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웅 CW레스토랑 대표

키덜트(kidult). 어른이지만 아이 같은 취미나 성향을 가진 이들을 일컫는다.
어른이 돼 장난감을 수집하는 사람도 키덜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피규어 수집가 조웅 CW레스토랑 대표의 수집 인생은 키덜트라는 표현만으로는 어색한, 한 남자의 진지한 꿈이 담긴 이야기다.

“남자라면 어렸을 때 다들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 건 꼭 용돈이 없어서 못 사죠. 문방구에서 군침만 흘리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서야 했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저는 그때의 마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어 회사에 다니고 수입이 생기면서 내가 갖고자 했던 걸 직접 사는 것, 그걸로 어렸을 때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을 때의 마음을 느끼는 건 행복한 경험이에요.”

지난 4월 4일 경상북도 경산시의 CW레스토랑에서 만난 조웅 대표의 말이다. 올해 서른다섯의 이 젊은 사장님은 영화 관련 피규어 수집가다. 현재 5000여 점 이상의 피규어를 보유하고 있다. 비싼 것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른바 ‘프리미엄’이 붙은 컬렉션이 대부분이다.

그가 인터넷 블로그에 올린 ‘스타워즈’ 피규어 컬렉션은 해외에서도 이슈가 되기도 했다. 그의 컬렉션 사진은 미국 한 대학과 독일 인테리어회사의 샘플 사진으로 사용됐고, 미국의 화보 전문 매체 라이프닷컴에 게재되기도 했다.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수집가들도 한국의 조웅을 모르는 이가 없어, 까다롭기로 유명한 이 바닥 마니아들도 모두 인정하는 피규어 수집가다. 지난 3월에는 피규어 컬렉션을 관람할 수 있는 공간과 레스토랑, 카페를 접목시킨 ‘CW레스토랑’을 오픈했다.

“10년 전 우연히 안 좋은 일 때문에 우울해 하던 친구들을 자취방에 초대해 밥을 먹은 적이 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제 방에 진열된 피규어를 구경했어요. 우울해 하던 친구들이 추억을 회상하고 동심에 젖으면서 굉장히 즐거워하더라고요. 그때 이런 공간을 더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눈으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식사도 하고 차도 마실 수 있는 곳으로요.”
[남자의 로망] 꿈을 준 영화와 꿈이 된 피규어
"나이가 들어 회사에 다니고 수입이 생기면서 내가 갖고자 했던 걸 직접 사는 것, 그걸로 어릴 적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을 때의 마음을 느끼는 건 행복한 경험이에요."


2000년부터 수집 시작, 해외에 소개되기도
“나이가 들어 회사에 다니고 수입이 생기면서 내가 갖고자 했던 걸 직접 사는 것, 그걸로 어릴 적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을 때의 마음을 느끼는 건 행복한 경험이에요.”
“나이가 들어 회사에 다니고 수입이 생기면서 내가 갖고자 했던 걸 직접 사는 것, 그걸로 어릴 적 갖지 못한 것을 소유했을 때의 마음을 느끼는 건 행복한 경험이에요.”
그 전부터 피규어 수집을 해왔던 거네요.
“2000년에 미국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처음 피규어 숍에 들어가 봤죠. 제가 워낙 영화를 좋아해서 포스터 같은 것들도 모았는데, 피규어를 보니까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를 추억하고 생각하는 데 그게 제일 강렬해 보이더군요. 이게 정답이다 싶어서 그때부터 수집을 시작했습니다.”

보통 피규어는 어떤 방법으로 구하십니까.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의 해외 경매 사이트를 이용해요. 해외에서 직접 사 오는 경우도 있고요. 최근 국내에도 취급하는 곳이 많이 늘어서 그곳에서 사기도 하는데 약간 더 비싸긴 하죠.”
인터넷 경매에는 도가 트셨겠습니다.

“확실히 노하우가 많이 생기죠. 경매 자체보다는 해외 경매이다 보니까 환율 싸움이 힘들어요. 100만 원 이상 넘어가면 환율을 무시하지 못하니까요.”

컬렉션 중에 가장 구하기 힘들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영화 ‘시네마 천국’ 주인공의 영사기요. ‘시네마 천국’을 보고 좋아서 뭔가를 수집하고 싶었는데, 눈에 들어온 게 주인공이 마지막에 영화를 돌려보는 영사기였어요. 그런데 인터넷에도 그 영사기가 어떤 모델인지 정보가 없는 거예요. 영화를 캡처해서 사진을 비교해가며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전 세계 경매 사이트를 다 뒤졌어요.

