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

한국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최소 하루 1시간 이상 잠을 덜 자는 ‘수면 후진국’이다. 올림픽과 열대야, 태풍에 더더욱 밤잠을 설친 이들을 위해 한진규 서울수면센터 원장에게 수면에 대한 몇 가지 오해와 중요한 기능에 대해 들었다.


스마트폰 앱스토어에서 수면의 질을 측정하는 애플리케이션이 인기다. 현대인들이 현재 자신의 잠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잘 자는 법에 그만큼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니즈와는 다르게 국내에서 수면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시설이나 전문의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서울수면센터의 한진규 원장은 불모지인 한국에 본격적인 수면의학을 최초로 들여온 ‘수면 전문의’다.

그가 ‘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신경과 전문의 과정을 마치고 두통, 어지럼증, 치매, 뇌졸중 환자들을 보면서부터다. 많은 환자들이 수면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수면의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수면의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고자 그는 군복무를 마친 2002년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브랜드 클리닉에서 수면 전임의 과정을 마쳤다. 귀국 후 2008년 서울수면센터를 개원해 운영 중이다.
[Health Interview] 잠에 대한 오해와 진실
수면센터에는 주로 어떤 환자가 많이 찾아옵니까.

“수면센터 환자는 크게 세 가지로 보면 됩니다. 잠을 못자거나, 많이 자거나, 이상하게 자거나. 잠을 못자는 불면증 환자가 40% 정도로 가장 많습니다. 잠을 많이 자는 환자도 비슷한 수준인데요, 코골이 환자가 대부분 여기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나머지는 잠꼬대, 하지불안증후군 같은 수면 중 이상행동 환자입니다. 사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수면센터에는 불면증 환자보다 심장병 환자가 많아져요. 우리나라는 아직 수면장애에 대한 인식이 ‘예민해서 그렇다’는 식의 정신과적으로 치우쳐진 면이 있습니다.”


수면장애와 심장병이 관계가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일본에는 수면과가 심장과 안에 속해 있습니다. 그만큼 밀접하다는 거죠. 뇌처럼 심장도 낮에는 쉬질 못해요. 깊은 잠인 3·4단계 수면에서만 부교감신경이 올라가면서 심전도도 느려지고 혈압도 낮아지면서 심장이 휴식을 취하죠.

만약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심장은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새벽 3~5시 사이에 떨어지는 호흡기능 때문에 더욱 과부하에 걸리게 됩니다. 이것이 반복되면 부정맥이 오고 아침에 혈압이 오르게 됩니다.”

‘숙면’은 어떻게 자는 겁니까.

“숙면은 수면의 질, 수면의 양, 수면의 리듬 세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잠은 크게 꿈 수면과 꿈을 안 꾸는 수면 두 가지로 나뉘고, 꿈을 안 꾸는 수면은 다시 1·2·3·4단계 수면으로 나눕니다. 보통 1-2-3-4-꿈을 3~4회 반복하고 잠에서 깨죠.

이 중 1·2단계 수면은 얕은 잠, 3·4단계는 깊은 잠입니다. 깊은 잠을 자야 다음 날 개운해지고 수면의 질이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3·4단계 잠을 달라고 뇌가 졸음 뇌파를 계속 내보내죠.”


보통 7시간은 자야 적당하다고 하던데요.

“나이에 따라 다르지만 성인 기준 7시간 반이 보통입니다. 5시간 이하로 자거나 10시간 이상의 수면이 사망률이나 암 발생률과 연관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결국 3·4단계 수면이 관건입니다.

적게 자는 사람은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3·4단계 수면이 안 나와서 문제고, 지나치게 많이 자는 사람은 잠이 얕다는 증거라 1·2단계 수면만으로 양으로 승부하는 것이죠. 밥을 굶어도 문제고, 영양가 없는 밥을 많이 먹어도 문제인 셈이에요.”

성공한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잠을 거의 안자는 사람도 많던데요.

“유전적으로 타고난 숏슬리퍼(short-sleeper)가 있습니다. 에디슨이 대표적인데요. 이런 사람은 짧고 깊게 잡니다. 3시간 안에 1단계부터 꿈 수면까지 모든 게 들어 있어요. 숏슬리퍼가 욕심도 있다면 24시간 중 20시간 공부하고 4시간만 자서 서울대 가는 거죠.

반대로 롱슬리퍼(long-sleeper)도 있어요. 10시간은 자야 정신을 차려요. 아인슈타인이 대표적인 롱슬리퍼입니다. 10시간은 자야 천재기를 발휘해요. 숏슬리퍼가 자신의 수면 특성에 맞게 4시간 자고 서울대에 가면 사람들은 4시간만 잤기 때문에 서울대 간 줄 착각합니다.

하지만 만약 롱슬리퍼가 그렇게 했다간 서울대는커녕 대학을 아예 못가요. 많이 자거나 적게 자서 좋은 게 아니라 본인이 다음 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신의 수면의 양을 취침시간과 기상시간을 체크하고 조절해가면서 찾는 게 중요합니다.”

자는 시간대는 언제가 적당합니까.

“이것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유전적으로 아침형 인간이 있고, 나이가 들수록 기상시간이 빨라지기도 합니다. 보통은 오후 11시에서 아침 8시 사이에 자는 것이 정상입니다. 밤에 자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지켜야 합니다. 체온이 떨어지고, 어두워야 하죠.

