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100세 시대에는 부모 봉양과 재산 상속에 대한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얼마 전, 한 일본인 친구로부터 지금 일본에서는 노노(老老) 상속이 커다란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노노상속은 문자 그대로 노인이 세상을 떠나면서 갖고 있던 재산을 젊은이가 아닌 노인에게 상속하는 데 따르는 문제다.

그 일본인 친구의 예를 들면, 그의 큰어머니는 얼마 전에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면서 65세의 사촌형에게 재산을 상속했다. 92세라고 하면 일본인의 평균수명을 생각할 때 특별히 오래 살았다고도 할 수 없는 나이다. 92세 고령자라면 그 배우자 또한 비슷한 수준의 고령자일 것이고, 자녀들도 젊어야 50대 후반이나 환갑을 넘은 나이일 것이다. 즉, 일본의 노인이 세상을 떠날 경우에는 갖고 있던 재산이 거의 확실하게 노인에게 상속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것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많든 적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그 재산을 언제 물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 많든 적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그 재산을 언제 물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경제 불황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老老상속

그렇다면, 왜 노노상속이 일본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될까. 돈이 노인들 수중에서만 돌고 경제 활동을 왕성하게 하는 젊은 세대에게 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미래의 꿈을 가진 벤처산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큰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일본의 장기 경제 불황은 ‘돈을 쓰지 않는 부자 노인’과 ‘돈이 없어 소비하지 못하는 가난한 젊은 세대’라는 이중적인 사회구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현재 일본의 60대 이상 노령세대들은 일본 전체 가계 금융 자산의 70% 정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이들 노인들은 지금과 같이 100세까지 살아야 하는 시대에 언제 어떤 고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현금을 움켜쥐고만 있다. 본인도 쓰지 않을 뿐 아니라 자녀들에게 물려주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생산성 있는 곳에 투자를 하지도 않는다.

돈 가진 세대가 소비도 안하고 투자도 안하니 경제 또한 활성화되지 않는다. 일본 정책당국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노인들 수중에서 잠자고 있는 돈이 젊은 세대에게 이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각종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생전 증여를 하거나 자녀에게 집을 사줄 경우 세제 혜택을 주는 것도 이런 정책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렇다 할 효과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박유성 고려대 교수가 발표한 ‘연령대별 100세 도달 가능성’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37년생 생존자 중 남자 18.5%·여자 23.4%가, 1945년생의 경우에는 남자 23.4%·여자 32.3%가 100세를 돌파할 것으로 나타났다. 문자 그대로 인생 100세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에 대해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 또한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뜻이다.

현재 우리나라 전체 가계 금융 자산 중 60세 이상의 노령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비율이 아직은 25%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러나 710만 베이비부머가 노령세대로 편입되는 시점이 되면, 이 비율은 50~60%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때까지 정책당국의 대응책이 나오지 않고 노령세대의 인식도 바뀌지 않는다면 한국판 노노상속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많든 적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그 재산을 언제 물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자녀들에게 많든 적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그 재산을 언제 물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 노인들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

요즘 노인들 사이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자녀들에게 절대 재산을 물려주지 말라. 물려주면 그 다음에는 자녀들이 자주 찾아오지 않는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돈이라도 들고 있어야 자녀들이 자주 찾아와서 노년이 외롭지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어릴 때부터 자녀 교육을 잘 시켜서 자녀들 스스로가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찾아온다면 모르지만 돈을 미끼로 찾아오게 만든다면 그 노년이 얼마나 비참해지겠는가. 차라리 노부부 둘만 남았거나 사별해서 혼자 됐을 경우에라도 외로움을 이길 수 있는 능력, 즉, 고독력을 키우는 편이 보다 현실적인 해답이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노인들은 더 외로워질 것이고 ‘외로움을 즐기는 힘’은 미래의 핵심 경쟁력이 될 거라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고독력을 키워야 한다고 해서 고립된 생활을 자초하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꾸 더 어울려야 한다. 물리적 생활환경이 아무리 편하고 쾌적하게 바뀐다 해도 ‘고독’은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정신적 고통이기 때문이다. 혼자 살더라도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취미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공동체에 편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고립을 피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주거 형태다. 자녀와 같이 살고 싶지 않다면 결국 이웃만한 복지시설은 없다. 이 때문에 고령사회를 일찍 경험한 일본에서는, 노부부만 살거나 배우자 사별 후 혼자 살게 될 경우, 도심에서 66m²(20평) 정도의 작은 집에 사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이런 집들은 쇼핑, 의료, 취미, 오락, 친교를 가까운 데서 해결할 수 있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대형·고층 아파트를 선호하는 우리나라 노년 세대들이 참고할 점이다.

또한 자녀들에게 많든 적든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을 가진 부모라면, 그 재산을 언제 물려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100세에 세상을 떠나면서 70세가 된 자녀에게 상속을 한다면, 그 재산이 생산적인 곳에 쓰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자녀가 조금이라도 젊을 때,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 데에 투자하거나 꿈이 있는 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자녀의 장래를 위해서나 사회를 위해서나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다.

자녀들의 인적 자본 투자나 꿈이 있는 사업 투자에 지원을 하고 싶어도, 노부부가 몇 살까지 살지 또는 노후 생활비가 얼마나 들지 예측할 수 없어서, 지원을 망설이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에는 우선, 현역시절에 가입해둔 3층 연금(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기본 생활비 정도를 보장받을 수 있는지 계산해 본다. 3층 연금으로 부족한 경우에는 즉시연금이나 주택연금으로 부족분을 보충할 수 있는지를 계산해본다. 계산해본 결과, 이들 연금으로 기본 생활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나머지 재산 중 일부는 안심하고 자녀들이 생산적인 투자를 하는 데에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경우이든, 경제력을 가진 노인세대들에게는 재산 상속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보유 재산을 움켜쥐고만 있으면, 이것은 국가 경제를 불황에 빠뜨릴 뿐 아니라 불황의 여파는 다시 자신과 자녀들의 불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100세 시대 좋은 부모의 조건

지금과 같은 인생 100세 시대에는 좋은 부모, 좋은 자녀에 대한 생각 또한 바뀌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예전에는 ‘좋은 부모’는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베풀어주는 부모를 말했다. 물론 수명이 60~70세 전후일 때는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것을 주고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인생 100세 시대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아무런 소득 없이 지내야 하는 노년기가 길어지면 부모들은 자식에게 베풀었던 사랑을 돌려받기 원한다. 그러나 문제는 자녀들의 형편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자녀 교육비와 내 집 마련 비용 때문에 부모 봉양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이런 사정은 최근 들어 급증하는 주택연금 신청자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택금융공사(HF)가 주택연금 신청자들의 연령을 분석한 결과, 평균 73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가입자들은 퇴직한 다음 10여 년간의 은퇴 생활을 하면서 현역시절에 모아둔 노후 자금이 떨어졌거나, 퇴직 후에 얻은 일자리마저 그만두면서 생계가 곤란해진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가진 것이라곤 집 한 채밖에 없는 노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지키면서 생활비까지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은 주택연금 외에는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다. 그런데 이들이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데 커다란 걸림돌이 되는 것은 ‘자식에게 집 한 채는 물려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그 때문에 차일피일 신청을 미루다가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돼서야 주택연금에 가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노부모들은 그런 고정관념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수명이 늘어나면서 주택 상속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부모가 100세까지 산다면, 그때 자식의 나이는 70세가 될 것이다. 자식들 처지에선 70세 나이에 집을 물려받기보다는, 각종 비용 지출로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40~50대에, 부모가 주택연금을 받아 부양 부담을 덜어주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일러스트 추덕영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