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어찌 보면 등산과 비슷한 면이 있다. 등산을 할 때 장비가 필요하듯 인생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데도 필요한 것이 있다. 좋은 인간관계, 건강, 자산 등이 그것이다. 자산 중에서도 퇴직연금은 인생의 미드필드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Retirement Pension] 은퇴 교육에 퇴직연금의 미래가 달려 있다
강원도 홍천에 가면 팔봉산을 만날 수 있다. 여덟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이라 팔봉산이라고 부른다. 해발 327m의 야트막한 산이지만 얕보았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바위와 암벽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높지 않아 비교적 짧은 시간에 등산을 마칠 수 있고, 경치 또한 수려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필자가 보기에 팔봉산의 백미는 단연 해산굴이다. 3봉을 내려와 4봉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는 해산굴은 이름처럼 그 굴을 통과하기가 출산의 고통처럼 힘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등산객들은 혼자 힘으로 통과하면 자연분만, 도움을 받아 통과하면 유도분만이라고 부른다. 해산굴은 장수굴로 불리기도 하는데, 여러 번 통과하면 무병장수한다는 전설이 있다.



퇴직연금은 장수사회의 미드필더

팔봉산은 인생 100세 시대를 논하고 있는 요즘의 우리 세태와 잘 맞는 것 같다. 100세 시대라고 해서 모두가 100세까지 사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생 80고개를 넘어야만 영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팔봉산 등산은 100세 시대의 우리네 인생과 닮았다.

산을 오를 때 등산화 등의 장비가 필요하듯 100세 시대를 무난하게 건너는 데에도 필요한 것들이 있다. 자녀를 양육하고 생계를 꾸리며 자신의 노후를 책임져 줄 자산, 활기찬 생활을 담보해주는 건강,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다움을 보장해주는 관계망 등이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단연 자산, 즉 돈이다.

필자는 퇴직연금을 장수사회의 미드필더라고 부른다. 축구에서 수비와 공격을 이어주는 미드필더처럼 퇴직연금은 국민연금과 개인연금을 이어주면서 3층 사회보장제도를 완성하고, 현역시절과 은퇴 생활을 부드럽게 이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퇴직연금이 과연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묻는다면 부정적인 대답이 먼저 떠오른다. 양적인 측면에서는 가파른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퇴직연금의 미래는 가입자 교육에 달려있어

어떻게 하면 퇴직연금의 앞날에 한 줄기 밝은 빛을 비출 수 있을까. 필자는 퇴직연금을 규율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법률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이 가입자 교육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을 법적으로 1년에 1회 이상 실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이는 우리보다 퇴직연금이 발달한 그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내용이다. 외국에서는 기껏해야 노력의무로 규정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가입자 교육이 실제로는 법률 조항으로만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실시된다 하더라도 극히 형식적으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가입자는 귀찮은 교육의 하나로 치부하고, 사용자는 기업 경영을 저해하는 요소로 받아들이며, 퇴직연금 사업자는 비용 발생 요소로만 바라보고, 정부는 법률 위반을 모른 척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가입자 교육이 주요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찬밥 대우를 받다 보면 퇴직연금의 앞날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김재현 상명대 교수는 결국 ‘무관심→몰이해→무행동’의 악순환에 빠져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런 무관심과 몰이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교육이 중요하다.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가입자 교육만이라도 제대로 실시된다면 무관심과 몰이해의 문제는 상당부분 해소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업에서 기회를 제공해야만 교육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입자 교육은 기업 경영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기업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가입자 교육은 고령화 시대에 기업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책임의 하나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입자 교육을 통해 기업 경영에 도움을 받은 사례는 많다. 미국과 일본에서 진행되고 있는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은 퇴직연금이 기업에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말해주고 있다.



퇴직연금을 활용한 은퇴 교육은 법을 준수하면서 근로자의 회사 충성도와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투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에는 단기적으로 얼마간의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겠지만, 이는 다른 투자 방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



미국의 목재회사 와이어하우저의 교훈

미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이 활성화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그 범위를 확장해 은퇴 교육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교육의 모범 사례를 들라면 단연 와이어하우저다. 와이어하우저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미국의 대표적인 목재회사로서 연령별, 직책별, 고용 유형별로 체계적이고 뛰어난 은퇴 교육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로 유명하다. 와이어하우저 은퇴 교육의 핵심이자 시발점은 역시 퇴직연금 교육이다.

현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2박 3일 코스의 교육이다. 이 교육에 참여하려면 신청 후 1년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라고 한다. 교육 만족도는 생각 이상으로 높다. 참석자의 98.6%가 은퇴 준비를 위해 더 나은 의사 결정을 할 수 있게 됐으며, 98%는 프로그램의 질이 매우 높아 회사에 대해 더 좋은 감정을 갖게 됐다고 평가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많은 기업들이 와이어하우저와 유사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일본에서 특히 주목을 끌고 있는 곳은 노동조합이 주도하고 있는 세이코엡손이다. 세이코엡손 노조에서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라이프 서포트 활동’인데, 이 활동은 웹을 통한 재무 서비스 제공, 생활 설계 세미나 개최, 개별 상담 실시 등으로 구성돼 있다. 노동조합에서 이런 활동을 벌이는 것에 대해 세이코엡손 노동조합의 부집행위원장인 시미즈 마나부는 노동조합의 전통적인 활동에 변화가 필요했다고 말한다.

즉 고도성장 시대에 주력한 임금 인상 활동은 저성장이 고착화된 성숙사회에서는 적합하지 않으며, 요즘 같은 시대에는 임금 인상보다는 가처분소득의 최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임금 인상도 필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지출을 관리하고 보유 자산에서 소득을 창출하는 것이다. ‘라이프 서포트 활동’은 바로 이러한 인식의 전환을 행동에 옮긴 실천의 장이다.

고령화 시대에 기업에서 실시하는 은퇴 교육은 근로자의 생산성 향상과 업무 몰입을 이끌어내는 수단의 하나다. 노후에 대한 재무적 스트레스는 근로자들의 급여만족도, 업무 몰입 및 근태 등에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은퇴 교육은 이런 부분을 완화해주기 때문이다. 유에스 엔지니어링 컴퍼니(US. Engineering Company)의 최고경영자(CEO) 타일러 노트버그(Tyler Nottberg)는 “교육을 받고 난 뒤 근로자가 재무적인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되면서 결근율도 낮아지고 업무 몰입도는 높아진다”고 말한다. ‘교육은 곧 투자’라는 말이 은퇴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사례를 보면 은퇴 교육의 뿌리는 퇴직연금 가입자 교육에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입자 교육을 법률로 정하고 있다. 이는 기업에서 실시하는 은퇴 교육에 매우 우호적인 환경이 아닐 수 없다. 퇴직연금을 활용한 은퇴 교육은 법을 준수하면서 근로자의 회사 충성도와 업무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투자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교육에는 단기적으로 얼마간의 시간과 비용이 수반되겠지만, 이는 다른 투자 방법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교육의 뿌리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가슴에 새겨야 할 요즘이다.

팔봉산 등산을 닮은 100세 시대의 항해술! 그 핵심은 퇴직연금을 축으로 한 근로자의 은퇴 교육에 있으며, 여기에 퇴직연금의 미래도 달려 있다.




일러스트 김영민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