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제임스 전 예술감독 부부

노숙자와 발레. 연결하기 힘든 키워드들이다. 하지만 상상만으로도 힘든 이 조합을 현실로 옮긴 사람들이 있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 부부는 예술 교육으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꿈을 함께 꾸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왼쪽)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인생의 반려자이자, 예술 교육으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꿈을 함께 하는 파트너다.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왼쪽)과 제임스 전 예술감독은 인생의 반려자이자, 예술 교육으로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들려는 꿈을 함께 하는 파트너다.
남편인 제임스 전 서울발레시어터 예술감독 겸 상임안무가는 아내인 김인희 단장보다 일찍 도착했다. 기자와 전 감독은 인터뷰를 위해 처음 만난 사이. 하지만 어색함이 끼어들 틈이 없다. 지난 5월 6일 남산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창작 발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는 연신 즐겁다. 안무가로서, 발레에 문외한인 관객 한 명의 비전문적(?)인 품평과 제안을 그는 온 마음으로 경청했다. 창작 록 발레 ‘현존(Being)’을 통해 보여준 강렬한 몸짓 언어에 비해, 마주하고 앉은 그가 구사하는 언어(言語)는 부드럽고 유쾌하다.

“4월 23일부터 5월 14일까지 해외 출장을 다녀왔어요. 스위스 제네바와 바젤에서 프로 발레단원들을 지도하고 남미로 건너갔어요.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 무용축제의 일환으로 마련된 컨퍼런스에서 저희가 했던 ‘홈리스 발레스쿨’ 사례를 발표했죠. 노숙자들에게 발레를 가르치는 데 그치지 않고 공연까지 함께 한 이례적인 일이었고, 특히나 문화예술 교육을 통한 사회적 나눔이 아시아에서는 흔치 않은 경우라 저한테 사례 발표를 의뢰한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에는 빅판 아저씨들이 파티에 초대된 손님 역으로 프로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12월 ‘호두까기인형’ 발레 공연에는 빅판 아저씨들이 파티에 초대된 손님 역으로 프로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노숙자와 함께 원-윈 하는 즐거운 나눔

콜롬비아에는 콜롬비아 출신으로 뉴욕시티발레단원으로 활동했던 사람이 고국으로 돌아가 만든 ‘몸의 학교’에서 소외계층을 위한 발레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미국 뉴욕에는 ‘댄스 시어터 할렘’에서 할렘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발레를 가르친 결과 지역 범죄를 줄이기도 했다고. 그는 이 모두가 예술을 통해 사람들에게 ‘희망’을 샘솟게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야기의 무대가 뉴욕, 콜롬비아, 인생으로 옮겨갈 즈음 전 감독의 부인인 김 단장이 가쁜 숨을 고르며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예의 무대에서 보여주던 환한 미소로 인사를 대신했다. 집 안에서는 아내와 남편으로, 집 밖에서는 발레단의 살림을 책임지는 단장과 예술감독으로 궁합을 맞추고 있는 이 부부는 서울발레시어터를 창립한 주인공들. 유니버셜발레단에서 무용수로 만나 1995년 대한민국 최초의 민간 프로페셔널 발레단을 창단했던 두 사람은 지난 10여 년간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발레단을 지켜왔다.

‘호두까기 인형’, ‘백설공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비롯해 록 발레 ‘현존 I·II·III’ 등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창의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선보였던 이들은 프로페셔널 무용수 양성과 함께 비전문인을 위한 발레 교습을 시작했다. 그 비전문인 가운데는 실제로 서울발레시어터의 공연 무대에도 오른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빅판’ 아저씨들이다. 빅판 아저씨들은 노숙자 자활을 돕기 위해 2010년 가을부터 발행된 ‘빅 이슈 코리아’ 매거진을 판매하는 노숙자들. 발레를 배운 빅판 멤버들 가운데 6명은 지난해 12월 공연한 ‘호두까기인형’ 공연 중 파티에 참석한 손님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애초에 한 대기업에서 재능 기부를 주제로 한 광고 캠페인 이벤트로 기획했던 일인데,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쉬었어요. 발레라는 몸 운동이 노숙인들의 신체와 함께 정신도 건강하게 해주더라고요. 발레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한 거죠. 더 중요한 것은 삶의 희망을 찾는다는 사실입니다. 노숙인들 저마다 사연이 있겠지만 삶의 희망을 내려놓고 선택한 곳이 길(street)이 아니었을까요. 하지만 더더욱 중요한 것은 저 역시 그들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는 겁니다. 서로가 윈-윈 하며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눔이라 생각해요.”

그들과 몸을 부대끼는 소통을 통해 창작의 영감을 많이 얻는다는 전 감독을 아내인 김 단장은 전폭적으로 지지한다. 지지만 하는 것이 아니다. 해외 출장이 잦은 남편이 빅판 발레 수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땜방 강사’도 기꺼이 자청한다. 부창부수가 따로 없다.
‘빅판’ 아저씨들과 함께 발레 수업을 진행 중인 제임스 전 감독.
‘빅판’ 아저씨들과 함께 발레 수업을 진행 중인 제임스 전 감독.
발레, 두 사람의 인생을 바꾼 전환점

“1년 정도 배운 분과 막 시작한 분은 서 있는 자세 하나만 봐도 확연한 차이가 나요. 다 오실 때도 있고 절반만 오실 때도 있는데, 재미있고 신기하게도 발레를 배우면서 아저씨들이 변한다는 겁니다. 그 점에선 전 감독도 마찬가지죠. 원래 성격이 불같고 배려심이 좀 부족한 편이었는데, 노숙자 발레교실을 한 뒤로는 배려심도 늘었고 불같은 성격이 좀 누그러든 것 같아 참 좋아요.(웃음)”

전 감독 역시 늦게 철든다는 대한민국 남편 가운데 한 명인가 보다. 마음과 마음을 열고 마주보며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발레 수업은 시간이 갈수록 어색함은 옅어지고 교감이 짙어졌다. 하지만 처음엔 ‘유리벽’으로 인한 고충도 있었다. 그 벽을 가장 빠른 시일 내에 깨뜨릴 수 있었던 것은 서로가 그저, 사는 모습이 다른 인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면서부터다.