인류는 100만 년 전부터 에디슨 전까지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해가 지면 잠을 잤어요. 그 덕분에 우리 몸은 100룩스의 빛이 오면 밤인 줄 알고 멜라토닌(밤에 집중적으로 분비되는 호르몬. 생체 리듬을 조절해 우리 몸이 밤에 잠들게 해 준다)을 분비하고 2000룩스 빛이 오면 아침인 줄 알고 깹니다. 그런데 지금은 밤이 환하죠. 그래서 수면장애가 생겨요.”

체온도 말씀하셨는데 잠을 잘 자기 위해서 밤에 운동을 하기도 하죠.

“밤에 격한 운동은 좋지 않습니다. 체온이 떨어져야 멜라토닌이 나오고 체온이 오르면 숙면에 방해가 됩니다. 운동으로 상승된 체온은 열감이 5시간 지속됩니다. 11시에 잔다면 7시 전에 운동하는 것이 좋겠죠.”

운동과 샤워 후 맥주 한 잔이면 잠이 잘 오는데요.

“술은 절대 안 됩니다. 술 마시고 잠이 오는 건 3·4단계 수면부터 튀어나오는 거예요. 수면 사이클이 엉망이 되죠. 1-2-3-4-꿈을 반복해야 되는데 3-4-1-2-1-2-1-2 형식의 잠이 되는 거죠. 근육 저하에 산소도 떨어지고 심장까지 빨리 뛰니 잠에는 최악입니다.”

현대인들이 일에 쫓기다 보니 주말에 잠을 몰아서 자기 마련입니다.

“신체 기본 욕구인 먹고, 자고, 배설하는 것을 같은 메커니즘으로 봐야 합니다. 밥을 몰아서 먹으면 탈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잠도 몰아 자면 문제가 생기죠. 억지로 자려고 발버둥 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 신호가 안 오는데 나중을 대비해 억지로 변을 보려고 힘쓴다고 생각해보세요. 먹고, 배설하는 것에 비해 잠이 조절하기 쉽고 모자라거나 많을 때 별로 티가 나지 않아 신경을 안 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지속되다 보면 나중에 사채처럼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잠은 조절하기 쉽고 부족하거나 많아도 티가 나지 않아 신경을 안 쓰기 마련이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사채처럼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잠은 조절하기 쉽고 부족하거나 많아도 티가 나지 않아 신경을 안 쓰기 마련이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사채처럼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어요.
잠에 문제가 생기면 일상생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학계 연구에 따르면 1시간을 적게 자면 뇌 기능이 30%가 떨어집니다. 수면이 부족하면 뇌는 그걸 먼저 찾아요. 배고프고 화장실이 급하면 일에 집중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잘 때 자세는 대(大)자로 자는 것이 좋은 건가요.

“옆으로 자는 사람은 50% 정도 수면장애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엎드려 자는 사람은 100% 수면장애고요. 다만 수면자세는 12세 이전에 결정이 난다고 봐야 합니다. 자세에 따라 턱, 혀의 위치, 치아 배열, 목, 허리가 맞춰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미국에서는 아이가 어릴 때 수면센터에 데려옵니다.”

꿈은 잠을 제대로 못 잤을 때 꾸는 것 아닙니까.

“꿈은 깊은 잠 뒤에 오는 것이기 때문에 꾸는 게 정상입니다. 꿈을 꿔야 기억력, 감성 조절, 성 기능에 도움이 됩니다. 다만 우울증이 있을 경우 뇌가 우선적으로 우울한 감정을 씻어주기 위해 모든 수면 규칙을 어기고 꿈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죠.”

코골이는 수면의 질과 관련이 없을까요.

“코골이는 기관지 어딘가가 막혔다는 소리입니다. 호흡이 제대로 안되면 잠도 못자죠. 요새는 양압기로 쉽게 치료가 가능합니다. 피곤하면 코를 고는 경우도 있는데 근육 기능이 저하되기 때문입니다. 술을 마셨을 때나 수면제를 먹었을 때도 마찬가지고요.”

숙면에는 어떤 음식이 좋습니까.

“대표적인 것이 우유고요. 제가 한국식품연구원과 최근에 음식을 조사했는데, 과일 중에는 바나나, 그리고 의외로 해조류가 잠을 돕는 성분을 많이 함유하고 있습니다. 상추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기름진 음식과 술은 위에 부담이 돼서 좋지 않아요. 맥주와 치킨은 밤을 새기 위한 음식이지 잠을 자기 위한 음식이 아닙니다.”

그 외 일상생활에서 숙면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아침 일찍 같은 시간에 햇빛을 보는 것입니다. 새벽에 출근하는 직장인보다 50대 주부한테 불면증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죠. 우리 몸은 햇빛을 보고 15시간 뒤에 잠자는 호르몬을 분비합니다.

따라서 몇 시에 잠에 들었건 아침에 똑같이 햇빛을 보면 수면 시간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됩니다. 또 자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늘의 잠은 이미 3일 전에 결정된 결과물입니다. 그걸 신경 써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잠은 더 뒤로 밀려요. 3일 전 생활부터 반성하고 오늘부터 실천하면 숙면은 10%씩 돌아옵니다.”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