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신입생 환영 연설은 지난 수십 년간 단 한 마디도 바뀌지 않았다.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 1등이 되어라”, “인생은 경주다. 이겨라”라는 내용으로 목소리 높이, 눈빛, 제스처 하나 바뀌지 않은 예의 일장 훈시를 늘어놓는 바이러스(사하스트라부떼의 별명) 총장. 자신의 멋진 연설에 압도된 학생들을 흡족한 듯 지긋이 바라보며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총장: (득의양양하게)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주지. (안주머니에서 펜을 하나 꺼내 들어 보이며) 이건 우주 전용 펜이다. 만년필이나 볼펜은 지구 밖에선 쓸 수가 없다. 그래서 이게 수백만 달러를 들여 개발한 펜이다. (허공에 글을 쓰는 몸짓을 하며) 이 펜은 각도, 온도, 중력 모두 상관없이 쓸 수 있다. 가장 우수한 학생이었던 내게 은사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누가 이 우주 전용 펜을 물려받고 싶나?
란초: (손을 들며) 질문 있습니다. 지구 밖에서는 만년필이나 볼펜을 쓸 수 없다면, 연필을 쓰면 되잖아요? 그럼 그런 엄청난 연구비를 안 써도 됐을 텐데요. (학생들은 폭소를 터뜨린다. 그 웃음소리에 바이러스 총장에 대한 비웃음이 배어 나온다.)
총장: (당혹감을 애써 감추며) 다, 다음에 알려주겠네.
저명한 공학자이자 추상같은 임페리얼공대의 총장으로 지내온 지난 수십 년간 언감생심 감히 그의 말에 토를 단 사람은 한 명도 없었는데, 한낱 신입생 애송이의 기발한 분석과 서푼짜리 연필 아이디어에 제대로 반박 한번 못하고 맥없이 무너졌다는 허탈함과 당혹감에 황급히 자리를 뜬다. 1. 란초의 심층적 협상 전략:
상대의 신뢰와 명성을 실추시켜 무력화하라
란초의 표면적 협상 전략은, 누구나 동의하듯이 상대의 논리나 사실 증명에서 밝혀진 오류나 맹점을 찾고 부각시켜 상대의 전체 논리의 당위성과 정당성을 전면 부정하는 전략이다. 즉,‘상대의 오류를 공략해 상황을 역전시켜라(Logical fallacy kills argumentation)’다.
그러나 우주 전용 펜에 대한 바이러스 총장의 전개 논리에 대한 예리한 오류 지적과 연필이란 기발한 대안 제시가 순차적이고 복합적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바이러스 총장에겐 더욱 더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공학자로서, 그리고 대학총장으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학자 혹은 전문가적 신뢰(expertise credibility), 위상과 명성(prestige and reputation)을 심각하게 실추당한 것이다.
즉, 표면적으로는 논리적 오류를 논박한 것으로만 볼 수도 있겠지만, 심층적으로는 란초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상관없이 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전문성의 신뢰를 실추시킴으로써 앞으로 바이러스 총장에 대한 반감과 거부감을 생성시키는 전략, 즉 ‘우물에 독약 타기(poisoning the well)’효과를 야기시킨 것이다.
한낱 신입생에 불과한 란초에게 수많은 신입생들 앞에서 과학적 논증 대결에서 보기 좋게 KO 됨으로써 앞으로 바이러스 총장의 방침이나 지도에 이전처럼 고분고분 수긍하고만 있지는 않게 된 것이다. 애플과 삼성전자의 특허권 소송 대결 과정에서도 관찰되듯이 협상해야 할 상대의 파워가 나의 파워보다 크면 클수록 상대의 위상이 나보다 높으면 높을수록 본격적 협상에 앞선 선행절차(pretreatment process)로서 상대의 신뢰도와 평판을 실추시키고 반감을 형성하는 언론 플레이를 전개하는 것이 룰이다. 그러나 그 효과가 좋든 아니든 양자 간에 돌이킬 수 없는 커다란 상처와 앙금(trauma)을 자초하게 되는데, 바로 관계의 급격하고도 심대한 손상이다.
영국 보수당의 싱크탱크인 애덤스미스연구소장을 역임한 매슨 피리는 그의 저서 ‘모든 논쟁에서 이기는 법(How to win every augment)’에서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늘 진지하게 말하려는 사람들은 비웃음만큼이나 큰 웃음소리에 당황해서 궁지에 몰리기도 한다. 게다가 청중들은 논쟁보다 유머를 좋아하게 마련이다.” 자부심이 훼손되고 명예가 실추되는 굴욕감, 즉 모욕이란 큰 상처를 입게 된다. 기억하라. 굴욕은 복수를 낳는다.
그렇다면 협상도 이기면서 관계도 살리는 묘수는 없을까. 이 장면을 분석하면서‘소학(小學)’의 한마디가 떠올랐다.“세상 사람들은 나보다 나은 사람을 싫어하고, 나에게 아첨하는 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연이어‘채근담’의 한마디도 생각났다.“허물이 있거든 성내지 말고, 다른 일에 빗대어 은근히 깨우치라.” 찾고 있던 답이었다. 2. 협상 전략 개선안: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려면 간접적으로 은근히 깨우치라
철강왕 앤드루 카네기가 세계 최초로 연봉 100만 달러를 찰스 슈왑에게 준 이유는 슈왑이 가진 사람을 다루는 뛰어난 역량 때문이었다. 하루는 그가 맡고 있던 한 제철공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공장 곳곳에 붙은 ‘금연’팻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작업자 몇 명이 버젓이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게 아닌가. “자네들은 글도 모르나”라고 쏘아붙일 만 했지만, 그는 역시 달랐다. 그는 직원들에게 다가가선 오히려 담배 한 개비씩을 나눠주며 “밖에 나가 피워주면 고맙겠네”하고 말했다. 이 얘기를 전해들은 다른 직원들마저 사려 깊은 슈왑의 처사에 감탄하고 존경하게 됐다고 한다. 데일 카네기의 말처럼 “다른 사람의 실수를 바로잡아 주는 데 진정 효과적인 방법은 잘못을 간접적으로 알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소통학의 대가인 제럴드 니렌버그 박사는 그의 베스트셀러인 ‘사람을 사귀는 비결’에서 상대방의 호감과 협력을 얻어내는 방법 하나를 알려준 바 있다. “대화를 하면서 상대의 생각이나 감정을 마치 내 것인 양 소중하게 여기고 있음을 보여주면 협력을 얻어 낼 수 있다. 대화를 시작할 때, 온화한 태도로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면서 상대의 의견을 흔쾌히 수용하면 상대도 우리의 생각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기는 법이다.” 3IDIOTS (세 얼간이)
감독 라지쿠마르 히라니
출연 아미르 칸(란초 역), 마드하반(파르한 역)
셔먼 조시(라주 역), 카리나 카푸르(피아 역)
보만 이라니(비루 사하스트라부떼 역)
오미 베이디아(차투르 역)
박상기 _ 글로벌협상컨설팅 대표, 연세대 겸임교수. 국제협상전문가, CJ미디어 국제협상전담 상무 역임. 협상칼럼니스트 www.bneconsulting.co.kr “Center for Business Negotiations”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