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에 시달리며 오래 살기보다는 건강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노후 생활에서 간과할 수 없는 의료비에 대해 알아본다.
[WEALTH CARE] 노후에 필요한 의료비, 얼마나 들까?
지난 2009년 세계보건기구(WHO)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7년 기준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 수명은 71세로 평균 기대수명(79.56세)과 대략 8.56년 정도 차이가 났다. 10년 정도의 기간을 질병을 안고 살다가 생을 마감하는 셈이다.

노후의 질병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은 물론이고 금전적 측면으로도 큰 부담이 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추정한 바에 따르면, 남성의 경우 평생 7415만 원, 여성의 경우 8787만 원을 의료비로 지출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을 65세 이후에 지출한다고 한다. 3700만~4400만 원가량의 의료비를 노후에 지출하게 되는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이러한 노인 의료비가 지속적으로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의료 기술의 발달과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확대는 인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의료비의 빠른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 통계에 따르면, 2003년 이후 노인의료비는 연평균 18.1%의 가파른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8년 ‘전국노인실태조사’에서도 65세 이상의 84.9%는 의사가 진단한 질병을 하나 이상 가지고 있었고, 이 중 만성질환을 가진 노인은 81.3%에 달해 의료비 증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확대는 인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의료비의 빠른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의료 서비스의 접근성 확대는 인간의 수명 연장과 더불어 의료비의 빠른 증가를 불러오고 있다.
노년기에 많이 걸리는 질병

그렇다면 노년기에 많이 걸리는 질병으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2010년 상반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에 의하면, 노인 의료비 상위 질환은 고혈압, 대뇌혈관 질환, 골관절염, 당뇨, 치매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혈압(5724억 원), 대뇌혈관 질환(4960억 원), 골관절염(3341억 원)이 전체 진료비(6조9276억 원) 중 20.2%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노년기에 많이 걸리는 질병은 대부분 뇌혈관 질환,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이다. 노인성 질환은 완치가 어렵고 입원과 장기 요양을 요하는 경우가 많아 의료비 부담이 크다. 생활양식의 변화와 서구화된 식습관 등으로 전 연령층에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특히 노인에게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2010년 건강보험 통계분석자료집’에 따르면 노인성 질환의 환자수가 2002년부터 2009년까지 7년 새 155% 증가해 67만 명에 이르렀고, 이는 65세 미만에서 50%가 증가한 것에 비해 3배 정도 빠른 속도다. 특히 노인의 치매는 같은 기간 환자수가 498%, 진료비는 1232% 증가하는 등 급등세를 보였다.

노인성 질환 외에도 증상이 심각해 진단, 수술, 처방조제 등에서 고액의 진료비가 필요한 질병들이 있다. 2010년 통계청의 사망 원인 통계에 따르면 암, 뇌혈관 질환, 심장 질환, 당뇨병, 폐렴 등이 노인의 사망 원인 질환 중 상위를 차지했다.

특히 의학 발달과 소득 증가에 따른 적극적인 치료 등으로 뇌혈관 질환, 당뇨병은 사망률이 지난 8년간 각각 48%, 33% 감소했으나 암은 9% 감소에 그쳐 여전히 치명적이고 고도의 진료를 필요로 하는 질병임을 입증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암의 생애 의료비를 추정했는데, 암에 걸리는 경우 초기 1년, 사망 전 1년이 가장 의료비가 많이 들며 여성의 경우 1041만 원, 남성은 1411만 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별다른 준비 없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인해 노년기 중산층 파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중병에 걸렸을 경우 재난적 의료비 지출로 인해 노년기 중산층 파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재난’과 같은 의료비 지출의 대비책

노인성 질환이나 암과 같은 중증질환의 적극적 의료 수요가 늘면서 의원이나 약국 이용에 비해 상급 병원의 입원 이용률 또한 높아지고 있다. 건강보험통계에 의하면 노인의 외래나 약국 이용이 2002년부터 2010년까지 8년간 연평균 4%가 증가한 반면, 입원율은 11.2%가 증가했다.

특정 질병의 적극적 치료 이외에도 본인 스스로 일상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경우 역시 간병이 필요하다.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 도입과 함께 요양 시설 및 요양 병원이 생겨나고 그 이용자수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의 급여는 대상자에 대해 당해 장기요양급여 비용의 80%를 지급한다. 2010년 말 기준으로 요양 시설의 경우 월평균 50만~70만 원의 본인부담금을 부담하고, 요양 병원의 경우에는 월평균 80만~250만 원 정도를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입소 비용이나 소모품 비용 등 기타 부대비용을 모두 제외하고 질병에 대한 진료비와 간병비만 산출해 봐도 그 규모가 적지 않다.

WHO는 개인의 가처분소득에서 의료비를 40% 이상 지출할 경우, 재난적 의료비 지출(catastrophic health expenditure)이라 해 이를 ‘재난’에 비유하고 있다. 별다른 준비 없이 이와 같은 중병에 걸렸을 경우 재난적 의료비 지출을 피하기 쉽지 않으며, 이는 노년기 중산층이 질병 때문에 파산으로 내몰리는 원인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향후에도 개인의 의료비 부담은 쉽게 줄어들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노후 자금을 계획할 때는 의료비에 대한 준비가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 2011년 발표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한국 의료 패널로 본 한국 노인들의 의료 이용 및 의료비 지출’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 중 연 소득 4000만 원 미만인 경우는 연간 평균 30만 원에서 75만 원, 4000만 원 이상은 평균 100만 원에서 113만 원 정도를 의료비로 지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 수치를 참조하면 노후에 들어갈 일상적인 병원 진료와 약국 조제에 대한 비용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여기에 암, 심장병 등 중증 질환과 치매와 같은 노인성 질환에 대비한 본인부담금 준비는 별도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비용은 각종 민간 의료보험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민간 의료보험에는 정액형과 실손형 보험이 있으며, 정액형의 경우 계약 시 약정한 금액을 중복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하고, 실손형의 경우 입원비 5000만 원, 통원비 30만 원 한도 내에서 비급여 부분과 법정 본인부담금 합계의 90%를 보상한다. 또한 실손형의 경우 입원, 외래, 처방조제에 한해 일부 질병을 제외하고 보장하며, 정액형의 경우는 계약 시 정한 보상 범위 내에서 추가로 진단, 간병, 후유 장해 등에 대해서도 보상하므로 보험 가입 시 자신에게 적합한 상품인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의료 보장이 주보험인 경우 외에도 종신·정기보험에 건강 특약을 포함할 수 있으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각종 보험의 약관을 충분히 살펴 빠진 부분은 없는지, 한쪽에 편중되진 않았는지 점검해보는 것이 좋다. 미리부터 노후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질병, 의료비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한다면 나와 가족의 근심과 부담을 조금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고혜진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