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홍승혜

홍승혜 서울과학기술대 미대 교수는 오랫동안 기하학적 추상을 선보여온 작가다. 1990년대 후반 회화로 된 ‘집짓기’를 선보이던 그가 작품 영역을 공간으로 확장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인 듯하다. 매번 새로운 작품으로 신선함을 더하는 작가 홍승혜를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만났다.
[Artist] 디지털 시대, 기하학적 추상을 이야기하다
작가 홍승혜는 또래 작가 중에서 비교적 많은 컬렉터를 거느린 작가다. 서울대 미대를 나온 그는 이중섭 미술상 등을 수상하며 화단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젊은 시절 다양한 시도를 하던 그가 픽셀을 벽돌삼아 ‘집짓기’를 시작한 게 1997년경이다.

홍 작가는 서울대 미대 시절부터 ‘추상보다는 추상적인 것’에 관심이 갔다. 구체적인 대상보다 색깔이나 선 등 미술의 구조적인 면에 관심이 많았던 그에게 ‘집짓기’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는지 모른다.

이후 그의 ‘집짓기’는 평면을 넘어 공간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현재 그는 평면과 입체를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데, 도산공원 앞에 자리 잡은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에서 그의 다양한 시도를 확인할 수 있었다.
파편, 국제갤러리, 2008년
파편, 국제갤러리, 2008년
Cafe, MK2 art space, 중국 베이징,, 2010년
Cafe, MK2 art space, 중국 베이징,, 2010년
광장사각, 아틀리에 에르메스, 2012년
광장사각, 아틀리에 에르메스, 2012년
음악의 헌정, 갤러리2, 2009년
음악의 헌정, 갤러리2, 2009년
현재 진행 중인 전시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전시가 열리고 있는 메종 에르메스 도산파크는 작고한 프랑스 건축가 레나 뒤마(Rena Duma·1937~2009)가 설계한 건물로서 평면, 중정, 창문 등 곳곳에서 사각형 모티브가 반복됩니다. ‘광장사각(廣場四角·Square Square)’ 전은 수많은 창문이 있는 개방된 전시 공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사각형 공간을 하나의 광장으로 설정한 것입니다. 광장이 필요로 하는 가로등, 벤치, 표지판 등의 다양한 집기들을 설치하고 녹지를 조성했으며, 광장 모퉁이에는 작은 영상 와인 바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준비 과정을 들려주십시오.

“광장은 만인만물이 모일 수 있는 개방된 삶의 공간입니다. 저는 화가 출신이지만 사람의 배경으로 실제 공간 운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림이 현실로 구현되길 바랐다고나 할까요. 햇빛이 가득한 에르메스 전시장을 보고 광장을 꿈꿨습니다. 추상미술의 사회적 실천 방식은 디자인과 건축에 있다고 믿는 저는 기하학적 도형들을 기반으로 바닥 패턴, 가로등, 벤치, 표지판 등을 디자인했습니다. 지난해 봄에 전시 제의를 받고 1년 만에 막을 올린 셈입니다.”

지금 하는 작업은 언제부터 하셨으며, 그 배경이 궁금합니다.

“작품과 그것이 놓이게 되는 공간과의 관계는 늘 저의 관심사였으나 보다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게 된 건 2008년 조선일보 갤러리에서 열렸던 이중섭 미술상 수상 기념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시 개막식과 시상식이 같은 날 이루어지는 점에 착안해 전시 대신 시상식장을 만들었습니다. 시상식 현수막, 의자 배열, 조명, 케이터링 디자인 등이 내용을 이뤘지요.”

작가로서 가장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면, 언제를 들 수 있을까요. 그 이유도 함께 밝혀주십시오.

“처음으로 작업에 컴퓨터를 사용하기 시작한 1997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도 다른 화가들처럼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실제 공간으로 화폭을 확장하고 싶었던 저로서는 붓과 물감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컴퓨터의 다양한 툴을 사용해 신속하고 변화무쌍한 작업을 하게 되면서 작업의 스케일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저는 지극히 자족적인 편입니다. 제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하는 편이고, 그것이 그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저는 지극히 자족적인 편입니다. 제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하는 편이고, 그것이 그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흠모하거나 선생님에게 영향을 끼쳤던 작가가 있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지금까지 작업해오면서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작가이지만 또한 관객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세월이 흐르면서 영향을 받는 작가들의 양상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변화를 가져다준 것은 대학 시절 앙리 마티스의 영향인 것 같습니다. 재현적 회화에 머물러 있던 저를 회화의 구성 요소인 순수 색과 순수 형태에 눈뜨게 한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작업을 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도 적지 않을 듯합니다.

“시간에 쫓길 때는 작업에만 몰두할 수 있는 전업 작가가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세대의 변화를 읽고 스스로 정체되지 않을 수 있는 훌륭한 장점이기도 합니다. 작품을 판매해야만 하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장점일 수 있습니다. 결국 절충적 상황이라 할 수 있는데, 작업에 있어서나 삶에 있어서나 저의 성향은 늘 절충주의였던 것 같습니다.”

작가로서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면 언제이며, 어떻게 그 한계를 극복하시는지요.

“저는 지극히 자족적인 편입니다. 제 자신의 한계를 쉽게 인정하는 편이고, 그것이 그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유효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작업에서 최근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지요.

“우리의 삶은 끝없는 고민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작업에서만이라도 고민하고 싶지 않습니다. 말씀드렸듯 제 한계를 인정하고 만족하기 때문에(최선을 다했다는 전제하에), 작업적으로 큰 고민은 없고 비교적 자유롭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작가로 남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작품과 더불어 태도로서 남고 싶습니다.”




글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