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여·가업승계의 특별한 노하우
한국 기업의 태동기는 고도성장기라고 일컬어지는 1970~80년대가 아닐까 싶다.어찌 보면 지금 누리는 풍요는 그 당시 ‘성장’,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기업인들의 경쟁과 노력에 근원한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업인들이 대부분 간과하거나 나중 일로 미뤄놓던 부분이 있었는데, 바로 성장·발전의 주체인 기업들의 ‘승계’ 문제다.
대기업들은 사실 전문 세제팀을 꾸리는 등 일찍부터 2세로의 승계에 눈을 돌려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절세와 조세 회피의 경계를 오가며 잡음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가업승계(家業承繼)가 대기업만의 고민은 아니다.
모 기관의 실태 조사에 의하면, 최근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 있어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것이 ‘가업승계’이고, ‘가업승계 시 발생하는 조세 부담’ 문제를 기업경영의 심각한 애로사항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가업승계에 따르는 상속세로 인해 수십 년을 해온 가업을 접는 경우까지 생겨나니, 이쯤 되면 승계를 통해 부(富)를 물려주는 것이 아닌 부(負)를 물려준다는 평도 제법 들려올 법하다.
정부는 5년 전부터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가업승계 지원 제도를 마련하게 됐는데, 대표적인 지원 제도로는 ‘가업상속공제’와 ‘가업재산에 대한 증여세 과세특례’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가업’이란 세법상의 중소기업으로서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계속 경영한 기업을 의미하는데, 법인인 경우에는 5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는 경우에 한정한다. 가업상속공제의 실제 사례
먼저 가업승계 세제 지원의 대표 격이라는 가업상속공제에 대해 알아보자. 가업상속공제 제도는 가업재산가액의 70%를 총상속재산에서 공제받도록 하는 규정으로, 그 공제 폭이 상당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 법안부터 그 적용 요건을 엄격히 해왔는데, 세부적으로는 많은 변화가 있어 왔다.
그동안의 적용 요건과 공제 폭의 변화를 요약해 보면 2008년 가업재산의 20%에 한해 공제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제도가 지속적인 추가 개정을 통해 2012년 현재 70%까지 공제 폭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원래 2011년 하반기 발표된 개정 초안의 경우 2012년 이후 전액(100%) 공제해 주는 것이 원안이었으나, 입법 과정을 거쳐 70%로 하향 조정됐고, 여기에 총재산 중 사업용 재산 비율에 한한다는 추가 조건이 덧붙었다.
여기서 사업용 재산이란 가업에 직접 활용하는 유·무형 재산을 의미한다. 다만, 사업에 활용하지 않는 부동산과 임대사업에 공하는 부동산, 그리고 대여금(금전소비대차계약에 의해 타인에게 대여한 금액)과 상속 전 5년간 연평균 현금보유액의 150%를 초과하는 현금은 사업과 무관하다고 보아 사업용 재산에 포함하지 않는다.
사례를 들어보자. A사(제조업·임대업)의 대표이사 김 씨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의 총가치가 50억 원일 경우, 임대에 공하는 부동산 평가액에 따라 공제금액 크기가 바뀌게 된다.
만약 앞의 표 (2) 조건과 같이 임대용 부동산 비율이 높을 경우엔 오히려 2011년 개정 전 공제 비율인 40%보다 낮은 가업상속공제율을 적용받게 되므로, 자산 상황별로 이해를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70%라는 가업상속공제 비율만 보고,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덧붙여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을 섞자면 지금까지와 같이 향후에도 공제 적용을 위한 세부 요건 변화는 점쳐질 수 있을지언정, 공제 비율의 변화는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70%라는 공제 비율은 이미 상당히 의미 있는 수준에 달한 것으로, 상향 개정을 위한 ‘사회적 명분’ 구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공제 비율에 사업용 자산 비율을 추가로 감안한 것은 매우 합리적이기도 하거니와, 상당한 입법적 타당성 아래 진행된 것으로 한층 안정돼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증여세 과세특례의 실제 사례
가업상속공제 제도와 함께 세제 지원의 큰 축을 이루는 또 하나의 제도로는 ‘가업재산의 증여세 과세특례(이하 과세특례)’ 제도를 들 수 있다.
이는 10년 이상 사업(법인에 한함)을 영위한 60세 이상의 부모가 18세 이상인 자녀에게 30억 원을 한도로 가업재산을 증여할 수 있는 제도다. 특수한 점은 과세가액에서 5억 원을 차감한 가액에 10% 세율을 적용해 증여세를 과세한다는 것이다.
사례를 들어보자. 중소제조업을 영위하고 있는 이 씨가 가업주식 전부(주당가치 1만 원짜리 30만 주)를 일반적인 증여 형태를 이용해 자녀에게 증여한다면 총부담하는 세액 규모가 9억3000만 원에 달한다. 하지만 과세특례를 활용하면 30억 원에서 5억 원을 차감한 가액의 10%인 2억5000만 원가량의 세 부담만 하게 돼 증여 시점을 기준으로 총 6억8000만 원의 절세가 가능해진다.
여기까지만 보면 과세특례를 이용하는 것이 세 부담 측면에서 매우 매력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해당 시점의 매력도만 갖고 의사결정을 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과세특례의 경우 일종의 정산 절차를 추가로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근로소득자들이 매달 갑근세를 납부한 후 연말정산이라는 절차를 거치듯이, 과세특례를 통해 증여한 재산가액은 상속 시점의 상속재산에 ‘무조건 합산’ 돼 정산되는 절차를 거친다. 실제 정산되는 상속세까지 고려하면 과세특례로 인해 오히려 불필요한 세 부담을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우 과세특례 활용 시점에 비해 상속 시점의 주식가치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에 한해 절세효과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상속재산에 합산되는 증여재산가액은 상속 시점의 평가액이 아닌 과세특례 활용 시점의 증여재산가액이기 때문이다.
이는 30억 원의 주식을 과세특례로 이전했다면 상속 시점에 해당 주식이 300억 원에 달한다 하더라도 합산, 정산되는 가치는 과세특례 활용 시점의 가액인 30억 원이라는 것이다(이런 경우 평가증액인 270억 원을 세 부담 없이 이전하게 되는 것이다). 역으로 회사가 사양산업에 속해 있거나 점차 수익성이 낮아지는 등 사업에 대한 제반 불확실성이 높은 경우라면 과세특례를 활용하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
가업승계를 계획하는 경영자는 우선적으로 가업상속공제 요건을 충족시켜 두고, 상속 시점의 주식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을 고려해 과세특례 적용 여부를 결정지어야 할 것이다.
상속 시점의 주식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
① 회사가 속한 산업에 대한 전망
② 회사의 성장성 및 수익성에 대한 전망
③ 경영자의 연령 및 건강 상태
④ 회사의 자산 구성 및 재무 상태
⑤ 비상장주식 평가 방법에 대한 이해
⑥ 증여세 과세특례 적용 후 세법상 사후 의무의 불이행 가능성 여부
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기업의 승계, 특히 중소기업의 ‘가업승계’ 문제는 국가 경제의 태동기, 발전기를 거치는 과정에서 나타난 일종의 ‘성장통(成長痛)’이라고 볼 수 있다. 극복과 도약이라는 또 하나의 과정을 위해서는 세금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망한 중소기업이 과다한 세금 문제로 어려움에 봉착하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일러스트 허라미
정현규 세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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