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사실이었다. 아니, 사실은 그림 이상이었다.

수십 개의 동굴은 저마다 사원이고, 절벽에 나비처럼 날아와 앉은 절집은 그렇게 천년 세월을 지내온 것이다.

옛날 중국의 5호16국 시절, 대륙 북쪽의 지배자였던 ‘오랑캐’ 북위는 불교를 받아들이고 윈강석굴(雲崗石窟)과 쉬안쿵사(懸空寺)를 지었다. 그리고 1천수백 년이 지난 후 석굴과 절은 전 세계 여행자들의 발길을 잡아 끌고 탄성을 자아내고 있다.
[The Explorer] Datong, 깎아지른 절벽 중간 나비처럼 앉은 절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기차로 6시간. 다퉁(大同)으로 향하는 철길에서 바라보는 창 밖으로, 현대 도시 베이징과는 사뭇 다른 중국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구릉, 낮은 벽돌집, 푸릇한 싹이 돋아난 밭에는 점점이 소들이 풀을 뜯고, 노새는 제 몸집보다 큰 짐에 농부 둘까지 싣고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 기원전 200년 전 한나라 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하는 오래된 도시 다퉁에 도착했을 때,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사방에 어두컴컴한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기차에서 내리니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러고 보니 사방이 어두운 것은 해가 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도시 전체가 희뿌연 연기로 뒤덮여 하늘은 이미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기차역에서 나와 근처 호텔을 향해 한 블록쯤 걸어가니 도시를 점령한 연기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서너 걸음마다 자리 잡은 거리의 노점에서는 미처 마르지 않은 석탄에 불을 붙여 저마다 밤이나 꼬치 따위를 열심히 구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손수건으로 코를 막지 않고는 서너 걸음도 떼기 힘들 정도. 수천 년 역사를 간직한 다퉁은 그렇게 근대 산업사회의 잔여물이 피워내는 연기로 여행자를 맞았다. 때마침 둥근 보름달이 천년 전과 다름 없이 뿌연 도시를 따뜻하게 비춰주었다.
메케한 석탄 덕분인지 다퉁의 노을은 유난히 황홀한 빛을 발했다. 석탄과 함께 떠다니는 각종 중금속들이 지는 태양에 반사되면서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빚어내는 듯했다.
메케한 석탄 덕분인지 다퉁의 노을은 유난히 황홀한 빛을 발했다. 석탄과 함께 떠다니는 각종 중금속들이 지는 태양에 반사되면서 더욱 아름다운 색깔을 빚어내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투어버스에 올라 윈강석굴로 향했다. 룽먼석굴(龍門石窟), 모가오굴(莫高窟)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 중에서도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 동서로 약 1km의 길이에 모두 42동의 석굴이 있는데, 그중 19동의 대불이 17m로 가장 높다는 팸플릿의 설명은 사실 윈강석굴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한다.

동굴 입구를 통해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을 맞아 빛나는 대불의 온화한 미소, 부리부리한 눈에 붉은 얼굴로 혹여나 동굴 속으로 침입하려는 사악한 기운에 맞서고 있는 사천왕의 무서운 인상, 천년 하고도 수백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화려한 색깔을 자랑하며 벽면을 가득 메운 부조들이 주는 감탄은 팸플릿이나 인터넷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5만 부처가 전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동굴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도 벽에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불상이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5만 부처가 전부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동굴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에도 벽에도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불상이 저마다 독특한 모양을 뽐내고 있었다.
때로는 동굴 속 공기마저 신성한 기운이 느껴진다. “영토와 인구가 갑자기 팽창한 북위가 국가 통합의 목적으로 대규모 불사를 일으켰다”는 설명도 사족에 불과하다. 수십 년간 동굴 속 바위를 쪼아 부처를 만들어낸 석공들의 간절한 믿음이 천년 세월을 넘어 낯선 땅에서 온 여행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언젠가 터키의 지하 교회에서 초기 기독교 성화들을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윈강석굴의 부조가 터키 지하 교회의 성화처럼 소박한 모습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윈강석굴의 압도적 규모와 물량 공세는 절대자 앞에서 그저 무릎을 꿇고만 싶은 연약한 마음도 들게 했다. 이 석굴에 모신 부처만 5만 분이 넘는다니 이런 느낌이 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싶었다.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쉬안쿵사 앞에는 자그마한 바위가 있고, 후대 사람들이 그 바위를 절벽 삼아 쉬안쿵사 미니어처를 새겨 놓았다.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절벽에 위태롭게 매달린 쉬안쿵사 앞에는 자그마한 바위가 있고, 후대 사람들이 그 바위를 절벽 삼아 쉬안쿵사 미니어처를 새겨 놓았다.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할 수 있도록.
동굴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가모니불. 대표적 수인(손동작)인 ‘시무외인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손동작)’을 취하고 있다.
동굴 안으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받아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석가모니불. 대표적 수인(손동작)인 ‘시무외인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손동작)’을 취하고 있다.
절벽에 매달려도 천년 가는 믿음

