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D·R 시스템이 나만의 건강 비법이지”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는 우리 나이로 올해 90세지만 헌정회,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 서울평화상문화재단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는 이 전 대표에게 그만의 건강 비결을 물었다. 소석(素石) 이철승 전 신민당 대표는 김영삼·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을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로 둔 한국 현대 정치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이다. 1971년 ‘40대 기수론’을 외치며 양 김(金)과 경쟁했고, 이후 박정희 대통령과 맞서던 야당 대표였다. 1988년 국회의원에 낙선한 뒤로 정계 일선에서는 은퇴했지만, 우리 나이로 90세가 된 지금까지 각종 사회기관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도 웨이트 트레이닝 필요
요즘은 무슨 일을 하며 지내십니까.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크게 세 개가 있어.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거든. 이런 일들 보러 다니느라고 나름 바쁘게 지내고 있지. 아직 아흔밖에 안됐으니 할 수 있는 한 많이 해야지.”
실제로 뵈니까 더 정정해 보이시는데 따로 건강관리법이 있으신가요.
“내 건강관리 비결은 ‘X·D·R 시스템’이야. 운동(eXercise), 섭생(Diet), 휴식(Rest)이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거지. 이 세 개 중에 하나가 너무 많아서도 안 돼. 운동한 만큼 식사도 해야 하고 휴식을 취해야 하는 거야. 또 하나하나마다도 그 안에서 균형을 맞춰야지. 운동도 너무 한 가지 운동만 해서는 안 되고, 웨이트 트레이닝, 유산소 운동, 상체 운동, 하체 운동을 골고루 균형에 맞춰 해야 하고, 섭생과 휴식도 마찬가지로 한 가지에 치우치지 않게 유지해야 돼.”
주로 어떤 운동을 하십니까.
“지금도 일주일에 네 번씩 헬스클럽에 나가고 있어. 보통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운동을 하는데 스트레칭으로 시작해서 바벨, 벤치 프레스, 레그 프레스 머신 같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가벼운 워킹으로 마무리해. 보통 내 나이 되면 웨이트 트레이닝은 안 하려고 하는데 체력에 맞게 할 필요가 있어. 물론 나도 지금은 조금씩 강도를 낮추고 있지만 아무리 늙어도 기본적인 근력이 있어야 신체를 지탱할 수 있는 거거든. 요새 헬스클럽에 가면 ‘젊은’ 50~60대도 웨이트 트레이닝 안하고 슬렁슬렁 운동하려다가 나한테 혼나지. 자기 전 15분, 눈 뜨고 15분 동안 스트레칭과 관절 운동도 해. 운동이란 건 자기 침대도 헬스장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생활화해야 하는 거라고 봐.”
대한체육회장, 대한역도연맹 회장, 1988년 서울올림픽 조직위원, 2002년 월드컵조직위원회 조직위원 등 체육계와 인연도 이어오셨습니다. 원래 체육에 관심이 많으셨습니까.
“어려서부터 운동을 좋아했어. 육상, 농구, 축구 못하는 운동이 없었지. 사실 내가 너무 여러 운동을 하지 않고 한 종목만 계속 했더라면 전문 운동선수가 됐을 거야. 정계에 진출하고 나서는 우수한 체육인을 육성하는 일에 신경을 많이 썼지. 테니스도 국내에 정구밖에 없던 시절에 내가 라켓이랑 공이랑 구해다가 보급시킨 거야. 미군정 시절에는 스케이트랑 역도 선수도 키웠고, 1947년 보스턴 마라톤대회에 우승한 서윤복도 내가 대회에 내보냈지. 그때 서윤복이 고려대 학생이 아니었는데 내가 지원금을 주면서 예비 입학한 걸로 처리할 테니까 우선 대회에 나가라고 했거든. 우승할지는 생각도 못했지. 정말 놀랐어. 그러다가 장면 정부 들어서 대한체육회장을 했지. 그 전까지는 대한체육회장이 이승만 박사가 임명하는 자리였는데 장면 정부 들어서 선출직으로 전환됐거든. 각 체육회 임원이 모여서 투표를 해가지고 내가 첫 번째 민선 회장이 된 셈이지.” 술·담배·황음은 건강의 삼적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하십니까.
