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9년에 설립된 볼랭저(Bollinger)는 뚜렷한 철학을 지향하던 그랑드 마르크(Grandes Marques: 대단히 명성이 높은 30여 개의 샴페인 하우스로 이루어진 조합)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샴페인 하우스다. 18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샴페인 볼랭저의 이야기다.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볼랭저 샴페인은 007 시리즈에 자주 등장해 ‘007 샴페인’으로도 불린다.
볼랭저 샴페인은 007 시리즈에 자주 등장해 ‘007 샴페인’으로도 불린다.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볼랭저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볼랭저 가문이 100% 소유하고 운영하는 몇 안 되는 샴페인 하우스다. 볼랭저는 직접 소유하고 있는 그랑 크뤼(Grand Cru)와 프리미에 크뤼(Premier Cru) 포도밭들로 유명하다. 볼랭저는 자가 공급하는 포도의 비율이 가장 높은 샴페인 하우스 중 하나이기도 한데, 생산하는 샴페인의 3분의 2는 이곳에서 재배한 포도로 만든다.

볼랭저는 또한 전통 방식에 따라 샴페인을 만드는 것으로 유명한데, 피노 누아와 샤도네이 품종만을 사용해 오크통에서 발효시킨다. 그리고 샴페인을 효모와 최대한 오래 접촉시키는데, 이렇게 효모와 접촉하는 시간이 길수록 샴페인의 신선함을 보존하며 동시에 기포 발생에도 도움이 된다.



오크통 숙성을 거치는 거의 유일한 샴페인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전통 방식을 여전히 고수하는 세계적인 샴페인 하우스 볼랭저의 역사는 182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Ay) 지역에서 저명한 두 사람, 빌레몽트(Villermont)의 백작이며 랭스(Reims) 산의 포도밭을 소유한 해군장성 아타나제 루이 에마뉘엘(Athanase-Louis-Emmanuel)과 그의 사위인 자크 조제프 볼랭저(Jacques-Joseph Bollinger)의 파트너십에서 출발했다.

설립자의 증손자인 자크 볼랭저가 1918년에 하우스를 물려받았을 때에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생산자로 명성이 높았으며 볼랭저 스타일은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많은 열성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었다.

1941년, 이른 나이에 임종을 맞은 자크 볼랭저는 명성 높은 샴페인 사업을 아내인 마담 릴리 볼랭저(Madame Lily Bollinger)에게 물려주었다. 남편에게서 사업을 물려받은 그녀는 가족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늘 자전거를 타고 볼랭저의 포도밭을 돌았으며, 포도주 생산의 모든 단계를 꼼꼼히 살피는 한편 하우스의 국제적인 자산을 관리했다.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이 잠들어 있는 볼랭저의 지하 저장고.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이 잠들어 있는 볼랭저의 지하 저장고.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이렇게 대를 물려 열정을 이어온 볼랭저에서 생산되는 모든 와인들은 블랑 드 누아(blanc de noir) 스타일로 만들어져 향과 맛이 풍부하고 힘이 느껴진다. 통상 샴페인을 만들 때 피노 누아가 30% 내외 들어가지만, 볼랭저는 피노 누아를 60% 이상 가미해 오랜 숙성을 가능케 함으로써 깊고 긴 맛을 자아낸다. 특히 첫 번째 압착에서 나온 퀴베만을 사용하고 생산량의 87% 정도를 그랑 크뤼와 프리미에 크뤼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만으로 빚어내 품질이 뛰어나다. 보통 포도를 압착했을 때 퀴베로 얻을 수 있는 양은 절반에 불과하다.

볼랭저는 또한 오크통에서 발효시키는 마지막 샴페인 하우스다. 오크 배럴의 발효는 와인의 품질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오크 숙성은 탱크에서 숙성하는 것보다 100배가량 비용이 더 드는 게 흠이지만 품질에서 상당한 차이를 만들어낸다. 더 나아가 최소한 3년(스페셜 퀴베)에서 5년(그랑 아네) 동안 볼랭저의 와인 셀러 안에서 숙성된 후 출하하기 때문에 마시기에 적절해 볼랭저 스타일은 미식 비평가와 트렌드 세터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영국 왕실 최초로 왕실 조달 허가증을 받은 샴페인 하우스

이 같은 노력에 힘입어 볼랭저는 일찍이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으로 지정됐다. 볼랭저는 1884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영국 왕실에 샴페인을 공급하는 지정처로 선정돼 왕실 조달 허가증(royal warrant)을 부여받았는데, 이는 샴페인 하우스 중 최초다. 아직까지도 영국 왕실의 공식 샴페인 중 최고 등급 와인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981년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식 연회 때에도 사용된 바 있다.
오랜 숙성을 거쳐 탄생한 볼랭저는 최고급 품질을 자랑한다.
오랜 숙성을 거쳐 탄생한 볼랭저는 최고급 품질을 자랑한다.
에드워드 7세 또한 볼랭저 샴페인을 매우 사랑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사냥을 갈 때도 항상 볼랭저 샴페인을 챙겼는데, 사냥을 하면서 “그 특별한 샴페인을 가지고 오라(give me the special cuvee)”며 자주 볼랭저를 찾았다. 이를 기념해 볼랭저사는 1911년부터 그들의 넌 빈티지 샴페인에 ‘볼랭저 스페셜 퀴베 브뤼(Bollinger Special Cuvee Brut)’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볼랭저는 또한 영화 007 시리즈에서 제임스 본드가 가장 사랑한 샴페인으로도 유명하다. 2002년에 개봉한 ‘007 어나더데이’에서 감옥을 나온 제임스 본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볼랭저를 맛보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볼랭저는 일명 ‘제임스 본드 샴페인’이라고도 불린다. 2006년작 ‘로얄 카지노’를 포함해 총 12편의 시리즈에 볼랭저 샴페인이 등장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볼랭저의 유명세는 이뿐 아니다. 007 시리즈 훨씬 이전인 미국 제3대 대통령이자 미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던 ‘토머스 제퍼슨’, 그 역시도 1788년 프랑스 샹파뉴를 방문했을 때 볼랭저를 샹파뉴 최고의 와인으로 칭했다. 현재 그가 마신 것과 같은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볼랭저 샴페인 중 하나인 ‘볼랭저 그랑 아네(Bollinger Grand Annee)’를 만들고 있다.
[Wind Story] 007이 사랑한 영국 왕실 공식 샴페인 볼랭저
최근 볼랭저는 여기에 또 하나의 명성을 더했다. 프랑스 정부에서 인정하는 ‘현존하는 문화유산(Living Heritage Company in French, EPV)’에 볼랭저를 등재한 것이다. EPV(Entreprose du Patrimoine Vivant)란 프랑스 기업 중 뛰어난 기술력과 전통, 장인 정신을 바탕으로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기업들에 제공하는 상으로 볼랭저는 1등급 포도밭에서 수확, 오크 숙성, 매그넘 병에 리저브 와인을 보관하는 등 최상의 방법으로 샴페인을 생산해 이 상을 받았다.

샴페인 하우스 중 EPV 라벨을 획득한 것은 볼랭저가 최초다. 이로써 볼랭저는 프랑스 샴페인의 대표 생산자로 전 세계에 프랑스 샴페인의 우수성을 알리는 전도사로서 역할을 하게 됐다. 볼랭저는 자연친화적 생산자 인증인 ‘High Environmental Value(HEV)’ 또한 프랑스 와인 생산자 최초로 획득함으로써 자연친화적 생산자의 선구자로 전 세계의 인정을 받게 됐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제공 신동와인(www.shindongw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