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주)브레드가든 대표

‘나눔 바이러스’에 제대로 감염(?)된 사람들을 만났다. 60여 명에 이르는 전 사원이 예외 없이 모두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한국컴패션을 통해 양육 아동과 1:1 결연을 맺고 있는 것. 이영진 (주)브레드가든 대표는 가정에서 실천하던 나눔을 집 밖으로 확산시켰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집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빵 굽는 냄새처럼, 이들의 나눔도 구수한 향기로 다가온다.
[Novlesse Oblige] “갓 구워낸 빵처럼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꿈”
브레드가든은 홈베이킹 재료(프리믹스 등)와 도구, 제빵기 등 가전제품, 완성품 포장 재료까지 홈베이킹에 관한 전 분야의 제품을 생산, 유통하는 국내 유일의 홈베이킹 전문 기업이다. 이 대목에서 “그런데 홈베이킹은 무엇이냐”고 물어볼지도 모르는 독자를 위해 먼저 이영진 (주)브레드가든 대표의 설명부터 전한다.

“한참 동안 설명하고 나면 보통, 특히 중년 이상 남자 분들은 ‘그러니까 제과점을 운영하시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세요.(웃음) 지난 17년간 홈베이킹 문화가 많이 성숙했지만, 아직도 정확하게 모르시는 분들이 그만큼 많다는 말이죠.

집에서 만드는 빵은 사 먹는 빵보다 만들기도 더 쉽고 맛도 더 좋아야 합니다. 브레드가든은 집에서 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회사예요. 그래도 아시아에서 홈베이킹에 관한 한 한국이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어요.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는 한국이 홈베이킹의 종주국이라고 할까요. 홈베이킹은 유럽에서 들어온 문화이지만, 저희는 우리에게 맞는 한국적 홈베이킹 스타일을 창안했습니다. 한국적 홈베이킹이 아시아 지역에서는 더 적합하고 건강한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브레드가든 직원들이 진행하는 아이싱쿠키 클래스. 만든 쿠키로 바자회를 연 후 모인 금액으로 컴패션 어린이들을 후원한다.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브레드가든 직원들이 진행하는 아이싱쿠키 클래스. 만든 쿠키로 바자회를 연 후 모인 금액으로 컴패션 어린이들을 후원한다.
물리학자를 홈베이킹 전문가로 탈바꿈시킨 독일

이 대표는 홈베이킹 제품을 판매하기 이전에 홈베이킹 문화 자체를 판매해야 했고, 지금도 그것이 제품 자체보다 더욱 중요한 브랜드의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치즈케이크를 만들려는데 치즈조차 없었던 시절부터 홈베이킹을 연구하고 보급해온 지 17년. 매출 100억 원을 바라보게 되기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에피소드를 겪었다. 시계를 거꾸로 돌려 보면 지금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전도유망한 물리학도가 떡하니 서있다.

“독일에서 물리학을 공부할 때 유럽의 홈베이킹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우리가 볶음밥 같은 한식을 어렵지 않게 만드는 것처럼 유럽 사람들은 집에서 빵이나 쿠키를 쉽게 굽더라고요. 유학가기 전 우리나라 가정에는 오븐이 흔치 않았죠.

학교 기숙사에도 각 층별로 공동 주방이 있었는데 거기에도 홈베이킹 도구들이 있어서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때 학생들이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더라고요. 귀국해 보니 서울 주변 신도시를 중심으로 아파트에 오븐을 들여놓는 가정이 눈에 띄게 늘었는데, 문제는 오븐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는 거였어요.

그때 생각한 것이 사람들이 오븐을 쓸 수 있게 도와주자 하는 것과 엄마들을 깨우자는 거였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당시 우리나라에 인스턴트 음식이 급속도로 퍼져 있었거든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유학을 갔던 그가 ‘집에서 빵 만드는 것’을 사업으로 정하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연 같은 필연이 있었다. 우선은 배우자이자 현재 브레드가든 연구개발실장 겸 이사인 정주연 씨를 만난 게 그것. 정 실장은 이 대표가 유학 당시 같은 대학에서 식품영양학을 공부하는 유학생이었다. 또 하나를 꼽자면 귀국 후 터를 잡았던 대덕연구단지의 조금은 색다른 환경을 들 수 있다. 특이하게도 1995년 브레드가든 1호점은 대덕연구단지 내 23.1㎡(7평) 남짓 가게였다.

“정 실장(그는 회사에서 철저히 아내의 직함을 사용했다)이 당시에 홈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며 빵, 케이크 등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쉽게 접근을 했어요. 연구원 아내들이 보통 외국에서 산 경험들이 있어 각 나라의 홈베이킹 문화를 접해 본 경우가 많아서인지 클래스가 입소문을 타고 아주 잘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밀가루도 소포장이 없고 20kg짜리 업소용밖에 없던 때였으니 홈베이킹 재료들을 구하기가 힘들었어요. 그때 연락했던 곳이 독일 제일의 홈베이킹 회사인 닥터 웨트커(Dr. Oetker)와 루프(RUF)사였죠. 쌀 먹는 나라에서 웬 빵 만드는 재료냐며 반신반의하다가 자기네도 100년 전에는 아주 작은 가게였다면서 고맙게도 다품종 소량 수출을 허락해줬어요.”
브레드가든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6개월 미만의 컴패션 결연자를 대상으로 홈베이킹 공개 시연 혹은 실습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 이후 결연 중단자 비율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토요 브런치 행사는 반응이 좋다.
브레드가든은 매월 둘째 주 토요일, 6개월 미만의 컴패션 결연자를 대상으로 홈베이킹 공개 시연 혹은 실습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행사 이후 결연 중단자 비율이 크게 줄어들 정도로 토요 브런치 행사는 반응이 좋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온 칠전팔기의 17년

