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쩌둥(毛澤東)은 1949년 지금의 베이징 톈안먼(天安門)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을 선언하면서 중화민국의 뒤를 잇는 새로운 국가를 탄생시켰다. 중화인민공화국 이전은 1912년 탄생한 중화민국이며 그 전은 1644년부터 시작해 270년간 중원과 외곽을 아울렀던 청제국이 중국의 주인이었다.

[스토리 경제학] 세계를 지배한 청나라와 지금의 한국
청나라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대제국이었으며 중국의 내지라고 부르는 중원(中原: 한족 본래의 생활 영역이자 중국의 중심부인 황허강 중하류 유역) 지방에서부터 중국의 동북 지역, 내몽고 지역, 신장위구르 지역, 티베트 지역을 아우르는 넓은 영토의 다민족 국가를 형성하고 있었다. 청나라는 기, 한, 번이라는 세 가지 통치 구조를 통해 누르하치의 후손들이 지배했다.

누르하치는 1616년 건주여직의 군주로서 중국 동북부에 산재해 있던 여진족을 통일하면서 한의 지위에 오르는데 그가 청태조다. 초기의 청은 아이신이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금’이라는 의미를 가졌기에 우리는 후금이라고 부른다. 후에 누르하치는 팔기군(八旗軍)이라는 강력한 군사력을 등에 업고 명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며 중원으로 진출하게 된다.

그 이후 청나라는 태종 홍타이지와 그의 아들 순치제, 강희, 옹정, 건륭제 등을 거치며 전성기를 구가한다. 한족, 몽고족, 티베트족, 위구르족까지 지배하던 청조는 건륭제 이후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백련교도의 난과 서구열강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함과 동시에 태평천국의 난이라는 내부적인 분란을 겪게 된다. 서태후의 등장과 함께 수렴청정의 극을 맞본 청조는 마지막 황제 부의를 남겨두고 신해혁명(辛亥革命)과 함께 멸망한다.



청조가 중국에 남긴 세 가지 무형자산

비록 청조는 멸망했으나 지금의 중국은 청나라로부터 세 가지 중요한 무형자산을 물려받았다. 하나는 지금의 공식 언어인 베이징어(北京語)이며, 둘째는 중국의 정식 만찬인 만한전석(滿漢全席)이고, 셋째는 중국 여인의 복장을 상징하는 치파오(旗袍)다. 그 외에도 많은 유산이 있지만 세 가지 유산은 특히 눈에 띄기에 좀 더 살펴보고자 한다.

베이징어는 흔히 보통어라고 불리며 영어로는 만다린으로 불린다. 베이징어는 베이징지방에서 사용하는 언어를 지칭하며 중국의 공식 언어로서 내외부적으로 통용되는 언어다. 다민족 국가인 중국으로서는 통일된 하나의 공식어가 필요했고 현재 베이징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만한전석이란 말 그대로 만족과 한족의 요리 중에 가장 맛있는 정수 요리만을 모아 먹은 풀코스 연회라고 이해하면 된다. 중국에서 가장 화려하고 공식적인 만찬 코스라고 할 수 있다. 하루 두 번씩 3일에 걸쳐 만찬이 진행되며 매번 세부적으로 네 코스의 요리가 있고 각 코스에 하나의 주 요리와 네 개의 보조 요리, 그리고 후식이 곁들여진다. 총 서른 가지의 요리가 나오며 총 6번의 만찬이 있으니 총 180가지의 요리가 제공된다. 어마어마한 수준의 만찬 코스인 셈이다. 청나라 때 지배계층인 만주족은 만석이라는 자리에서, 한족은 한석이라는 자리에 앉아 연회에 임했는데 만석과 한석에 제공되던 요리가 합쳐지면서 만한전석이라는 연회 코스가 창조됐다고 한다.

치파오라고 하면 중국 전통의상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중국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 여인이 입는 원피스를 통칭한다. 이런 치파오의 유래도 역시 청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치파오의 한자 의미는 기인이 입는 옷인데 기인이라 하면 만주족을 의미한다. 청나라 시절 만주족들이 베이징에서 지배계층으로 군림해 만주족의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치파오를 입게 했다. 그것을 한족들이 동경하게 되면서 유행하게 됐고, 1930년대 전 세계적인 미니스커트의 열풍을 타고 치파오의 소매와 치마 길이가 짧아지기도 했다. 그 이후 현대적 패션 감각이 반영되면서 허리선을 강조하고 치마의 옆을 터 세련된 형태의 치파오로 발전하게 됐고, 지금은 중국을 대표하는 여성의 전통 복장으로 인기가 높다.




