홋카이도(北海道) 니세코 지역 사람들에게는 두 개의 후지산이 존재한다. 하나는 일본 야마나시(山梨) 현 남부에 걸쳐 있는 진짜 후지(富士·3776m) 산이고, 또 다른 하나는 홋카이도 남서부에 우뚝 솟아 있는 에조 후지(蝦夷富士) 요테이(羊蹄·1893m) 산이다. 본토의 진짜 후지산을 보지 못했던 니세코 사람들은 요테이산을 보면서 후지산을 상상했다고 한다.

사시사철 천혜의 자연과 원시림을 거느리며 드넓은 대지를 호령하듯 홀로 서 있는 요테이산의 모습은 당당하다. 새벽에 눈을 뜨고 해가 질 때까지 요테이산과 니세코 사람들은 늘 하나다. 그래서 그들은 집을 짓고 리조트를 짓고 무엇을 하든지 요테이산이 보이는 쪽으로 터를 잡고 창을 낸다. 그렇듯 요테이산은 니세코 사람들에게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산이다.
백자작나무와 어우러진 빌리지 코스와 요테이산.
백자작나무와 어우러진 빌리지 코스와 요테이산.
니세코의 또 다른 자랑거리는 니세코 안나푸리다. 지난 겨울 세계의 스키 마니아들을 한데 불러 모았던 안나푸리는 80여 개가 넘는 슬로프에서 100만에 가까운 스키어들의 질주 본능을 깨우고 설원의 사랑과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슬로프의 제왕이다.

이제 계절이 바뀌어 설원을 질주하는 스키어들의 멋진 활강은 볼 수 없다. 그러나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 듯 산을 따라 길게 도열한 곤돌라의 모습이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은 자의 비장함을 느끼게 한다. 끝나지 않은 전장은 포연을 품어내듯, 안나푸리 봉우리는 하얀 잔설을 머리에 이고 니세코를 내려다보고 있다.

봄을 지나 초여름이다. 슬로프 위에는 꽃이 피고 지고, 신록은 점점 짙어졌다. 높은 설산들이 겨울 시즌을 풍미했다면 이제는 숲이 우거지고 물이 흐르는 나지막한 대지의 계절이 온 것이다.

그중 단연 으뜸은 요테이산과 안나푸리 사이에 자리한 ‘힐튼 니세코 빌리지’다. 원래 일본 세이부 그룹 프린스호텔 계열 소유였으나 일본의 장기 침체로 말레이시아의 최대 상장 기업인 YTL 그룹으로 소유권을 넘겨줘야 했다. 도쿄돔 14배 크기의 대자연에 펼쳐진 이곳에는 니세코 빌리지 골프장, 니세코 골프장과 함께 승마, 트리트레킹, 플라이낚시, 패러글라이딩, 테니스 등 16가지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어드벤처 파크 ‘퓨어(PURE)’가 있다. 백자작나무 사이로 펼쳐진 ‘니세코 빌리지 골프 코스’ 와 ‘니세코 골프 코스’는 원시림 같은 자연 속에서 즐기는 힐링 코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나푸리 눈 녹은 물이 계류를 따라 흐른다.
안나푸리 눈 녹은 물이 계류를 따라 흐른다.
두 코스 모두 아놀드 파머가 디자인한 코스다. 빌리지 코스는 18홀로 파6 한 홀을 포함, 파73 전장 6845야드, 니세코 코스는 18홀 파72 전장 6805야드로 페어웨이와 그린 모두 양 잔디가 식재돼 있다. 호텔 바로 앞에 펼쳐진 빌리지 코스는 완만한 대지 위에 그려졌으며 모든 홀과 홀 사이는 수천 그루의 백자작나무가 그린과 물로 어우러져 한 홀 한 홀 한 폭의 그림 같은 코스다. 카트를 직접 타는 셀프 플레이로 페어웨이까지 진입이 가능하고 거리는 거리 목을 보면서 그린을 공략해야 한다. 그린의 핀 위치는 깃대에 작은 깃발을 달아 뒤핀일 때는 위쪽에, 앞핀일 때는 아래쪽에 달아 놓는다.

이 코스와 처음 만나면 코스가 주는 편안함이 느껴져 비기너부터 상급자 모두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상급자의 경우 조금 욕심을 내 막상 코스에 들어가면 페어웨이가 넓어 보이긴 하지만 양쪽으로 펼쳐진 자작나무 사이로 공이 들어가면 레이 업 하지 않고서는 그린 공략이 거의 불가능하다.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는 장타자보다는 단타자지만 정확성이 높은 골퍼에게 아주 유리한 코스다.

만약 요행수를 바라면서 나무 사이로 조금 보이는 그린을 노린다면 그 무모함에 스코어는 산산이 부서져서 돌아올 것이다. 그린은 언듈레이션이 심하진 않지만 조금 딱딱한 편이며 작은 경사가 곳곳에 있어 퍼팅하기가 녹록지만은 않다.

