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택기


김택기 작가의 근작은 주로 태권브이(V)가 모티브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태권브이와는 사뭇 다르다. 김택기의 태권브이는 로켓포를 쏘고 발차기를 하는 대신 바이올린을 켜고, 화장을 한다.상반된 개념의 충돌, 그 속에 담긴 작가의 고뇌를 찾아본다.
[Artist] 태권브이에 담은 이중적 이미지의 변주
김택기 작가의 작업실은 용인과 장흥, 두 곳에 있다. 장흥 아틀리에에서는 구상과 소품 작업을 하고, 큰 작업은 주로 용인에서 한다. 지난해 9월 장흥 아틀리에에 입주한 후 그는 미친 듯이 작업에만 몰두했고, 지난해 말부터 토해내듯이 전시회를 열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게 5년 전입니다. 그간 안팎으로 어려움이 연이었습니다. 성격이 워낙 긍정적이라 견딜 수 있었지, 한동안은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시련을 겪었어요. 그런 과정을 겪고 났더니 작업이 더 절실해지더군요.”



유연하면서 아름다운 색을 지닌 철의 매력

김 작가는 지난 5년을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드는 시련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시련기가 있기까지 어찌 보면 작가로서 그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 큰 상도 적잖게 받으며 주변의 기대를 받았다.

당시에도 소재는 철이었다. 조각가 중에 돌을 소재로 하는 작가들은 “돌은 거짓말을 못한다”고 하지만, 그는 돌은 유연함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대신 철은 굉장히 유연하다. 특히 철은 열을 만나면 유연함의 극한을 보여주면서 색깔도 예쁘게 변한다. 그는 거기서 철의 정직성을 발견했다.

대학원에서도 주로 철 작업을 하던 그는 대학원을 졸업한 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그들이 생각하는 예술이 무엇인지 차분히 배우자는 생각에 학사로 편입했고, 실제 작업에 그게 큰 도움이 됐다.

프랑스와 한국 교육의 큰 차이점으로 그는 교수들의 권위의식을 들었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 교수들은 권위의식이 전혀 없었다. 교수들이라고 하더라도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고 작업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예술의 근본에 천착(穿鑿)한 고민을 많이 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는 철을 자르고 용접하고 담금질 하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프랑스에서는 ‘왜 철을 선택했나’, ‘철은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나’ 등과 같은 질문을 먼저 했다.

처음 프랑스 교수에게 한국에서 작업한 작품을 보여줬더니 “왜 왔느냐”고 반문하더란다. 스케일도 크고 완성도도 수준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네 작품은 시적이다”라는 말도 했다. 실제로 프랑스 교수들이 한국 학생들의 작품을 보고 많이 놀란다. 작품 수준이 기대 이상이어서다.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한국 학생들은 특징이 있다고. 대부분이 원을 보고 윤회를 이야기하고, 삶은 괴롭다고 한다고. 사물과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똑같다는 거죠. 그게 다 주입식 교육의 병폐가 아닌가 싶었어요.”
[Artist] 태권브이에 담은 이중적 이미지의 변주
에너지에 집중한 피라미드와 남근 시리즈

이야기를 마치며 교수는 그에게 “네 작품은 에너지가 넘쳐서 좋다”며 “단순히 만드는 데 그치지 말고 에너지를 잘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사실 대학 때부터 그는 에너지와 휴머니즘을 작품의 주제로 삼았다. 거기에 교수의 조언이 힘이 돼 한동안 남근을 소재로 작업했다.

피라미드와 남근을 형상화한 작품은 그렇게 탄생했다. 피라미드는 과학적으로 설명이 어려운 에너지를 품고 있고, 남근은 생명 에너지가 가장 응축된 상징물이다. 그는 피라미드와 남근을 다양한 모습으로 작품에 새겨 넣었다. 그중 프랑스인들이 굉장히 좋아한 작품이 포뮬러원(F1) 자동차 바퀴에 남근을 넣은 시리즈였다. 자동차 경주 F1에서 1등만 기억되듯이, 수많은 정자 중에서 가장 먼저 난자에 도착한 정자가 승자가 된다는 의미였다.

소재 자체로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시도도 했다. 국내에는 생소한 다마스커스강이라는 소재가 그것이다. 다마스커스강은 그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그 프랑스 교수를 통해 처음 알았다. 교수가 그에게 에너지를 잘 활용하라며 소개해준 사람이 다마스커스강의 장인이었다. 그는 방학 때마다 한국으로 치면 인간문화재에 해당하는 장인에게 많은 것을 전수받았다.

“다마스커스강은 탄소량이 적어 무른 연강과 탄소량이 많아 강한 강철, 그리고 니켈 등을 섞은 다음 충격을 가해 만드는 겁니다. 서로 다른 물성이 섞여 새로운 물성을 만드는 건데,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나오겠어요. 대부분의 작품은 작가가 재료를 선택하고 형태도 만들지만, 다마스커스강은 재료를 만들면서 형태도 동시에 만드니까 얼마나 재밌겠어요. 언젠가는 다마스커스강 작품을 할 거예요.”
‘색소폰 연주자’, 90×80×215cm,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우레탄 도금, 2012년
‘색소폰 연주자’, 90×80×215cm, 스테인리스 스틸· 오브제·우레탄 도금, 2012년
작품은 나와 세상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피라미드와 남근, 다마스커스강 작품이 에너지를 형상화한 것이라면, 태권브이 시리즈는 휴머니즘에 가까운 작품이다. 태권브이 시리즈는 귀국하고 시련을 겪은 후 용인에 터를 잡으며 시작했다.

당시는 누구보다 김 작가 자신이 치유되고 행복해지고 싶었다. 인간은 다양한 데서 행복을 느낀다. 화장을 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여자도 있고, 천사들의 언어인 음악에서 행복을 찾는 사람도 있다.

반면에 태권브이로 대변되는 로봇의 일반적인 이미지는 폭력적이고 차갑다. 로봇의 모습은 각박한 세상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런 이미지를 가진 로봇을 인간에게 행복과 사랑을 주는 매개로 만들고 싶었다. 마치 태권브이가 ‘정의의 주먹으로 세상을 구하듯이’ 말이다.
‘피아노 연주자’, 450×250×320cm, 스테인리스 스틸, 2012년
‘피아노 연주자’, 450×250×320cm, 스테인리스 스틸, 2012년
시각적으로만 보면 태권브이는 21세기 로봇인 트랜스포머에 비해 굉장히 촌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태권브이는 가장 한국적이면서 화려하지 않은 단아함이 있다. 미니멀한 느낌까지 준다. 또한 다른 로봇이 총과 칼을 쓰는 반면 태권브이는 태권도를 한다. 그만큼 인간적이다.

그는 처음 완성된 태권브이 시리즈를 보고 이유 없는 쓸쓸함을 느꼈다고 한다. 전시를 관람한 사람들은 색소폰을 불고 피아노를 치는, 너무나 인간적인 태권브이에 반했다고 하지만 그 쓸쓸함이 쉬 지워지지 않았다.

“멋있으면서도 쓸쓸한 느낌, 서로 다른 것들이 충돌하는 그 느낌이 더 좋았어요. 제 작품의 본질이 그게 아닌가 싶어요. 가상과 현실, 폭력과 비폭력, 과거와 현재같이 상반되는 개념들이 충돌하며 만들어지는 현상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거죠.”

작가 김택기는 지난 어려움을 그렇듯 작품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아픔을 치유하고 희망과 즐거움을 찾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품은 세상에 던지는 작가의 희망 메시지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