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베이비부머들 중 창업을 계획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은 노후를 더욱 힘들게 할 수 있다. 창업을 꿈꾸는 베이비부머들을 위한 창업 가이드를 제시한다.


[베이비부머 보고서] 베이비부머 창업 A to Z
베이비부머 세대가 창업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에 따라 자영업 시장에는 지난해 이후 50대 이상이 300만 명을 넘어서며 사상 최대 수치를 보였다.

문제는 국내 자영업 시장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자영업자 절대 수가 많다. 우리나라 자영업자 종사자 비중은 31.3%(2008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5.8%에 비해 2배 수준에 달한다. 터키, 그리스, 멕시코에 이어 30%대를 기록하는 나라다.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 조사에 나오는 취업자 종사상 지위가 임금 근로자와 비임금 근로자로 나뉘는데, 자영업자는 이 중 비임금 근로자(고용주·자영자·무급 가족 종사자)를 통칭하는 것이다.

국세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3분의 1 이상은 매출이 너무 저조해 세금을 못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규모가 영세한 간이과세자 중에서 연간 매출과세표준이 12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해 부가세 납부의무 면제자가 된 사업자가 2009년 기준 35%에 달했다. 이후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업종별로 보면 요식업, 소매업, 부동산중개업 등 생계형 자영업에 세금 면제자들이 집중적으로 몰려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베이비부머 세대가 창업하기로 결심했다면 그 첫 번째 수칙은 안정성이다. 안정성을 최우선으로 삼는다는 것은 가진 돈을 ‘몰빵’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된다. 가게 문을 열 때까지 준비단계가 길고 치밀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적어도 1년은 준비 기간을 거쳐야 향후 자영업 시장에서 그나마 생존할 수 있다. 대박의 환상을 가지는 것도 금물이다. 대박은 아무에게나 저절로 굴러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시니어 창업자들이 1~2번의 실패를 경험하는데, 이는 당연한 것이다. 실패가 예상되면 가급적 손실금액을 최소한으로 막고 제2의 도약을 기약하는 게 현명하다. 맹목적 기대나 고집으로 가게를 전환할 기회를 놓치면 회생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시니어 창업자들은 반드시 실제 사례를 찬찬히 살펴보고 이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필요가 있다.




시니어 창업 10계명
1.초기 투자비를 최소화하라
2.적어도 1년 이상 준비 기간을 거쳐라
3.업종 선정 때 수익성보다는 안정성에 역점을 두어라
4.직장 경력과 사회 경험을 충분히 살려라
5.대박 환상은 반드시 버려라
6.프랜차이즈라면 우량 본사를 고르는 데 집중하라
7.본사 말만 듣지 말고 현장 점검을 통해 눈으로 확인하라
8.퇴직금을 올인하는 것은 파멸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9.가족과 힘을 합쳐라
10.체면을 버리고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하라



김정수(55) 사장은 전형적인 베이비부머 세대로 여느 직장인들처럼 50대 중반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자신감에 넘치던 그는 퇴직 후 불과 6개월 만에 창업했다가 비싼 수업료를 치러야 했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A급 상권에 육회 전문점을 냈다가 4개월도 안 돼 폐업신고서를 낸 것이다.

김 사장은 주류 유통업체에서 2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2009년 4월 퇴직했다. 부사장까지 올라 대표이사를 눈앞에 뒀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사표를 냈다. 아직 젊다는 생각에 창업을 서둘렀다. 주류 유통업체에서 오랫동안 영업을 담당하면서 자영업자들을 많이 접촉한 경험이 있어 자영업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육회 전문점에 눈길이 쏠려 가맹본부 몇 군데를 알아봤다. 가맹본부가 권유한 가게 입지는 서울 관철동. 서울 도심 사대문 안에서 명동 다음으로 유동인구가 많이 몰리는 곳이다.