특히 제주도에서 퍼팅을 할 때 한라산 방향을 고려하는 것처럼 이곳의 그린 잔디는 모두 요테이산을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심한 내리막처럼 보이는 라이라도 그대로 보고 치면 거의 대부분 짧게 떨어져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인코스 10번 홀은 파6 홀로 721야드가 넘는다. 곧게 쭉 뻗어 있는 페어웨이와 까마득히 멀리 보이는 그린은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게 만든다. 포온투(4-on-2) 퍼팅은 필수고 스리온투(3-on-2) 퍼팅은 모험이다. 스리온 모험에 도전하려면 적어도 티샷이 280야드 이상을 날아가 페어웨이에 온전하게 안착해야 가능하다. 만약 조금이라도 좌우측으로 밀리거나 당겨지면 워터해저드와 원시림으로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
페어웨이 주변 백자작나무 숲.
페어웨이 주변 백자작나무 숲.
‘니세코 빌리지 코스’가 다소 평이하다고 느낀 골퍼라면 ‘니세코 골프 코스’를 적극 추천한다. 호텔에서 15분 정도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이 코스는 산악 지형을 그대로 살려 만들어진 전형적인 마운틴 코스다. 전장은 길지 않지만 내리막과 오르막이 심하고 멀리 보이는 산하를 보고 티샷을 날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드라이버가 자신 있는 골퍼라면 네 개의 파5 홀에서 숏 컷으로 공략한다면 투온이 가능하다. 그린은 빌리지 코스에 비해 2단, 3단 언듈레이션이 있고 페어웨이 양 옆은 백자작나무와 전나무가 길게 늘어서 있다. 빌리지 코스가 매홀 요테이산을 바라보면서 라운드를 했다면 니세코 골프 코스는 안나푸리 연봉을 보면서 라운드를 즐길 수 있다.

아직 봉우리에 잔설이 남아 손에 잡힐 듯 펼쳐진 안나푸리는 라운드하는 골퍼에게 도무지 집중을 못하게 할 만큼 멋지다. 코스 주변에는 이름 모를 꽃이 만발하고 건너편 산꼭대기에는 아직 겨울이 머물고 있는 풍광이 아름답다. 이럴 때는 잠시 주변 풍광에 매료되는 것도 라운드의 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퍼터를 내려놓아도 좋을 듯싶다. 그렇다고 안나푸리만 보이는 건 아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니 요테이산은 더 잘 보인다.
니세코 코스 16번 홀 그린에서 본 안나푸리.
니세코 코스 16번 홀 그린에서 본 안나푸리.
왼쪽은 안나푸리, 오른쪽은 요테이산이다. 봉우리에 잠시 구름이라도 쉬어 가면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그려내는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특히 14번 홀 그린과 16번 홀 그린에서 바라다보는 안나푸리의 모습과 6번 홀 티박스에서 보는 요테이산의 모습이 최고의 백미다. 함께 동행한 이는 설산과 백자작나무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러시아의 여느 골프장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고 감탄한다.

니세코 빌리지 코스와 니세코 코스에서 즐기는 라운드는 다소 무미건조했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내 몸의 세포를 하나하나 깨우는 일이다. 이제 무덥고 후덥지근한 삼복더위가 다가온다. 잠시 시간을 내어 홋카이도 니세코 빌리지를 정원 삼아 마음의 여유를 찾는 것은 어떨까.
요테이산이 보이는 노천탕.
요테이산이 보이는 노천탕.
라운드를 마치면 호텔 1층에 있는 노천탕이 우릴 기다린다. 하루의 피곤함을 요테이산이 정면으로 보이는 노천탕에서 말끔히 풀어내야 한다. 발그레 달아오른 몸을 노천탕과 연못 사이 턱에 걸치고 앉아 석양이 비치는 요테이산을 바라보노라면 세상의 온갖 시름을 잊을 수 있다.
이때를 놓칠세라 올 누드(?) 몸매를 연못 잉어들이 힐긋 힐긋 엿보며 눈요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물을 한 주먹 냅다 뿌려 보지만 뭐 볼 것이 있다고 자꾸 다가온다. 바로 그때 뒤쪽에서 또 뜨거운 눈길이 부담스럽다. 훌훌 벗고 있는 남자들만 있는 곳에 태연하게 청소하는 할머니가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한다. 이를 두고 누구는 “내 알몸을 할머니에게 보여주는 게 나는 싫습니다. 이건 너무 일방적이지 않습니까” 하며 웃는다.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조식.
가볍게 먹을 수 있는 조식.
이제 온천이 끝나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일이다. 2층 멜트(MELT)에 마련된 뷔페식은 한국인 입맛에도 잘 맞는다. 니세코의 풍부한 물과 넓은 대지에서 자라는 식재료를 사용해 만드는 음식은 신선하고 맛이 좋다. 전통적인 일본 요리와 농업과 낙농업이 발달한 홋카이도답게 감자요리, 유제품류, 옥수수, 그리고 치즈 덩어리 위에 버무린 스파게티까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많다. 특히 신선한 요거트에 블루베리 한 스푼을 올려 비벼 먹는 새콤달콤한 요거트 프루츠 맛은 단연 일등이다.

일본 골프닷컴·호도레포츠 김동원 이사는 공항과 조금 떨어져 있다는 것이 핸디캡이지만 “도심에 비해 시간이 좀 걸리긴 해도 그만큼 원시림 같은 천혜의 자연 속으로 들어가 라운드를 즐기며 심신을 힐링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니세코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
니세코 사람들의 일하는 모습.
요테이산 아래 마을.
요테이산 아래 마을.
퓨어에 있는 트리트레킹.
퓨어에 있는 트리트레킹.
힐튼 니세코 빌리지를 찾은 일본 관광객 가족.
힐튼 니세코 빌리지를 찾은 일본 관광객 가족.
목장과 어우러진 요테이산.
목장과 어우러진 요테이산.
홋카이도=사진·글 이승재 기자 fotolee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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