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celona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현실인 곳이 있다.스페인 제2의 도시 바르셀로나. 그가 죽은 지 100년 가까이 됐건만, 여전히 바르셀로나는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의 물결이다. 생전에 만들어 놓은 건축물과 공원 등은 거의 모두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됐고, 그의 대표작인 ‘성 가족성당(La Sagrada Familia)’은 130년이 넘도록 여전히 공사 중이지만 매년 수백 만의 관광객을 바르셀로나로 불러들이고 있다. 누군가에게 바르셀로나는 축구의 도시고, 어떤 이들에게는 호안 미로를 배출한 예술의 도시지만, 절대다수의 여행자들에게 바르셀로나는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도시다. 1년에 250만 명이 방문한다는 ‘성 가족성당’은 이미 바르셀로나를 상징하는 건축물이 됐고, 카사 밀라, 카사 바트요, 구엘공원 등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는 ‘가우디표’ 작품들이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바르셀로나를 소개하는 관광 엽서 중 절반 이상은 가우디의 건축물을 담고 있으니,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들으면 좀 섭섭할지 몰라도, “도시 전체가 가우디를 팔아 먹고 산다”는 말도 과언은 아닌 듯싶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성 가족성당이다. 1883년 첫 삽을 뜨기 시작해 백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사 중인 성 가족성당을 찾아가면서 든 궁금증은 두 가지였다. 아니 지금이 중세도 아니고 무슨 건물 하나를 100년이 넘도록 짓고 있는가. 그리고 왜 1년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아직도 공사 중인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몰려드는가. 이런 의문은 성 가족성당을 둘러보자 쉽게 풀렸다. 이 정도 건물이라면 정말 100년이 넘도록 지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건물이라면 아무리 공사 중이라지만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을 불러들일 수 있겠구나.
가우디의 건물에는 직선이 없다. 건물의 외관뿐 아니라 기둥이나 창문, 작은 장식품 하나까지도 모두 나무와 하늘, 구름, 바람, 풀과 곤충을 닮았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건물이 가능할까. 옥수수를 닮은 독특한 외양의 성 가족성당 안으로 들어갔을 때, 내 눈앞에는 울창한 숲이 펼쳐졌다. 세상에, 이런 건축물이 가능하구나. 나무처럼 뒤틀려 자란 기둥은 하늘로 가지를 뻗었고, 천장은 거대한 돌 잎사귀로 가득했다.
왜 건축은 자연이 되면 안 되는가. 자연의 아름다움, 기능과 조화, 그리고 그것을 만든 이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사랑. 평생을 독신으로, 마지막 몇 년은 공사 현장 한 구석의 침대에서 먹고 자며 오로지 성 가족성당 건축에만 매달렸다는 가우디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듯했다. 외관부터 입구의 조각상들, 내부의 작은 이음새 하나도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 자연을 닮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거, 정말 100년 넘게 지을 만하다. 아무리 공사 중인 건물이지만 1년에 수백만씩 와서 볼 만하다. 도심 한복판에 물결 모양의 카사 밀라와 카사 바트요에서도 가우디의 개성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원래는 주택단지로 설계됐다는 구엘공원은 또 어떻고. 파도가 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회랑과 구불구불한 난간, 이곳의 상징이 된 도마뱀 조각은 마치 동화 속 마을에 들어온 느낌이다. 플라멩코와 마법 분수가 눈과 귀를 홀리다
물론, 바르셀로나에 가우디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스페인 미술, 아니 현대미술의 한 흐름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화가들이 바르셀로나에서 태어났거나 이곳을 예술적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다. 당연히 이들의 이름을 건 미술관이 모두 있으니 바르셀로나는 ‘예술의 도시’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 중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고딕양식의 피카소 미술관,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보이는 몬주익 언덕(MontJuic)에 자리 잡은 호안 미술관, 그의 작품처럼 기발하고 재미있는 모양을 한 달리 미술관을 찾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바르셀로나에서 눈만 호강하는 것은 아니다. 