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준 오디오갤러리 대표

골드문트와 FM어쿠스틱스를 수입, 판매하는 오디오갤러리(Audio Gallery)의 나상준 대표는 13세에 하이엔드 오디오에 입문한 국내 대표적인 오디오 마니아다.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서 행복을 찾았다”는 그에게 오디오의 매력과 오디오 비즈니스를 하며 겪은 애환을 들었다.


나상준 오디오갤러리 대표가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한 것은 13세이던 중학교 1학년 때다. 기타리스트였던 외삼촌의 영향으로 음악과 친숙했던 그는 ‘오디오와 레코드’라는 잡지를 통해 하이엔드 오디오를 처음 접했다. 잡지를 통해 하이엔드 오디오의 매력을 접한 그는 어머니를 졸라 하이엔드 오디오를 처음 갖게 됐다.

“그전까지 일제 히타치 컴포넌트 오디오를 썼는데, 바늘만 좋은 것으로 바꿔도 세상이 달라질 듯한 소리를 냈어요. 어머니가 사주신 하이엔드 오디오가 당시 350만 원쯤 했는데, 그걸로 음악을 들으면 세상이 열 번 정도는 바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더 안 좋은 거예요. 당시 즐겨 듣던 음악이 퀸, 들국화였는데 클래식에 맞춘 오디오가 맞을 리가 없었죠. 그때부터 오디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게 됐죠.”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오디오는 세운상가에 가야 만날 수 있었다. 나 대표도 세운상가를 제집 드나들 듯이 오갔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수많은 오디오가 그를 거쳐 갔다. 대학교에 진학해서는 더 많은 오디오를 경험했고, 그 실력을 바탕으로 26세 때부터는 오디오 잡지에 평론을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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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평론가에서 수입상으로 승승장구

오디오 평론가라는 직함을 가진 이후에는 단순한 취미에 직업적인 소명까지 더해졌다. 당연히 외국에 나갈 때마다 들르는 곳이 오디오 숍이었다. 특히 일본과 미국 등의 오디오 매장을 방문할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일본이나 미국의 오디오 매장은 한국의 용산전자상가와는 시설과 규모에서 달라도 너무 달랐다.

용산전자상가에 있는 업체 대부분이 수십 개의 스피커와 앰프를 매장에 전시해 놓고 제품을 판매했다. 오디오가 세탁기나 냉장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시스템으로 판매되는 것이다. 반면 일본과 미국은 매장에 제대로 된 리스닝룸을 여러 개 설치했다.

각 방에는 그곳에 맞는 오디오가 한 세트씩 설치돼 집에서 듣는 듯한 환경을 만들어 놓고 영업을 했다. 나 대표는 한국에도 리스닝룸을 갖춘 매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탄생한 회사가 오디오갤러리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 때의 일이다.

“여러 사업을 두고 고민을 했어요. 당시는 미국에서 스타벅스가 유행할 때라 커피전문점을 들여올까도 생각했고, 햄버거점도 고려했어요. 그 외 몇 가지 사업 아이템을 놓고 고민하다 제가 가장 잘 알고 좋아하는 오디오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오디오갤러리에는 당연히 음향시설을 제대로 갖춘 미국식 리스닝룸이 들어섰다. 영업 방식은 일본식 ‘중고 오디오 현금 매입’ 등을 도입했다. 이를 계기로 많은 오디오 마니아들과 교류를 쌓았다.

중고 오디오 매장은 크게 성공했다. 사업자들이 영세해 현금을 주고 오디오를 사는 곳은 나 대표의 회사가 유일했다. 시기도 잘 타서, IMF 직후 돈이 급해 오디오를 내놓는 마니아들이 많았다. 평소에는 구경하기 어려운 고가의 오디오를 어렵지 않게 확보할 수 있었다.

중고 오디오 매장의 성공으로 자신을 얻은 그는 본격적으로 오디오 사업에 뛰어들었다.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66㎡(20평)의 리스닝룸 5개를 갖추고 직접 외국 제조사들과 접촉해 PMC라는 영국제 스피커를 수입했다.

PMC는 외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던 제품이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만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그는 PMC 정도면 한국 시장에서도 충분히 먹히겠다고 확신했다. 누구보다 자기 귀에 그만한 제품이 없었다. 지금도 팝이나 라이브 재즈를 듣기에 PMC 이상 가는 오디오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PMC는 19.8~26.4㎡(6~8평) 정도 방에서 들으면 기막힌 소리를 냅니다. 당연히 잘 팔릴 수밖에요. 한 해에만 200세트를 팔았어요. 매출도 열 배 이상 뛰고, 이익도 적잖이 났습니다. 그걸 계기로 다른 브랜드들을 들여오게 됐죠.”

PMC 성공에 고무돼 들여온 것이 오디오리서치다. 오디오리서치는 진공관 오디오였음에도 사운드의 질이 너무 좋았다. 당시 국내에 다른 수입사가 있었지만 제대로 영업을 하지 못해 보급이 많이 되지 않았다. 그걸 인수해 팔기 시작했는데, 기대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오디오 자체가 고가로 매출액도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오디오리서치에 이어 그는 이글스톤웍스, 베리티오디오 등 많은 오디오 브랜드를 들여왔다.
중학교 때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한 나상준 대표. 그동안 수많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경험한 그는 전 세계 최초로 골드문트와 FM어쿠스틱스를 동시에 판매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중학교 때 하이엔드 오디오의 세계에 입문한 나상준 대표. 그동안 수많은 하이엔드 오디오를 경험한 그는 전 세계 최초로 골드문트와 FM어쿠스틱스를 동시에 판매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세계 최연소 골드문트 수입상이 된 사연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즈음, 그는 홍콩을 방문하게 됐다. 그곳에서 골드문트를 수입하는 포스와이즈란 회사를 방문하게 됐다. 매장 직원에게 자신을 한국에서 오디오리서치를 수입하는 회사의 사장이라고 소개하자 조금은 비웃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기분이 상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서 ‘골드문트가 뭐가 그리 대단하길래 나를 비웃었을까’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골드문트와 오디오리서치의 앰프를 비교했다. 그런데 크기도 작은 골드문트 앰프가 내는 소리가 투명하면서 리듬감도 있었다.