윈강석굴의 부처들을 뒤로 하고 투어버스가 도착한 곳은 하늘에 매달린 절집, 쉬안쿵사였다. 섭씨 40도를 넘나드는 뜨거운 벌판을 지나자 100m쯤 되는 깎아지른 절벽이 눈앞을 막아 서는데, 딱 그 중간에 거짓말처럼 절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도대체 무슨 불심으로 이런 허공에 절을 지을 생각을 했을까. 그것도 1400여 년 전에 말이다. 산을 깎아 석굴을 파고, 그곳에 5만 부처를 새겨 모신 일도 대단하지만, 이런 절벽 중턱에 나무 기둥 몇 개에 의지해 절을 지은 것은 도무지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좁은 나무 바닥을 밟으며 올라가는 것조차 가슴 졸이는 일인데.
[The Explorer] Datong, 깎아지른 절벽 중간 나비처럼 앉은 절
그런데 조심스레 한걸음씩 옮기니 의외로 바닥에 전혀 흔들림이 느껴지지 않는다. 심지어 어느 간 큰 여행자는 쿵쿵 뛰어보기까지 한다. 분명 가느다란 나무 기둥 몇 개에 의지해 위태롭게 절벽에 매달인 형상인데…. 그 비밀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실제로 이 건물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래에 받쳐둔 나무 기둥이 아니라 절벽 바위 속에 박아 넣은 철삼나무 들보란다. 오동나무 기름에 푹 담가놓았던 들보는 썩을 염려도 개미가 파먹을 위험도 없단다. 그리고 깎아지른 절벽이 비바람을 막아주는 우산 역할을 해서 1400년 세월에도 절은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대체 어떤 믿음이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5만여 개의 불상을 새겨 넣도록 만들었을까. 이는 믿음만으로도 그렇다고 국가 정책만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대체 어떤 믿음이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5만여 개의 불상을 새겨 넣도록 만들었을까. 이는 믿음만으로도 그렇다고 국가 정책만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런 ‘과학적’설명을 들어도, 여행자의 눈에 쉬안쿵사는 기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이 일으킨 기적. 이 절을 보았던 당시 북위 사람들도 불심이 만들어낸 기적으로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부처뿐 아니라 공자와 노자 선생까지 모셨으니 종교의 화합이 일으키는 힘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지금 서로 다른 지역,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한 나라를 이루었으나, 서로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되면 절벽 같은 풍파 속에서도 굳건히 설 수 있으리라.
보는 사람은 아찔하지만 쉬안쿵사는 절벽 위에 튼튼히 붙어 있다. 절벽에 구멍을 뚫고 박아 넣은 철삼나무 대들보가 그 비결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발을 굴러도 흔들림이 없다.
보는 사람은 아찔하지만 쉬안쿵사는 절벽 위에 튼튼히 붙어 있다. 절벽에 구멍을 뚫고 박아 넣은 철삼나무 대들보가 그 비결이다. 심지어 사람들이 발을 굴러도 흔들림이 없다.
오후 내내 뜨겁기만 한 날씨가 저녁이 되니 돌풍에 벼락이 치기 시작했다. 낮에 보고 온 쉬안쿵사가 걱정됐다. 혹 돌풍에 기둥 하나라도 어긋나면 어쩌지. 마른 벼락에 불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지만 생각해보니, 쉬안쿵사는 돌풍과 벼락, 홍수를 1천수백 년 동안 견뎌왔다. 그것도 절벽 중간에 위태롭게 매달려서. 그러나 역설적으로, 쉬안쿵사가 1천수백 년을 별탈 없이 지내온 것은 절벽에 매달린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절벽에 매달려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불필요한 것들은 애초에 올리지 않았고, 사람들은 더욱 철저히 관리했을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도 그런 것이 아닐까. 절벽에 매달린 듯 위태롭기만 한 인생. 자신은 평평한 땅 위에 굳건히 서 있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요지부동일 것만 같았던 땅조차 허망하게 갈라지기도 한다. 그저 하루하루 덜어내고 하루하루 관리할 뿐.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절벽에 매달린 쉬안쿵사처럼 우리 삶도 굳건히 백년을 갈 수 있을 것이다.

글·사진 구완회
[The Explorer] Datong, 깎아지른 절벽 중간 나비처럼 앉은 절
[The Explorer] Datong, 깎아지른 절벽 중간 나비처럼 앉은 절
How to Get There

산시성(山西省) 제2의 도시 다퉁으로 가는 직항 편은 없다. 그 대신 중국의 항공사들은 베이징을 경유해 다퉁으로 들어가는 노선을 운항하고 있다. 정말 다퉁만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우선 베이징으로 갔다가 기차나 항공편으로 다퉁에 다녀오는 것이 좋다. 굳이 다퉁에서 1박을 할 필요가 없다면 베이징에서 밤기차 침대칸을 타고 다퉁으로 갔다가, 윈강석굴과 쉬안쿵사를 둘러보는 하루투어를 마치고 다시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것도 좋다.



Where to Stay

시내 중심가에 있는 가든호텔은 여행자들의 평이 좋다. 최근에는 한 인터넷 호텔 사이트가 주관하는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윈강석굴 근처에 있는 ‘홀리데이 인 다퉁 시티 센터’도 무난한 선택.



Another Site

윈강석굴과 쉬안쿵사는 다퉁을 대표하는 볼거리. 도시를 둘러싸고 있던 성벽과 누각도 아직 남아 관광객의 발길을 끈다. 이 밖에도 명나라 시대 저택의 일부인 구룡벽, 요나라의 고찰인 선화사, 자색으로 빛나는 오룡벽 등도 둘러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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