직접 가보니 주변에 육회 전문점 가게가 없어 손님을 독점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김 사장은 가맹본부가 보여준 가게와 당일 곧바로 점포 임대차 계약을 맺었다. 개점 첫날부터 대박의 환상은 깨졌다. 김 사장은 “오픈 첫날까지 주방설비가 도착하지 않았고 육회조리장도 오지 않았다”며 “개점 이후에는 가맹본부 사람들이 잘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개점 후 하루 평균 매출 70만 원을 올리기가 힘들어 한 달에 2000만 원 매출이 고작이었다. 결국 4개월을 버티다 가게를 접기로 했다.

김 사장을 상담했던 최재봉 연합창업컨설팅 소장은 패인(敗因)을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가맹본부 말만 듣고 유동인구를 맹신했다는 점이다. 창업 초보자는 실패 가능성이 없는지 끈질기게 의문을 제기해야 실패 확률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둘째, 상권과 업종의 궁합이 맞지 않았다는 점이다. 1020세대들이 북적대는 상권에서 육회 전문점은 어색한 업종이었다. 셋째, 예상 매출과 손익분기점 산출과 같은 기초적인 소점포 경영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자신의 경험을 과신했다는 것이다.

쓰라린 패배를 맛본 김 사장은 두 번째 사업 아이템으로 치킨 전문점을 결정했다. 가장 대중적인 아이템인 데다 동네 상권에서 잘 먹힐 수 있는 업종이란 점에 착안했다. 홀과 배달, 테이크아웃 등 3가지 영업이 모두 가능한 점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서울 전역을 대상으로 넉 달간 발품을 판 끝에 서울 등촌동에서 원하는 가게를 발견했다. 그는 “주상복합 건물 1층이어서 기본 수요가 뒷받침되는 데다 맞은편에는 대형 마트가 있어 쇼핑을 마친 주부들의 눈에 쏙 들어오는 곳”이라며 “가게 전면이 대로변에 접해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주방 쪽으로도 문을 내 테이크아웃 손님을 받을 수 있고, 여름에는 테라스 공간도 충분했다. 10개월간 절치부심(切齒腐心), 두 번째 가게 문을 열어 한 달 평균 4000만 원의 매출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고민 끝에 창업을 했더라도 실패의 예감이 오면 재빨리 접어야 한다. 그런 다음 실패 요인을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고민 끝에 창업을 했더라도 실패의 예감이 오면 재빨리 접어야 한다. 그런 다음 실패 요인을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이 사례에서 본 것처럼 실패의 예감이 오면 재빨리 접어야 한다. 그런 다음 실패 요인을 반드시 분석해야 한다. 분석이 끝나면 다음 준비 작업에 들어가는데, 이번에는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한다. 단 한 번의 창업으로 자기 가게를 반석에 올릴 수 있는 사람은 그야말로 ‘신이 내린 자영업자’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김 사장의 사례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여러 가지다. 우선 ‘상권과 업종의 궁합’은 장사의 제1원칙이란 점이다. 상권이 좋다고 해서 어떤 업종을 해도 다 장사가 잘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청년들이 몰리는 상권에서 할아버지들이 좋아하는 상품을 판다면 이는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나 다름없다. 두 번째는 안정성이다. 튀는 업종을 택하지 말고 대중적이고 무난한 업종을 선택하는 게 좋다는 말이다.

어차피 국내 자영업 시장에서 블루오션은 찾기 힘들다. 대중적인 아이템으로도 입지만 잘 고르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다. 안정성은 효율성과 직결된다. 3억 원을 투자해 매달 3000만 원을 버는 것보다는 1억 원을 투자해 2000만 원을 버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10·20·30의 장사 법칙’도 기억하면 좋다. 매출 대비 10%가 월세, 20%가 인건비, 30%가 원재료비란 뜻인데, 그야말로 이상적인 소점포 경영의 법칙이다. 지키기 힘든 법칙이지만 이를 자신의 목표로 삼고 점포를 경영해야 인생 2라운드를 건실히 마감할 수 있다.


강창동 기자 cd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