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허브올레 5인방
마케팅, 건축, 기계공학, 위생 등 각 분야 전문가 5인이 의기투합했다. 도시남(男)이던 이들이 저지른(?) 일은 제주도에 허브를 키우는 일. 그저 허브를 키워 제품화하던 사업은 이제 ‘도시 농업’이라는 미래형 콘텐츠 사업으로 발전했다. 일과 삶에서 지음(知音)을 만난 행운아들을 제주 현지 제주 허브올레 농장에서 만났다.6월 하순의 제주는 살짝 찌푸린 하늘로 일행을 맞았다. 그런데 서울서 방문한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들 역시 서울 사람들이었으니 (주)어반파머스와 (주)지(G)스토리 이사회 멤버들이 그들이다. 취재원과 취재진 서로가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다”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일단은 점심 시장기를 달래기 위해 전복죽 집으로 향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제주 해녀들이 직접 쑤어 내온 구수한 전복죽과 함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5인 5색 각자의 산 경험을 밑거름으로
어반파머스는 제주에서 생산한 허브를 식물 그 자체나 가공한 제품으로, 또 관광 콘텐츠로 판매하는 회사다. 4년 전 제주도로 귀농(歸農)한 이성재 씨가 대표를 맡고 있는데 제주 현지 1만5000여 평의 농장에서 직접 허브를 재배하고 있다. 그의 사업 파트너인 4명의 이사들은 서울 거주자들. 이사회 멤버들은 한 달에 한 차례 정도 제주에 모여 월례미팅을 진행하면서 사업 아이디어를 내고 업무를 함께 처리하고 있다. 어반파머스가 회사로 정식 출발한 것은 2010년 9월. 제주에서 이미 허브를 재배하고 있던 이성재 대표를 중심으로 네 명의 지인(학교 선후배 사이)들이 의기투합하면서부터다.
마흔 초중반의 전문직 종사들이었던 이들은 농업에 현대적 마케팅과 과학 기술의 역량을 불어넣어 허브를 산업화하는 데 성공했고, 올해 5월에는 어반파머스의 자매사인 지스토리를 출범시켰다. 지난 6월 월례미팅의 화두는 7월에 오픈 예정인 경기도 판교의 허브올레 숍에 대한 구체적인 얘기들이었다. 두 회사가 지향하는 도시 농업을 일반 소비자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알린다는 취지에서 만드는 공간인 만큼 제주 1호점 숍보다는 참신해야 한다는 것이 이사진의 중론. 회의가 진행될수록 사람들의 시선이 한 사람에게로 쏠렸다.
“결국은 숍 인테리어를 잘 하라는 얘기들인데, 이거 상당히 부담됩니다.(웃음) 허브를 소재로 도시 농업 문화를 알린다는 ‘어반 에코 숍’ 콘셉트로 꾸미는 중인데 인테리어는 바로 눈에 보이는 부분이라 더욱 부담이 될 수밖에 없죠.”
건축설계와 부동산 콘텐츠 기획 전문가인 김태섭 이사의 넋두리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김 이사 혼자만 이런 부담을 떠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사회 멤버 중 맏형인 조태희 이사는 현재 어반파머스의 이사와 지스토리 대표를 겸하고 있는데, 기계공학 분야의 전문가다. 인터뷰에는 참석하지 못한 박정웅 이사는 위생분야 전문가로 구제역 키트 등을 생산하는 사업에 종사하고 있고,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윤석원 이사는 기업투자전문 컨설턴트로 금융계에서 잔뼈가 굵은 프로다.
조태희 대표가 이끌고 있는 지스토리의 김미희 이사는 조 대표의 18년 지기로 현대자동차 연구소 출신인 두 사람은 현재 문화재·유적지 3D 스캐닝 전문업체인 ‘위더스테크’라는 회사도 함께 운영 중이다. 지스토리의 또 한 명의 이사인 색채 디자이너 이주현씨는 김태섭 이사의 아내로 현재 시판 중인 ‘허브올레’ 브랜드 모든 상품의 포장용기 디자인 등을 관장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어느 한 사람도 자기 역할을 소홀히 할 수 없는 구조다. 벌써 눈치챘겠지만, 이들 모두는 시쳇말로 투잡스(two jobs) 족으로 원래 전문 분야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어 서울과 제주를 오가야 일이 이뤄지는 어반파머스와 지스토리는 실상 ‘제2의 전쟁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각자 세상에서, 세상과 적절히 잘 맞추며 적응해온 사람들이랄 수 있어요. 사회 속에서 화합하고 잘 사는 사람들이 모인 이유는 우리가 꾸는 새로운 꿈을 시험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싶기 때문이죠. 세상 이치를 잘 아는 사람들이니 우리가 세상에 없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저희 모토가 ‘즐겁게, 세상에 없는 일을 하자’입니다. 저희들은 모이기만 하면 어떤 일이 세상의 최초가 될 것인지 고민하는 편이죠.(웃음)”
제주 허브농장에서 농사꾼으로 변신한 이성재 대표를 만난 후 어반파머스의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는 윤석원 이사의 설명이다. 세상 초유의 일이란 이들에게 사업 아이템이자 함께 꾸는 꿈의 구현인 셈이다.
