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베이비부머들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6%에 이른다. 약 712만 명에 이르는 이들의 은퇴와 맞물려 한국 사회는 큰 변화를 앞두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를 바탕으로, 해방 이후 한국의 발전과 함께 한 베이비부머들의 현주소를 알아본다.
베이비부머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10년을 기준으로 423만4000원, 부동산과 동산을 포함한 전체 자산은 평균 3억3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부머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10년을 기준으로 423만4000원, 부동산과 동산을 포함한 전체 자산은 평균 3억3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전문경영인인 엄 모 사장은 한국 나이로 올해 쉰여섯 살이다. 1957년생인 그는 대기업 공채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만 30년을 한 직장에 다녔다. 동료들보다 일찍 임원이 된 그는 지금도 전문경영인으로 일하는 덕에 경제적으로 비교적 여유롭다. 은퇴 후 풍요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지만 걱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엄 사장은 최근 은퇴 후 최소 30여 년 이상의 세월을 어떻게 보람 있게 살지 고민이다. 가까운 선배들을 보더라도 은퇴 후 1, 2년은 여행을 다니지만 그 이후 무료함을 달랠 소일거리를 찾는 이들이 많다. 최근 그는 봉사와 소일거리, 두 가지를 한번에 할 수 있는 비영리민간단체(NPO) 활동에 대해 공부를 시작했다.

엄 사장은 베이비부머 중에서도 행복한 축에 낀다. 경제적으로 안정돼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중 엄 사장만큼 경제적으로 노후가 준비된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실제 베이비부머들 중 임금 근로자는 전체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임시직과 일용직을 빼면 그 수는 더 줄어든다.

현재 용달차를 모는 이 모 씨의 경우는 엄 사장과 다른 경우다. 1955년생인 그는 사회생활을 대부분 은행원으로 살았다. 8년 전 지점장을 마지막으로 은행에서 퇴직한 그는 한동안 마땅한 일이 없어 벌어놓은 돈만 까먹었다. 벌어놓은 돈 중 일부는 하나뿐인 아들의 사업 밑천으로 댔는데, 아들이 사업에 실패한 탓에 자산의 상당부분을 날렸다. 조금이라도 젊은 나이에 노후 자금을 마련하려고 여러 직장을 알아봤지만, 나이 탓에 그를 써주는 곳이 없었다. 최근에는 이웃 주민의 소개로 용달차를 한 대 사서 운송업을 시작했다. 지점장 시절에 비하면 벌이는 형편없지만, 은행 퇴직 후 노는 동료들을 보며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



부모 봉양과 자식 부양의 가운데 낀 베이비부머

이들의 경우를 보듯 베이비부머들의 현재 모습은 무척 다양하다. 흔히 1955년부터 1963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베이비부머라는 하나의 호칭으로 부르지만, 개개인이 처한 상황은 모두가 다르다. 개인적인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사회적, 혹은 생물학적으로 이들의 은퇴가 본격화되면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베이비부머들은 그 규모가 클 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발전과 함께 하며 얻은 경험이 남다르다.

베이비부머들의 특성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정경희 박사는 “베이비부머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게 먼저”라고 말한다. 2010년 국내 최초로 베이비부머 3027명을 대상으로 전국 조사를 실시한 그는 베이비부머들이 이전 세대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베이비부머들은 그동안 진행된 도시화의 결과 80%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며, 약 70% 이상이 고등학교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 초등학교 이하가 10.5%, 중학교 20.7%, 고등학교 44.0%, 전문대 이상 24.8% 등으로 나타났다. 노인의 65.7%가 도시 지역에 거주하고, 28.9%만이 중학교 이상의 학력을 갖고 있는 것과 대조된다. 그만큼 베이비부머들의 경제적·문화적 욕구가 이전 세대에 비해 훨씬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조사에 따르면 베이비부머들의 총 자녀수는 1.9명으로 나타났으나 형제·자매 수는 5.1명이었다. 61.2%는 부모가 생존해 있고, 11.8%가 손자 손녀를 두고 있었다. 이는 부모 봉양과 자녀 부양을 동시에 책임지는 베이비부머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 박사는 이를 두고 “샌드위치 세대”라고 말했다. 부모와 자식에게 동시에 경제적인 도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자녀 부양 시기에 대해서는 대학 졸업까지는 기본이고, 결혼까지 부양의 책임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박사는 “예상했던 대로 부모를 모시지만 자녀들에게는 의지할 생각이 없는 베이비부머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베이비부머 보고서] 712만 명 베이비부머 보고서
경제 상황과 소비 스타일

