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강 테티스 대표


김지강 테티스 대표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스쿠버다이버다. 바다 사나이인 김 대표의 현재 꿈은 온가족이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하는 것. 올 초 카타마린(쌍동선)을 들여온 그는 꿈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남자의 로망] 세계 일주를 위해 돛을 올리다
김지강 테티스 대표는 스쿠버다이빙이 몸에 밴 사람이라 명함부터 남달랐다.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평온한 미소가 인상적인 그가 인사와 함께 플라스틱 명함을 건넸다. 물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종이 명함으로는 한계가 있더란다. 그래서 찾은 게 지금의 플라스틱 명함이다.



20년 베테랑 스쿠버다이버

젊어서부터 운동을 좋아했고 한때 암벽등반을 즐기기도 했다. 아내를 만난 것도 암벽등반 동호회에서였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암벽등반은 그만뒀다. 딸린 식구가 있는 가장이 하기에 암벽등반은 아무래도 위험했다. 그 뒤 찾은 게 스쿠버다이빙이다.

“원체 레저를 좋아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 조경회사에 다녔는데, 회사 특성상 여름과 겨울에 여유가 있었어요. 그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스쿠버 숍 사장이 동갑내기라 그분과 친해지면서 지금까지 스쿠버다이빙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전기가 있게 마련이다. 그의 경우에는 스쿠버다이빙을 시작하고 3년쯤 지났을 무렵, 남해 백도 앞바다에 들어간 게 중요한 계기가 됐다. 거문도 아래에 있는 백도는 국내 스쿠버다이버들이 최고로 치는 포인트다. 백도의 바다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그 어떤 바다보다 아름다웠다. 산호초가 우거진 곳은 꽃밭을 유영하는 듯 아득했고, 갖가지 물고기 떼가 바꿔놓은 풍경 또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웬만한 국내 포인트를 섭렵한 후에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사이판 구루토(동굴이라는 의미)가 첫 번째 포인트였다. 구루토는 세계 10대 포인트에 들어갈 정도로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곳이다. 구루토를 경험한 후 그 명성이 허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사이판 마리아나 해구도 잊을 수 없는 포인트다. 마리아나 해구는 물이 맑기로 유명한데 수심 30~35m만 들어가도 바닷속이 훤히 보여, 마치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라이브 어보드 트립 사업화

그가 요트에 관심을 가진 것은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부터다. 외국에는 라이브 어보드 트립(live-aboard trip)이라고 해 요트를 타고 바다에 나가 선상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즐기는 여행 코스가 발달해 있다. 그도 선상 스쿠버다이빙을 하다 요트의 매력을 알게 됐다.

“5년 전에 쉰 살이 되는 해에 온가족을 데리고 요트로 세계 일주를 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뒤로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혼자 요트에 대한 공부를 했습니다. 혼자 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1년 전 700요트 클럽에 가입했고요. 세계 일주를 계획했던 쉰 살도 넘었고, 이제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도 되겠다 싶었거든요.”

700요트 클럽에 가입한 후 얼마되지 않아 통영에서 있었던 이순신배 요트대회에 참가할 기회도 얻었다. 5월에 열린 이순신배 요트대회 후 9월에는 독일인이 스키퍼(키잡이)인 요트에 클루로 참여했다. 11월에 열린 한강 요트대회에는 스키퍼로 야마하24 ‘패스타(Fasta)’를 타고 나가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그는 대회를 치르면서 요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바람을 받으며 요트가 기울어질 때는 번지점프를 하거나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듯했다. 그때 귓가에 스치는 바람의 느낌을 어찌 잊을까. 그 맛에 요트를 타는 듯했다.
김지강 대표는 지금 5년 후 요트를 타고 온 가족이 세계 일주를 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김지강 대표는 지금 5년 후 요트를 타고 온 가족이 세계 일주를 하는 꿈에 부풀어 있다.
카타마린 구입 후 꿈을 현실로

처음부터 세계 일주를 염두에 두고 요트를 탔기 때문에 요트를 구입하는 데도 망설임이 없었다. 이순신배 요트대회를 통해 바람을 가르는 맛을 본 그는 그 직후 700요트 클럽을 통해 요트를 계약했다.

처음 계약하겠다고 했을 때는 요트클럽 사장도 믿지 않았다. 그가 구입한 카타마린은 세금을 포함해 4억 원이 넘는 요트다. 그의 경제력에 비해 지나치게 고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탓이다. 중고 요트나 모노홀(몸통이 하나인 요트)은 4000만 원 선이니까 그걸 사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이미 카타마린 저 너머 세계 일주에 가 있었다.

“제 요트는 정식으로 6명이 탈 수 있고, 응접실과 냉장고, 마이크로오븐까지 갖췄습니다. 대서양을 오가는 요트라 세계 일주에 손색이 없다고 판단했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구입했죠.”

계약 후 2개월의 건조 기간을 거쳐 지난 1월 요트는 부산항으로 들어왔다. 부산항에서 컨테이너에 싣고 다시 사업체인 테티스가 있는 울진항으로 옮겨졌다.

“요트를 사면 두 번 웃는다고 해요. 한 번은 사서 자기 눈앞에 있을 때, 또 한 번은 팔 때 웃는답니다. 관리가 어려워서 애물단지라는 거죠. 제 경우에는 아직은 그저 좋습니다.”

그는 한동안은 요트를 이용해 라이브 어보드 트립을 할 계획이다. 그게 그리 큰돈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도 안다. 하지만 몇 안 되는 고객이라도 요트를 타고 나가 스쿠버다이빙을 가르치며, 바다의 참맛을 느끼게 해주는 게 지금 그로선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스폰서가 나서면 모르겠지만, 늦어도 5년 후에는 세계 일주에 나설 겁니다.”

올해로 그의 나이 쉰 살이다. 그 나이에 그와 같은 꿈을 간직하고 있다는 자체가 꿈같다. 멀리서나마 그의 꿈을 응원한다.



신규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