“노숙자들한테 발레를 가르친다는 게, 사실 말도 안 되는 얘기잖아요.(웃음) 빅판 아저씨들은 사실 발레보다 축구를 엄청 좋아합니다. 처음엔 어색하고 뻣뻣하고 그랬죠. 그런데 집이 없다는 의미의 ‘홈리스’가 사실 물질적인 개념에서의 홈리스일 뿐이잖아요. 사실은 저도 홈리스거든요. 올해 나이 쉰넷인데 죽을 때 집 갖고 갈 거 아니잖아요. 따지고 보면 우리 모두가 홈리스인 거죠. 예고 없이 잡지 파는 데 ‘짠’ 하고 나가서 빅판 아저씨들과 잡지도 같이 팔고 하면서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통하기 시작했죠.”
[Noblesse Oblige] 발레로 희망을, 삶을 나누다
발레라는 몸 운동은 빅판 아저씨들의 삶을 바꾸는 계기도 됐지만 사실 전 감독과 김 단장 두 사람에게도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발레를 통해 삶이라는 철길에 올랐는가 하면 발레를 통해 인생역전(?)을 이루기도 했기 때문이다.

“열두 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친구가 3분 동안 부채춤 독무를 하는 것을 보고 완전히 반해서 ‘내가 할 건 저것이다’라고 결심했어요. 하지만 집안 형편이 받쳐주지 않아 학원비 내달란 말도 못했었죠. 결국 6학년 때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조르기 시작해 한국무용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선화여중 1학년 때 발레부가 창단됐는데 키가 크고 마른 체형 덕분에 차출되는 바람에 발레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후론 발레가 제 인생의 전부가 된 거죠. 미국에서 자란 전 감독은 대학 때 발레를 시작했는데 그 전에는 차에 야구 방망이를 실고 다니며 싸움이나 했었대요.(웃음) 발레가 엄격한 자기관리와 규율을 어기곤 할 수 없는 예술이기 때문에 발레를 하면 사람이 온순해지거든요. 발레가 사람을 만들었다고 할까요, 하하하.”

순간 전 감독에게 모든 시선이 쏠렸다. 우아한 발레리노인 그의 과거(?)가 어째 쉽게 인정되지 않는 상황. 그때 전 감독이 말했다. “제 이름도 ‘제임스’잖아요, ‘제임스 딘’의 제임스….”
문화예술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소외계층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이에요. 발레를 통한 그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변할 수도 있겠죠.
문화예술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소외계층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이에요. 발레를 통한 그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변할 수도 있겠죠.
발레 교육을 통한 사회 정화를 꿈꾸다

김 단장은 발레를 두고 “그것 때문에 아프고, 힘들고, 행복하고, 기쁘니 자식 같은 것”이라 했고, 전 감독은 “태어날 때부터 지게 된 짐 같은 것인데, 내려놓을 데를 찾아 잘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라 말했다. 발레는 그렇게 두 사람에게 사랑하니까 책임져야 하는 ‘그 무엇’이다.

그런데 두 사람에게 빅판 아저씨들과의 만남 이후에 변화가 찾아왔다. 그 역시 발레를 사랑하기 때문에 져야 하는 짐이자, 의무이자, 사랑의 표현이라 하겠다. 서울발레시어터에서는 노숙자 발레교실을 비롯해 미혼모 발레교실, 다문화가정 자녀 발레교실 등 양지보다는 음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재능 나눔을 실천해 오고 있다. 그러한 사회적 나눔을 통해 서울발레시어터는 사회적 기업의 전 단계인 예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아 관계부처로부터 지원도 받기 시작했다. 민간 발레단으로 재정적 어려움도 많이 겪었던 터라 정부 지원은 촉촉한 봄비 같지만 따지고 보면 그 봄비도 나눔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프로 무용수를 가르치며 후배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예술을 통해 나눔을 실천하고 소외계층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일 역시 의미 있는 일이에요. 발레를 통한 그들의 변화를 통해 우리 자신이 변하고 나아가서는 사회 전체가 변할 수도 있겠죠. ‘현존’이라는 공연을 할 때였어요. 공연을 마치고 나오는데 휠체어를 탄 고객 한 분이 저희를 만나려고 모든 관객이 떠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시더라고요. 자살하려고 생각했었다가 그날 공연을 보고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맙다고 하시는데 정말 감사하고 감동적이었어요. 예술이라는 게 바로 그런 거 아닐까요.(웃음)”

김 단장은 재능 나눔을 통해 자연스레 인생의 숙제를 정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꿈. 3년 후 발레단이 스무 살이 되는 날은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철새 발레단의 딱지를 떼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것. 이름은 ‘서울발레시어터 콘텐츠 센터’다.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꿈을 키워나갈 생각이다. 기업이든 지방자치단체든 예술 활동과 교육을 통한 사회적 나눔에 동참하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
공연·발레스쿨 사진 제공 서울발레시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