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이용하는 로스앤젤레스(LA) 윌셔 블루버드(Wilshire Blvd)는 부자 동네로 유명한 비벌리힐스(Beverly Hills)를 관통하며 관광객들과 쇼핑객들로 북적대는 로데오(Rodeo) 거리를 지난다. 로데오는 불경기니, 경기 침체니 하는 것에 아랑곳없이 각국에서 온 여행객과 동네 사람들이 어우러져 하루 종일 교통 체증이 심한 곳이다.

자동차 가격대에 따라 먼저 갈 권리가 있는 듯 권위의식으로 꽉 차 있는 운전자들이 가고 싶은 곳을 자기 마음대로 다니는 바람에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풍요로움을 느끼도록 조성된 로데오의 분위기는 잠시나마 비벌리힐스의 일원이 된 듯한 착각을 느끼게 해 일상을 잊게 해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금빛, 은빛이 반짝이는 명품으로 가득 찬 로데오 거리의 외면을 보고 있노라면 유럽의 경기 침체와 불투명해지는 중국의 경제 전망 등으로 즐비한 명품 숍 뒤편에서 고심하고 있을 기업 경영진들의 고충이 느껴지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다.

얼마 전 영국의 버버리(Burberry)가 실적 경고를 내놓으며 하루 만에 주가가 20%나 하락했다. 이 같은 주가 하락은 지난 3년간 금융 위기에도 아랑곳없이 호황을 누려온 명품 브랜드들의 전망에 대한 확실한 경고로 해석된다. 버버리는 금년 중반까지 매장 평균 6%의 매출 증가율을 보였으나 지난 10주 동안 매출이 전혀 호전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며 결국 수익 경고를 받은 것이다.

로데오와 윌셔 블루버드 교차로에 매장이 있는 명품 보석업체 티파니(Tiffany & Co.)는 3분기를 연속으로 분기순익이 예상치를 미달해 2012년 회계연도 전망을 금년 들어 두 번째 하향 조정했다.

티파니는 소폭의 매출 증가를 기록하기는 했지만 작년에 분기마다 20% 이상의 증가율을 보인 것에 비하면 1분기 8%, 2분기 2% 등 매출 상승률이 급격히 둔화되고 있는 양상이다. 버버리의 경우 지역별 수치를 발표하지는 않았으나 중국이 매출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언급했다.

미국 핸드백 시장 점유율 35%를 차지하고 있는 가방업체 코치(Coach)도 양호한 성장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성장률 둔화는 피하지 못했으며 2013년 회계연도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으로 주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명품업체들이 일괄적으로 경기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결론짓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구두업체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의 경우는 상반기에 22.5%의 순익 증가율을 기록했고 하반기에도 성장세가 계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루이비통(Louis Vuitton)의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와 프라다(Prada) 역시 양호한 수익을 발표하며 중국 경제 둔화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있다.

이러한 매출 강세에 힘입어 명품업체의 신주 공모를 통한 자금 시장 진입도 활발해지고 있다. 작년에 신주 상장된 프라다와 페라가모 주식은 상장 후 각각 50~60% 정도 주가가 상승해 있는 상태이며 금년 4월 상장된 가방업체 투미(Tumi)는 거래 첫날 공모가보다 47%나 올라 마감했다.

주가수익비율(PER) 측면에선 고평가돼 있는 것으로 보이는 명품업체들의 주가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투자자들은 긴 역사를 자랑하는 명품업체들의 앞날을 어둡게 보지는 않고 있는 것 같다.
[Up-Front in US] 비버리힐스 로데오에서 느끼는 명품업체의 ‘명암’
주관적 판단이지만 버버리, 코치나 티파니처럼 고가의 명품과 함께 비교적 저렴하고 접근하기 쉬운 선물용 상품을 같이 판매하는 명품업체와 페라가모나 프라다처럼 쉽게 구입하기 어려운 고가의 물건이 주종을 이루는 업체 사이에 명암이 갈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국 불황에 따른 중산층의 붕괴가 단편적으로 특정 명품업체의 매출로도 표출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치기가 힘들다. 최상급의 명품은 매출에 영향이 없는데 대중성이 있는 명품은 매출 둔화를 경고하고 있는 것은 주시할 만한 점이라고 보인다. 이런 추세가 계속 된다면 결국 부유층의 소비 둔화도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김세주 _ 김앤정 웰스매니지먼트 대표(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