앞서 엄 사장과 이 사장의 사례에서 보듯이 베이비부머들의 경제 상황은 지역별, 교육수준별로 큰 차이가 있다. 베이비부머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2010년을 기준으로 423만4000원, 부동산과 동산을 포함한 전체 자산은 평균 3억3000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역별로는 도시 지역 가구 월평균이 444만9000원으로 읍·면 가구 320만7000원에 비해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베이비부머들은 일정 자산을 보유함과 동시에 은퇴 후 준비에도 관심이 많았다. 조사 가구의 79.8%가 저축 또는 보험 등에 가입해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으며, 은퇴 후를 대비해 월평균 74만9000원을 지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이나 요양 위험에 대비한 보험가입률이 80% 수준이며, 사망 위험에 대한 보험가입률은 예상보다 낮은 약 30%에 그쳤다. 노후소득보장 가입률은 20%, 목돈 마련을 위한 경우는 약 40% 수준을 보였다. 정 박사는 “건강과 관련한 준비율에 비해 노후 소득에 대한 준비가 부족하다는 점은 공적 노후 소득 보장 체계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려되는 측면”이라고 말했다.

성별로는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남성에 비해 노후 준비가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의 사회 참여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남성에 비해서는 여전히 부진하다. 이는 국민연금 가입 비율을 보면 확인되는데, 남성 가입자 수가 월등히 많았다. 개인연금도 남성 가입자가 여성 가입자보다 수적으로나 금액적으로 훨씬 많았다.
베이비부머들의 가치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샌드위치적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베이비부머들은 부모와 자녀 등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감은 강한 대신, 자녀들에게 의존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비부머들의 가치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샌드위치적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유교적인 가치관을 가진 베이비부머들은 부모와 자녀 등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감은 강한 대신, 자녀들에게 의존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0명 중 3명, 40대 이후 이미 퇴직 경험 있어

베이비부머들은 사회적으로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남녀 대부분이 경제 활동의 경험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남녀 간, 세대 간, 종사 직종 간 차이가 있다. 전기 베이비부머(1955~59년)에 비해 후기 베이비부머(1960~63년)들이 전문가와 관리자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비율이 높았다.

둘째, 베이비부머 10명 중 3명이 현업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특히 소득 및 교육 수준이 낮고 혼자 사는 가구인 경우 현업에 대한 불안 정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업이 중단된 이후에 대비해 특별히 준비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셋째, 10명 중 3명은 40대 이후 퇴직한 경험이 있어서 이미 직업 이동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퇴직 및 직업 이동의 경험은 소득 수준이 높고 학력 수준이 높은 경우에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중 상당부분이 퇴직이나 직업 이동 후 전반적인 삶의 만족도가 악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넷째, 대부분이 은퇴 후에도 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고, 전체의 63.9%가 노후에도 일을 계속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일에 대한 욕구는 남자가 81.4%로 48.1%를 보인 여성보다 훨씬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또한 학력 및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노후 일자리를 희망하는 비율이 높았다.

다섯째는 노후 설계에 대한 관심이다. 많은 이들이 노후 설계에 관심을 갖고는 있지만,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노후 설계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샌드위치 상황에 직면한 베이비부머

베이비부머들의 가치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부모와 자식 사이, 샌드위치적 특징을 보인다는 점이다. 유교적인 가치관에 따라 부모와 자녀 등 가족 부양에 대한 의무감은 강한 대신, 자녀들에게 의존할 생각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의 노후생활비 마련 방법은 본인과 배우자 연금 등 사회보험(28.7%) 등의 순을 보였다.

그 연장선으로 노후에 부부끼리, 혹은 혼자 살고 싶다는 응답자의 수가 93.2%로 압도적이었다. 노후 수발 형태도 자녀에게 의존하겠다는 수(3.6%)보다 외부 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응답자가 67.2%로 수적 우위를 보였다.

자신은 자녀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진 반면, 자녀 부양은 당연시하는 베이비부머들이 많았다. 자녀 부양 시기에 대해서는 결혼할 때까지가 41.5%로 가장 많았고, 학업을 마칠 때까지가 29.6%로 그 뒤를 따랐다. “결혼 후에도 자녀를 부양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아서 자녀에 대해 높은 책임감을 갖고 있었다.

셋째, 베이비부머들의 주관심사는 현세대 노인과 마찬가지로 건강과 소득 보장이었다. 노후에 가장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건강 및 기능 악화(54.7%)를 들었고, 경제적 어려움(31.8%)을 그 다음으로 언급했다. 달리 말해 베이비부머들은 성공적인 노후의 전제조건으로 건강과 경제력을 꼽았다.

넷째, 주택연금 및 노인장기요양보험 등 노후 관련 정책에 대해서는 높은 인지도를 보였으나, 제도가 얼마나 노후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서는 믿지 못하는 이가 많았다. 베이비부머 중 절반이 넘는 51.5%가 공적연금에 가입돼 있지만 불입하지 못하는 경우도 12.3%로 나타났다.


신규섭 기자 wa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