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고 있는 트렌드, 힐링이 대세다
취업과 직장, 자녀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상처 치유와 극복을 위해 힐링 열풍에 빠졌다. 이에 맞춰 힐링 관련 책과 TV 프로그램, 여행, 음식 등이 쏟아져 힐링이 새로운 사회 코드로 떠오르고 있다.무더위가 이어지면서 휴가 계획을 짜는 이들이 많다. 여름휴가지 설문조사 결과 올 여름 휴가를 바다에서 즐기고 싶어 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아무것도 안하기(doing nothing)’가 목표라는 대답도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직장인은 한적한 곳에서의 느긋한 휴가를 선호하는 경향이 드러났다.‘힐링(healing·치유)’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면서부터다.
힐링은 웰빙(wellbeing)을 넘어선 새로운 트렌드다. 웰빙이 신체의 건강함을 의미하는 것인 반면 힐링은 마음의 위안과 치유를 포함한 개념이다. 특히 편안한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며 스트레스를 풀거나 음식을 먹으며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웰빙 트렌드를 거치면서 나은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마음의 치유’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신체 건강까지 챙기겠다는 의식이 반영됐다. 힐링은 특히 만성 피로와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하다. 일과 휴식이 적절하게 균형 잡혔을 때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힐링 트렌드의 두 얼굴,‘자연’과 ‘느림’
특히 여행업계의 변화를 보면‘자연주의’와 ‘느림’이라는 힐링의 대표적인 두 트렌드를 구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 사회적 기업 노매드여행사는 올해 초 힐링 여행 상품을 출시했다. 가이드 대신 ‘힐러(healer)’라는 전문 심리 치료 전문가가 여행을 이끈다. 자연 속으로 들어가 풍경이 좋은 곳에서 멈춰 명상에 잠기거나 힐러가 감정 조절 방법 등을 조언하기도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와 상처로 인해 돌처럼 무거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
힐링 여행은 현재 한 달에 약 500명이 찾을 정도로 인기다. 개인 참가자뿐 아니라 기업 등 단체 참가자들도 꾸준히 늘고 있는 추세다. 윤용인 노매드여행사 대표는 “힐링 여행의 만족도가 높아 매달 힐링 여행 상품을 찾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캠핑과 트레킹의 인기도 힐링 트렌드를 반영한다.
힐링 트렌드와 함께 여행 방식도 바뀌었다. 기존의 여행 방식은‘패스트 트래블’이었다. 작은 깃발 뒤로 줄지어 뒤따르던 패키지여행이나, 9박 10일 14개국 유럽투어 등의 여행 상품이 대표적인 패스트 트래블이다. 21세기 들어서는 슬로 트래블로 관광 패턴이 바뀌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무언가에 쫓기듯 떠나 스치듯이 만나고 돌아오는 여행이 아닌, 긴 호흡으로 머무르며 느끼는 휴식이 새로운 여행의 화두가 된 것이다.
‘스테이케이션(staycation)’이라는 생소한 개념도 등장했다. 스테이케이션은‘머무르다(stay)’와 ‘휴가(vacation)’의 합성어다. 세계 경제 위기 때 고가의 여행 대신 집 주변에 머문다는 의미로 처음에 사용되다가 지금은 한 장소에 오랫동안 머물며 즐기는 여행을 가리킨다. 긴 호흡으로 현지인처럼 머무르며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를 일상처럼 채워간다. 자연과 그 지역의 문화, 음식 등을 여유 있게 즐기고 좀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미 유럽에서는 이 같은 관광 패턴이 유행이다. 비행기나 자동차를 타고 자주 이동하는 대신, 한 지역에 오래 머무르며 걷거나 자전거를 탄다. 지역 봉사활동을 병행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단계지만 관련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비즈니스 코드로 주목받는 힐링
비즈니스 코드로 힐링을 내세운 업체들 역시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단순히 상품을 제공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를 통해 스트레스를 잠시나마 잊게 해주겠다는 취지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출판업계다. 힐링 테마 도서의 상승세는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0년 12월 출간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필두로 서점가를 점령한 마음과 치유에 관한 책은 불경기와 취업난 등 의지할 데 없는 젊은 층의 구매 심리를 파고들며 2년여 국내 출판계의 화두가 되고 있다.
교보문고와 온라인 서점 인터파크의 2012년 상반기 베스트셀러 집계를 보면 상위권을 힐링 도서가 점령하고 있다. 멘토로 떠오른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2위, 스테디셀러인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4위다. 인기 멘토로 꼽히는 김정운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씨의 책도 10위권에 들었다. 인터파크 역시 1, 2위 순위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유형의 책이 강세다. 혜민 외에도 정목, 법륜 등 승려들의 마음 치유 서적도 인기 도서다.
힐링 열풍은 방송계에도 분다. SBS TV 토크쇼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는 힐링 트렌드를 따른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시키고, 게스트와 MC, 그리고 시청자들까지 모두 치유한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콘셉트다. 지난 1월 방송된 박근혜 새누리당 전 비상대책위원장 편은 12.2%의 시청률을 올리는 등 현재 동시간대 시청률 1위를 기록 중이다. 힐링 트렌드에 대한 기업의 관심도 커지고 있다. 매일유업은 힐링을 테마로 한 ‘힐리언스 선마을’, 힐링 트렌드의 한 방향인 슬로시티 등과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매일유업 관계자는 “힐링 프로그램 관련 활동이 회사가 추구하는 비즈니스 방향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며 “앞으로 헬스케어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 밖에도 스파, 화장품, 공연 등 많은 영역의 기업들이 힐링 트렌드를 마케팅의 주요 콘셉트로 확대해 나가고 있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힐링 트렌드의 확산을 야기하는 사회적 요인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았다. 첫째, 웰빙 트렌드의 연장선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성과와 물질 중심적 삶에서 여유 있고 삶의 질을 높이려는 욕망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하고 대량 생산되는 패스트 시대에 대한 일종의 문화적 반발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셋째는 명품화 욕구다. 친환경적인 제품과 삶을 통해 보다 높은 가치를 추구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홍사종 미래상상연구소 대표는 “성장과 생산성 중시의 패러다임이 2008년 말 변곡점을 찍으면서 복지, 노는 문화, 잘 먹는 문화 등의 트렌드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힐링 트렌드 역시 고은 시인의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했던 그 꽃’이라는 시구처럼 성장 일변도의 사회에서 놓쳐왔던 이웃의 아픔, 문화 활동, 배려, 헌신 등을 돌아보기 시작한 최근 트렌드의 반영이다”라고 설명했다.
한편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이사장은 감성문화 코드의 확산이 영향을 끼쳤다고 해석했다. 그는 “산업사회가 지나가면서 속도와 경쟁에 대한 회의감과 함께 감성문화 코드가 사회에 퍼지기 시작했다”며 “감성문화의 한 표현 방식으로 여유와 치유를 찾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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