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스페인, 영국 등 서구 열강에 의한 정복 열풍은 아시아, 아메리카 등을 농산물 생산지로 전락시켰다. 이 같은 현상은 21세기에도 이어지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농산물의 글로벌 경쟁 실태를 조명해본다.


매년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가 되면 연인들은 초콜릿을 교환한다. 사실 교환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선물하는 것이 관례화됐다. 그런데 이 풍습은 뚱딴지같은 것이나 다름없다. 원래 밸런타인데이는 영국에서 유래했다.

중세 영국 여인 마거리 부르스가 수년간 혼자 사랑하던 남자친구에게 구혼의 편지를 보냈고,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됐다. 이로써 2월 14일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는 날이 됐다. 우리나라의 밸런타인데이는 일본의 영향을 받았다.

제과회사였던 모토고미 제과점에서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으로 사랑을 전하세요’라는 문구로 초콜릿을 판매했는데 이것이 지금의 밸런타인데이의 시초다. 그러다 보니 밸런타인데이에는 반드시 초콜릿이 등장하게 됐고 제과회사에는 일종의 대목이 됐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고 해서 사탕을 교환하고 급기야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라고 해서 아예 특정 브랜드의 과자를 선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지나친 상업성에 그다지 유쾌한 느낌은 아닌 상황에까지 이른 것 같다.


초콜릿과 흑인무역의 상관관계

어쨌든 사랑의 매개체가 된 초콜릿은 원래 1500년대에 남미대륙 정복의 열풍 속에서 아스텍 제국을 멸망시킨 에르난 코르테스의 스페인 원정대에 의해 유럽으로 수입됐다. 당시 원정대는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 마시는 물을 유심히 보게 됐다.

쓴맛의 물이라는 뜻을 지닌 ‘쇼콜라토르’는 카카오콩으로 만든 액체였다. 이들 원정대는 그 제조법을 얻어서 스페인 본국에 알렸고 당시 스페인 국왕이던 카를로스 1세는 초콜릿의 맛에 매료돼 설탕을 넣어 즐겼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수도원, 왕실, 선원, 여행자 등 상류층에서 들불처럼 초콜릿 열풍이 불게 됐다.

당시 스페인은 유럽에서 패션 등의 리더였다. 지금의 한류 열풍처럼 스페인에서 유행하는 것을 유럽대륙이 따라 하는 경향이 강했다. 당연히 전 유럽에 초콜릿 바람이 불었다.

문제는 그 초콜릿 열풍으로 인해서 베네수엘라, 코트디부아르, 아이티 등 유럽 열강의 식민지에서는 카카오 플랜테이션이 확장되면서 아프리카 흑인노예의 무역이 성행하게 됐다는 점이다.

동시에 밀크초콜릿의 개발과 맛을 달게 하기 위해서 설탕을 넣기 시작하면서 설탕 및 우유의 소비도 급증해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식민지를 연결하는 삼각무역이 극성을 이루었다. 그러고 보니 길리안, 고디바 등 유명 초콜릿회사가 모두 유럽에 집중돼 있는 것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인류가 먹고 마시는 필수적인 식품 원료는 유럽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서인도제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조달하고자 했고 그러는 와중에 식민지 개척과 쟁탈전, 그리고 플랜테이션을 통한 경영 및 투자가 자본주의를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인류가 먹고 마시는 필수적인 식품 원료는 유럽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서인도제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조달하고자 했고 그러는 와중에 식민지 개척과 쟁탈전, 그리고 플랜테이션을 통한 경영 및 투자가 자본주의를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자본주의의 밑거름이 된 플랜테이션 경영

중상주의의 역사는 비단 초콜릿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류가 먹고 마시는 필수적인 식품원료는 모두 유럽 열강이 아시아, 아프리카, 서인도제도, 아메리카 대륙에서 조달하고자 했고 그러는 와중에 식민지 개척과 쟁탈전, 그리고 플랜테이션을 통한 경영 및 투자가 자본주의를 키우는 밑거름이 됐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는 부정적인 면도 꽤 많았다. 인도,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아시아에서 후추 등의 향료 및 중국산 차, 인도산 캘리코 등이 유럽으로 수입되면서, 흔히 말하는 동인도회사들의 돈벌이가 꽤 좋았다.

그러다 보니 영국에서는 서인도 제도와 남아메리카와의 무역이 하나의 화두로 등장했고 이때 설립된 회사가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다. 이 회사는 영국 국채를 매입한다는 이유로 유상증자를 하면서 매번 증자 시마다 주식 가격을 올리면서 주가를 조작했다.

