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풍월당 대표

박종호 풍월당 대표는 원래 직업이 정신과 전문의다. 개인 병원을 운영하며 한양의대와 한림의대 외래교수를 역임한 그의 현재 직함은 클래식 음반 판매와 강의, 여행 저술 등을 하는 풍월당의 대표다. 오페라 평론가이자 여행 저술가인 박 대표를 서울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 있는 풍월당에서 만났다.
[남자의 로망] 정신과 전문의에서 문화여행자로 변신
흔히 압구정 로데오 거리라고 부르는 서울 도심에서 가장 상업적인 문화의 거리 한복판에 풍월당이라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외래어가 즐비한 간판들 사이에 조선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름도 특이하려니와,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가장 트렌디한 거리에서 클래식 음반을 팔고 오페라를 매개로 인문학을 강의한다.

풍월당의 주인 박종호 대표의 하루 일과는 비교적 단순하다. 아침 5, 6시에 일어나 글을 쓰고 오전 강의, 강의가 끝나면 공부하고 저녁에 다시 강의가 이어진다. 1년에 8개월은 글 쓰고 강의하고, 방학이 있는 여름과 겨울에는 여행을 다닌다. 2주 정도 주어지는 봄·가을 방학에도 여행을 한다. 이런 생활을 한 지 벌써 오래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그를 정신과 개원의로 알지만 돈 받는 진료를 안한 지 1년 6개월도 더 됐다.



강의 주제는 세상사는 이야기

“풍월당이 문을 연 지도 9년이 됐고, 강의를 시작한 지도 18년이 됐습니다. 며칠 있으면 11번째 책인 ‘탱고 인 부에노스아이레스’가 나오고요. 그러다 보니 강의 주제가 오페라의 경계를 넘어선 지도 꽤 오래 됐습니다. ‘나비부인’이 어쩌구 저쩌구 하는 강의는 더 이상 없는 거죠. 오페라 ‘돈키호테’를 예로 들어 봅시다. 돈키호테는 가수들에게도 굉장히 어려운 노래입니다. 돈키호테 같은 정신세계를 가져야 노래가 나오거든요. 그런데 돈키호테는 세르반테스의 삶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돈키호테라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당시 상황을 알아야 되는 거죠. 이런 식으로 강의를 합니다.”

그는 최근 강의 주제였던 희극을 또 다른 예로 들었다. 일반인들은 웃기는 걸 대부분 희극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희극에는 일반인이 미처 알지 못하는 원형이 있다. 모든 희극은 ‘결혼’으로 끝이 난다는 점이다. 모든 희극의 결론이 ‘결혼’이라는 점은 그리스 때부터 정해진 규칙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결혼 이후로는 비극이기 때문이다.

결혼에도 전형이 있다. 젊은 남자와 젊은 여자가 맺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사이에 돈 많은 늙은 남자라는 방해꾼이 있게 마련이다. 그리스 아리스토파네스 이래로 모든 희극은 이 규칙을 지켜왔다.

다음 강의 주제는 포퓰리즘으로 할 생각이다. 한국의 정치가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포퓰리스트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 포퓰리스트들을 향해 언론처럼 직설적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그걸 세련된 은유로 표현하는 게 예술이다. 그의 강의에서 예술에서는 포퓰리스트들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공부한다.



“오페라처럼 현실에서도 기득권층이 마이너리티의 삶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 사회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의사 그만두니 환자들이 인격체로 보여

한때 정신과 개원의 중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축에 끼던 그에게 지금의 삶은 어떤 의미일까. “공부한 게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병원에서 환자들 진료하는 것보다 지금이 훨씬 효과적으로 쓰고 있다고 답한다. 인간은 누구나 돈키호테나 햄릿이다. 자신의 심리상태가 투영된 연극과 오페라를 보면서 아무런 저항감 없이 복잡한 심리가 정돈되는 것이다.