“아침은 주로 채소를 갈아서 마시거나 과일, 우유, 토스트 같은 것으로 간단하게 먹는 편이야. 내가 아직 하는 활동이 있으니까 점심과 저녁은 밖에서 먹을 때가 많지만 끼니마다 균형을 맞추려고 하지. 또 운동을 많이 했을 때는 그만큼 먹고, 아닐 때는 적게 먹으면서 운동량하고도 균형을 맞추고. 종합 비타민은 꼬박꼬박 챙겨 먹어. 아무리 식단 관리를 해도 부족할 수 있는 부분을 메우는 거지. 운동이나 식단 말고 휴식도 중요해. 사실 휴식은 불규칙해지기 쉽지만 그래도 최대한 챙기려고 노력해야지.”
술, 담배는 안 하십니까.
“내가 말한 X·D·R이 건강의 삼우(三友)라면 술, 담배, 황음(荒淫)은 건강의 삼적(三敵)이야. 그리고 난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스스로 스포츠맨이라고 생각하는데 스포츠맨은 술, 담배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이 있었거든. 스포츠 선수들도 현역 때는 안 하다가 은퇴해서 술, 담배를 많이 하곤 하는데 그러면 안 돼. 현역이든 은퇴했든 삼적을 가까이 하면 단명하게 마련이야.”
아무리 그래도 학생운동 리더이자 정치인으로서 그게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내가 고려대 전신인 보성전문을 다녔는데, 그때도 막걸리로 유명했지. 그래도 술은 절대 안 마셨어. 학생운동 할 때는 리더니까 오히려 안 마셨지. 대장이 취하면 관리를 어떻게 하겠나. 정치 활동을 할 때도 술자리가 많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땐 마시는 척하고 버렸어. 그런데 나는 술을 마시지 않고도 술자리에서 아주 잘 놀았거든. 다들 ‘아, 저 친구 술도 안 마셨는데 술 마신 것보다 더 잘 논다’고 놀랄 정도였지.(웃음) 그러니까 아무도 내가 술 마시지 않는다고 타박하지 않았어. 아마 내가 타고난 흥이나 신명 같은 게 있나 봐. 그런 흥이나 신명이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건강한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해.” 평양에서의 막걸리 한 잔이 마지막 꿈
최근 따님이신 이양희 성균관대 교수가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에 의해 비상대책위원으로 발탁되면서 역사의 아이러니함으로 화제가 됐습니다. 아버지로서 정계 진출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어떤 조언을 해주셨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악연도 있고 호연도 있지(이 전 대표는 1961년 5·16 이후 반(反) 군정 운동을 했고 제3, 제4공화국 시절 박 전 대통령의 정적이자 대안자 중 한 사람이었다). 그거랑은 상관없이 사실 딸한테는 너무 정치에 깊게 가는 것은 삼가라고 했어. 본인도 그럴 생각인 것 같고. 유엔 아동권리위원장도 한 아동교육 전문가니까 그 일을 계속 해야지. 지금은 단지 시국이 어렵고, 박 위원장의 생각이 진지해서 여당의 환골탈태 과정에만 참여하는 조건으로 시작한 거지.”
아시다시피 올해에는 두 번의 큰 선거가 있고 정국이 혼란스럽습니다. 과거와 지금의 정치가 무엇이 다르다고 보십니까.
“요즘 정치 상황은 특이해. 우리 정치가 정당정치고, 책임정치고, 대의정치가 기본이지. 그러려면 여야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고 당내에서도 주류와 비주류가 있는 것인데, 요새는 구분이 사라져가. 지금 시끄러운 해군기지 문제나 탈북자 문제만 봐도 책임질 만한 얘기를 해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이 슬로건으로 국민을 마취시키기만 하고. 올해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정치가 갈림길을 가게 될 텐데 어떻게 될는지 모르지.”
앞으로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
“지금 하고 있는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자주독립과 민주통일이라는 건국이념, 대한민국 정통성을 후대에 전해주는 것에 일조하는 게 남은 바람이야. 또 통일하는 날이 오면 평양에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것이 꿈이지. 난 술을 절대 안하지만, 그날만은 한 잔 마셔야 하지 않겠나. 하하”
이철승
1922년 전북 전주 출생
고려대 정치학과 졸업
반탁전국학생총연맹 중앙위원장
3·4·5·8·9·10·12대 국회의원
대한체육회장, 신민당 대표최고의원
자유민주총연맹 총재, 헌정회 회장
현 헌정회 원로회의 의장, 대한민국건국기념사업회장,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글 함승민 기자 hamquixote@hankyung.com 사진 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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