당시 런던에서 유행하던 카페하우스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무역회사의 주식을 사는 데 열을 올리면서 많은 돈을 투자했다. 결과는 너무도 당연히 버블 붕괴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돈을 날렸다.

그 결과 귀족은 평민으로 평민은 노동자로 전락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그 남해회사를 설립한 대주주가 ‘로빈슨 크루소’를 쓴 다니엘 디포라는 점이다. 당시의 베스트셀러는 ‘로빈슨 크루소’와 조나단 스위프트가 쓴 ‘걸리버 여행기’였는데 두 소설 모두 신대륙에 대한 관심과 상상을 반영한 모험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5년간 평가된 자산수익률에서 귀금속, 원유, 옥수수 등에 대한 수익률이 좋았는데, 특히 옥수수 선물 가격은 미국 중부지역의 가뭄에 힘입어 144% 상승하며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금과 은의 투자수익률도 100%가 넘었다.

현재 미국 중부의 극심한 고온으로 인한 가뭄은 1950년대 이래 최악의 상태라고 한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풍년이 예상돼 선물 가격이 하락하던 추세였으나 예상과 달리 정반대로 대두와 옥수수의 생산량은 급감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에 대응해 브라질은 오히려 대두 생산을 900만 톤 이상 늘릴 계획이라는 점이다. 이런 행동의 기저에는 지난 수년간 영국계 펀드가 투자해 온 브라질의 농지가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영국계 투자자들에 의해서 좌지우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다시 농작물을 가지고 수백 년 전 보이던 선진 자본국들의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자.



농산물을 사이에 둔 보이지 않는 전쟁

세계 최대의 팜오일 생산량을 자랑하는 윌마인터내셔널(Wilmar International) 사는 지금 아프리카에 팜 농장 투자를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하고 있다. 팜오일은 대체에너지 자원으로서뿐만 아니라 쿠킹오일, 제과 및 제빵용 기름으로, 세계적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반면 세계 팜오일 양대 생산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재배농장의 확장에 물리적인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지속되는 농산물 가격 상승은 윌마 같은 회사에는 새로운 지역에서의 플랜테이션 농장의 개척과 운영이 필수와 기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팜오일뿐만 아니라 대두유 가격 역시 향후 지속적 상승이 예상되고 있어 대두 생산지역에 대한 식품원료업계의 끊임없는 관심도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세계 2위의 쌀 생산 국가는 인도다. 열대몬순기후의 영향으로 인도대륙에서의 쌀 생산량은 양호한 성적을 보여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인도와 함께 주요 쌀 생산국에 포함되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등은 향후 태평양의 온도가 높아짐으로 인해 발생하는 엘니뇨현상 탓에 쌀 수확량이 급감할 수도 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전문가들은 14년 후에는 쌀 생산량이 최저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기도 한다. 거기다가 미국의 농부는 쌀을 생산하는 대신 수익성이 양호한 대두나 옥수수 생산으로 돌아서고 있는 것도 글로벌 쌀 공급량을 줄이는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 와중에 특이한 점이 발견되고 있다. 미국의 농경지가 1970년 이후 최초로 최근 2년 연 20% 이상의 가격상승률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주택 가격의 버블은 붕괴됐고 아직도 회복의 기미를 보이고 있지 않은 시점에 농경지의 가격 상승은 특이하고 눈여겨볼 만하다.

이러한 트렌드는 비단 주요 곡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기호식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올해 초 일본의 미쓰비시 상사는 아르헨티나의 곡물생산 기업을 인수한 것에 이어 바로 브라질의 커피 농장을 소유한 이파네마커피(Ipanema Coffee) 사의 지분을 인수했다.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고급 커피원두인 아라비카 커피원두의 소비가 연 10% 이상 증가하고 있는 데 기인한 것이다. 거기에 인도와 중국에서 시작되고 있는 커피 소비의 증가도 중요한 시사점을 주고 있다.

현재는 인도와 중국에서 대도시를 중심으로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의 원두커피 전문점이 문을 열고 있으나 향후에는 내륙에 위치한 중소도시에까지 커피전문점이 침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전통적인 차의 소비에서 커피 소비로 패턴이 변하고 있는 점은 미래 글로벌 커피 수요의 급증을 예견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농산물을 가지고 글로벌 기업과 투자자들이 선점하고자 하는 열풍이 수백 년 전 유럽 열강을 중심으로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던 것처럼 반복되지는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 시점에서 곡물의 생산이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한국의 입장에서 미래의 농산물 부족에 대한 준비는 어떻게 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일러스트 추덕영
이동훈 동아제약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