당시 한국에는 골드문트를 전시하는 매장이 없었고, 대부분 카탈로그를 보여주며 장사를 했다. 골드문트가 너무 고가였던 탓이다. 외국 상황을 잘 아는 몇몇 마니아들만 사용하던 시절이었다. 골드문트 앰프를 들은 후 그는 음질에 한 번 놀랐고, 비싼 가격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뒤 그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골드문트에 대한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라스베이거스의 벨라지오 호텔에서 골드문트의 미쉘레바송 사장을 만나게 됐다. 당시에도 미쉘레바송 사장은 오디오업계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 벨라지오 호텔에서 만난 미쉘레바송 사장은 10분간 사업 계획을 들은 후 한국에 돌아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남기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한 달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죠. 그렇게 절망하고 있을 때 미쉘레바송 사장으로부터 편지가 왔어요. ‘한국의 골드문트 공식 수입상이 된 것을 축하합니다’라는 내용이었죠. 당시 제 나이 34세로, 세계 최연소 골드문트 수입상의 사장이 된 거죠. 그 뒤 사업 계획대로 골드문트만을 판매하는 매장 세 곳을 오픈했습니다.”

골드문트 매장을 열었을 초기 많은 사람들이 실패할 거라고 했다. 워낙 고가인 데다 한 브랜드만 판매하는 매장도 생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6개월 동안 매출 실적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골드문트의 뛰어난 성능이 알려지면서 6개월 이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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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문트에 이어 라이벌인 FM어쿠스틱스까지 수입

골드문트로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둔 그는 2005년 일본 도쿄 오디오쇼를 찾았다. 그곳에서 그는 골드문트와 쌍벽을 이루는 FM어쿠스틱스의 풀 시스템을 처음으로 접했다. 충격이었다. FM어쿠스틱스는 투명하고 사실감 있는 골드문트의 매력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스피드와 다이내믹, 투명감, 넓은 대역폭은 골드문트가 위에 있었지만 FM어쿠스틱스는 울림이 좋았다. 실제 연주회의 소리보다 더욱 더 진한 색채감을 가지고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FM어쿠스틱스 생각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2005년 일본에서 FM어쿠스틱스의 충격을 받은 지 4년이 넘었던 때인 2009년이었다. 당시 FM어쿠스틱스를 수입하던 한국의 수입상과 본사의 계약이 종료됐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됐다. 하지만 FM어쿠스틱스는 골드문트와 경쟁관계에 있어 골드문트 수입상에게는 제품을 공급한 전례가 없었다. 더구나 FM어쿠스틱스사의 마누엘 후버 사장은 성격이 괴팍하기로 유명해 접근이 꺼려졌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FM어쿠스틱스가 남긴 여운이 너무 짙었다.

나 대표는 용기를 내어 후버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후버 사장은 제품 공급 전에 1차로 전화 면접을 보고, 2차로 직접 테스트를 했다. 1차 전화 면접에서 후버 사장이 던진 첫 질문은 “왜 골드문트를 수입하는 회사가 FM어쿠스틱스를 수입하려고 하느냐”였다. 이에 그는 “다르잖아요”라고 답했다. 그 후 후버 사장의 여러 질문에 생각나는 대로 답했다. 그런데 후버 사장이 갑자기 제품을 공급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그의 물음에 너무 쉽게 답을 하는데, FM어쿠스틱스 제품의 특징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더라고 했다더군요. FM어쿠스틱스 사장과 전화 인터뷰만으로 제품을 수입하게 된 첫 번째 수입상이 된 거죠. 동시에 FM어쿠스틱스를 수입하게 되면서 세계 최초로 골드문트와 FM어쿠스틱스를 동시에 수입하는 회사가 됐죠.”

골드문트의 풀에필로그 프로테우스 멀티채널 시스템과 FM어쿠스틱스의 XS-1 시스템은 오디오계의 라이벌이자 세계 최고의 시스템이다. 10억이 넘는 고가의 시스템으로 최고의 튜닝 실력이 없으면 절대로 좋은 음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시스템들이다. 그는 두 개의 시스템을 운영하는 전 세계 유일한 수입상이 된 것이다.

“제겐 오랜 라이벌이 있습니다. 일본 최고 하이엔드 오디오 매장인 다이내믹오디오의 점장 가와마타입니다. 10년 넘게 그에게 밀렸지만 올 초 일본을 방문해 그의 소리를 들어보고는 ‘이제는 내가 이겼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하이엔드 오디오에서 그가 이룬 성취는 골드문트사의 평가에서도 확인된다. 골드문트사는 튜닝 기술에 따라 별점을 주는데 나 대표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별 4개를 받았다. 나 대표 다음으로 높은 등급을 받은 나라는 일본과 프랑스인데 별 2개에 불과하다. 나 대표는 그간의 노하우를 기반으로 한국의 많은 오디오 마니아들에게 새로운 소리의 세계를 들려주고 싶다.

“제가 웬만한 취미는 다 해봤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 절 만족시켜 주는 건 하이엔드 오디오밖에 없는 듯합니다. 그걸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청담동에 문을 연 쇼룸은 그 첫 번째 장인 셈이죠.”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