거리 곳곳에는 음악(그중에서도 스페인을 찾은 여행자들을 유혹하는 플라멩코)의 선율이 넘쳐난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가 본고장인 플라멩코는 음악과 춤이 하나를 이루는 퍼포먼스로 전문 공연장인 타블라오(Tablao)에서 즐길 수 있다. 정열적인 리듬을 자랑하는 기타,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멜로디가 인상적인 민요에 화려한 꽃무늬 레이스 옷을 입은 댄서의 한을 풀어내는 듯한 춤사위가 어우러진 공연은 언제 봐도 눈과 귀가 즐겁다.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오래된 타블라오 중 한 곳이라는 타란토스(Tablao de Tarantos)에서 매우 인상적인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기타는 고수, 싱어는 소리꾼. 서로 매기고 받는 노랫가락, 기타 장단이 판소리를 쏙 빼닮았다. 하지만 역시 플라멩고의 대표 선수는 댄서. 그의 발장단에 심장이 조마조마, 벌렁벌렁, 쿵쾅쿵쾅. 명불허전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20년 전 이곳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마라톤의 황영조가 금메달을 딴 몬주익 언덕의 ‘마법 분수(Font Magica de Montjuic) 쇼’는 바르셀로나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명물이다. 1929년의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거대한 분수는 환상적인 조명과 음악이 어우러져 ‘마법 분수’라는 이름을 얻었다. 지금도 여름 저녁 8시쯤이 되면 분수가 솟기 시작하고, 9시에는 조명이 들어와 9시 30분에서 11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10분 남짓씩 분수 쇼가 벌어진다. 어쩜 음악과 물살, 조명의 조화가 이리도 완벽할 수 있을까. 조명을 한껏 머금어 빛나는 물안개는 마치 형광액을 분사하는 듯 드라이아이스보다, 소프트아이스크림보다, 솜사탕보다 부드러운 군무(群舞)를 선보인다. 환상의 잔영을 남기고 사라지는 찰나의 아름다움. 어쩌면 여행이란 그런 것인지 모른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어찌 보면 “10만 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천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더 진실에 가까운 말일지 모른다. 바르셀로나에서 봤던 그 모든 아름다움-그림 같은 지중해 항구의 풍경, 밝고, 낙천적이고, 정열적인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내는 예술적 감성들-이 가우디의 작품 안에 압축적으로 혹은 가장 창조적으로 표현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가우디가 바르셀로나를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에게서 받은 것을 바르셀로나에게로 돌려주고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바르셀로나를 찾는 여행자들은 거기에 숟가락 하나를 더 얻는 셈이다. Barcelona info
How to Get There
아쉽지만 인천에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대한항공을 이용하면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로 가서 바르셀로나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비행 시간은 모두 13시간 정도 걸린다. 아시아나항공을 이용한다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경유해 바르셀로나에 도착한다. 이 밖에 에어프랑스, 루프트한자 등의 항공사를 이용해 바르셀로나에 갈 수 있다.
Where to Stay
세계무역센터 건물 안에 자리 잡은 유로스타 그랜드 마리나 호텔(Eurostars Grand Marina Hotel)은 바르셀로나 항구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이 포인트. 또한 관광 중심지인 람블라 거리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것도 장점이다. 람블라 거리에 위치한 로열 람블라스(Royal Ramblas), 바다 전망이 환상적인 매리어트 호텔(AC Hotel Barcelona Forum by Marriott) 등도 추천할 만하다. Another Site
바르셀로나에서 60km 떨어진 몬세라토는 철도나 승용차를 이용해 당일로 다녀올 수 있는 관광지다.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처럼 기암괴석들이 이어지는데, 가우디가 바로 여기서 건축적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성 가족성당을 연상시키는 돌산과 그곳에 그림처럼 자리 잡은 중세 수도원을 볼 수 있다.
글·사진 구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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