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d

유럽 재정 위기의 여파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채권에 개인과 기관의 돈이 몰리는 것이 그 증거다. 최근 채권 시장의 흐름과 투자 전략을 점검해본다.


“30년 채권 시장 랠리가 막바지에 임박했다.” 2010년 10월 ‘채권왕’ 빌 그로스(Bill Gross)는 핌코 홈페이지에 이렇게 썼다. 하지만 얼마 안 가 그의 전망은 비웃음거리가 됐다. 채권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미국 내외 주요 채권 금리가 이후 바닥을 모르고 하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국내 중장기 국고채 금리는 올 7월 들어 모조리 사상 최저 기록을 다시 썼다. 투자자들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 붕괴 공포에 사로잡혀 경쟁적으로 안전자산 투자에 나선 결과다.

개인투자가들의 채권 매수 규모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대로 불어났다. 해외 국채와 물가연동국고채(물가채) 투자도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주식과 부동산 투자에 쏠려있던 개인들의 관심이 ‘저성장·저금리’ 시대를 맞아 본격적으로 채권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제 위기의 자산관리] 기관처럼 채권으로 돈 불려볼까?
개인투자가 작년의 ‘3배’

금융투자협회(이하 금투협)에 따르면 올 상반기 개인들이 증권회사와 은행을 통해 순매수한 채권 규모는 3조2507억 원에 이른다. 작년 하반기 1조1955억 원 대비 3배 가까이 급증했다. 미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금융시장이 요동쳤던 2008년 하반기 3조9343억 원 이후 반기 기준 최대 규모다.

채권형 펀드에도 많은 돈이 몰렸다.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상반기에 7116억 원 순증했고, 주식형 펀드에선 5821억 원이 빠져나갔다. 상반기 국내 채권형 펀드 수익률(2.06%)도 주식시장 침체와 금리 하락으로 주식형 펀드(0.92%)와 혼합형 펀드(1.02%)를 모두 앞질렀다. 채권의 이 같은 인기는 추가적인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 가능성과 은행예금 대비 금리 매력에 기초하고 있다. 개인들이 선호하는 ‘A’ 신용등급 회사채(3년 만기)의 경우 최근 수익률이 연 4.0%로 작년 평균(연 4.64%)보다 낮아졌지만, 여전히 시중은행 36개월 정기예금 금리(연 3.7~3.8%)보다 절대 금리 매력이 높다.

성현희 우리투자증권 채권상품부 차장은 “개인투자가들이 앞으로 금리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만기 3~5년짜리 회사채 등에 투자해 장기간 예금금리보다 높은 수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며 “회사채에 대한 기관과 개인의 관심이 늘어나면서 매매 유동성도 좋아져 한동안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어떤 상품을 어떻게 사나

금투협은 채권의 대중화를 위해 2010년부터 소액 채권 판매 정보를 인터넷 사이트에 모아 공개하고 있다. ‘본드몰(www. bondmall.or.kr)’로 불리는 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개별 증권사들이 내놓은 다양한 상품 중에 자신에게 맞는 채권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이트 상단 메뉴 중 ‘내게 맞는 채권’을 클릭하면 신용등급과 수익률, 투자기간별로 판매 채권을 정렬해 볼 수 있다. 채권은 일반적으로 신용등급이 낮을수록(채무불이행 가능성이 높을수록), 만기가 길수록(보유 기간 위험이 클수록) 수익률이 높다. 국내 신용평가회사들은 채권 신용등급을 AAA, AA, A, BBB, BB, B, CCC, CC, C, D 10단계로 구분하는데 이 중 AA부터 CCC까지는 등급 내 상대적인 우열에 따라 플러스(+) 또는 마이너스(-) 기호를 첨부하고 있다. 크게 BBB 이상은 투자 등급, BB 이하는 투기 등급으로 나뉜다.
금융투자협회의 소액채권 판매정보집중시스템(www.bondmall.or.kr). 채권의 대중화를 위해 소액채권 판매 정보를 모아 공개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의 소액채권 판매정보집중시스템(www.bondmall.or.kr). 채권의 대중화를 위해 소액채권 판매 정보를 모아 공개하고 있다.
동양증권 HTS의 ‘장내 채권 현재가’ 화면. 호가가 잘 형성된 채권은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수 있다.
동양증권 HTS의 ‘장내 채권 현재가’ 화면. 호가가 잘 형성된 채권은 주식처럼 쉽게 매매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채권을 선택했으면 사이트에 기재된 판매증권사 지점을 방문해 계좌를 개설하고 채권 매수를 요청하면 된다. 사이트에 표시된 가격에는 수수료가 포함돼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다. 상담도 가능하다. 가령 ‘A-’ 등급에 세후수익률 연 4.86%이고 잔존 만기가 4년 11개월인 ‘한진해운76-2호’에 대해 알고 싶으면 판매증권사인 한화증권을 클릭해 직통번호로 상담할 수 있다. 이준원 한화증권 리테일채권팀 과장은 “한화증권이 개인들에게 팔 만한 물건들을 선별해 제공하고 위험 상담을 거쳐 채권을 판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직접투자로 ‘고위험·고수익’ 추구