그는 이제야 고백하건대 진료할 때는 정말 힘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도 의사였지만 한국 의사들은 도둑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돌아보면 어떻게 하면 환자 한 명 더 받고 어떻게 하면 세금 덜 낼까만 고민한 듯하다.

그는 의사 가운을 벗은 후에야 환자들이 인격체로 보인다고 했다. 가끔 병원을 가면 의사가 얼마나 도둑놈인지, 간호사들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야 눈에 들어온다. 그걸 보면서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였는지 확인하게 된다.

“전문직이라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우물에서만 살려고 하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좁은 우물에 갇힌 사람이 정치가들이 아닐까 싶어요. 우물만 파도 먹을 게 많으니까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거죠. 예술은 바다를 이야기하는 것인데, 그런 사람들에게 아무리 예술을 이야기해도 이해 못하는 거죠.”
의사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한 박종호 대표. 그는 풍월당이 예술을 잘 이해하는 현학적인 감상자의 산실이 되기를 바란다.
의사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한 박종호 대표. 그는 풍월당이 예술을 잘 이해하는 현학적인 감상자의 산실이 되기를 바란다.
빌딩보다 오페라 공연 보는 게 훨씬 남는 장사

그는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병원을 할 때도 항상 이런 생활을 꿈꿨는지도 모른다. 돌아보면 너무 많은 길을 돌아왔다. 자신을 ‘구경꾼’이라고 정의하는 그는, 어린 시절부터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레지던트 시절에는 공연이 있는 날에 맞춰 쉬는 날을 정했다.

“지금까지 전 세계를 돌며 본 공연만 1000여 편이 넘을 겁니다. ‘카르멘’ 같은 건 30번 넘게 봤으니까요. 사실 오페라는 악보만 있잖아요. 같은 오페라라도 누가 연출하고 어떤 배우가 나오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줍니다. 카르멘만 하더라도 150년 전에 나온 오페라잖아요. 그때 공연과 지금 공연은 당연히 다르겠죠. 알면 그게 보이는 거죠.”

공연을 보기 위해 쓴 비용만 빌딩 한 채 값은 족히 될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아깝지 않다. 빌딩 갖고 임대료 안 나온다고 벌벌 떠느니 보고 싶은 공연 양껏 보며 행복하게 사는 게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한다.

수많은 공연을 보고 거기에 감상을 글로 표현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다 보니 지금까지 왔다. 사실 풍월당은 오롯이 자연발생적인 공간이다. 예술에 관심 있는 후배들이 한 명, 두 명 박 대표의 거실로 몰려들었고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지금의 풍월당이 된 것이다. 그때 맺은 인연으로 지금까지 그의 강의를 듣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람 불고 달 뜨면 시를 짓는 삶

그는 풍월당이 그 예술을 잘 이해하는 현학적인 감상자를 교육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기를 바란다. 시작은 미약하다. 풍월당에서 클래식 음반을 찾는 이들을 보면 음악을 모르는 이들이 아직은 많다. 그런데 그런 이들도 조금만 길잡이를 하면 금방 따라온다. 그는 거기서 풍월당의 가능성을 찾는다.

그는 공부하고 강의하면서 누구보다 자신의 삶이 정돈됐다고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풍월당의 가장 큰 수혜자는 자신인 셈이다. 5년, 10년 후에는 풍월당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짐작할 수는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예술을 통해 우리 사회가 보다 아름답고 세련된 사회로 나가는 데 일조해야 한다는 점이다.

“막연하지만 소외계층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페라도 마이너리티들의 이야기가 많거든요. 그런데 마이너리티들은 결코 마이크를 잡을 수 없습니다. 결국은 마이크를 쥔 귀족들이 마이너리티의 삶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술이 사회적으로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 ‘풍월’이라는 간판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풍월(風月)은 박 대표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바람 일고 달 뜨면 시를 짓는다.’ 박 대표에게는 이곳이 바로 문학이고 음악이며, 그의 삶이란 생각이 들었다.



신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