23.1㎡ 규모로 시작한 브레드가든 가게에는 홈베이킹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붐볐고, 가게의 구색도 하나씩 그 수를 더해갔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하루에도 몇십 통씩 체인점을 내줄 수 없겠냐는 문의 전화가 쇄도했고, 얼떨결에 전국에 체인점도 하나둘씩 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당시를 ‘준비되지 않은 성공’이라고 표현했다. 물리학자로, 연구원으로 살았던 그에게 사업은 또 다른 세상의 패러다임이란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 체인점이 늘어날수록 드러나는 문제점도 늘어갔고, 이윽고 1997년 그는 2년 만에 대덕연구단지 연구원 생활을 청산하고 본격적으로 사업가로 변신했다. 아내가 ‘부업’ 삼아 시작한 일을 ‘생업’으로 전환한 시점이다.

“처음에 반신반의했던 독일 회사 매니저가 창업 2~3년 될 즈음 한국에 왔는데 저희를 보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홈베이킹 문화가 급속도로 확산됐었거든요. 그런데 사업은 생각만으로는 되지 않았어요. 체인점 운영도 조직 운영의 매뉴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1998년부터 뒤늦게 경영서를 탐독하며 경영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 스타벅스의 성공비결 등에 관한 경영서를 처음으로 보기 시작한 거죠.”

1998년에는 전국에 퍼져 있던 체인점을 모두 정리하고 철저하게 직영제로 전환했다. 전무에 가까웠던 홈베이킹 문화를 각종 홈베이킹스쿨 운영과 단행본 출간 등을 통해 전파하며 회사의 성장세도 가속을 유지했다. 다양한 언론매체에서 브레드가든의 전문적 콘텐츠를 필요로 했고, BHI(Bread Garden Home Baking Instructor)라는 홈베이킹 전문 강사 양성과정도 확립했다.

현재 6개의 스토어와 직영 온라인 쇼핑몰을 운영 중인 브레드가든은 중국 진출이 임박해 있다. 이 대표는 중국 진출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한국 홈베이킹 문화를 성장시킨 주역으로서 브레드가든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 꼭 해야 할 숙제라고 했다. 올 가을은 내수시장 중심에서 해외 시장으로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시점. 그는 홈베이킹 시장 선점을 두고 벌어질 중국에서의 한·일전에서 지난 17년간 시행착오를 겪으며 정착시킨 한국식 홈베이킹의 승리를 확신했다.
“브레드가든을 아시아 제일의 홈베이킹 회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홈베이킹을 통한 따뜻한 세상 만들기가 꿈입니다.”
“브레드가든을 아시아 제일의 홈베이킹 회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홈베이킹을 통한 따뜻한 세상 만들기가 꿈입니다.”
홈베이킹을 통한 따뜻한 세상 만들기

“직원 60여 명인 저희 회사는 중소기업 규모죠. 중소기업이 할 수 있는 사회공헌 가운데 첫 번째는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직원들 또한 회사를 잠깐 머물렀다 가기보다는 회사와 함께 내외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직원들 역시 사회에 돌려줄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 회사가 할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현재 브레드가든 60여 명의 직원은 전원이 한국컴패션을 통해 어린이 양육을 하고 있다. 컴패션은 전 세계 26개국 빈곤국 어린이들을 후원자와 1:1로 결연해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하는 국제어린이양육기구. 브레드가든은 2007년 9월 인도 어린이 35명과 결연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현재는 직원 수와 동일하게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 등지 60명의 어린이를 양육 중이다.

하지만 직원들이 결연을 맺었다고 해서 양육비까지 부담하지는 않는다. 아동 1인당 한 달에 4만5000원인 양육비 일체는 회사가 부담한다. 직원들의 역할은 각자가 양육을 담당하는 어린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편지를 후원하는 것. 아이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저희 집 가훈이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은혜 받아 남 주자 세 가지예요.(웃음) 컴패션 양육은 사실 2005년부터 저희 집에서 했었다가 직원들도 같은 마음을 가져줬으면 하는 생각으로 회사에서도 하게 됐어요. 해를 거듭할수록 직원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게 보입니다.”

브레드가든 직원들은 아동과의 결연 이외에도 컴패션 후원자들의 모임인 컴패션 브런치 모임에 빵을 제공하거나 베이킹 시연을 통해 재능 기부를 실천해오고 있다. 컴패션을 통해 알게 된 고아원인 성애원을 찾아가 아이들과 빵을 나누고 놀아주는 것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월례행사로 자리 잡았다.

“브레드가든을 아시아 제일의 홈베이킹 회사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홈베이킹을 통한 따뜻한 세상 만들기가 꿈입니다.”

혹 나눔 앞에서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면 이 대표의 조언을 참조하면 어떨까 싶다. “항상 지금이 바로 그때”라는 간결하고도 강력한 한 마디 말이다.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