금투협 본드몰은 아직까지 개인투자가들에게 권하기 어려운 신용등급 BBB급 이하 채권 관련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채권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차상기 금투협 채권시장공시팀장은 “BBB급 회사채 역시 엄연한 투자등급 채권이고, 훨씬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지만 많은 개인들이 채권의 투자 위험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점을 감안해 추천 상품에선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채권에 대한 이해가 높고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투자자라면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을 이용해 장내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일례로 동양증권 HTS의 ‘장내 채권 현재가’ 화면 ‘이미지 첨부’에 따르면 ‘동부건설244호(신용등급 BBB·잔존 만기 2년 11개월)’를 7월 4일 현재 연 10%대 수익률에 매수할 수 있다. 장내 채권은 주식처럼 호가 범위가 촘촘하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경우에 따라 증권사 지점을 거칠 때보다 더 싸게 살 수 있다.

장내 시장 채권 거래량은 아직까지 전체 채권 거래의 20%에 불과하지만 매년 거래 규모가 늘고 있어 채권을 사고팔기가 더욱 편리해질 전망이다. 한국거래소(KRX) 관계자는 “기관들도 자투리(장외 시장에서 100억 원 단위로 거래하고 남은 잔량) 채권을 장내 시장에서 매매하기 때문에 일부 종목은 가격대별 호가가 비교적 잘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해외 채권 투자 매력은

해외 채권 투자에 대한 관심도 부쩍 늘어났다. 국내에서 주식보다 위험이 적고 예금보다 수익률이 높은 상품을 찾기가 쉽지 않다 보니 해외로 적극 눈을 돌린 결과다.

작년 증권가 최대 히트 상품 중 하나도 브라질 국채였다. 미래에셋증권은 국내 최초로 작년 5월부터 월 지급식 글로벌 채권(브라질) 신탁 상품을 출시했다. 그 덕분에 과거 채권형 펀드나 하이일드(고수익) 펀드 등을 통해서만 해외 채권에 투자할 수 있었던 개인투자가도 매력적인 국채를 선택해 집중 투자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브라질 국채는 한·브라질 양국 간 조세협약으로 이자소득 비과세가 적용돼 다른 비슷한 상품보다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환율 변동이 없다면 최근 기준 연 7.8%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작년 5월 출시 이후 최근 판매고 7000억 원을 달성했다.

스페인 등 일부 유럽 국채도 최근 연 7% 수익률을 넘나들며 개인투자가들의 이목을 끌고 있지만 국내에선 브라질 국채와 달리 투자할 방법이 없다. 위험이 큰 만큼 시장성이 떨어져 판매에 나서는 금융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이관순 미래에셋증권 고객자산기획팀장은 “개인투자가를 위한 해외 국채 상품은 이제 막 출시하기 시작한 단계”라며 “작년부터 브라질과 호주 국채 등을 판매하고 있지만 유럽 국채는 매우 위험하다는 인식이 많아 검토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경제 위기의 자산관리] 기관처럼 채권으로 돈 불려볼까?
고액자산가는 물가채 선호

고액자산가들은 고수익 채권보다는 세금을 아낄 수 있는 물가채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물가채는 투자 원금이 물가지수 상승분만큼 불어나는 채권이다. 가령 금리가 1.0%인 만기 10년짜리 물가채를 샀는데, 물가지수가 10년 동안 100에서 130으로 올랐다면 만기 때 돌려받는 원금도 1억 원에서 1억3000만 원으로 늘어난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말 현재 개인투자가의 물가채 보유잔액은 1조6013억 원에 이른다. 전체 발행잔액의 26% 규모다. 작년 초 5172억 원, 17.5% 수준에서 급격히 늘어났다. 물가채는 10년 만기로 발행되며 최근 유통수익률은 연 1.0% 수준이다.

오상훈 대신증권 리테일채권부 팀장은 “물가채는 과세 대상인 이자금액이 적은 대신 늘어나는 원금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아낄 수 있다”며 “10년 이상 장기채의 경우 이자소득에 대한 분리과세 신청도 가능해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자에게 유리한 상품”이라고 말했다.

올 4월부터 개인투자가가 증권사를 통해 직접 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도 물가채의 매력이다. 그동안에는 증권사가 유통물을 사들여 되파는 과정에서 다소 비싼 가격이 매겨졌기 때문이다. 현재 대신증권 등 다수의 증권사들은 매월 세 번째 월요일 정부가 물가채를 발행할 때 개인들이 이를 매수할 수 있도록 ‘입찰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이태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