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유럽의 재정 위기, 중국의 경기 둔화 등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으며 따라서 향후 2~3년간 국내 증시는 장기 박스권에 갇히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MARKET LEADER] “동원산업·세방전지·동아타이어 등이 우리가 장기 보유 중인 종목”
최준철 VIP투자자문 대표는 국내 주식시장에서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꼽힌다. 그는 1999년 생긴 서울대 주식투자 동아리 활동 시절부터 가치투자라는 뚜렷한 투자 원칙을 확립했다. 2003년 김민국 대표와 함께 VIP투자자문을 설립하면서 제도권으로 진출했다.

이후 10년간 연평균 수익률 19%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다. 가치투자로 높은 수익을 낸다는 소문이 나면서 회사의 운용자산은 올 들어 6474억 원(9월 말 기준)으로 불어났다. 지난해 회사의 당기순이익 기준으로는 브레인 케이원에 이어 국내 투자자문업계 3위에 올랐다.

10월 10일 서울 신논현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그는 “유럽의 재정 위기나 중국의 경기 둔화와 같은 문제들은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들”이라며 “향후 2~3년간 국내 증시는 장기 박스권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따라서 “글로벌 경기 상황에 민감한 대형주로 돈을 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어 “최근 중소형주와 내수주가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일부 종목들은 실적에 비해서 주가가 너무 오른 측면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바이오주의 경우 거품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코스피 지수가 미국의 3차 양적완화(QE3) 정책 발표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

“지수는 결국 기업 실적의 총합이다. 올 들어 조선, 철강, 화학 등 굵직한 산업군들이 돈을 못 벌기 시작했다. 결국 대형주 중에 삼성전자, 현대차 두 개가 남았다. 삼성전자가 지난 10월 5일 놀라운 3분기 실적을 발표했는데 당일 주가는 못 오른 게 시사점이 크다. 그 이상의 실적 달성이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지수가 오를 만한 요인을 찾기 힘든 장세다.”

주식시장이 장기 박스권에 진입했다는 시각도 있는데.

“동의한다. 유럽 재정 위기, 중국 경기 둔화 등은 모두 구조적인 문제여서 단기간에 해결이 안 된다. 향후 2~3년간 주식시장은 박스권에서 탈피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주가가 급격하게 빠지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주가가 조금만 빠지면 가격적인 매력 때문에 주식을 사려고 하는 대기 자금이 풍부하다.”

중소형주 강세는 오래가는 것 같다.

“QE3 정책이 나오면 증시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기대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결국 펀더멘털로 관심이 모아졌는데, 대형주 중에선 딱히 살 종목이 없어 똘똘한 중소형주를 찾는 것 같다.”

바이오·카지노·딴따라(엔터테인먼트) 업종이 선전하면서 ‘바카라’란 신조어도 등장했다.

“파라다이스 같은 중국 소비 확대 수혜주들은 실적이 뒷받침된다. 실적 대비 주가가 약간 과한 정도다. 그러나 일부 바이오주들의 주가는 황당하다. 시장에서 현재 평가받는 시가총액과 우리가 내부적으로 평가한 가치를 비교해보면 ‘영(0)’ 몇 개씩 차이나는 종목도 있다. 엔터주는 바이오주 정도는 아니지만 거품이 꽤 있는 것 같다.”
최근과 같은 증시 상황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과 같은 증시 상황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중소형주는 종목 선택이 중요하다. 종목 발굴은 어떻게 하나.

“1년에 약 500개 정도의 기업을 탐방한 후 분석한다. 자기자본이익률(ROE), 영업이익률 등 높아야 하는 숫자는 높고, 부채비율처럼 낮아야 하는 숫자는 낮은 종목들을 일단 선별한다. 그런 다음 이런 기업들에 대한 심층 분석에 들어간다. 경영진뿐 아니라 회사 비즈니스에 관련된 다수의 사람을 만난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실적, 장기 전망, 밸류에이션 등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는 종목을 최종 선정한다.”

요즘 괜찮게 보는 종목은 어떤 것들이 있나.

“별로 돈이 안 되는 비즈니스 같아서 남들은 잘 안 하려고 하는데, 그 비즈니스에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해 돈을 잘 버는 기업들을 좋아한다. 현재 우리가 장기 보유 중인 동원산업, 세방전지, 동아타이어 등이 이런 종목들이다.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가치투자를 한다고 하면 종목을 선택해서 일단 사면 그냥 기다리는 걸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일단 투자를 하더라도 거의 ‘스토커’처럼 집요하게 그 회사를 파헤친다. 그 회사에 대해 우리들이 모르는 게 하나도 없어야 한다. 지금 얘기한 종목들은 지난 3년간 이런 과정을 거친 종목들이다.”

가치투자를 하려고 하는 개인투자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처음 주식투자를 시작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기업 내용은 너무 좋은데 황당할 정도로 저평가된 종목들이 수두룩했다. 당시 ‘한국형 가치투자전략’이란 책을 쓸 때만 해도 ‘이렇게 쉽고 좋은 걸 왜 안 하십니까’라는 생각으로 비분강개해서 썼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시장이 스마트해지고 경쟁도 치열해져서 저평가된 종목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장기 불황 약세장에서는 모든 예측이 딱딱 맞아떨어져야 주가가 오른다. 조금만 실수하면 망가진다. 그래서 지금은 솔직히 얘기하면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가치투자는 기대수익률을 어느 정도로 잡는 게 적절할까.

“회사 내부적으로 연 15% 달성이 목표다. 운이 좋아서 그런지 2003년 이후 연평균 19% 정도 수익을 냈다. 앞으로는 기대수익률을 10% 정도로 낮춰야 할 것 같다.”

철강, 화학, 조선 등 산업재 업종은 언제쯤 반등할 수 있을까.

“산업재는 의미 있는 반등을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 경기가 살아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아직 옛날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공급 과잉이 너무 심각하다. 이걸 해소하려면 꽤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해외 가치주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를 선보였다고 들었다.

“회사를 설립한 2003년에만 해도 황당할 정도로 저평가된 기업들이 국내 증시에 너무 많았다. 지금은 시장이 스마트해져서 그런 종목 찾기가 쉽지 않다. 결국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리스크는 물론 크다. 그러나 홍콩에 있는 합작회사의 운용 인력들이 동남아시아 지역 가치투자만 10년 넘게 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다.”



글 김동윤 한국경제 기자oasis93@hankyung.com 사진 정동헌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