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헌

작가 여동헌은 ‘파라다이스’ 연작을 통해 부정과 분쟁이 사라진 진정한 천국의 모습을 유머러스한 이미지와 강렬한 원색으로 선보여온 작가다. 2009년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실버선장의 보물 상자’라는 새로운 연작을 살짝 선보인 그가 실버선장 이야기를 들고 다시 우리 곁을 찾았다.
[Artist] 천국, 혹은 만화 같은 세상에 대한 오마주
보물지도 한 장에 의지해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보물을 찾아 돌아온다는 이야기는 어린 시절 누구나 한번쯤 꿈꿔본 원초적인 플롯이다. 로버트 스티븐슨 원작의 ‘보물섬’은 바로 그 보물지도와 보물섬에 관한 판타지를 가장 극적으로 전해준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보물섬’에 등장하는 실버선장은 악행을 일삼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지닌 정체불명의 사나이다. 작가 여동헌은 2012년, 이제는 잊힐 법도 한 ‘보물섬’의 그 실버선장과 함께 우리 곁을 찾았다.

판화에서 회화로 전향한 이유

실버선장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는 단순하다. 15년 넘게 e메일 주소를 실버선장으로 할 만큼 그는 실버선장을 좋아한다. 실버선장이 보물을 찾아 떠난 것처럼,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자신을 찾아 내면으로의 긴 여행을 떠났다고 했다. 그림에 여 작가와 그의 아내, 물감, 붓, 그가 좋아하는 자동차와 동물 등이 숨은 그림처럼 자리 잡은 이유도 그들만큼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소재도 없기 때문이다.

‘파라다이스’ 연작을 정적인 풍경화에 비유한다면 ‘실버선장’ 시리즈는 동적인 에너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이전과 달리 에너지가 샘솟는 듯했다. 그 덕에 온몸으로 작업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파라다이스 시티 5’, 2009년, 아크릴화, 62×91cm
‘파라다이스 시티 5’, 2009년, 아크릴화, 62×91cm
갤러리에서 만난 여 작가는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서인지 표정이 밝았다. 2007년 ‘웰컴 투 파라다이스’ 이후 그는 평단의 호평과 함께 많은 컬렉터들의 사랑을 받는 작가다.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적잖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대학 시절 그의 전공은 판화였다. 예나 지금이나 판화는 한국 미술 시장에서 마이너다. 간혹 중견 작가들이 기획전으로 판화를 선보일 뿐 국내에서 판화만 주력하는 작가는 몇 안 된다.

그런 환경에서 대학 졸업 후 전업 작가로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들어간 회사가 골프장 설계사무소였다. 그곳에서 그는 우드락을 이용해 설계도면대로 모형을 만드는 일을 했다.
‘실버선장의 보물상자 6’, 2011년, 아크릴화, 112×162cm
‘실버선장의 보물상자 6’, 2011년, 아크릴화, 112×162cm
“생각보다 그 일이 재밌었어요. 거기서 착안해 시작한 게 입체 판화였습니다. 설계사무소를 8, 9개월 다니다 판화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께 ‘1년만 미술을 하겠다’고 설득해 허락을 받았죠. 다행히 여기저기서 상도 받고 반응도 좋아서 계속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판화를 계속하면서 여러 한계와 제약에 부딪히게 됐다. 우선 판화는 크기와 표현에 제약이 따랐다. 경제적인 어려움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작품이 제법 팔렸지만 작업시간이 많이 들어 1년에 다섯 작품 이상 한 적이 없을 정도로 한계가 있었다.
[Artist] 천국, 혹은 만화 같은 세상에 대한 오마주
작가 여동헌을 있게 한 리히텐슈타인

그는 10년간 매달렸던 판화를 접고 회화로 전향했다. 어쩔 수 없이 회화를 선택했지만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고등학교 때는 조소를, 대학에서는 판화를 했기 때문에 붓 잡는 게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붓과 물감을 대하는 게 굉장히 두려웠습니다. 더구나 판화는 알던 선생님, 거래하던 갤러리가 있었지만 회화 분야에는 연고가 전혀 없잖아요.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마음속의 스승이 있었다는 점이다. 리히텐슈타인이 바로 그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바로 리히텐슈타인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겁니다. 호암미술관에서 뉴욕 현대미술전이 있었는데, 거기서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만났습니다. 어려서부터 만화를 좋아했는데, 그게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 길로 아버지를 졸라서 미술학원에 등록했으니까요.”

그는 리히텐슈타인 파운데이션에 존경의 표시로 그의 작업을 하고 싶다는 e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회화로 전향한 그가 리히텐슈타인의 스토록 작업을 하게 된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러나 회화로 전향하고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결혼까지 한 상황에서 경제적인 어려움과 무명작가로서의 설움 등이 복합적으로 그를 괴롭혔다. 2002년 그는 결국 도망치듯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다행히 파리 시내에 직장을 구한 그는 외곽에 터를 잡았다. 어렵게 살림을 이어가며 그는 파리와 파리 외곽의 다양한 풍경을 가슴에 담았다.

“파리에서 벨기에로 가기 위해 새벽에 길을 나설 때였어요. 야생 노루 몇백 마리가 평원에 떼 지어 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전율이 일더라고요. 아직도 그 장면이 생생한데 그때 감동이 동물 그림으로 이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파리 생활이 당시로서는 힘들었지만 제 그림에 자양분이 된 것 같아요.”
‘웰컴 투 파라다이스 37’, 2007년, 아크릴화, 193×97cm
‘웰컴 투 파라다이스 37’, 2007년, 아크릴화, 193×97cm
파라다이스 시리즈의 탄생 배경

2004년 2년여의 파리 생활을 마감하고 귀국한 그는 다시 그림에 매진했다. 2005년 인사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당시에 폭포와 펭귄 등을 선보였는데 꽤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그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체 중 조형적으로 가장 완벽하다고 믿는 ‘펭귄’작품은 많은 관객들의 관심을 받았다.

2005년 개인전이 인연이 돼 2006년 인사아트센터에서 다시 개인전을 가졌고, 2007년과 2009년 삼청동 아트파크에서 ‘웰컴 투 파라다이스’, ‘파라다이스 시티’전을 열었다.

파라다이스의 토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무던히도 힘들었던 그의 현실이었다. 워낙 어렵게 살다 보니까 그는 자신의 상황과 완벽하게 다른 것을 그리고 싶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현실을 잊고 싶었다. 예전 이야기를 하며 그는 “지금도 울컥한다”고 했다.

그는 현실이 힘들수록 재밌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파라다이스는 그가 생각하는 절대적 행복의 표현인 셈이다. 반면 ‘실버선장의 보물 상자’는 그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다. 실제 그림 속에는 그의 주변에 항상 머무는 물감과 붓, 나이프 등과 그가 좋아하는 동물, 자동차 등을 찾을 수 있다.

“이번 전시가 끝나면 1년 정도 파리에 머물면서 다른 세상을 경험할 생각입니다. 2002년 파리에 갔을 때랑은 상황이 완전히 다르죠.(웃음) 그동안 에너지를 너무 빼서, 다시 채울 시간이 필요한 듯해요. 아내도 작가인데 설치작업을 하다 요즘은 사진을 하는데, 아내가 작업하는 데도 도움이 될 듯하고요.”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