지금의 한류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기에 한국 제품을 선호하게 되고 한국 제품이 세련되고 성능이 좋기에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이 배가되는 선순환 구도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8가지 군단을 앞세워 세계로 향하고 있는 한국

이처럼 청나라는 멸망했으나 지금 중국은 언어, 의복, 음식 등을 청나라의 전통에서 이어받아 사용하고 있다. 지금의 한류라는 단어에 맞게 표현하자면 청류나 만류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청나라의 전통이 이어지지 않고 사라진 예도 많다. 그중 하나가 변발인데 남자가 머리를 뒤로 길게 땋아 내리는 형태로 중국 동북부의 몽골족, 만주족 등이 주로 했고 청나라 시절 만주족은 한족에게 변발을 강요했다. 역설적으로 한족에게 강제한 변발은 그 이후 사라지게 됐고 한족에게 금지했던 치파오는 오히려 한족들 사이에 유행이 됐다는 점은 흥미롭다.

이제까지 언급한 베이징어, 만한전석, 치파오가 청나라 등이 한족에게 전해준 소프트한 무형자산이라면, 청나라가 한족의 나라 중국을 지배한 하드웨어적인 파워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중 하나로 팔기군을 꼽을 수 있다. 팔기군은 여덟 가지의 다른 색깔을 가진 깃발 아래에 이루어진 군단으로 양황, 정황, 정백, 양백, 정홍, 양홍, 정람, 양람 등 8가지 군단으로 이루어졌다. 팔기군에 속한 사람을 기인이라 했으며 만주족이 주를 이루며 몽고족, 한족이 섞여서 편성됐다.

기인들은 일반 평민과 구별됐고 지위, 급여, 승진 등에서 우대를 받았는데, 청나라 엘리트 계급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중 양황, 정황, 정백 등 3개 군단은 청조황제가 직접 지휘했으며 나머지 5개 군단은 각 제후왕이 지휘했다. 처음에는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한 군사체제였으나 후에 청나라가 확대, 발전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체제가 팔기군의 체제를 따르게 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지금 우리 한국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의 군단을 앞세워 세계 시장에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우리의 강점을 청나라의 팔기군 기준으로 분류해 보았다.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네 가지 군단이 눈에 띈다. 자동차, 조선, 반도체, 전자 등 네 가지가 우리나라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네 가지 산업은 시가총액이 코스피(KOSPI) 시가총액의 절반에 육박하며, 세계 시장에서 일류 상품으로, 그리고 시장지배적인 제품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도 네 가지 군단이 있다. 한류라고 통칭되는 음악, TV 드라마, 영화, 한식 등이 그것이다. K-팝(K-POP)이라는 거센 물결이 전 세계에 퍼져 나가고 있고, 한류 초기 ‘겨울연가’라는 드라마로 시작한 한국 드라마는 아시아 시장을 넘어 세계 여러 나라의 TV 채널을 타며 한류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는 이미 과거 홍콩 영화의 위치를 접수한 듯이 보이며 건강 위주의 한식 열풍은 선진국의 식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다.

바람직한 점은 소프트한 한류의 네 가지 군단과 하드한 한국산 상품 및 제품의 네 가지 군단이 상호 시너지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의 한류는 한국 문화를 좋아하기에 한국 제품을 선호하게 되고 한국 제품이 세련되고 성능이 좋기에 한국 문화에 대한 호감이 배가되는 선순환 구도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팔기군을 유지했던 청조의 특징은 단순한 무력 탄압으로만 중화 한족을 지배한 것이 아니라 만주족의 특징을 유지하면서 한족의 문화와 경제를 흡수해 가면서 성장해 갔다는 점이다. 그러기에 만주족와 한족이 융합한 다민족 국가로서 전 세계의 초강국으로 나서게 된 것과 일면 유사한 면이 있다.

현재 전 세계는 미국 금융 위기에서 유럽 재정 위기에 이르기까지 불확실성과 어려움이 증폭되고 있다. 오히려 이러한 어려운 시절에 하드웨어적인 면과 소프트웨어적인 면을 동시에 가지면서 문화적 공존성과 다양성을 가지고 세계 시장에서 우리나라의 문화와 제품이 마치 청나라가 팔기군을 근거로 확장을 하고 후에 베이징어, 만한전석, 치파오라는 무형자산을 후대에 남겼듯이 계속 승승장구하기를 기대해 본다.



일러스트 추덕영
이동훈 삼정투자자문 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