30대 후반의 귀농자와 손잡다
이들이 즐겁고 신나게 하는 일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현재 제주도 일대 4군데에 조성된 1만5000여 평 허브농장에서의 원료 재배다. 섬 전체에 현무암이 많아 그 자체가 커다란 화분 같은 섬 제주는 허브가 자라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같은 허브를 서울에서 키울 때보다 성장 속도가 3배 정도는 빠르다고 한다. 잡초 관리만 잘 해 주면 쑥쑥 자라는 허브는 묘목의 형태로 테마파크 등에 공급하기도 하고, 허브에서 추출한 오일은 화장품과 목욕제, 모기 퇴치제, 비누, 아로마 향초, 허브티 등 다양한 제품으로 시판되고 있다. 지난 5월 피닉스아일랜드에 문을 연 제주 허브올레 숍은 ‘허브올레’라는 이들의 브랜드가 유통되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세계 어디에 내놔도 품질에서 떨어지지 않는 제주 허브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홍보관의 역할도 하고 있다.
허브올레 숍의 히트 상품은 모기퇴치제. 모기가 싫어하는 허브 향을 함유하고 있어 뿌리고 자기만 하면 모기의 공격을 받을 걱정이 없다고. 뒷목 부분에 뿌리면 시원해지면서 피로회복 효과가 있는 스프레이도 고객들이 많이 찾는 품목. 최근에는 초등학생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하는 허브 비누 만들기 체험교실 신청도 늘고 있어 틈새시장도 보인다는 설명이다. 그런데 허브올레 숍에서 ‘서울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던 이성재 대표는 ‘농부’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손님들 때문에 복장에 너무 신경을 쓴 모양. 셔츠와 타이 차림의 이 대표와 허브농장의 실체 확인에 나섰다.
“여기 보시는 허브가 로즈마리예요. 가까이서 향 한 번 맡아보세요. 익숙한 향이죠? 허브 농사는 잡초 관리가 제일 중요한데 제주도는 워낙에 허브 재배에 좋은 천혜의 자연환경이라 비료도, 농약도 필요가 없어요. 농장에는 11명 정도가 일을 하고 있는데 모두 저처럼 제주로 귀농 또는 귀촌한 사람들이에요. 사실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펜션에도 손님을 가장해 저한테 이것저것 물어보러 오시는 분들이 꽤 많아요.(웃음) 워낙 많이 오니까 이젠 척 보기만 해도 눈치를 챌 정도죠.” 어반파머스의 대표이자 제주에서 허브 키우는 농사꾼, 이 대표가 농장에 초기 귀농자들을 고용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최근에는 ‘제주이민자’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뭍의 젊은 사람들이 제주로 많이 옮겨 오고 있지만 이 대표가 귀농하던 4년 전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30대 중후반이었던 ‘차도남·차도녀’ 부부로서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며 강행했었던 과감한 결정이었으나, 안정된 대기업 월급쟁이를 포기하며 내려간 제주는 생각처럼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고.
“집사람과 연애할 때부터 나이 들면 시골 가서 살자는 얘기를 자주 했어요. 사실은 제주에 오기 전에 전북 전안에서 마련한 귀농체험 행사에 다녀온 후 전안의 매력에 푹 빠져서 그쪽으로 귀촌을 생각했었죠. 원래 집 짓는 것에 관심이 많아 목수 공부도 했고요.(웃음) 그러던 와중에 인터넷 귀농카페를 드나들다 제주에 관심을 갖게 됐어요. 전안까지 생각했는데 제주라고 안 될 것이 있겠나 싶었죠. 다행히 아내가 오케이 해줬고 6개월 만에 회사를 정리하고 제가 먼저 제주로 내려와 집을 얻었어요.”
