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올 7월 26일부터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이하 근퇴법) 개정안이 시행된다. 근퇴법 개정안은 퇴직연금제도 도입 5년 만에 이뤄진 전면 개정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퇴직연금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북소리라 할 만하다. 이른바 퇴직연금 2.0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Retirement Pension] 퇴직연금 2.0시대의 5대 관전 포인트
근퇴법을 전면 개정하게 된 취지는 근로자 수급권 강화, 퇴직연금의 확산 촉진, 퇴직연금의 연속성 강화, 퇴직연금제도의 유연성 확대, 퇴직연금제도의 운영과 시장건전성 제고 등 다섯 가지다. 이 다섯 가지 기본 방향 속에는 많은 새로운 내용들이 담겨 있다. 여기서는 퇴직연금 2.0시대가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관전 포인트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살펴보도록 하자.

근퇴법 승패의 핵심은 IRP의 안정적인 정착

첫 번째 관전 포인트는 개인형 퇴직연금제도(IRP)의 향배다. IRP는 기존 개인퇴직계좌(IRA)의 단순한 계승에 그치지 않고 퇴직연금제도의 한 축으로 자리 잡게 됐다. 기존 IRA의 급여 통산성 기능이 강화됐을 뿐 아니라 확정급여형(DB형) 가입자와 자영업자도 IRP에 가입할 수 있도록 문호가 활짝 열렸다. IRA의 경우는 퇴직연금 급여를 받은 근로자만 그 퇴직급여를 IRA 계좌로 이전할 수 있으나, IRP에서는 퇴직급여를 받은 근로자는 물론 DB형 가입자와 확정기여형(DC형) 가입자도 IRP 계좌를 개설해 추가 납입을 할 수 있게 됐다.

특히 퇴직연금 가입자가 재직 시 발생한 퇴직급여를 퇴직 시 의무적으로 IRP 계좌로 이전하도록 한다는 점은 IRP 시장의 급속한 성장을 예견케 한다. 우리나라 근로자가 한 기업에서 근속하는 평균 기간이 채 6년이 되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론적으로는 적어도 6년 만에 퇴직연금 가입자 모두가 IRP 계좌를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다 현재 퇴직연금의 대세를 이루고 있는 DB형 가입자들까지 재직 중에 IRP 계좌를 통해 추가 납입할 수 있다는 점과 비록 5년 뒤부터이긴 하지만 자영업자의 가입도 가능하게 됐다는 점이 IRP 대세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러나 IRP 대세론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큰 산이 있다. 바로 퇴직급여를 IRP로 이전했다 하더라도 해지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IRP 계좌를 계속 유지하면 운용수익에 대한 과세이연 효과를 누릴 수 있지만, 이것이 현금 수요라는 욕망을 억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이는 매우 중요한 제도적 허점이 아닐 수 없다. 퇴직금 중간정산 요건 설정과 IRP로의 강제 이전에 대한 불만이 광범위하게 형성돼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IRP로의 이전 이후에 자유로운 해지는 자칫 IRP의 대세론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크다. IRP가 과연 대세론에 힘입어 승승장구할지 아니면 실망만 안겨주는 것으로 귀결될지는 개정 근퇴법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퇴직연금 2.0호의 순항을 위해서는 복수사용자 플랜이 은행의 배만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애초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두 번째 관전 포인트는 신설된 퇴직연금 모집인제도가 순조롭게 정착될지 여부다. 근퇴법 개정 과정에서 모집인제도는 가장 많은 논란거리였다. 업권 간 형평성 및 핵심 역할을 할 보험설계사의 불완전 판매 가능성을 제대로 제어할 수 있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집인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것은 보험설계사를 통한 퇴직연금 모집 활동을 양성화하고, 중소사업장으로의 퇴직연금 확산이라는 정책적 판단 및 필요성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설계사들은 이미 근퇴법이 개정되기 이전에도 퇴직연금 모집 활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이러한 제도권 밖 모집 활동은 비록 불법은 아닐지라도 가입자 보호 측면에서는 결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퇴직연금 시장에서 중소사업장의 소외는 퇴직연금 본연의 목적을 크게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인력과 자원에 한계가 있는 사업자들 입장에서 중소사업장은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물론 30인 이하 사업장으로 업무 범위가 확장되는 근로복지공단에 기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모집인을 배제한 채 근로복지공단에 일임하는 경우에는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공공부문에 의한 사실상 독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집인제도의 순조로운 정착 여부는 퇴직연금 2.0호의 순항을 가늠하는 중요한 바로미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근로자 수급권 강화안의 효과도 관전 포인트