그렇게 2년을 뒤졌더니 하나가 나왔습니다. 1960년에 단종된 독일제 영사기더라고요. 그런데 경매에 올라온 건 흰색이었어요. 제가 원한 건 회색인데. 다시 한참을 찾았더니 독일 시골 할아버지께서 경매에 하나를 올린 거예요. 그걸 1달러에 낙찰 받았어요. 아무도 그게 ‘시네마 천국’에 나온 영사기라는 걸 몰랐던 거죠. 가장 오래 걸렸고, 가장 힘들었는데, 가장 싼 가격에 산 수집품이라 기억에 남습니다.”

구하고 싶은데 못 구했다거나 목표로 하고 있는 물건이 있습니까.
“영화 ‘백투더퓨처’의 타임머신 ‘드로리안’이 지금 목표예요. 가끔 경매 사이트에 영화처럼 개조한 것들이 올라오긴 하는데 비싸서 아직 사지 못하고 있어요. 레스토랑 테라스에 두면 딱인데….”


“어른들은 추억을 되살리고, 아이들은 상상력을 가졌으면”
조웅 대표는 현재 5000여 점 이상의 피규어를 보유하고 있다. 비싼 것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른바 ‘프리미엄’이 붙은 컬렉션이 대부분이다.
조웅 대표는 현재 5000여 점 이상의 피규어를 보유하고 있다. 비싼 것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이른바 ‘프리미엄’이 붙은 컬렉션이 대부분이다.
혹시 피규어를 고르는 기준 같은 것이 있나요.
“저는 숫자를 늘리려고 막 구입하진 않아요. 머릿속 진열장에 수집품을 미리 진열해보는 거죠. 그래서 색이나 크기 등 전체적인 걸 고려해 보고 비어 있는 게 뭔지를 생각하는 거죠. 아마 제가 디자이너 출신이라 더 그런지도 몰라요.”

원래 직업은 디자이너셨다고요.
“네. 그것도 영화랑 관련이 있어요. 제가 처음 극장에서 본 영화가 ‘스타워즈’였습니다. 오프닝 장면부터 신세계였죠. 상상할 수도 없던 것들이 스크린 속에서 상상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그걸 보면서 그래픽디자이너를 꿈꿨어요. 그 덕에 디자인을 오래 공부했고, 취직하고 나서도 나름 잘나가는 편이었어요. 사실 레스토랑을 만드는 건 디자이너를 조금 더 오래한 뒤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국내에서의 디자이너 생활에 한계가 있겠다 싶어 일찍 관두면서 조금 앞당긴 셈이죠.”

가족이나 친구들은 피규어 수집하는 걸 보면 뭐라던가요.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성격상 뭐든지 완성되기 전에는 공개하길 싫어해요. 아내도 결혼하기 전까지 몰랐고 친구들은 제가 피규어 수집하는 걸 거의 몰랐죠. 처음 수집을 시작했을 때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어요. 제가 하는 일은 뭐든지 응원해 주셨는데 그때만은 반대하시더라고요. 진지하게 레스토랑에 대한 꿈까지 꾸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그제서야 인정해주셨고요. 장모님께 보여드리는 게 가장 진땀났어요. 신혼집을 차리고 조마조마해 하면서 보여드렸는데 ‘남자가 모으려면 이 정도는 모아야지’ 하시더라고요. 만약 그때 안 좋아하셨다면 제 수집이 내리막길을 탔을지도 모르죠.”

주위에서 왜 하느냐고 많이 물을 것 같아요.
“처음엔 자기만족이었는데 지금은 달라진 것 같아요. 와서 보고 ‘고맙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추억을 되살리고 영화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면서요. ‘대단하다’, ‘훌륭하다’는 말보다 제 취지가 잘 전달된 것 같아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후회한 적이나 포기할 생각은 안 해보셨습니까.
“단 한 번도요. 한 외국의 석유 부자가 10억을 제시하면서 팔라고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수집해서 내가 구상한 레스토랑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워낙 뚜렷했고 자신도 있었으니까요.”

레스토랑을 오픈하면서 그렇게 단단했던 목표가 이뤄진 셈인데 소진된 느낌이시겠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니까요. 이 공간을 더 잘 살려야죠. 제가 ‘스타워즈’를 보면서 꿈을 가진 것처럼 아이들이 여기서 꿈도 가지고 상상력도 키웠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에게는 잊힌 추억이나 가슴 속에 묻어뒀던 동심을 되살리는 기회가 됐으면 하고요.”




글 함승민 기자 sham@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