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기억으로 되돌아가 보면 아마 ‘결과’혹은‘성과’보다는‘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지극히 교과서적인 배움을 윤리 선생님에게 받았던 것이 생각난다. 그 시절의 순수함과 순진함은 당연히 이러한 가르침이 현실세계에서도 통할 것이며 누구나 같은 생각을 갖고 살고 있겠지 하는 다분히 ‘비상식적인’ 믿음을 갖게 하지만, 이 믿음은 곧 ‘상식적인’ 배반으로 인해 현실세계에 눈뜨게 한다.

한 번의 학력고사 성적으로 “너의 인생과 배우자가 바뀐다”는 협박(?)으로 인한 입시 스트레스, 주위에 있는 친구들을 적으로 만드는 제로섬 게임, 배짱 지원을 가능케 한 불합리한 입시 지원 제도 등. 결과보다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은 학교에서조차 지켜지지 않는다.

결과 중시 풍조는 정치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나 또는 우리 당이 원하는 결과만 얻으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결과 중시 풍토는 경제 활동에서 더 도드라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들리는 애플과 삼성전자의 소송과 대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과 정부의 개입, 죽기 아니면 죽이기처럼 보이는 치열한 상권 다툼 등은 목숨을 건 전쟁과도 같다.

경제의 사전적인 의미는 ‘인간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나 용역을 생산, 분배, 소비하는 모든 활동 또는 그것을 통해 이루어지는 사회적 관계’다. 그러나 현실은 차이가 있다. 경제 활동이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생산, 분배, 소비하는 활동’인지 아니면 ‘경쟁에 걸림돌이 되는 모든 경쟁자를 물리쳐 홀로 모든 이익을 향유하려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교과적인 순수한 관점과 현실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율배반적인‘성과와 과정’의 불균형은 많은 사회적 혼란과 불안, 그리고 철학적 빈곤을 야기할 수밖에 없다.

가정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이 올바르며 그것을 어떻게 심어주어야 하는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하는지 아니면 “공부가 다가 아니니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멋지게 한 번 살아보라”고 해야 할지.

기업 활동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향을 제시해야 되는지도 큰 딜레마 중 하나다. “무조건 경쟁에서 지면 안 되니 경쟁사들의 시장점유율을 빼앗아 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고 해야 하는지, “같이 먹고 사는 동업자들인데 쉬엄쉬엄 점잖게 하라”고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이러한 현실적인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흑과 백 혹은 내 편 아니면 남의 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선택을 합리화시켜 주는 근거는 무엇이 될까.

어쭙잖고 논리적 근거가 미약한 자의적 해석이긴 하지만 이런 생각은 어떨까. 결과 또는 성과라는 것이 어느 한 지점에서의 공간적, 시간적 기준에서의 판단이라고 하면 우리는 항상 쫓길 수밖에는 없다.

마치 학력고사 성적으로 어느 대학에 가는 것이 결정되고 그것이 남은 모든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한다면 우리는 점수(결과)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과정)을 가리지 않고 고득점을 위해 행동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알고 있다. 학력고사 점수 내지는 좋은 대학만이 인생과 미래를 담보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아직도 과정 중에 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과정이 중요한 것은 결과가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옳고 바른 것이었다면 지금 시점에서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결과가 어느 시점에서 바뀌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경영의 세계에서도 과정이 중요하다. 결과로써 얻는 브랜드 인지도나 시장점유율은 항상 변한다. 오늘의 리딩 브랜드가 내일도 일등이라는 보장은 없다. 결과는 항상 바뀔 수 있다. 하지만 결과를 얻기 위한 과정의 원칙은 바뀌지 않는다. 그 원칙은 근본에 충실하고 소비자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항상 창조적 정신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원칙들을 기본으로 한 과정들이 미래의 결과를 담보해주지는 않을까. 오늘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라 할지라도 오늘의 옳은 과정과 원칙을 통해 새로운 결과를 계속해서 생산해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CEO 칼럼] 결과와 성과와 과정의 우선순위
김동욱 나이키골프코리아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