구다. 필기구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는데, 아시아 시장 매출의 40%가량을 차지한다. 하지만 유럽 시장의 경우엔 시계, 가죽, 주얼리 제품 매출이 60% 정도로 상승했다.

아시아 시장은 필기구 판매도 폭발적인 신장을 보이고 있지만, 가죽과 주얼리 제품군 판매도 호조를 띠고 있어 필기구 판매는 수치상으로는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아시아 퍼시픽 시장 내 몽블랑의 성장은 어떤가.

“전체적으로 매우 좋은 편이다. 특히 중국 시장은 2008년 이후 폭발적인 성장세를 띠며 세계적으로도 최대의 시장으로 부상했다. 이는 홍콩 명품 시장의 과거 성장 추세와 비슷한 양상이다.

중국 시장은 중국 내 판매는 물론 중국 관광객이 직접 유럽에 가서 구매하는 물량도 매우 많다. 홍콩, 유럽, 한국, 중국 그 어디에서라도 소비자들은 몽블랑을 일관된 이미지로 인식하고 구매한다. 이는 매우 긍정적인 면이다.”

몽블랑은 1997년 시계 제조에 뛰어들어 바로 다음 해에 자체 무브먼트를 개발하는 놀라운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스위스 메이드 하이엔드 시계들이 이미 많이 진출해 있는 한국 시장에서의 몽블랑 시계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홍콩 시장에는 현재 330여 개의 스위스 메이드 시계 브랜드들이 판매되고 있다. 그런데 몽블랑은 시장 진출 15년 만에 매출 25위를 기록하는 쾌거를 이뤘다. 한국 역시 성장을 위한 기반이 탄탄하게 다져져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시장에서 몽블랑의 최대 경쟁 브랜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특정 브랜드를 말하기는 어렵고(웃음) 2000~5000유로대의 시계들이 가장 경쟁력 있는 가격대라고 말하고 싶다. 5000유로를 상회하는 시계들은 가격은 높지만 판매 물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Montblanc de la Culture Arts Patronage Award)은 1992년부터 21년 동안 총 177명의 세계적인 인사들에게 수여됐다. 한국에서는 2004년 고(故) 박성용 금호문화재단 이사장이 국내 최초로 제13회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수상했고, 이어 박영주 이건문화재단 이사장, 김영호 일신문화재단 이사장, 이세웅 신일문화재단 이사장, 이운형 세아그룹 회장, 신창재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윤영달 크라운-해태제과 회장이 수상의 영예를 안은 바 있다. 올해는 한국 최초 여성 수상자로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그 주인공이다. 정 관장에게는 수상자만을 위해 순금으로 한정 제작되는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펜과 1만5000유로의 문화예술 후원금이 부상으로 수여됐고, 올해 후원금의 수혜는 정 관장이 오랫동안 후원해 온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를 위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2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의 한국 수상자로 선정된 정희자 관장에게 제임스 시아노 사장이 정 관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펜을 수여하고 있다.
2012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의 한국 수상자로 선정된 정희자 관장에게 제임스 시아노 사장이 정 관장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 펜을 수여하고 있다.
몽블랑은 올해로 21년째 문화예술후원자상을 제정, 시상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문화예술 부문에 관심이 많은가.

“음악, 사진 등에 관심이 많다. 음악적인 면에서 가족은 물론 친척들도 재능이 많은 편인데 사촌 중 한 명은 열네 살 때부터 뮤지컬 무대에 오를 정도로 재능이 있어 줄리어드 음대를 나왔다. 또 다른 사촌은 오페라 가수로 뉴욕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어머니 역시 1950년대에 노래 콘테스트에 나가 가수가 될 뻔 했지만 아버지 반대로 꿈을 접은 적이 있다. 누나와 여동생 역시 노래는 수준급인데 유독 나만 예외다. 사진은 고등학교 때 수업을 듣고 배우기 시작했는데 순수예술 사진에는 시간과 노력이 꽤나 많이 요구돼 생각처럼 쉽지는 않고 주로 가족들 사진을 찍는 수준이다.”

한국에서는 올해 정희자 아트선재센터 관장이 수상했다. 올해 아시아퍼시픽 지역에서 개인적으로 관심이 갔던 후보자는 없었나.

“몽블랑 문화예술후원자상은 12개국에서 3명씩 후보를 추천받아 선정된다. 하지만 수상자만 발표할 뿐 후보는 공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 말할 수 없다.(웃음)”
몽블랑 산 높이인 4810m와 같은 숫자로 한정 생산되는 요제프 II(Joseph II) 4810 한정판 문화예술후원자상 펜.
몽블랑 산 높이인 4810m와 같은 숫자로 한정 생산되는 요제프 II(Joseph II) 4810 한정판 문화예술후원자상 펜.
요제프 2세 888 에디션 펜. 펜 전체에 왕실의 문장과 요제프 2세의 모노그램 ‘J II’를 모티브로 한 패턴으로 장식했다.
요제프 2세 888 에디션 펜. 펜 전체에 왕실의 문장과 요제프 2세의 모노그램 ‘J II’를 모티브로 한 패턴으로 장식했다.
한정판으로 제작되는 문화예술후원자상 펜은 일반적인 몽블랑 펜과 마케팅 포인트가 달라야 할 것 같다. 마케팅 전략과 판매율이 궁금하다.

“문화예술후원자상 펜은 거의 매년 모두 판매됐다. 후원자상에 대한 홍보는 하지만 특별한 광고를 하지 않는데도 한정판 펜을 모으는 세계적인 컬렉터들이 있다. 문화예술후원자상 펜으로 인한 매출이 전체 매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브랜드에 있어 의미 있는 제품이다.”

몽블랑의 역사가 100여 년이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후 몽블랑의 모습을 그려본다면.

“개인적으로 생존하기는 힘들겠지만(웃음) 브랜드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같아서 시대의 변화에 따라 몽블랑도 지속적으로 변하고 진화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컬렉팅하는 몽블랑 제품이 있나.

“예술문화후원자상 펜을 수집한다. 2000년도가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용의 해였는데 그때 아들이 태어난 연도를 기념하기 위해 용 에디션 펜을 출시한 바 있다. ‘0000’이라는 포토타입을 사용했고 2000개 한정판으로 제작했는데 모두 판매됐다. 아마도 중국인들이 많이 구입하지 않았나 싶다.(웃음)”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