제주 중에서도 겨울에 칼바람이 부는 외곽지역에 집을 구하고 제주살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농사를 시작할 순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생각한 것이 허브사업을 하는 회사 마케팅 담당으로 입사했지만(당시 그의 월급은 서울에서 받던 것에 비해 반의반도 안됐다),제주 시내 여행사를 대상으로 세일즈를 하는 일은 서울에서의 회사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4개월 후에 아내와 아이들이 제주로 온 후에도, 아빠는 아이들이 잘 때 출근해 잠이 든 후에야 귀가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던 것.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자 회사를 그만뒀고, 그간의 ‘귀동냥’을 재산 삼아 뜻이 맞는 지인과 무작정 허브농장을 시작했다.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한 밭이 마음에 들어 주인을 찾아 사정했어요. 지금은 돈이 없으니 허브를 키워 수익이 생기면 상환할 테니 밭 좀 빌리자고 했죠. 밭주인이 흔쾌히 허락을 해서 허브를 키우기 시작했는데, 씨 뿌려 놓으면 잡초 빼는 것 외엔 할 일이 그리 없어서 비는 시간엔 파트너와 낚시도 가고, 아침에 애들 어린이집에 손잡고 데려다주는데 사는 게 이런 거구나 하고 행복해지더라고요.” ‘도시 농업’이라는 문화 콘텐츠로
물론 처음에는 서울에서 귀농한 그에게 텃세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이 섬사람들의 생활방식이자 역사라는 생각에 이르게 됐고, 네 식구가 제주 사람으로 산 것도 어느덧 4년째다. 이 대표는 현재 ‘허브올레’라는 같은 이름의 펜션도 운영 중인데, 제주 귀농에 성공한 서울 사람으로 소문이 나면서 펜션에는 순수 여행을 목적으로 오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의 귀농 스토리를 통해 한 수 배워보고자 찾는 이들도 많다. 예의 각종 허브가 마당을 가득 채우고 있는 펜션에서 이 대표의 아들 나무와 딸 열매는 손님들에게 허브의 이름과 특징을 설명해주기도 한다. 처음엔 제주 바람에 감기를 달고 살던 아이들도 어느새 허브를 키우고 말도 타며 제주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성재도 볼 겸 바람 쐬러 한 번 내려온 적이 있는데, 몇 년 만에 보는 후배 얼굴이 새까맣게 변해 있더라고요. 제가 보자마자 ‘아이고, 성재야’ 그랬다니까요. 그런데 앉아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제 생각과 많이 다르다 싶었고, 허브가 사업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판단이 섰어요. 그래서 성재를 비롯해 이사회 멤버들을 만나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했죠.”
윤석원 이사의 진행은 일사천리로 이뤄졌고, 2010년 9월에 드디어 법인 등록을 마쳤다. 사업적 밑그림을 탄탄하게 그리고 시작했던 이들은 해외 허브 관련 박람회 참여에 주력했다. 최근 1년간 8차례나 박람회에 참석했는데, 지난해에는 제주도 과제사업 기업으로 허브올레가 선정되면서 ‘제주산업 클러스트’의 일원으로 공동 마케팅도 한창이다. 뷰티·향장을 주력사업으로 정한 제주도의 비전과 허브올레의 비전이 일치했던 것. 어반파머스는 현재 수입품 일색인 국내 허브 시장에 제주산 허브의 프리미엄급 이미지로 정면 승부하겠다는 계획으로 올해 안에 제주 지역에 허브올레 숍 3~4개를 개장, 제주 관광 콘텐츠로 육성하는 전략을 갖고 있다. 현재 미국, 중국 등 동남아 국가를 대상으로 수출도 추진 중인데 매월 20~30%의 매출 성장 곡선을 유지하고 있는 어반파머스는 올해 연 매출 20억 원을 예상하고 있다. “어반파머스에 이어 지스토리를 시작한 것은 도시인들에게 문화로서의 농업을 전파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였어요. 단순한 식물 재배보다는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이 강하죠. 최근 미국에서는 ‘GIYO(Grow It Yourself Organically)’라는 신조어가 등장했어요. 자기가 먹을 채소를 유기농 방식으로 직접 재배한다는 뜻이죠. 생산량이 적더라도 직접 길러 먹는 새로운 도시형 농업 문화랄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이른 감도 없지 않지만 문화 콘텐츠로 꾸준히 마케팅할 예정입니다. 지스토리는 현재 유기농 식물 재배기 개발을 끝내고 상용화를 앞두고 있어요.”
친형의 친구인 윤석원 이사와 차 한 잔을 나누며 시작된 새로운 비즈니스에 흠뻑 빠져 있는 김태섭 이사의 설명이다. 1박 2일간 진행된 인터뷰를 통해 이들에게 발견한 공통점이 있으니 첫째는 이들 모두가 ‘땅’을 밟고 사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둘째는 서로가 서로를 만나 일을 함께 하게 된 것을 ‘운이 좋다’고 여기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는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창의적 인간형’의 조합이라는 점이고, 넷째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돈’을 좇아 일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조항에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을 운운하는 이들을 두고 너무 막연한 것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들의 꿈이 20대의 그것과 다른 것은 세상의 이치를 어느 정도 깨달은 중년들의 꿈이란 사실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는 팍팍한 삶의 주인공이 당신이라면, 이들의 이야기가 조금은 힘이 돼 줄지도 모를 일이다. 꿈을 멈추지 않는 그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선하고, 펜션 정원을 휘감아 돌던 허브 숙성 제주 흑돼지 바비큐의 향이 아직도 코끝에 생생하다.
제주도=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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