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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정치 동향이 주식시장과 밀접하게 영향을 주고받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유럽 주요국의 각종 변화는 국내 시장에도 시시각각 영향을 미쳐왔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일어난 정치적 변화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유로존의 새 지도부, 유럽 發 재정 위기 다시 부를까?
프랑스·그리스 선거 결과에 증시 출렁

2012년 5월 6일 글로벌 증시는 급락했다. 프랑스(-1.90%), 영국(-1.93%), 독일(-1.99%) 등 유럽 주요국 증시가 폭락한 데 이어 미국 다우존스 지수도 1.27% 떨어졌다. 5월 7일 코스피는 32.71포인트(1.64%) 하락했고, 일본 닛케이 지수 역시 2.78% 떨어졌다.

증시 추락의 배경에는 이날 치러진 프랑스 대선과 그리스 총선이 있었다. 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는 사회당의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 후보가 51.6%를 득표해 48.38%를 득표한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누르고 당선됐다. 이로써 프랑스는 17년 만에 좌파정권을 맞았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치러진 총선에서 그리스 역시 1974년 군사독재 종식 이후 38년간 이어진 신민주당-사회당(PASOK) 연정이 붕괴하고 대신 급진좌파연합(시리자)이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프랑스와 그리스의 정권 교체가 글로벌 증시의 폭락을 부른 것은 그동안 유럽을 신용 위기로부터 지탱해왔던 ‘긴축’ 기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유로존은 잇달아 불거진 남부 유럽의 재정 위기를 헤쳐 나가는 과정에서 ‘긴축’이라는 처방을 내놨다. 시장 신뢰를 회복하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나라에 빚이 많아 불안하니 그동안의 방만했던 재정 운용을 멈추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것이었다. 그리스의 구제금융을 결정할 때도 이른바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는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재정 긴축을 내걸었다.

그러나 긴축은 ‘쓴약’일 수밖에 없다. 성장에 필요한 재정 투입이 없어 생길 수 있는 높은 실업률이 뼈아프기 때문이다. 긴축론자인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연금 개시 연령을 60세에서 62세로 올린 것처럼 복지 정책에 투입되던 예산도 긴축 대상이 된다. 국민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고, 실제로 유럽 곳곳에서 반(反) 긴축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분위기는 5월 6일 치러진 두 선거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프랑스와 그리스 선거 결과를 가른 키워드 역시 ‘반긴축’이었다.



좌파정권 부른 ‘긴축통(痛)’

올랑드 대통령은 반긴축파다. 그는 “이제 긴축 정책이 위기의 유일한 해법이어서는 안 된다”며 유럽 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성장’이 필요함을 강조해왔다. 특히 올 1월 유럽연합(EU)의 27개국 중 25개국이 합의한 신재정협약의 재협상을 주장했다.

신재정협약은 재정 적자 국내총생산(GDP) 대비 3%, 누적 공공부채 GDP 대비 60% 위반 시 자동 제재를 가하는 EU의 재정 통합 정책으로 유로존 긴축 정책의 핵심이다. 올랑드 대통령의 재협상 요구는 사실상 독일 주도로 이어오던 긴축 기조에 반기를 든 것으로, 이번 대선 결과는 프랑스 유권자들이 느끼는 긴축의 고통이 표심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신민주당-사회당 연정이 다수의 의석을 잃은 것 역시 트로이카로부터 2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유로를 지원받는 조건으로 긴축 정책에 동의한 게 주된 원인으로 분석된다.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실업률이 치솟고 기업이 도산한 데다 국민실질소득은 30%나 깎여 유권자들의 불만을 샀다. 그 대신 유권자들은 긴축에 반대해온 시리자 등 극좌·극우 정당들에 표를 몰아줬다. 창당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시리자는 2009년 선거 대비 12.2% 오른 16.8%의 득표율을 얻어 제2당으로 급부상했다.