세 번째 관전 포인트는 근로자 수급권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순기능을 할지 여부다. 개정 근퇴법에서는 DB형의 운영 기준 강화와 DC형의 미납금 지연이자 부과를 핵심 내용으로 하는 근로자 수급권 강화안을 담고 있다.

DB형의 경우는 사업연도 종료 후 6개월 내에 재정 검증을 실시하고, 그 결과 자산이 최소 적립금의 100%에 미달하게 되면 근로자 대표에게 통보하고, 95%를 미달하게 되면 재정안정화 계획서를 작성해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에서 코스닥 상장기업 79개사의 재무 상태를 분석해본 결과, 2010년 현재 퇴직급여의 사외 적립 비율이 80% 이상인 기업은 18%에 불과한 반면에, 60% 미만인 기업은 26%나 됐다. 이런 상황에서 추진되는 DB형의 적립금 운영기준 강화는 기업의 사외 적립 및 행정 업무 부담의 증가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편 DC형의 미납금에 대해 지연이자를 부담시키는 것은 가입자 보호 차원을 떠나 금융 거래 차원에서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DC형을 도입한 사용자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이유로 근로자 수급권 강화 방안은 시행 초기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된다. DB형의 사외 적립 비율과 최소 적립 수준의 제고, DC형의 납입금 지연 현상 축소는 개정안이 간절히 바라는 바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담을 이유로 사용자들이 퇴직연금을 기피한다면 다시 퇴직금 시대로 회귀하는 기현상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근로자 수급권 강화를 위한 조치들이 퇴직연금 본연의 역할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작용할지 여부는 퇴직연금 2.0시대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 이슈의 하나가 아닐 수 없다.

네 번째 관전 포인트는 새로운 제도로서 도입되는 복수사용자 DC형이 어떤 모습으로 전개될지 여부다. 복수사용자 DC형은 중소사업장의 업무 처리 간소화와 수수료 절감을 기대하며 도입된 새로운 퇴직연금제도다. 퇴직연금사업자가 같은 플랜을 만들어 감독당국으로부터 인가를 받고, 그 후에 불특정다수의 기업을 이 플랜에 가입시키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개별 기업별로 특화된 설계를 하는 DB형이나 일반적인 DC형과는 다른 일종의 기성품 플랜이라 하겠다.

이런 플랜이 당초 기대대로 수수료 절감의 희망을 품고 중소사업장으로 순조롭게 확산될 것인지, 아니면 일부의 우려처럼 은행의 영향력만 키워주는 쪽으로 작용할지는 퇴직연금 2.0시대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퇴직연금 2.0호의 순항을 위해서는 복수사용자 플랜이 은행의 배만 불리는 데 그치지 않고 애초의 정책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하다.

마지막 다섯 번째 관전 포인트는 퇴직금 중간정산 사유 제한이 근로자의 은퇴자산 축적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 쪽으로 작용할 것인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금까지는 퇴직금에 대해서만은 중간정산에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그러나 개정 근퇴법에서는 퇴직금 중간정산에 대해 퇴직연금의 중도 인출 사유 제한 수준의 제약을 설정해두고 있다. 이로 인해 퇴직금이 중간정산 되지 않고 고스란히 퇴직연금으로 전환된다면 근로자의 퇴직급여는 큰 폭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위장 퇴직 후 재입사 등 편법이 기승을 부린다면 그 효과는 반감될 수 있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