그동안 긴축의 틀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구제금융의 ‘돈줄’을 쥐고 있는 EU의 맏형 독일과 프랑스의 ‘메르코지(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가 함께 긴축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인해 메르켈 총리는 긴축 드라이브의 솔 메이트를 잃었고, 그리스마저 반발해 유로존 탈퇴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유로존의 긴축 정책은 큰 도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긴축이 선거를 뒤집었으니 이제는 선거 결과가 긴축을 뒤집을 차례가 된 것이다.
반긴축론자 올랑드가 엘리제궁의 새 주인이 됐다. 긴축이 선거를 뒤집었으니, 이제는 선거 결과가 긴축을 뒤집을 차례다.
반긴축론자 올랑드가 엘리제궁의 새 주인이 됐다. 긴축이 선거를 뒤집었으니, 이제는 선거 결과가 긴축을 뒤집을 차례다.
메르켈의 긴축 對 올랑드의 성장

앞으로 주목되는 것은 멜랑드(메르켈+올랑드)의 행보다. 당분간은 긴축론의 메르켈과 성장론의 올랑드가 외견상 적절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두 정상이 각자 고집을 부리기엔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켈 총리는 그리스 총선, 프랑스 대선뿐 아니라 독일 지방선거에서의 패배가 이어지면서 독일 안팎에서 긴축 정책에 반대하는 표심을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반면 올랑드 대통령은 아무리 성장을 주장한다고 해도 유로존의 돈줄을 쥐고 있는 독일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고, 이제 막 취임한 상황에서 경제 정책 외에도 독일의 협조가 필요한 입장이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랑드 대통령이 긴축을 핵심으로 하는 기존 해법에서 크게 벗어나는 정책을 추구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올랑드 대통령은 지난 5월 15일 취임식을 가진 직후 첫 공식 일정으로 베를린을 방문했다. 메르켈 총리와 신재정협약 개정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날은 유로존 경제 정책의 무게중심을 놓고 서로의 이견을 확인하는 선에서 회담이 마무리됐다. 6월에 열리는 EU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재정 위기에 대한 입장을 표명한다. 여기에서 멜랑드 체제의 방향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가능성인 큰 것은 신재정협약 자체는 유지하되 성장론적 요소를 추가하는 방안이다. 긴축의 골간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올랑드의 체면은 세워줄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시장 개입, 유럽투자은행(EIB)의 자본 확충, 토빈세 도입 등이 검토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가 상징적으로라도 긴축 완화에 합의할 경우 유럽 위기에 대한 불안감은 다소 줄어들 수 있다. 물론 이후 올랑드 대통령은 성장궤도로 복귀해 지출 확대가 경기 침체 방어에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관건은 올랑드 대통령이 성장을 위해 정부 지출을 늘리면서 동시에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EU 집행위는 프랑스도 공공 지출 감축과 세수 확대 없이는 내년까지 재정 적자를 GDP의 3% 이하로 낮추는 게 어렵다고 밝혔다.

성장을 위해 섣불리 재정 지출을 늘렸다가 유로존 AAA 국가 중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가장 높은(85%) 프랑스의 빚이 더 늘어날 경우 프랑스는 유럽 위기의 다음 희생자가 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친성장 선회가 유럽 전체의 기조 변화로 비춰지면, 재정 지출의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지리라는 보장이 없는 상황에서 스페인과 이탈리아 같은 재정상태 취약국가에 대한 시장 불신도가 커져 글로벌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유로존의 새 지도부, 유럽 發 재정 위기 다시 부를까?
위기의 그리스, 바통은 2차 총선으로

지금 시점에서 가장 위태로운 유럽의 뇌관은 그리스다. 그리스는 6월 17일 2차 총선을 치르게 된다. 총선에서 구제금융에 찬성하고 긴축 정책을 편 신민주당-사회당 연합이 과반 확보에 실패하고, 제2당으로 부상한 시리자는 구제금융 반대를 고수함에 따라 정부 구성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는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으면 1~3당에게 차례로 각각 사흘씩 다른 정당과의 연합을 통해 과반을 넘겨 정부를 구성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모두 실패하면 다시 총선을 치른다.

시장이 싫어하는 것은 불확실성이다. 그리스의 정부 구성 실패는 위기감을 불러왔고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사태) 조짐마저 나타났다. 블룸버그통신은 5월 15일(현지 시간) 그리스 대통령궁 웹사이트를 인용, “지난 6일 총선 이후 일주일 동안 그리스 은행에서 7억 유로(1조원)가량의 예금이 빠져 나갔다”고 보도했다.

2차 총선에서도 ‘구제금융 재협상’을 공약한 시리자가 우세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가 잇달아 나오는 가운데 국제 금융기관들과 투자자들은 그리스 총선 결과는 그리스의 구제금융 조건 불이행, 디폴트, 유로존 탈퇴 등 연쇄 반응을 통해 유로존을 다시 최악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리스 의회는 곧 2013~2014년 구제금융 지원분을 위한 110억 유로의 재정삭감안을 결정해야 한다.



일러스트 전희성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